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이른바 '흑백TV' 시절엔 다양한 히어로 소재 외화시리즈가 국내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바 있다. 첨단 미래 과학의 도움으로 초인적 힘을 얻은 <600만불의 사나이>와 스핀오프 <인조인간 소머즈>, 화나면 변하는 박사님 <헐크>, 그리고 <원더 우먼> 등이 그 주인공이었다.

<슈퍼맨>(1938년), <배트맨>(1939년) 등과 더불어 DC코믹스의 초기 탄생작이었던 <원더우먼>(1941년)은 지난 1975~79년까지 총 3시즌에 걸쳐 TV 시리즈로 제작되었고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특히 주연을 맡았던 린다 카터의 이미지는 지금까지도 "원더우먼=린다 카터"라는 공식을 성립시켰다.

그래서일까? 이후 영화, TV물 기획이 꾸준히 진행되었지만, DC의 대표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최종 성사된 건 지난해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이 처음이었다.

<앨리의 사랑만들기> <보스턴 리걸> 등을 히트시킨 TV 제작자 데이비드 E. 켈리의 기획으로 2011년 파일럿 편까지 만들었지만, 방영이 취소되었고 이밖에도 몇 번의 시도는 흐지부지 끝나기 일쑤였다.

그만큼 생각만큼 쉽지 않았던 <원더 우먼>의 영상화는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다.

DC 버전의 캡틴 아메리카(?)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원더우먼>은 DC의 라이벌 마블 대표 캐릭터 <캡틴 아메리카>에 비견할만한 가장 미국적인 인물이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 탄생한 이 두 캐릭터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독일군 (나치 또는 히드라)를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치른다는.

이번 영화에선 시대 배경이 한참 앞선 제1차 세계대전으로 옮겨졌지만, 여전히 유사성을 드러낸다. 수뇌부의 반대 속에도 주인공+동료들이 독일군을 상대로 특공대로 침투, 치열한 격전을 펼치는 것부터 적들의 비행기 대공습을 막기 위한 목숨을 건 작전 등은 마치 마블을 벤치마킹한 모양새다.

누가 선이고 악인지에 대해 주인공 혼란에 빠지는 모습은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와 <시빌 워>을 연상해도 크게 이상할 것 없어 보인다.

이렇듯 경쟁작이 생각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구석구석 자리 잡고 있지만, 영화는 다행스럽게도 나름의 주관을 갖고 14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쉼 없이 질주해 나간다.

'힘쎈 여자 원덕순'(?)... 여성 히어로의 가능성과 한계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올해 초 인기리에 방영된 JTBC 드라마 <힘쎈 여자 도봉순>은 엄청난 괴력을 지닌 여성 도봉순을 내세워 약육강식 같은 사회에서 '강한 여성'의 분투기를 코믹하게 그려냈지만, 횟수를 거듭하면서 기존 히어로물+로맨스물이 걸어온 길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서양의 '힘쎈 여자, 원덕순' <원더 우먼>도 이런 약점을 드러낸다. 원작 코믹스와 달리, 여성의 투표권조차 없던 1910년대 영국으로 배경을 달리 가져간 건 여성에 대한 기성 사회의 편견과 이를 극복하는 인물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나름의 시도로 읽힌다.

이 부분은 상당히 칭찬할 만하지만 극이 진행되면서 영화는 갈등하던 원더우먼(갤 가돗 분)이 갑자기 마음을 고쳐먹고 전투 속으로 뛰어드는 평이한 히어로 물의 이야기로 되돌아간다. 사랑 하나면 모든 게 해결될 수 있다는 '사랑 만능주의' 식 전개도 마찬가지.

이른바 블록버스터 영화라는 나름의 임무를 이미 지닌 상태에서 그 이상의 요구하는 건 <원더우먼>에게 너무 많은 짐을 안겨 준 것일까?

지난해 DC의 실패는 "잊으시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그런데도 <원더우먼>은 최근 등장한 히어로 영화 중에선 관객들에게 보는 재미를 선사하는 데 성공했고 그동안 방향성 없이 휘청이던 DC 영화의 틀을 재정비했다.

극 초반의 해변 백병전부터 영화 막판의 대혈전에 이르는 일당백 액션 장면은 상당히 흥미롭게 지켜볼 만하다. 기대 이상으로 극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간 크리스 파인(트레버 대위 역)의 연기 또한 칭찬할 만하다.

매년 쏟아지는 히어로 영화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피로감에 대해서도 나름 "박카스"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특히 온갖 욕과 혹평을 뒤집어쓴 지난해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실망감을(100% 완벽하진 않지만) <원더우먼>이 기대 이상으로 메워줬다.

히어로 영화팬이라면 올 하반기 화제작 <저스티스 리그>에 대한 기대의 끈은 계속 손에 쥐고 있어도 좋을 듯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상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jazzkid)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더우먼 DC코믹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