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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덕씨는 '만인만색 연구자 네트워크' 회원입니다. '만인만색 연구자 네트워크'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했던 대학원생, 신진연구자들이 모여 만든 단체입니다. [편집자말]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답변하는 도종환 후보자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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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시인은 시에서 희망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했다. 흔들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희망이었다. 그가 쓰는 은유는 권력과 맞선 사람들에게 힘을 줬다. 광화문사거리 대형서점 빌딩 전면에 크게 걸렸던 <흔들리며 피는 꽃>이나 민중가요 가사가 된 <다시 떠나는 날>은 끈질기게 희망을 노래했다. 그래서일까? 시인이 시에서 '노론'을 언급할 때도 시적 은유로 받아들였다.

"노론은 현실입니다/어찌 노론을 한 시대에 이기겠습니까/어떻게 그들의 곳간을 열어 굶주린 세월을 먹이겠습니까/하물며 어찌 평등이며 어찌 약분이겠습니까 (중략)현세는 언제나 노론의 목소리로 회귀하곤 했으나/노론과 맞선 날들만이 역사입니다/목민을 위해 고뇌하고 싸운 시간만이 운동하는 역사입니다."(<새벽 초당> 중)

하지만 시인이 문화체육부 장관에 내정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문체부장관은 각종 박물관을 운영하고 문화재 발굴과 관리 사업을 총괄하는 자리다. 그러니 '노론'은 새로운 장관의 정책 방향을 보여주는 용어이자 검증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2년 전 박근혜 정부 총리후보자였던 문창극도 그 이전에 교회에서 한 강연에서 '식민지배는 하나님이 내린 시련'이라고 발언했던 것이 알려져서 결국 낙마했던 적도 있었다.

'노론지배설'의 등장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의 저자인 이주한씨는 이덕일씨가 소장으로 있는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의 연구위원이다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의 저자인 이주한씨는 이덕일씨가 소장으로 있는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의 연구위원이다
ⓒ 역사의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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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를 아직까지도 노론이 지배하고 있다는 '노론지배설'은 잘 알려진 대로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의 독창적인 주장이다. 이 소장은 한국에서 식민사관이 청산되지 않은 것이 조선 후기에 권력을 잡았던 노론들의 지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노론 출신 유학자들이 150년 넘게 한국사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세대에게 노론지배설은 큰 영향력을 끼쳤다. 신영복 선생도 생전에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면서 '한국사회는 17세기 이후 노론이 장악해왔다'고 말해서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임진왜란 이후에 노론세력이 식민지 시기엔 친일파가 됐다가 해방 후에도 대학 등에 포진해서 통치권력을 줄곧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386세대 중에서 역사에 관심이 있다는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다 보면 노론 탓하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곤 한다.

내가 노론지배설을 처음 접했던 건 이명박 정권 초기에 민주당의 어느 중진의원 보좌관을 만났던 자리였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반대하던 촛불집회가 잠잠해지고, 용산에서 철거민들과 경찰이 사망한 참사가 벌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야당 의원실에서 정책을 담당하는 보좌관을 만났으니 어지러운 정세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날 술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는 역사 강의가 전부였다. 그 보좌관은 정권을 잃은 이후에 역사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는데, 주로 송시열과 노론이 이 나라를 얼마나 망쳤는지에 관한 공부였다. 그날 강의는 오늘날 민주화 세력의 계보가 정조와 남인으로부터 이어진다던 이야기로 끝났다.

공교롭게도 노론지배설이 퍼지기 시작한 때가 그 무렵이었다. 2000년 즈음부터 이 소장은 정조독살설을 내놓으면서 '정조가 10년만 더 살았어도 조선이 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1980년대 민중사에서도 역시 실학자들에게서 자생적인 근대화의 가능성을 찾았기 때문에 민주화 세력에게는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주장이었다. 친일파가 해방 후에도 남한의 지배세력이 되었다는 인식도 널리 퍼져있었다. 그러나 노론이 친일파가 되어서 해방 이후까지 지배하고 있다는 주장은 이 소장만의 독창적인 발상이었다. 2009년 그가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을 내놓으면서 노론-친일파-강단사학계로 이어지는 '노론사관'이라는 말이 정식으로 등장했다.

도종환 후보자가 <새벽 초당>을 썼던 때가 2006년이었다. '노론사관'이라는 말은 없었지만 반개혁세력을 노론에 비유하는 인식이 어느 정도 퍼져있었던 시기였다. "노론과 맞선 날들만이 역사입니다"라는 말이 민주화 세력에게 상식으로 자리를 잡았던 것이 그즈음이었다.

역사는 지원을 통해서만 풍족해지는 농작물

'노론사관'이란 말이 정식으로 나온 뒤부터 '노론'은 더 이상 추상적인 은유가 될 수 없었다. 강단역사학계가 바로 노론이었으며 식민사학자로 지목됐다.

이 논란의 핵심에는 '낙랑군 평양중심설'이 있다. 역사학계에선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자리에 세운 낙랑군이 평양에 중심을 두고 있었다고 보고 있다. 평양에서 발굴된 무덤과 유물들이 한나라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주된 근거다. 반면, 노론지배설을 굳게 믿는 사람들은 역사학계의 통설을 부정한다.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고 본다면 그 이전에 있었던 고조선의 중심 역시 만주가 아니라 한반도가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출토된 유물자료보다 <산해경> 같은 중국의 문헌자료를 더 신뢰해야 한다고 말한다.

6월 9일자 SBS 뉴스 8 보도
 6월 9일자 SBS 뉴스 8 보도
ⓒ SBS 뉴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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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전공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마냥 복잡한 논쟁이다. 문체부 장관 하나 뽑는데 노론의 족보도 들춰보고 평양에서 어떤 유물들이 나왔는지 따져볼 여유가 있는 사람들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논란은 평행선만 그을 뿐 좀처럼 정리되지 않는다. 한편에선 정치가 역사에 개입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비판하고, 다른 한 편에선 국가 세금으로 지원하는 연구라면 당연히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결과물을 내야 한다고 요구할 따름이다.

문제는 국가 지원이다. 몇 년 전 동북아역사재단이 발행하려던 동북아역사지도사업이나 같은 재단이 지원했던 미국 하버드대 한국고대사 프로젝트가 중단된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대다수 역사연구는 국가 지원이 없이 유지되기가 어렵다. 그리고 도 후보자는 이들 프로젝트를 중단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조지 오웰이 상상했듯, 정치인들이 왜곡하지만 않는다면 역사적 사실이 그 순수한 모습 그대로 드러날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기억연구자 알라이다 아스만은 이러한 기대가 순진한 환상이라고 지적한다. 역사는 그처럼 자연 발생적인 지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는 유물을 발굴하고 문헌을 보존하고 추론하고 검증하는 제도적 지원을 꾸준히 받을 때만 풍족하게 생산되는 농작물 같은 것이다. 대학과 연구소를 포함해서 기록물보관소, 박물관, 유적지 등이 이러한 지원제도를 통해서 운영되고 있다.

그래서 역사는 정치와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다. 역사학이 국가의 지원을 받아야만 한다면, 국회의원들이 납세자들을 대신해서 역사학 프로젝트들을 감시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점이 있다면 지적도 하고 때로는 지원중단을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가기준이다.

고대사 연구지원을 폐기한 정치권의 결정과정은 의혹투성이다. 동북아역사지도사업의 경우 한반도가 지도 중심에 놓이지 않았다거나 한자도 병용했다는 등이 명목상의 폐기 이유였다. 그러나 국회에서 의원들이 이 사업에 대해 지적한 사항은 주로 역사관에 관한 내용이었다. 중국 동북공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결과물이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업 폐기의 명목상의 이유가 너무 지엽적이다 보니 국회의원들이 세워둔 정답에 맞지 않아서 폐기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도 후보자의 해명도 이 사업과 관련해선 오락가락한다.

국회에서 오간 검증은 대체로 이랬다. 1981년 국회에서 국사교과서 서술 내용에 관한 공청회가 열렸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한사군 한반도설을 부정하는 쪽에서는 역사학자들을 친일파니 문화간첩이니 몰아세웠다. 강단에 있는 학자들이 식민사관에 빠져서 <산해경>이나 <만주원류고> 같은 사료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사료비판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말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에게 실증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 국회에서 역사학계를 비난했던 박시인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는 이렇게 주장했다.

"단군을 실체로 보느냐 신화로 보느냐 하는 문제는 <삼국유사>나 <제왕운기> 기록이 너무나 짧아 나 자신도 의심이 간다. 그러나 신화적으로는 표현되어 있다고 해서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할 근거는 전혀 없다. 사실이라고 말할 근거도 충분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사실이 아니라고 말할 근거도 전혀 없다. 그러니까 이것을 버릴 것이 아니라 교과서에 수록하여 단일민족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과학적 방법론에 따른다면 가설은 입증되기 전까지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겠지만 한사군 한반도설을 부정하는 사람들에겐 그런 원칙 같은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오직 당위성이었다. 무구한 역사와 광대한 영토를 가진 민족이 될 수 있다면 어떤 주장이든 사실이라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에겐 어떠한 경험증거도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그저 우리 편이냐 적이냐 물을 뿐이다. 이렇듯 오직 '선험적 당파성'만으로 과거를 재단할 때 역사로부터 어떠한 지혜도 얻을 수 없게 된다. 역사연구는 지원이 없이 유지될 수 없지만 그 때문에 역사연구가 정치의 식민지로 전락할 위험 또한 항상 도사리고 있다.

'탈진실' 시대에 책임 있는 장관의 역할

학문의 영역이 절대적으로 보호되어야 할 금기는 결코 아니다. 역사연구에 국가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정치적 논쟁도 언제든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선험적 당파성만 떠도는 시대에는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는 과정이 시간 낭비 취급만 받는다. 이편이냐 저편이냐 묻는 진영논리만 맞붙는 동안 힘이 없는 사람들만 목소리를 잃기 마련이다.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고 난 뒤 '탈진실(post-truth)' 시대란 우려가 세계를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진실이야 어떻든 간에 상관이 없다는 분위기가 바람처럼 일고 있다. 분노를 일으키고 공포를 조장할 수만 있다면 진실이 무엇이든 상관이 없다는 식이다. 진실이 아무런 힘을 가지지 못하는 시대가 바로 탈진실 시대다.

도 후보자는 청문회를 앞두고 논란이 일자 '정치가 역사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연구를 보장하고 지원해야 할 정책책임자라면 이 상황에 대해서 훨씬 적극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미래의 문체부장관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덕일 소장은 이미 자신의 책 <우리 안의 식민사관>에서 동북아역사재단 관계자들에 대해 '국가보안법 처벌' 운운한 바 있다. 이 말을 시적 은유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이런 판국에 장관이 관망만 한다면 그야말로 무책임한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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