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안티포르노>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안티 포르노>

영화 <안티포르노> 포스터 ⓒ 홀리가든


쿄코는 꽤 잘나가는 소설가다. 잘 꾸며진 펜트하우스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그녀만큼이나 화려하게 차려 입은 개인비서와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그녀의 방문객들은 기자, 사진사 등 언론계 인물들로서 하나 같이 '천재적인' 쿄코를 칭송한다. 쿄코는 이들 앞에서 그녀의 개인비서를 '개'부리듯 부린다. 시종일관 소리를 지르고, 기어서 짖으라고 명령하거나 사진사인 레즈비언 커플과 강제 섹스를 시키기도 한다. 비서는 이 모든 요구에 순순히 응한다. 

반전은 이것이 영화 세트장이라는 것이고, 쿄코는 소설가를 연기하는 한낱 구박 받는 신인 여배우일 뿐이다. 그녀의 명령에 순종하던 개인비서(역을 맡은 배우)는 사실상 세트장을 진두지휘하는 권력을 가진 유명 여배우이며, 그녀의 요구에 따라 감독 이하 모든 스태프들이 움직인다. 현실의 쿄코는 유명 여배우에게 '개'처럼 당하는 인물이고 스태프 모두가 그녀를 무시한다. 영화는 쿄코의 영화 안에서의 '군림하는 작가'와 현실 세계에서의 '지배당하는 배우'를 쉴 새 없이 넘나들며 교차하지만, 어떤 삶이 진짜인지 모호하게 처리한다.

소설가 쿄코와 배우 쿄코의 정 반대의 삶

'모호하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 때문이다. 쿄코가 침대에서 눈을 뜨며 시퀀스가 시작되고 그녀가 침대에서 눈을 뜨는 클로즈업이 영화 전체에서 몇 차례 반복된다. 이는 쿄코가 잠에서 깬 것으로도, 혹은 그녀의 꿈이 시작되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따라서 <안티포르노>는 하나의 온고한 내러티브를 따라가는 영화가 아닌, 쿄코라는 인물을 두 개로 나누어 배우로서의 그녀의 꿈과 실제, 작가로서의 그녀의 꿈과 실제를 그리는 '초현실적' 영화다. 그렇다면 영화가 던지는 중요한 한 수수께끼가 여기에 있다. 왜 <안티 포르노>는 한 여성을 통해 두 개의 자아, 혹은 두 개의 환상을 제시하는가.

<안티포르노>는 일본 전통의 영화사, 니카츠 스튜디오에서 1970년대에 텔레비전의 보급으로 인한 영화사의 불경기를 극복하고자 고안한 성인영화의 하위 장르인 '로망 포르노(프랑스 소설의 한 장르인 Roman Pornographique에서 착안, 야한 영화의 정치학 4화 참조)'의 리부트 프로젝트 중 하나다. 이번 로망 포르노 리부트는 어젠다가 있다. 70년대 황금기 로망 포르노의 레거시를 기리되, 남성 중심이 아닌 여성 중심의 여성을 위한 로망 포르노를 제작하는 것이다.

70년대 황금기 로망 포르노 영화들은 대중의 인기를 받긴 했으나, 영화들이 여성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거의 모든 작품들에서 강간이 모티프로 쓰이고, 여성 등장인물은 남성의 가학적인 폭력에 대항은커녕 최소한의 시위도 하지 않는다. 이번 리부트에서 여성을 위한 로망 포르노를 제작하겠다고 한 것은 장르의 '부정적 전통'을 전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영화 <안티 포르노>

ⓒ 홀리가든


여성 중심의, 여성을 위한 로망 포르노

그렇기에, 앞서 언급한 질문으로 돌아가서 <안티포르노>가 내세우는 '쿄코'라는 여성은 이번 로망 포르노 리부트가 제시하는 '여성' 프로젝트의 아이콘, 다시 말해 과거 로망 포르노에서 '희생' 당한 수많은 여성 캐릭터에 대한 참회로도 읽어낼 수 있다. 이러한 접근에서 볼 때 쿄코는 과거에 비해 단연 진일보한 페미니스트적 캐릭터이다.

가령, 쿄코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객들이 등장하기 전까지 자신의 펜트하우스를 누비며 자유롭게 춤을 추고 독백을 하는데, 그녀가 '포효'하는 내용은 주로 여성 시선에서의 관습에 대한 비판이다. 벽 없이 오픈되어 있는 그녀의 화장실에서 왜 남자만 서서 볼일을 봐야 하는 것인지 반문하기도 하고, 작가라는 명칭 앞에 '여류'를 갖다 붙이는 것은 웃기는 일이라며 비판하기도 한다.

또한 방문객들이 그녀의 집에 찾아왔을 때, 그녀는 본인이 만든 작품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만들 작품에 대해 다소 과격한 어조로 설파한다. 과거 로망 포르노 영화들에서 여성 캐릭터가 마땅한 직업이 없거나 부잣집 남자의 첩, 혹은 AV 배우 정도로 등장했던 것을 고려하면 설정이나, 캐릭터 적인 면에서 가히 파격적인 변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배우 쿄코는 반대의 이미지다. 그녀는 현장 스태프들이나 선배 연기자에게 억압받는 인물이다. 그는 늘 감독에게 부족한 연기력으로 언어폭력에 시달린다. 그녀에겐 어린 시절 부모님의 성관계를 목격하고 갖게 된 섹슈얼 트라우마가 있는데 그녀는 그것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고 본인의 성적 자아에 반영하려고 한다. 이는 배우로서의 범위를 넓히고자 한 그녀의 의도로 보인다. 인정받기 위해서 정서적 상처를 밑천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넓게 보면, <안티포르노>는 페미니스트적 시선을 가진 여성 아티스트(작가로서, 배우로서)와 이의 대칭점에 있는 여성/혹은 전통적 여성상의 병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이 생각하는 자유와 종속이 그녀들의 독백을 채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이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다.

 영화 <안티 포르노>

ⓒ 홀리가든


이 영화의 아이러니

일단 영화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작가) 쿄코라는 여성 캐릭터의 건설에 있다. 이 영화의, 혹은 이 리부트 프로젝트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여성 주인공은 시종일관 자유와 평등을 외치지만, 그녀의 외침은 논리가 부재한 행위 예술에 가깝다. 그녀는 분열적인 태도로 비서를 공격하고 복종하게 만든다. 갑자기 울고 우는 그녀의 행동에는 그 어떤 인과도 적용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녀의 '철학'은 센시컬(sensical: 말이 되는, 뜻이 통하는)하지만, 그녀의 언행은 히스테리로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기승전결에 맞추어 설명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다. 영화는 기승전결의 '순서'가 아닌 여러 개의 단상으로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작가 쿄코와 배우 쿄코의 관계다. 독립적이고 성공한 작가 쿄코는 이번 로망 포르노에서 그려내고자 하는 여성의 모습, 즉 현대적 혹은 이상적 여성을 대변하는 하나의 이미지로서, 그리고 그 마주에는 전통적인 여성, 속박당하고 억압받는 배우 쿄코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이 각각의 시대에서 요구하는, 혹은 동시대에서 그려낸 여성상을 관념적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소노 시온 감독은 전통적 형식의 극영화 보다는 파격적이고 이색적인 작품들을 만들어 왔다. 그가 참여한 이번 <안티포르노>도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서사보다는 이미지로, 인물보다는 색채에 포커스가 맞춰진 초현실적 영상에 가까운 영화다. 교코의 색감 터지는 펜트하우스, 천장에서 떨어지는 오색찬란한 물감 등은 매체의 경계를 넘어 다각적인 예술을 맛본다는 느낌을 준다. 페미니즘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필연적인 이슈를 건드리고자 한 영화의 외피가 초현실주의라는 것이 이 영화의 아이러니임에도 영화의 '도'를 넘는 예술적 시도들이 감탄을 멈추지 않게 한다. 1970, 80년대 미디어가 재현하는 여성의 고정관념을 자신의 사진에서 굴곡진 시선으로 재현하여 풍자했던 페미니스트 포토그래퍼 신디 셔먼의 "Complete Untitled Film Stills" 와 같이 감상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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