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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우리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지만, 가족들로부터 인정받은 나의 삶은 행복하다
 국가는 우리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지만, 가족들로부터 인정받은 나의 삶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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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호 동성커플, 가족이 되다

나의 어머니는 20대 시절 경남 모처에서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재직하셨다. 어머니는 당시 기준으로 신여성이기도 했지만, 여러 가지 말 못할 사정으로 결혼을 상당히 늦게 하셨다. 그때만 해도 여성들은 20대 초반이나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무조건 결혼해야 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대였다. 29세가 되던 해 1월도 아닌 12월에 결혼하신 어머니는 조금만 늦었으면 결혼을 못 할 뻔했다는 소리를 주변에서 굉장히 많이 들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결혼은 또 다른 이유로 더 화제였다. 결혼 상대인 나의 아버지가 연하의 남자였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한 살 차이라고 주장하시지만, 어찌 된 일인지 주민등록상 어머니는 1950년생, 아버지는 1955년생으로 다섯 살이나 차이가 난다. 어머니는 출생신고를 2년 빨리, 아버지는 2년 늦게 했다고 우기시지만, 누나와 내가 들어보면 분명 두 분이 살아온 시대적 배경은 1년 이상 차이가 난다.

그런 두 분의 자녀인 누나와 나는 각각 1982년생과 1984년생이다. 둘 다 이제 30대 중반이기 때문에, 또래 친구들의 부모님 대다수는 꽤 오래전에 퇴직을 하셨거나, 더 이상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연상의 부인을 둔 나의 아버지는 올해 1월 중순 연구소에서 퇴직하셨다. 사관학교까지 포함하면 40년 넘게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일해 온 아버지께 감사를 표하기 위해, 나의 남편은 부모님을 모시고 대만으로 효도여행을 다녀오자고 제안했다.

여기서 등장하는 나의 남편은 1965년생이다. 어쩌다 보니 결혼식을 요란하게 해서 많은 분께서 알고 계시지만, 그의 이름은 '김조광수'로 우리나라 공식 1호 '남자 며느리'이자 나보다 19살 연상이다. 물론 나 역시 그와 결혼한 동시에 '남자 며느리'가 되었다. 경상도에서 평생 살아오신 환갑이 넘은 부모님 입장에서는 이런 '1965년생 남자 며느리'가 불편하여 여행 제안을 거절하실 법도 한데,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만 여행을 함께 가시겠노라고 말씀하셨다.

여행은 성사되었고 1950년생 어머니, 1955년생 아버지, 1965년생 남편, 1984년생 나, 이렇게 네 사람은 아버지 퇴임식 후에 바로 대만으로 3박 4일 효도관광을 다녀왔다.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를 중심으로 예류, 지우펀, 대만국립고궁박물관, 사림관저, 도교사원 등 주요 관광지와 각종 맛집을 함께 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보니 가족 간의 정은 더욱 깊어졌다. 대만여행 후 나의 부모님은 하나밖에 없는 1965년생 남자 며느리이자 나의 남편인 '김조광수'를 끔찍이도 아끼신다.

우리나라에서 동성애자가 공개적으로 결혼식을 한 것도 신기한데, 이렇게 결혼한 동성부부가 부모님을 모시고 효도여행을 다녀오다니, 이 글을 읽는 분들 모두 생소하면서도 흥미로울 것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조차 가끔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커밍아웃한 영화제작자이자 감독인 김조광수 감독과 (주)레인보우 팩토리 김승환 대표가 지난 2013년 5월 서울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결혼식 발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입맞춤을 하고 있다.
 커밍아웃한 영화제작자이자 감독인 김조광수 감독과 (주)레인보우 팩토리 김승환 대표가 지난 2013년 5월 서울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결혼식 발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입맞춤을 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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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번의 망설임, 커밍아웃 그 후

이번 19대 대통령 선거 중 후보 TV토론회에서 '동성애'와 '동성결혼'은 뜨거운 감자였다. 몇몇 후보의 올바르지 못한 발언에 대해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1분 찬스를 써가며 "동성애는 찬성이나 반대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성 정체성은 말 그대로 정체성이고 성소수자의 인권과 자유가 존중돼야 민주주의라고 본다"라고 바로 잡았다.

이 발언 이후 심상정 후보가 속한 정의당에는 하루 만에 후원금이 1억 5천만 원 넘게 모였고, 300명이 넘는 신규당원이 가입했다. 물론 이와 동시에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쪽에서는 혐오의 수위를 높이며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성소수자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이번 대선 후보 TV토론회와 같이 차가운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불과 6년 전에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하던 나의 모습을 떠올린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부모님께 커밍아웃하고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매우 순탄했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한국게이인권단체 '친구사이'를 통해서 게이커뮤니티에 데뷔하였고 교육받았기 때문에, 내가 게이라는 사실이 단 한 번도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죄가 되거나 불효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기반이자 깊은 유대관계를 가진 부모님과의 관계가 영원히 단절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커밍아웃을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2011년 3월, 나는 백 번, 아니 만 번의 망설임 끝에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했고 도망치듯 집에서 나왔다. 처음 부모님 반응은 매우 감정적이고, 극단적이었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그 후, 광수 형과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만남과 설득 끝에 양가 부모님의 허락을 얻어 2013년 9월 7일에 서울 청계천 광통교에서 공개적인 결혼식을 올렸다.

험난한 과정을 겪으면서 결혼을 하게 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광수 형과 나의 사이는 결혼 전보다도 더 애틋하고 돈독해졌다. 그리고 그 어려웠던 과정 속에 부모님도 함께 성장해서 우리 가족의 울타리는 더욱 단단해졌다. 그리고 그 가족의 울타리 안에는 나의 배우자 '김조광수'도 들어와 있다.

비록 아직 우리의 혼인관계를 국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여 소송을 진행 중이지만, 가족들로부터 인정받는 지금 나의 삶은 그 누구보다 행복하다. 하지만 부디 다른 성소수자들은, 특히 지금 청소년 등 다음 세대의 성소수자들은 나와 같이 어려운 과정 없이 가족들과 우리 사회로부터 온전히 자신의 성적 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존중받으며 삶을 영위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러려면 하루빨리 차별금지법①이 제정되어야 하고, 군형법 92조 6②이 폐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아가 생활동반자관계법③과 동성결혼이 제도화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까운 미래에 우리나라에서도 더 이상 나와 같은 삶이 특별하거나 생소하지 않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새로운 시대가 열린 만큼 한발 한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품으며 글을 마친다.

① 차별금지법은 헌법의 평등 이념에 따라 병력,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성적지향, 학력을 이유로 차별 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 법무부가 2007년 10월 2일 입법예고 했으나 '성적지향'을 포함한 일부 차별금지조항이 논란이 되어 법무부는 7개 조항을 삭제했고, 결국 법안은 17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② 군인 또는 준군인에 대한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하는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 동성 간 합의된 성관계를 인정하지 않아 군대내 동성애를 금지한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 2012년 UN 국가별 보편적 정례인권검토(UPR)도 성소수자 인권 침해를 우려해 이 조항 폐지를 검토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③ 생활동반자관계법(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안)은 혈연이나 혼인 관계에 있지 않은 동거가족 구성원들이 기존 가족 관계처럼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2014년 진선미 의원 등이 입법을 준비했으나 동성혼 합법화 논란으로 무산되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승환님은 사단법인 신나는센터 상임이사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동성결혼, #김조광수 , #동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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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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