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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과연 우리 사회의 대안, 자본주의의 구조악에 매달려 휘둘리는 고단한 도시생활의 숨통이나 출구가 될 수 있나. 마을을 그러한 대안사회의 경지로 이끌 수 있으려면 '사회적 대안마을'을 지향해야 한다. 그 마을은 일단 '교육마을'이다. 또는 '마을교육공동체'이다. 교육을, 학교를 먼저, 제대로 고치거나 세우지 않고 꾸려가는 마을공동체는 진실하지 않다. 자칫 허구에 가깝다. 당장은 실재하지만 곧 지속이 불가능하거나 존재는 하지만 사실상 무의미하다. 마을주민들이, 공동체구성원들이 더불어 끊임없이 공부하고 훈련하고 자각하고 반성하지 않고서 어떻게 협동과 연대의 '사회적 인간'으로, '깨어있는 마을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여기서 '교육마을'이란 1차 마을주민, 2차 지역주민 등 마을공동체 구성원은 물론 3차 도시민 등 외부 체험방문객, 후원인 등을 아우르는 다양성과 호혜성을 바탕으로 한다. 제도권에서 이루어지는 정규교육 이외에 평생교육, 대안교육, 생태교육 차원에서 인간의 감수성이 향상되고 삶의 터전에서 창조적 생산과 윤리적 소비가 가능하도록 가르침과 배움이 일상화된 곳이다.

실행전략은 마을주민, 인근 지역사회의 주민 등을 대상으로 마을공동체사업을 책임지고 이끌 수 있는 마을지도자, 실무전문가 등을 발굴하고 양성하기 위한 '마을학교'를 개설하고 운영하는 게 상책이다. 교육시설은 기존 마을회관, 평생학습마을 교육장, 마을도서관, 커뮤니티센터 등 기반시설을 활용하면 된다. 가장 중요한 교육사업의 실무운영진 및 강사진은 마을주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 지역사회, 출향인, 예비귀농인 등 외부 강사네트워크를 구축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교육마을'에서 구체적 교육프로그램으로는, 마을 및 지역 주민 스스로를 위한 '마을시민학교', 자녀, 지역 청소년들을 위한 '청소년학교'를 기본적으로 운영한다. 춤, 노래, 공방, 그림, 명상, 문학 등 교과 외 특활프로그램을 위한 '마을학원'도 다채롭게 운영할 수 있다.  명상에 잠기는 마음공간, 문학과 철학 등 마을인문학을 나누는 생각공간 등 '마음학원', 춤을 추는 몸짓공간, 노래를 부르고 음악을 듣는 소리공간, 흙으로 나무로 쇠로 무언가를 만드는 손짓공간 등 '몸학원' 등이면 얼마든지 풍요롭고 따뜻하고 격조있고 창조적인 '마을학원'을 마을주민 스스로 꾸릴 수있다.

마을의 원형을 그리워하는 도시민들의 마을교육공동체 ‘대구 와룡배움터’
▲ 대구 와룡배움터 마을의 원형을 그리워하는 도시민들의 마을교육공동체 ‘대구 와룡배움터’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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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교육공동체에서는 마을이 학교, 시민이 교사 

이처럼 교육마을 또는 '마을교육공동체'는 교육을 중심으로 학교, 마을, 자치단체가 역할을 분담, 공동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을 사회적 목표를 삼고 있다. 한 명의 아이를 기르기 위해서는 마을이 '온통' 학교가 되고 주민이 '모두' 교사가 되는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을 개발하고 있다. 협력과 나눔의 공동체 문화를 배우고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마을교육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역적 관점으로도 학교의 역할은 확장되어야 한다. 학생은, 교육은 학교 안에만, 교실이나 교과서 안에서만 갇혀서는 안 된다. 특히 교육 환경과 여건이 취약한 농어촌지역은 마을과 지역사회가 함께 하는 교육공동체로 전환하는 과제가 시급하다. 농업의 비중은 축소되고 있지만 삶(생활)의 공간으로서 농어촌의 비중과 중요성은 점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 재생과 활성화의 관점에서도 정주여건 조성 차원에서 농어촌지역의 교육적 인프라를 보완하고 보강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농어촌교육을 '농어촌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학생교육'에서 벗어나 '학교가 지역주민을 위한, 또는 지역주민이 주체가 된 교육과 학습의 장'으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지역사회의 교육·문화센터로서 농어촌학교의 새로운 위상과 모델을 구현함으로써 지역사회의 교육적 기능을 재생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국가수준에서 만들어진 농어촌형 교육과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농어촌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과정이나 교육 활동 프로그램은 농어촌 지역의 환경과 특성에 맞게 운영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도시 학교의 단선적 교육과정이나 프로그램을 그대로 모방, 답습해 나가는 상황인 게 현실이다.

마을・지역공동체 재생과 활성화를 위해 학교는 지역의 협동이 강조되는 이른바 '지역사회학교'로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 학생과 교사가 지역 활동에 참가함으로써 사회발전에 공헌하고 학교에 의해 지역사회의 교육기관·교육활동을 조정하고 지원할 수 있다. 무엇보다 지역사회학교에서는 지역사회의 문제를 주민 공동의 힘으로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게 되며, 농어촌 학교가 직면하고 있는 교육적 문제 역시 지역 주민과 함께 풀어가야 할 공동의 과제라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또 학교는 지역주민들에게 평생교육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는 농어촌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기 위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공간이다. 교양·취미교육, 정보화교육, 문해(文解)교육, 생활체육 등 지역 주민들의 평생교육 수요를 반영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 다목적 강당, 정보실,도서관 등 학교 시설을 기반으로 이른바 '지역사회교육센터(community education center)'로 설립·운영함으로써 학생과 주민들의 교육 및 교류 공간으로 개방하고 활용할 수 있다. 

농민들이 세우고 꾸리는 곡성 죽곡면 ‘죽곡농민 열린도서관’
▲ 죽곡 농민도서관 농민들이 세우고 꾸리는 곡성 죽곡면 ‘죽곡농민 열린도서관’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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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없는 마을과 사회는 '사막'처럼

문화가 없는 마을과 사회는 '사막'이나 다름없다. 사막같은 마을에는 아무리 씨를 뿌리고 물을 주어도 싹이 날 수 없다. 마을을 살리겠다고 아무리 애를 써봐야 말짱 헛 일이다. 아무런 희망과 전망도 찾아내기 어렵다. 아무리 정부의 돈과 주민들의 시간과 땀을 투자한다해도 재생이나 복원은 애초 어렵다. 현재를 위한 생활의 보장도, 미래를 위한 생명의 보전도 모두 불가능하다. 차라리 마을을 포기하고 떠나는 게 현명하다. 그래서 지난 수십년동안 마을공동체를 떠나 도시 난민촌이라는 막장으로 향하는 이농, 폐농의 행렬을 멈출 수 없는 것아니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지난 십수년동안 수많은 마을공동체사업이 부질없는 도로로 끝나고 말았다. 을씨년스럽게 토목사업의 부산물인 유휴시설만 덩그러니 남은 마을이 적지 않다. 남은 사람들은 병들고 늙은 노인 뿐이라서 어쩔 도리가 없는 마을사람들도 지쳐 나자빠지고, 마을공동체도 갈등과 반목을 되풀이하다 깨지고 망가졌다. 아마도 마을, 공동체 등을 주제로 하는 문화에 대한 인식과 준비없이 마을공동체사업을 시작해서 그런 것 아니겠는가. 지금 우리 마을들이 겪는 곤란과 어려움의 근원은 다 그런 문화적인 결함과 한계에서 비롯되었다고 진단하고 분석한다.

그렇다고 마을의 문화라는 게 결코 특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마을의 문화는 그렇게 장엄하고 거룩한 그 무엇이 아니다. 억지로 문화재와 명소를 찾아 헤매거나 몸에 맞지도 않는 브랜드, 스토리텔링으로 포장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도 안 된다. 그저 마을주민들의 일상생활 곳곳에, 시시때때로 문화가 저절로 스며들어 있어야 한다. 문화의 냄새가 마치 밥 짓는 냄새처럼 자연스레, 대수롭지 않게 마을 곳곳에, 집집 마다 배어있어야 한다.

'문화적인 마을'이려면, 내부인인 마을주민의 공동생활 공간도 필요하고, 외부인인 체험방문객의 편의시설도 중요하다. 또 마을주민들에게는 교육, 문화, 예술 프로그램 등 자체 학습 및 유대강화 공간도 필요하다. 농촌지역개발사업으로 마을 곳곳에 흔히 들어서고 있는 이른바 교육장이나 체험관은 외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간만은 아닌 것이다. 물론  마을 주민과 외부인이 서로 교류하는 거점이며 지역사회, 타 지역의 공동체네트워크와도 소통할 수 있는 통로로서도 요긴하게 활용될 수 있는 다목적 복합 생활문화공간의 개념과 위상이면 최적일 것이다.

따라서 '문화적이기 때문에 비로소 사회적인 대안마을'의 목표는, "문화적 인프라 및 커뮤니티 구축을 통해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다양한 자원과 요소를 활용해 마을주민, 지역주민들의 유대감 형성 및 공동체성 강화"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그러자면 구체적으로, 마을카페, 마을펜션, 마을식당, 마을박물관, 마을공연장 등 마을공동생활과 마을공동사업을 위한 다목적 시설물이 조성되어야 한다. 대개 자체조성 기금으로 부족할테니 정부지원 보조금을 결합하고, 프로그램 운영 등 기본적인 운영비도 지자체의 예산 지원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이때 기왕의 마을학교 및 마을학원 공간 및 시설을 얼마든지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마을박물관'은 마을과 지역의 역사, 문화, 예술, 인간 등 유무형의 유물과 유산을 전시하되, 실용적이고 문화적이고 생태적인 설계를 통해 최적의 활용 동선을 확보하는 것에 유념해야 한다.

무엇보다 마을에서 문화란 곧 삶 자체이고 일 자체다. 문화적인 요소를 빼놓고 마을을 정의하거나 규정할 수 없다. 문화가 없는 마을은 무미건조하다. 생활이 무의미하다. 삶과 일과 놀이가 완전무결하게 합체되는 문화적 영역과 예술적 공간이 곧 마을인 것이다. 사람은 '밥이나 빵'만으로 잘 살 수 없다. 사람이 살기 좋은 마을이란 문화적인 마을에 다름 아니다. 마을공동체라는 생활공간은 다채롭고 풍성한 문화의 에너지와 종자로 채워져야 마땅하다.

더욱이 마을 밖으로 나가 다른 마을 주민들과 지역사회의 광장에서 어울리자면 문화 말고 더 좋은 연결고리가 없다. 문화의 연결고리 없이 지역사회의 공동체는 유지되거나 지속가능할 수 없다. 가령 교육, 농업, 생태, 문화 전문도서관으로서 마을도서관이 그렇다. 마을과 지역의 역사, 문화, 예술, 인간 유물을 전시하는 마을박물관이 그렇다.

또 영화, 음악, 미술, 문학 학교, 그리고 공연과 전시를 아우르는 종합 문화예술관 위상의 마을극장이 그렇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며 마을사, 마을소식지 등을 짓고 펴내고 알리는 마을출판사와 마을신문사 등도 물론이다. 모두 문화예술을 바탕으로 건강하고 활력있는 지역사회 공동체를 이루는 보석같은 마을공동체 자산들이다. 이렇게 상설화, 전문화, 체계화된 복합적 전시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지역간, 활동주체간, 구성원간, 국내외간 의 다양한 네트워크도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공주 중장리 마을풍물패와 마을미술프로젝트 설치미술 조형물 나무
▲ 공주 중장리 설치미술 공주 중장리 마을풍물패와 마을미술프로젝트 설치미술 조형물 나무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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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마을이 함께 챙기는 '생활복지마을'이라야 

'사회적 대안마을'로 가고 싶다면 기왕의 기술적이고 행정적인 '토건적 마을 만들기'라는 관행적 방법론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지점에서부터 새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사회적이고, 문화적이고, 인문적인 방법론들을 융․복합적으로 결합한 '사회생태적 마을 살리기, 또는 '마을 살이'라는 '생활공동체'의 사업철학, 실천방법론으로 전환해야 한다.   

가령, 춘천 고탄리, 송암리 등 산골마을에서는 마을복지를 마을에서 스스로 준비하고 있다. 이름하여 `산골마을 119' 사업이라는 농촌 노인 대상 사회적 서비스를 스스로 감당하고 있다. 농촌마을 노인들에게 긴급 상황 발생 시 신속한 조치와 지속적인 방문 돌봄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사북면사무소, 춘천솔다원권역, 춘천산골마을협동조합, 춘천별빛산골교육센터 등 지역 4개 기관이 힘을 모아 이른바 '마을단위 복지망'을 구축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복지전달체계를 '행정단위'에서 '마을단위'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과 연구가 이어진다. 전북연구원의 '전라북도 마을복지 전달체계 구축방안' 연구보고서를 보면,  "관 주도의 복지서비스에 의존하는 복지는 한계에 달했다"며 복지체감도 향상을 위해 마을단위로 전달하는 '마을복지 모델'을 제안한다. 즉 실생활이 이루어지고 있는 마을단위에서 복지실현과 관련된 인적, 사회적, 경제적 자원을 재분배하려는 것이다. 수요에 바로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른바 전북형 마을공동체복지 모델을 실현하기 위해 행정 읍면동 단위의 복지전달체계를 마을단위로 세분화하면 복지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동네주민까지 복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때 복지제공 기관을 복지시설로 제한하지 않고 복지의 제공 방식을 다원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을의 병원, 보건소, 경로당, 반상회, 주민자치회 등을 복지의 주체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공적재원이 미처 투입되지 못하는 복지사각지대를 마을의 조직과 자원이 주체적으로, 내생적으로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아울러 공적재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민간 차원의 자발적 마을복지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가령 나눔마을기업, 마을복지기금 등을 조성하고 이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마을복지센터'를 설치하려는 것이다. 결국 마을 자치적인 복지재원 마련, 복지인력관리, 마을복지서비스 제공이라는 복지선순환체계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는 제안이다. 시군별로도 마을복지 지원조직을 설치한다. 그래야 복지기관별로 산재된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통합·조정해 복지의 중복과 누수를 예방된다.

이같은 '마을단위 복지'가 노리는 효과는 자명하다. 기존의 복지시설과 행정기구 중심 정책으로는 오늘날의 심각한 양극화와 고령화에 대처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의 발로다. 한정된 예산으로 공평하고 공정한 유럽식 복지모델은 불가능하다는 현실인식이다. 마을단위에서 민간의 자발적 참여가 결합되는 주민참여형 공동체 복지가 대안이라는 진단이다. 다만, 복지예산의 부족을 이유로 자칫 국가와 정부의 기본적인 책무마저 민간에 전가하는 식의 정책은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도 있다. 당연히 정부의 복지 예산의 확충과 집행 효율 제고부터 우선 노력하는 게 일의  순서다.

무주 초리넝쿨마을의 마을공동식당
▲ 무주 초리넝쿨마을 무주 초리넝쿨마을의 마을공동식당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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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마을학개론(an introduction to Communology/ 마을에서 먹고 사는 법) : 귀농을 하거나 자발적 하방을 해서 마을에서 먹고 살려면,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마을이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마을, 공동체, 마을시민. 마을기업, 대안마을, 대안농정, 그리고 대안사회를 열심히 공부해서 체화해야 한다. 그러면 마을에서 사람답게 먹고 살 수 있다.



태그:#대안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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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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