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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늘날 삼성은 젊은이들에게 매력을 주는 기업, 그리고 국민에게 긍지를 주는 기업이라는 위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러나 과연 삼성이 그 명성에 걸맞은 역할을 하고 있는지, 삼성경영인과 전략기획실은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삼성이라는 기업과 삼성그룹의 운영권을 쥐고 있는 소수의 지배자들을 우리는 구분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삼성의 소수 지배자들은 기업의 이익을 사유화하고 기업의 운영을 장악하기 위하여 불법, 편법, 탈법적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바로 기업을 부실하게 만드는 원인을 그들이 제공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7년 삼성그룹 법무팀장을 지냈던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 고백을 했던 당시, 그의 폭로를 도왔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낸 성명서다. 10년 전 성명서지만, 지금 읽어도 의미가 새롭다. 특히 '삼성의 소수 지배자들'이 기업의 이익을 사유화했다는 대목이 특히 그렇다.

지난 달 31일 밤 방송된 KBS 2TV <추적60분 ? 한남동 수표의 비밀>은 2007년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했던 비자금의 존재를 다시 한 번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 냈다.
 지난 달 31일 밤 방송된 KBS 2TV <추적60분 ? 한남동 수표의 비밀>은 2007년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했던 비자금의 존재를 다시 한 번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 냈다.
ⓒ <추적60분> 방송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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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성명서를 다시 들춘 이유는 다시금 삼성의 비자금이 수면 위로 떠 올랐기 때문이다. 지난달 31일 밤 방송된 KBS 2TV <추적60분 – 한남동 수표의 비밀>은 2007년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했던 비자금의 존재를 다시 한번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냈다.

<추적60분> 취재진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이건희 회장 일가 자택 내부 공사 당시 공사대금으로 지급된 수표를 추적했다. 취재진은 전문가의 지원과 끈질긴 추적 끝에 이 수표가 발행된 지 2~3년이 지난 다음 공사대금으로 지급됐고, 연속된 일련번호의 수표들 중 일부가 총수 일가와 무관한 삼성서울병원의 공사 대금으로 지불된 점을 밝혀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수표들이 삼성그룹 비자금 계좌의 존재를 입증할 단서라는 점이다.

또다시 불거진 삼성 비자금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다시 한번 김용철 변호사를 소환해본다. 김 변호사는 자신이 법무팀장을 지내면서 삼성이 비자금을 조성한 방식과 가담자들, 그리고 비자금의 규모와 용처를 낱낱이 드러냈다. 이 지점에서 김 변호사의 폭로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보자.

"나는 삼성이 운용하는 비자금 규모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옛 삼성본관 27층에 있던 비밀금고로 끊임없이 드나들었던 현금 뭉치들을 봤을 뿐이다. (중략) 삼성 비자금의 용도는 다양했다. 선거철이면 정치인들의 선거자금이 됐다.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불법 로비의 자금이기도 했고, 이건희 일가의 개인 재산이 되기도 했다. 물론, 경영권 방어를 위해 우호지분을 취득하기 위한 밑천이기도 했다."

김 변호사의 양심 고백 이후 삼성 비자금 수사를 위한 특검이 꾸려졌다. 그러나 결과는 그야말로 '태산명동 서일필'이었다. 수사를 총괄한 조준웅 특별검사는 비자금 규모를 규명해 내지도, 조성경위를 밝혀내지도 못했다. 아니 의지가 없었다고 하는 편이 사실에 더 가까웠다. 물론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이건희 회장이 전·현직 임직원 486명의 명의로 1199개의 차명 계좌를 만들어 약 4조 5천억 원을 관리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는 했다. 그러나 조준웅 특검은 이 돈이 고 이병철 선대회장에게서 넘겨받은 이건희 회장의 개인 재산이라고 결론 내렸다. 아무리 따져 보아도 봐주기 수사임이 명백했다.

단죄 못 한 비리는 또다시 반복된다

<추적60분> 취재진들은 끈질긴 추적 끝에 삼성그룹의 비자금 단서를 잡아냈다.
 <추적60분> 취재진들은 끈질긴 추적 끝에 삼성그룹의 비자금 단서를 잡아냈다.
ⓒ <추적60분> 방송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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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가정은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만에 하나 조준웅 특검이 삼성 비자금 의혹을 제대로 규명했다면 사태는 어떻게 흘렀을까? 먼저 삼성의 비자금이 정관계, 언론계로 흘러 들어갈 여지가 많이 좁혀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삼성이 비선 실세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게 승마지원을 약속하고 그 대가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관철시킬 여지도 제한됐었을 수도 있다.

현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구속돼 재판을 받는 중이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구속만으로 삼성의 비자금 관행이 근절되리라고 낙관할 수는 없다. 삼성이 <추적60분> 취재진에게 보인 행태를 보면 불신은 더욱 깊어진다. 삼성그룹 홍보실은 취재진에게 세금계산서를 내밀며 거래가 적법하게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취재진은 세금계산서를 꼼꼼하게 따져봤다. 결과는 놀라웠다. 일단 금액이 맞지 않았고, 세금계산서 발행일도 공사대금을 주고 발행한 입금표 일자와 맞지도 않았다. 세계 일류를 자처한다는 삼성그룹이 허위 세금계산서를 들이밀었다가 체면을 구긴 셈이다.

<추적60분 - 한남동 수표의 비밀> 방송 이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이참에 삼성의 비자금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참여연대는 1일 논평을 통해 "삼성의 비자금은 그동안 수차례 그 일부가 수면 위로 부상했던 적이 있었지만, 그 전모가 밝혀진 적도 없고 이에 대해 엄정한 법의 심판이 이뤄진 적은 없다"며 "이제는 우리 사회와 삼성이 이 어두운 과거와 결별할 때가 되었다. 그를 위한 첫걸음은 이건희 전 회장 등 삼성 총수 일가 자택의 공사대금 조로 삼성 비자금으로 의심되는 자금이 사용된 정황에 대해서 철저한 수사가 진행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비자금은 일단 불법의 결과다. 그리고 사회에 환원되어야 할 기업이윤이 총수 일가의 개인 주머니로 들어가기에 사회에 끼치는 해악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이미 삼성은 불법으로 만든 비자금을 정계, 관계, 법조계, 언론계 등 그야말로 전방위적으로 뿌리며 사회를 오염시켜왔다

삼성은 특검 수사가 마무리된 2008년 차명계좌의 실명 전환과 해당 자금을 통한 사회공헌을 약속했다. 그러나 9년이 지난 지금 삼성이 이 약속을 이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삼성의 못된 버릇을 바로잡지 못하면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말썽을 일으킬 것이다. 이미 우리 사회는 십 년 전 삼성의 그릇된 관행을 바로 잡을 기회를 놓쳤고, 그 기회를 놓친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지 않은가?

끝으로, 끈질긴 취재로 삼성 비자금의 일단을 밝혀낸 <추적60분> 취재진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하고자 한다.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을 거치며 실추된 공영방송 KBS의 위상회복 가능성을 엿본다.

덧붙이는 글 | 미주 한인매체 <뉴스M>에 동시 송고한 리뷰기사입니다.



태그:#추적60분, #김용철 변호사, #삼성 비자금 , #조준웅 특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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