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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2월 송파구의 세모녀는 극심한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집세와 공과금을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지난 2014년 2월 송파구의 세모녀는 극심한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집세와 공과금을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 서울경찰청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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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현장실습을 할 때였습니다. 현장실습 내용 중 '사례관리'를 배우는 중이었는데 직접 사례자를 방문하고, 사례자의 인생 이야기를 들은 후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거였습니다. 아직 실습생 신분인데 상담기법을 잘 사용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사회복지 현장실습'은 직접 부딪혀 현장 감각을 익히는 것이 주목적이기에 질문순서를 적어가며 준비하여 사례자댁으로 갔습니다.

대부분의 사회복지 사례자분들이 그렇듯 대중교통으로 찾아가기가 쉽지 않은 곳에 거주지가 있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갈아타고도 한참 걸어도 사례자분 댁을 찾지 못하여 근처 주민센터 협조를 얻어 사례자분 댁을 간신히 찾았습니다. 많은 분이 거주하는 다세대 주택이었고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당 없이 작은 문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어느 집이 사례자분 댁인지 알 수 없어 전화했지만 받지 않아 "OOO 선생님" 하고 작게 이름을 불렀더니 반지하 창문이 열리면서 깡마르고 까만 얼굴을 내미는 사람이 보였습니다.

"OOO 선생님 맞으신가요?"
"난 아니고 오른쪽 코너로 돌면 맨 끝에 집이에요. 거기 사람 아픈 거 같던데..."
"네, 감사합니다"

본인도 아파 보이는 얼굴로 이웃을 걱정하는 모습. 짠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똑똑.

한참을 기다리다 다시 똑똑.

"OOO 선생님"

삐걱하고 문이 열리더니 키 155cm 정도의 작고 왜소한 할아버지가 서 계셨습니다.

"OO기관에서 나왔는데 선생님 이야기 듣고, 또 제가 들고 온 이 서류 설명도 드리려고요"

잠시 잠깐 서 있는 것도 힘드신지 바닥에 풀썩 주저앉으시더군요. 서울시 위기가정 긴급 생계지원이라고 해서 정말 어렵게 살지만, 기초생활수급을 받지 못하는 분들에 한해서 엄격한 심사를 거쳐 1회 30만 원을 지급하는 제도를 설명해 드리려고 한다고 했더니 "제가 밥을 통 못 먹어서 그런지 힘이 없어서 죄송하지만 좀 눕겠습니다"  까만 얼굴에 눈에 흰자는 황달이 와서 노랗게 변한 사례자.

"선생님, 실직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택시를 몰았는데 5개월 전에 간암 말기로 무슨 운전을 하느냐고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했어요. 말이 권고사직이지 강제로 나가라고 했어요. 그 후에 조금 있던 돈 병원비에 약값에 지금은 공과금이란 공과금은 다 밀리고 방세는 1년 치가 밀렸고요"

그동안 얼마나 하소연하고 싶었는지 말하기도 힘든 모습이었지만 묻지도 않은 대답을 하는 사례자.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주민센터에 찾아가서 신청하려 했더니 자녀가 2명이 있다고 안된다고 했다고.

자녀분이 계셔도 부양 포기 각서만 받으면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수 있다고 안내해 드렸지만 어디에 사는지조차 모르고 15년 전 이혼한 뒤부터는 왕래조차 없었다며 한숨을 쉬시더군요. "어디 사는지, 살아있는지라도 알아야 연락을 해서 부양 포기각서를 받든, 좀 도와달라고 하든 할 텐데 하늘 아래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무슨 부양 포기각서냐"며 조금 흥분하다 이내 눈을 감아버리셨습니다.

선생님 같은 상황에 놓인 분들을 위해 서울시에서 위기 긴급가정 생계비를 지원을 한다고 설명 드리고 신청에 필요한 각종 서류를 받으러 왔다고 하니 대뜸, "계속 주는 건요?" 라고 물었습니다. 

"아니요... 말 그대로 위기 긴급이라서 1회 30만 원 지급이고요. 최대 2번까지만 기회가 가요. 정말 어려운 많은 분들께 골고루 혜택을 드리기 위해서..."
"이번엔 이렇게 때우고 다음엔 죽으라는 건가요?"
"..."

임시지만 그래도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선생님을 도울 다른 방법은 찾아보자며 제가 그 날 해야 할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 다시 서울시 위기 긴급 생계비 지원에 대해 설명을 했습니다.

'1회에 30만 원 지급 최대 2회 지원이고 현금으로 생활비 지급을 원할 경우 10원짜리라도 영수증을 챙겨서 사진을 찍어 주셔야 하고, 의료비일 경우 사회복지기관에서 병원에 직접 대납, 각종 공과금에 대해서는 체납금 직접 지급, 주거비일 경우에는 집주인 통장에 직접 송금이 원칙이다' 라고 설명을 드리자 한숨을 쉬시는 사례자.

"영수증을 내가 어찌 다 챙깁니까. 내 몸 챙기기도 어려운데. 그러니까 직접 돈은 못 준다는 거 아닙니까?
"네..."

생활비로 돈을 받아서 다른 용도로 써 버리는 사례자가 있다는 이유로 그렇게 한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습니다.

"병원에서 간암 말기래요. 내가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나도 몰라요. 내가 얼마나 산다고. 병원에선 입원해야 된다는데 당장 쌀 살 돈도 없는데 무슨 입원이냐고요. 돈 없는 사람들이 암 걸리면 병원비 깎아 준다고 집주인도 알려주던데 병원에 얘기하니까 국민건강검진인가 그거 안 받으면 안 해준대요. 국가에서 해주는 검진도 안 받아 놓고 무슨 병원비를 국가에서 내주냐고요, 근데 하루 벌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이 건강검진 받을 시간이 어딨냐고요! 택시 하루라도 쉬면 내 돈으로 메꿔야 되는데..."

서러운 사연 한꺼번에 풀어내듯 누운 채 노랗게 된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며 어렵게 어렵게 긴 이야기를 이어가는 사례자 밥은 드셨느냔 질문에 갑자기 눈물을 흘리시더군요. 지금껏 밥 먹었냐 물어보는 사람 한 명 없었다고.

열심히 살아보려 쉬지 않고 일했더니 암이 찾아왔고, 일하느라 바빠 국민건강검진 한 번 못 받았더니 국가에서 시행하는 검진을 받지 않은 사람은 병원비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통보.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하려 했더니 2명의 자녀가 있다고 거절. 그러나 15년 넘게 연락이 끊긴 자녀들.

거짓으로 나라의 세금인 사회복지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진정 보호받아야 할 어려운 이웃이 복지 사각지대로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에 '송파 세 모녀 사연'이 그녀들만의 특별한 뉴스가 아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다음 달이면 사회복지 자격증을 신청하고 교부받게 될 텐데 나는 어떤 모습의 사회복지사가 될 것인가. 서울시를 비롯해 전국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찾아가는 복지'가 던져주는 딜레마. 사회복지사들의 연이은 격무와 함께 사회복지의 숨은 그늘이 오버랣되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오늘이었습니다.


태그:#복지사각지대, #사회복지허점, #송파세모녀, #사회복지사, #위기긴급가정생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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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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