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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뤄지는 12일 오전 서울 청운동 경복고에 마련된 시험장에서 감독관이 수험생들에게 주의할 것들을 설명하고 있다.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뤄진 지난 2015년 11월 12일 오전 서울 청운동 경복고에 마련된 시험장에서 감독관이 수험생들에게 주의할 것들을 설명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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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포자'. 수학을 포기한 학생들을 일컫는 줄임말이다. 신조어라지만, 하도 자주 들어서인지 속담 속 낱말처럼 익숙하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테니, 조만간 국어사전에 등재될지도 모르겠다. 전국 연합 모의고사가 치러진 지난 6월 1일, 그래도 수학 수업보다는 시험이 차라리 낫다는 '수포자'들의 수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주지하다시피 기초가 다져져 있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힘든 학문 특성상 '수포자'는 고등학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산수가 수학으로 명칭이 바뀌는 중학교 시절부터 시나브로 양산되어 수능을 코앞에 둔 고3 때 절정에 이르는 것뿐이다. '수포자'가 대부분 '대포자(대학 진학을 포기한 자)'로 이어지는 건, 현행 대학입시 체제상 당연한 귀결이다.

하긴 전국에 널린 게 대학인데, 수학을 포기했다고 대학엘 못 가는 건 아니다. 교사들은 물론, 아이들 사이에서도 '대학의 범주'는 서울, 수도권 소재 대학과 지방의 국립대 정도로 한정된다. 곧, 수학을 포기하면 그 안에 못 든다는 뜻이지, 불문하고 등록금만 내면 어서 오라며 환영하는 곳은 차고도 넘친다. 아이들은 오래전부터 그런 대학을 '지잡대'라며 조롱하고 있다.

일반계 고교 재학생 넷 중 하나는 '수포자'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아무리 적게 잡아도 전국의 일반계 고등학교 재학생 중 넷 중 하나는 '수포자'다. 그 수가 워낙 많다 보니 자신이 '수포자'라는 걸 부끄럽게 여기는 아이들도 요즘엔 없다. 그들 사이에선 언제 처음 수학을 포기했는가를 두고 낄낄대며 서열 아닌 서열을 정하는 경우도 있다. 초등 고학년부터 시작된 '고참'도 있지만, 대개는 고등학교 첫 시험 결과를 받아본 직후라고 말했다.

시험 감독을 하다 보면 수학 교사가 아니더라도 누가 '수포자'인지 대번에 파악할 수 있다. 시험지와 답안지를 받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책상에 엎드리면 십중팔구 '수포자'다. 그들이 시험을 마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채 1분이 못 된다. OMR 카드에 학년, 반, 번호를 마킹한 다음 서술형은 비워두고 선다형은 한 번호로 내리그어버리는 것이 그들의 한결같은 수험 방식이다.

결과만 놓고 보면 푸나 찍나 매한가지인 그들에게 수학 시험은 고통의 시간이다. 딱딱한 책상에 엎드려 있거나 잠자코 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드물긴 하지만 깊은 잠에 빠져 코를 골거나 빈 답안지에 침을 한가득 흘려놓은 경우도 더러 생기니, 감독관으로서 엎드려 잠을 자도록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학교 시험은 수업시간과 마찬가지로 50분 내외지만, 모의고사의 경우엔 고통이 배가된다. 수학 영역은 10시 30분부터 12시 10분까지 무려 100분 동안 치러지는데, 수험 과목 네 영역 중 시험 시간이 가장 길다. 문과든 이과든 한국사를 포함해 세 과목을 연이어 치르는 탐구영역 시험보다 더 길어 '수포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지옥과 같은 시간이다.

시험을 치르는 수포자들의 모습

예비령이 울리고 두툼한 시험지 묶음을 들고 교실에 들어갔더니 일찌감치 쿠션을 만지작거리는 아이들이 눈에 띈다. 100분 동안 편히 쉴 만반의 준비를 미리 하고 있는 거다. 그들에게 시험지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교내 시험이라면 출제된 문항이 몇 개인지 확인하는 성의라도 보이지만, 모의고사의 경우엔 그마저도 필요 없다. 문항에 맞춰 답안지가 제작돼 있기 때문이다.

시험지와 답안지를 배포하는 동안, 늘 해오던 대로 최선을 다하라는 '영혼 없는' 말과 대충 찍고 자면 혼쭐낸다는 엄포를 늘어놓았다. 물론, 그 말을 대부분의 아이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시험지를 받아들고 긴장한 빛이 역력한 아이들에게도, 시험지를 펴볼 생각조차 없는 '수포자'들에게도 사족인 까닭이다. 교실엔 그렇듯 두 갈래의 아이들뿐이다.

10분쯤 지났을까. 여기저기에 두리번거리며 안절부절못하는 아이들이 보인다. 일찌감치 시험을 끝낸 '수포자'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이다. 혼쭐난다는 말에 대놓고 자지는 못하지만, 이미 마음은 콩밭에 있는 상태다. 다들 누군가 먼저 책상 위에 쓰러져주길 바라는 간절한 눈빛이다. 참다못한 한 아이가 따지듯 물었다.

"선생님, 다 푼 사람은 그냥 자면 안 되나요?"

그의 얼굴엔 이미 짜증이 가득하다. 오죽하면 시험 중에 저런 질문을 할까 싶어 차마 안 된다는 말은 못 했다. 그렇다고 흔쾌히 자라 할 수도 없어, 잠을 깨라며 어깨를 주물러주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들이 책상 위로 쓰러지는 건 졸려서라기보다는 어차피 문제를 풀 수도 없고 깨어 있어 봐야 할 게 없다는 것인데, 사실 안마는 딱히 대꾸할 말이 없어 한 무의미한 행동일 뿐이다.

시간을 죽이는 방법도 그들마다 가지각색이었다. 의자 등받이에 드러눕듯 기대어 앉아 멍하니 시험지를 응시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시험지의 넓은 여백을 도화지 삼아 그림을 그리는 아이도 있다. 문항에 제시된 도표를 밑그림 삼아 하릴없이 낙서를 즐기는 아이도 있고, 요즘 대세라는 '피젯 스피너'를 손가락으로 돌리며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보다 못해 결국 그들과 '합의'를 했다. 이미 마무리된 답안지를 수거한 뒤 다른 과목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도록 허락한 것이다. 그마저도 거부하며 막무가내로 자게 해달라는 아이도 있지만, 대개는 기다렸다는 듯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거나 참고서와 노트를 꺼내 밀린 숙제를 했다. 적어도 깜깜이 시험 문제를 앞에 두고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야 나을 거라며 스스로 위안 삼았다.

'수포자'들에게 다시 수학 공부를 시작하도록 만드는 것은 요원해 보였다. 아무리 수학이 모든 학문의 뿌리라며 설파한다고 한들, 끝 모를 열패감을 안긴 과목이라는 낙인이 그들에게서 쉬이 벗겨질 것 같지 않다. 모르긴 해도 어떻게든 대학입시만 끝나면 그들은 수학과 영원한 이별을 고하게 될 것이다. '수포자'들이 수학과 '화해'할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고교 학점제 도입하려면...

듣자니까, 조만간 '고교 학점제'가 시행될 것이라고들 한다. 고등학교에서도 대학에서처럼 학생이 원하는 강좌를 신청해 듣고 졸업 학점을 이수하도록 하는 제도다. 적성의 발현이 교육의 고갱이일진대,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지만, 단순히 따져 봐도 선결되어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당장 학교마다 다양한 선택 과목이 개설되어야 하고, 그러자면 교사 확보는 물론 시설 개선과 확충이 필수적이다. 학생들이 선택 과목이 개설된 학교를 옮겨 다니며 수강하거나, 교사가 학교를 순회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학교마다 학사 운영의 혼란이 불 보듯 뻔하다. 무엇보다 내신과 수능이 절대평가로 전환되어야 하고, 대학입시도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교육부가 서둘러 관련 태스크포스 팀을 꾸리는 걸 보면, '고교 학점제'가 새 정부의 여러 교육 관련 공약 중 첫 번째 실천 공약이 될 듯하다. '고교 학점제' 시행이 몰고 올 장단점을 머릿속에 마인드맵처럼 그려보다가 생각이 '수포자'들의 무기력한 모습에서 멈췄다. '고교 학점제'는 과연 '수포자'들의 공부를 향한 의지를 일깨울 수 있을까.

그저 아이들에게 과목 선택권을 보장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필수 이수 과목으로 지정될 게 뻔한 수학은 지금도 선택의 폭이 넓다. 뭉뚱그려 수학이라고 부르지만, 고등학교 수학은 단일 과목이 아니다.

수포자 문제 해결 없이 교육 개혁 요원

교육 과정상 수준별로 기초수학에 수학1과 수학2로 나뉘고, 다시 기하와 벡터, 확률과 통계, 미적분, 고급수학 등으로 세분화되어 이수하도록 되어 있다. 국어나 영어와는 달리 수학은 분야별로 배우는 내용 자체가 확연히 달라 별도의 독립 과목처럼 여겨진다. 영어가 절대평가 방식으로 전환되면서, 수학은 수능에서 유일하게 변별력을 갖는 과목으로 자리매김 됐다.

무엇보다 변별력 확보에 대한 맹신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순위를 매기고 서열을 정하는 관행으로부터 탈피해야 비로소 공부의 본령에 다가설 수 있다. 따지고 보면, 대학이 전가의 보도처럼 요구하는 변별력이란,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목적과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을뿐더러 교육보다는 오로지 선발에만 관심을 쏟는 대학들의 나태함과 무책임을 가리려는 수단일 뿐이다.

변별력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두껍던 수학 교과서는 자연스레 얇아지게 될 테다. 학습량이 줄어들면 진도에 대한 부담을 덜게 되고, 그때라야 교사 스스로 수업을 설계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아울러 필수 이수 단위를 대폭 줄이는 한편, 교사의 평가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러한 것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릴 때라야 비로소 '수포자'들의 감긴 눈을 뜨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교사의 입장에서 보자면, 교실을 황폐화시키는 '수포자' 문제를 빼놓고서 교육개혁을 운운할 수는 없다. 어쩔 도리가 없다며 그들을 방치하는 '고교 학점제'라면 헛공약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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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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