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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구체적인 옷을 입고 나타난 건 몇 년 전 한 분의 죽음을 가까이서 목도하고 난 다음부터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죽음은 복잡했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죽은 사람과 관계있는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한 사람의 부재로 인한 고통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한 사람의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와 연관된 사람들에게 오래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는 사실 역시 깨달았다.

자살론 표지
▲ 자살론 자살론 표지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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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는 죽음 앞에서 남는 자들의 고통이 이토록 큰데, '선택한 죽음'을 대할 때의 고통은 얼마나 더 클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10년 넘게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인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자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천정환의 <자살론>은 그런 고민들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자살은 '고통과 해석 사이'에 있는 무엇이다. 고통과 해석은 자살과 관계하는 주체성의 두 계기, 즉 경험과 인식을 뜻한다. 또는 자살의 '실재'와 '표상된 것'에 대응한다. 인간은 자살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로서 고통을 경험하며, 고통을 회피하거나 극복하기 위해 자살한다. 그리고 인간은 타인의 죽음과 죽음에의 의지를 해석하며 삶의 의미를 성찰한다."(26쪽)

"이 책에서 다루는 자살은 '한국인의' 자살이 아니라 '한국에서의' 자살이다. '한국인의'가 아닌, '한국에서의'라는 관형구는 자살하는 사람이 놓이는 삶의 구체적인 조건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중략> '한국인 고유의' 심성과 그 집단적 발현태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 특정한 시대의 사회문화․정치경제의 상황과 그것과 상호작용하는 집합적 심성의 구조가 있을 뿐이다."(36쪽)

작가는 '한국에서의' 자살을 "계보학적인 관찰을 통해 한국 사회/문화의 어떤 문제점과 자살이 연관되어 있는지 살피는 한편, 자살행동에 연루된 여러 가지 '문제상황'들이 어떻게 서로 다른 계층․젠더 주체들에 작용하는지도 서술"(34-35쪽)한다.

조선 시대부터 식민지 시기, 그리고 현대의 자살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사례를 정리하고 제시하며 해석하려는 시도를 한다. 그런 시도들은 '생명은 소중한 것'이라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말로 타인의 자살을 막을 수 없음을 시사한다. 또한 자살이 자살자의 개인적이거나 내면적인 문제나 정신질환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선택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인 변인들과 맞물려 일어나는 일임을 지적한다.

"(대부분의) 자살자들이야말로 어떤 면에서는 진정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야말로 최후의 궁지에 몰려,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 최후로 타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자살한다. 자살 생각을 하는 순간 그가 누구든 일종의 사회적 약자이며, 거기에는 반드시 자살 원인을 제공한 상황과 구조가 있다는 점을 확실히 해야 한다. 그리고 자살은 대부분 일종의 "차악의 선택"이다. 또한 모든 자살에는 반드시 '원인'을 야기한 복잡하고 구체적인 관계의 상황이 있다. 따라서 사회적 우울과 고립을 줄여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고, '미래'를 살아갈 용기를 줄 수 있다."(285쪽)

스스로 자살을 선택하지 않는 이상, 자살은 늘 '타인의 문제'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죽을 용기로 살지" 같은 말로 자살자를 '루저'로 인식하는 시선은 폭력이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사유 없이 타인의 삶을 함부로 폄하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없다.

어쩌면 삶을 사랑했을 자살자들을 위해(혹은 앞으로 자살을 선택하고 싶어지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은 자살예방법이나 자살예방센터, 혹은 자살예방핫라인과 같은 전화 상담이 아니다. 자살을 야기하는 복잡하고 구체적인 원인에 대한 대책이다.

"자살이 만연한 사회는 제대로 된 사회가 아니다. 그것이 바로 현재의 대한민국이다. <중략> 즉 자살을 야기하는 사회구조를 고치고 '삶의 질'과 '행복'에 대한 인식의 패러다임을 고쳐나가는 것, 특히 학교나 직장에서 경쟁으로 야기되는 소위와 폭력의 상황을 줄이는 것, 자살위험군에 속하는 노인과 빈곤층 및 정신장애인들에 대한 실질적인 물질적․정신적 지원을 확충하는 것, 그리고 종합적인 긴급구제를 행할 수 있는 예방센터를 전문적인 인력의 힘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물론 자살에 대한 바람직한 앎을 증대시키는 것도 선행과제다."(325쪽)

여기, 지금 한국에서의 자살은 '흔한 죽음'이다. 흔해질수록 자살이 우리에게 주는 충격도 점차 줄어드는 것 같다. 왜 자살은 이토록 흔한 죽음이 되었는가. 이런 현상을 마냥 지켜봐도 되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이 책을 읽으며 같이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중복게재합니다.



자살론 - 고통과 해석 사이에서

천정환 지음, 문학동네(2013)


태그:#자살론, #천정환, #문학동네,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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