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4시간 49분 동안 이어진 빗속의 혈투를 승리로 가져갔다.

김한수 감독이 이끄는 삼성 라이온즈는 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연장 10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장단 18안타를 터트리며 12-10으로 승리했다. 8회 2사 후에 등판한 장필준은 양의지에게 동점 적시타를 허용했지만 10회까지 7개의 아웃카운트를 책임지며 시즌 두 번째 승리를 챙겼다.

8회 이현승으로부터 2타점 적시타를 터트린 '국민타자' 이승엽은 10회초에도 이용찬으로부터 결승 투런 홈런을 작렬하며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하지만 통산 451홈런을 터트린 이승엽보다 더욱 뜻 깊은 하루를 보낸 선수는 따로 있었다. 4안타1타점2득점으로 프로 데뷔 후 최고의 활약을 펼친 삼성의 내야수 김정혁이 그 주인공이다.

'왕조' 삼성에서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했던 무명 내야수

경북 포항 출신의 김정혁은 포철공고와 동국대를 거쳤지만 끝내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한 무명 선수였다. 대학 졸업 후 상무에 입대한 김정혁은 2009년 타율 .317 4홈런25타점, 2010년 타율 .278 6홈런27타점을 기록하며 퓨처스리그에서 기량을 인정 받았다. 덕분에 2011 시즌을 앞두고 연고팀인 삼성에 신고 선수로 입단할 수 있었다.

포항 출신의 김정혁이 연고팀에 입단한 것은 좋은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그 시기가 좋지 않았다. 삼성은 2011년부터 4년 연속 통합 우승의 금자탑을 세우며 왕조를 건설했고 삼성의 핫코너에는 박석민(NC 다이노스)이라는 특급 3루수가 있었기 때문이다(심지어 박석민과 김정혁은 1985년생 동갑내기다). 하지만 김정혁은 성실하게 연습하며 금방 정식 선수가 됐고 2011년 타율 .418 102안타57타점58득점으로 퓨처스리그를 지배했다.

그럼에도 삼성의 탄탄한 선수층에서 김정혁의 이름은 눈에 띄지 않았고 1군에서는 2011년 3경기 출전에 그쳤다. 2012년에도 퓨처스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한 김정혁은 시즌 초반부터 손목 부상으로 2013년까지 1군에 오르지 못했다. 2013년 조동찬, 김상수 등 주전 내야수들의 잇따른 부상으로 정병곤, 성의준 등 2군에서 활약하던 내야수들이 대거 1군 출전 기회를 얻었던 점을 생각하면 김정혁의 부상은 대단히 아쉬웠다.

2년 동안의 부상으로 다시 신고선수로 전환된 김정혁은 2014시즌 퓨처스리그에서 타율 .302 5홈런36타점으로 반등에 성공했고 2011년 이후 3년 만에 1군 경기에 나서기도 했다. 2015년에는 시즌 초반부터 1군에 등록돼 4월28일 LG트윈스전에서 31세의 나이에 프로 데뷔 첫 안타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17경기에서 타율 .167 1타점에 그치며 퓨처스리그에서 보여준 만큼의 기량을 선보이진 못했다.

삼성은 작년 시즌 박석민과 채태인(넥센 히어로즈)이 차례로 팀을 떠나면서 내야가 헐거워졌고 김정혁은 1군에서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얻었다. 6월4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송창식으로부터 프로 데뷔 첫 홈런을 터트리기도 했다. 김정혁은 46경기에서 타율 .236 2홈런11타점으로 나름 의미 있는 시즌을 보냈지만 삼성이 9위로 추락하면서 김정혁의 활약은 여전히 야구팬들의 시선을 끌지 못했다.

이원석 부상으로 얻은 기회, 2루타 2개 포함 4안타로 무력시위 

작년 시즌 박석민의 대안으로 영입한 외국인 3루수 아롬 발디리스가 전혀 활약을 해주지 못하면서 올해는 김정혁이 삼성의 주전 3루수 경쟁에 뛰어들 여건이 마련되는 듯했다. 하지만 삼성은 27억 원을 투자해 FA 3루수 이원석을 영입했고 김정혁은 언제나처럼 개막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하고 퓨처스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김정혁은 4월26일 1군의 부름을 받아 5경기에서 타율 .417(12타수5안타) 2타점2득점으로 좋은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5월 초 초반 부진으로 2군에 내려가 있던 외국인 선수 다린 러프의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김정혁은 5일 만에 다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짧은 1군 나들이를 마치고퓨처스리그로 복귀(?)한 김정혁은 25경기에 출전해 타율 .386 4홈런20타점19득점4도루를 기록하며 퓨처스리그에서 더 증명할 것이 없다는 점을 계속 강조했다.

그 사이 삼성은 이원석의 부상으로 내야진이 한층 약해졌고 김한수 감독은 6일 경기를 앞두고 김정혁을 1군 엔트리에 등록시켰다. 6일 두산과의 원정경기에서 9번 3루수로 선발 출전한 김정혁은 역전과 재역전이 오가는 혈전으로 치러진 이 경기에서 5타수4안타1타점2득점을 기록하며 하위타선에서 공격의 연결고리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김정혁은 작년6월8일 LG전과 지난 4월27일 KIA 타이거즈전에서도 4안타를 때렸지만 팀이 패하면서 빛을 보지 못했다).

2회 장원준으로부터 내야 안타를 때린 김정혁은 6회 2사 후 2루타로 출루해 오재일이 실책을 저지르는 틈을 타 홈으로 파고 들었다. 타구 방향을 놓치지 않고 집중력을 발휘했기에 나올 수 있는 재치 있는 득점이었다. 김정혁은 팀이 6점을 뽑은 8회초에도 김승회를 강판시키는 1타점 2루타를 터트렸고 9회에도 선두 타자로 나와 깨끗한 중전안타를 때려냈다. 이날 결승타의 주인공은 이승엽이었지만 삼성이 경기 분위기를 바꾸는 순간에는 언제나 김정혁의 활약이 있었다.

올 시즌 6경기에서 .529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김정혁은 여전히 대부분의 야구팬들에게는 낯선 이름이다. 만약 박석민의 이적이나 이원석의 부상이 없었다면 김정혁은 여전히 경산볼파크를 홈으로 쓰고 있을지 모른다. 33세의 무명 선수 김정혁이 1군에서 뛸 수 있는 배경에는 분명 삼성의 힘든 팀 사정이 있었다. 하지만 김정혁이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살려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군 무대에서 한 경기 4안타는 운으로 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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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삼성 라이온즈 김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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