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추억 속 영화를 극장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다른 누군가에겐 가뜩이나 상영관 잡기 어려운 작은 영화들의 설 자리를 위협하는 좀비 같은 존재로 여겨져온 재개봉 영화가 이달에도 호화편대를 구성해 관객을 찾는다.

2000년대 초반 작은 독립극장의 이벤트성 행사로 처음 선보인 재개봉 영화는 3~4년 전부터 별다른 광고 없이도 극장에 안정된 수익을 가져다주는 효자콘텐츠로 변신하더니 이제는 아예 대형 멀티플렉스의 지원 아래 예정된 흥행을 노리는 킬러콘텐츠로 자리를 확고히 했다. 개봉작마다 수천에서 수십만에 이르는 관객을 모아 상업성을 입증했으니 영화사 입장에선 재개봉영화에 눈독을 들이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당장은 저예산영화들과 상영관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지만 지나간 영화의 재상영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조성하고 신규 관객을 극장으로 유입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더욱 크다고 하겠다. 이들 영화가 꾸준히 관객의 선택을 받는 한 재개봉 영화 상영관 확대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6월 개봉하는 재개봉작은 모두 십여 편으로 올 해 들어 가장 많은 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세 편이 롯데시네마 상영작으로 최근 이어지는 대형 멀티플렉스의 재개봉작 상영 흐름을 뚜렷이 보여준다 하겠다. 그럼 이달 재개봉작 가운데 눈길이 가는 네 편의 영화를 추려 소개한다.

[하나] <매치 포인트>

매치 포인트 재개봉 포스터

▲ 매치 포인트 재개봉 포스터 ⓒ (주)퍼스트런


미국 출신 영화인으로 할리우드와 거리를 두고 제 나름의 영화세계를 구축해 온 몇 안 되는 작가 우디 앨런의 기획전이 8일부터 메가박스에서 열린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우디 앨런은 수십년 동안 자신이 살아온 도시 뉴욕을 배경으로 그곳에서의 삶을 영화로 찍어낸 인물이다. 그런 그가 뉴욕을 벗어나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을 표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로, 이번 기획전에서는 그 시작점으로 여겨져 온 2005년작 <매치포인트>부터 3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매치포인트>를 비롯해 <스쿠프>와 <로마 위드 러브>로 앞의 두 편은 런던, 마지막 한 편은 로마를 배경으로 한다.

일흔을 넘긴 노감독이 평생 영화를 찍어온 방식에서 탈피해 새로운 장소, 새로운 화법, 새로운 스타일을 받아들였다는 건 그 자체로 존경스런 일이다. 심지어 그 결과로 나온 작품들이 우디 앨런의 이름을 전보다 한 층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었으니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그의 작가정신에 경탄하지 않을 방도가 없다.

감독 스스로 자신의 작품세계에서 '최고의 영화가 될 것'이라고 언급한 <매치 포인트>는 노장이 평생에 걸쳐 단련한 영화적 기교를 모두 쏟아부어 만든 듯한 긴장감도 어려있다. 우디 앨런을 알고 싶은 관객이라면 놓치기 아까운 기회가 될 것이다.

[둘] <샤인>

샤인 재개봉 포스터

▲ 샤인 재개봉 포스터 ⓒ (주)라이크 콘텐츠


<캐리비안의 해적>시리즈의 헥터 바르보사 역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제프리 러시 배우인생 최고의 배역은 누가 뭐래도 <샤인>의 피아니스트 데이빗 헬프갓이 아닐까 한다. 호주의 피아니스트 데이빗 헬프갓의 일대기를 다룬 이 영화에서 그는 음악에 꺼지지 않는 열정을 지닌 피아니스트가 순수한 열정으로 그 스스로를 구원하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빚어냈다.

<아마데우스>의 모차르트와 <불멸의 연인>의 베토벤, <피아니스트의 전설>의 나인틴 헌드레드까지. 매력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음악영화 가운데서도 <샤인>의 연주 장면 만큼 멋스런 장면을 발견하긴 쉽지 않은 일이다. 스콧 힉스의 창의적 연출과 제프리 러시의 열연이 빚어낸 그 유명한 명장면을 극장 스크린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희소한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영화 속 OST 대부분이 실제 데이빗 헬프갓이 연주한 곡으로 꾸려져 관객의 솜털을 곤두서게 해줄 것이다. 15일 재개봉.

[셋] <플래툰>

플래툰 재개봉 포스터

▲ 플래툰 재개봉 포스터 ⓒ 이언픽쳐스


올리버 스톤의 베트남전 3부작 가운데 한 편으로 전쟁 가운데 무력하게 말살당하는 인간성을 상징적으로 그려낸 <플래툰>이 15일 재개봉한다. 1987년 개봉 이후 30년 만이다. 30년의 시간은 당대를 호령한 주연 배우 모두를 추억 속 인물로 만들어버릴 만큼 긴 세월이었으나, 영화가 지닌 가치 만큼은 그시절 그대로일 것으로 보인다.

올리버 스톤의 베트남전 3부작 중에서 가장 높은 인지도를 얻은 영화로 감독 스스로 베트남전에 종군했다 부상으로 의병전역한 자전적 경험을 상당부분 녹여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플래툰>은 시대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작가에게 희망을 던져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무려 십년의 시간 동안 빛을 보지 못했고 저예산 영화로 만들어져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나왔으나 마침내는 감독과 배우 모두에게 커다란 성공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플래툰>을 집필한 건 올리버 스톤의 나이 서른 살 때로, 무명이던 그는 이 영화 시나리오를 갖고 메이저 영화사 수곳의 문을 두드렸으나 어느 곳에서도 긍정적인 답을 듣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시나리오 작가로 자리 잡은 10년 뒤 이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자 그는 이를 놓치지 않고 아카데미 시상식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명작을 만들어냈다. <플래툰>은 그해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 감독상 등 4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넷] <첫 키스만 50번째>

첫 키스만 50번째 재개봉 포스터

▲ 첫 키스만 50번째 재개봉 포스터 ⓒ (주)팝엔터테인먼트


롯데시네마가 <샤인> <플래툰>과 함께 또 한 편의 추억 속 명작을 22일 재개봉한다. 아담 샌들러, 드류 베리모어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첫 키스만 50번째>로 두 배우는 1998년작 <웨딩 싱어>에서 최고의 조화를 보여준 이래 6년 만에 다시 호흡을 맞췄다.

단기 기억상실증이란 황당한 설정과 이 같은 설정을 거뜬히 뛰어넘는 지고지순한 로맨스, 여기에 더해 등장하는 인물 모두가 타율 높은 유머를 러닝타임 내내 쏟아내는 흔치 않은 명작이다.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여자를 오늘도 어제처럼 사랑해야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올 여름 사랑하고픈 남녀라면 최상의 선택이 아닐까.

드류 베리모어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자 아담 샌들러의 전성기가 고스란히 담긴 이 영화를 당신에 추천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매치 포인트 샤인 플래툰 첫 키스만 50번째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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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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