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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산 고은시인 집 인근
 광교산 고은시인 집 인근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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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출신 고은 시인을 군산으로 모셔 옵시다. 현재 거주하고 계시는 수원에서 인근 주민들이 '고은 시인 떠나라'는 펼침 막을 내걸고 몰아내려는 안타까운 처지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자존심이 무척 상했던 모양이다. 한국문단의 대표적 시인이자 노벨문학상 후보에 여러 차례 오른 고은 시인이 최근 거처 문제로 가시밭 같은 상황에 처하자 시인의 고향인 군산시민들이 부글부글 끓는 모양새다.

"고은 시인, 거주 문제로 푸대접 받는다"

김철규 군산문인협회 회장은 전북지역에서 발행된 일간지 <전북도민일보>에 지난 5일 기고한 칼럼 '고은 시인을 모셔오자'에서 지역민을 대표하여 쓴 소리를 내뱉었다.

그는 "고은 시인은 매년 10월이면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라 국내외적으로 매스컴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는 세계적인 문호로 예우를 받아왔다"면서 "그런데 과연 지금의 고은 시인이 이러한 푸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개탄했다.

이어 그는 "수원시는 안성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시는 고은 시인을 찾아 삼고초려 끝에 수원시 광교산 기슭에 20여 년이 지난 헌집을 구입, 8억여 원을 들여 리모델링하여 2013년 8월 이곳에 모셔놓고 이제 와서 '고은 시인 떠나라'고 시위를 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군산시민들은 그렇지 않아도 매년 노벨문학상 심사 때마다 아슬아슬하게 수상을 하지 못하게 된 소식을 접하며 가슴 조이며 아쉬워하곤 했다. 그런데 고은 시인이 작품 활동을 하며 기거하고 있는 수원시 인근 주민 6백여 명은 '특정인에게 특혜를 준다'며 상수원 보호구역인 '그린벨트를 해제해 달라', '고은 시인이 떠나 줄 것'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고향 주민들은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가뜩이나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이름을 올리는 고은 시인이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라 고향 주민들이 크게 분노했다. 정부가 겉으로는 문화융성을 앞세우면서 안에서는 민족 시인에게 반정부 낙인을 찍어 관리한 데 대해 지역 언론들도 분을 삭이지 못했다.

더욱이 서울을 비롯한 국내 주류언론들은 최근 수원시와 주민들의 갈등에 끼어 마치 논란의 중심에 선 듯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자칫 양 지역(수원과 군산) 간 분란과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였다.

"고은 시인 떠난다고 광교정수장 문제 해결되지 않아"

이런 점을 의식했는지 해당 지역 신문들이 오히려 이 문제를 일반기사가 아닌 사설과 칼럼에서 냉정하게 짚으며 대안을 제시한 점이 도드라진다. 문제의 진원지인 수원시에서 발행되는 <경인일보>는 이 문제를 최근 사설과 칼럼에서 연신 의제로 다뤘다.

지난 5월 25일 '수원시와 주민 갈등에 끼인 시인 고은'이란 제목의 사설에서는 향배에 초점을 맞추었다. 사설은 서두에서 "수원시 상광교동 주민들이 고은 시인의 자택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광교산을 떠나라고 주장하자 이에 고은 시인이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혀 앞으로의 향배가 주목된다"며 시민들 주장에 무게를 실었다.

그러더니 말미에선 "그렇다고 해서 아무 죄도 없는 시인을 볼모로 수원시를 압박하는 것은 올바른 해결방안이 아니다"면서 "고은 시인이 수원을 떠난다고 해도 광교정수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대안까지 제시했다. 사설은 "수원시는 중앙정부와 협의해 재산권 침해로 고통 받는 이들이 실질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마무리 지었다.

신문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6월 1일 데스크 칼럼에서 재차 이 문제를 짚었다. '문학계 거목 시인 고은 혼돈에 서다'란 칼럼은 일련의 과정을 정리하며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칼럼은 "지난 2013년부터 수원에 거주하고 있는 고은 시인과 관련해 최근 벌어진 일련의 일들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며 "정작 시인 본인은 아무런 입장표명도 하지 않고 있는데 수원을 '떠난다'vs'떠나지 않는다' 식으로 말들이 무성하다"고 전제했다.

"고은 시인 입장에서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칼럼은 짐작한다. 이어 칼럼은 "집 앞에 있는 현수막을 볼 때도 착잡할 것"이라며 "큰 틀에서 보면 시인의 거주지는 수원이지만 그는 수원만의 시인이 아닌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이라고 했다. 말미에서는 글쓴이의 마음을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그 자체로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계 거목이다. 시인에게 문학적 고민의 깊이를 더하게끔 수원으로 모셔왔는데 생각지 못한 고민을 안겨드리는 것 아닌가 마음이 좋지 않다."

광교산 고은 시인 집 인근에 붙은 펼침막
 광교산 고은 시인 집 인근에 붙은 펼침막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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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 굴러온 돌 취급... 전북도 뭐하나"

수원시에서 고은 시인이 푸대접을 받고 있는데 대해 고향인 전북지역 언론들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면을 통해 '시인을 고향으로 모시자'는 주문이 늘고 있다. <새전북신문>은 이 문제가 불거지자 지난 5월 29일 사설에서 이 문제를 거론했다. 사설 제목을 '굴러들어온 돌 취급받는 고은시인'이라고 표현했다.

"해당 지차체는 고은 시인 지원, 상수원보호구역 해제 등 두 개의 정책을 주도하고도 아무런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문제가 쉽지 않아 보인다"는 사설은 "어쩌다가 '문학의 거목'인 고은 시인은 당시 '굴러들어온 돌' 취급을 받고 있나"리며 한탄했다.

이어 사설은 "군산시가 고은 시인의 생가 주변을 매입해서 여러 기념사업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예산 부족 등으로 진척이 더딘 상태"라면서 "따라서 자치단체의 예산이 어렵다면 시민들의 펀드를 조성해서라도 고은 주거지 이전 등의 사업비를 마련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더니 결국은 타 지역 사례를 들어 지자체를 향해 일갈했다. 사설은 "통영의 윤이상, 강원도 화천의 이외수 등이 성공 사례로 대표되고 있는 등 지자체는 지역 브랜드를 높이기 위해 문화예술인 인사들의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그동안 전북 지역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또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고 물었다.

앞서 김철규 군산문인협회 회장도 <전북도민일보> 칼럼에서 "군산시는 시차원의 과감한 투자로 군산의 브랜드로 문화역사와 새로운 창작모델의 장르를 펼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준비를 하여 고은 시인이 고향에서 여생을 보내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학과 전혀 별개인 퇴거 논란, 더는 가지 말아야"

고향마을에서는 거주에 대해 다소 부정적 견해도 있으나 군산시라는 큰 맥락의 차원에서 수용하는 배려가 필요하다는 공통적인 주장이다. <전민일보>도 지난 3일 '고은 시인 퇴거 논란, 더는 가지 말아야'란 외부칼럼을 통해 "고은 시인의 문학적 자양분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도 부족한 시간일 텐데 이 무슨 우매한 일인지 소식을 전해 듣는 국민들과 필자의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라고 표현했다.

이어 칼럼은 "문학과는 전혀 별개인 이번 환경문제로 불거진 이 일로 인해 물인 듯, 바람인 듯 써내려가던 고은 시인의 보석 같은 시어를 당분간은 아니 어쩌면 상당히 오랜 기간 접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뼈 있는 호소도 빠뜨리지 않았다.

칼럼은 "이 치열한 고민을 미뤄둔다면 시인의 시처럼 '우린 어쩌면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그 꽃을 내려갈 때 보아야 하는'슬픈 우를 기필코 범하고 말 것"이라며 "생각하자. 우리 지역 군산옥구가 낳은 문학계의 큰 별이 이대로 지지 않게 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이라고 덧붙였다.

이 시대의 문학계 거목인 고은 시인이 정부로부터 '블랙리스트'라는 낙인을 받는가 하면 거주지 문제로 지자체들 사이에서 갈등과 논란의 중심에 선다면 어찌 문학활동을 제대로 펼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태그:#고은 시인, #수원시, #군산시, #블랙리스트, #노벨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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