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캐리비안의 해적 :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메인 포스터.

<캐리비안의 해적 :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메인 포스터.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01.

제작사와 배급사들이 단편이 아닌 하나의 시리즈를 개발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기 시작한 것은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성공하면서였던 것 같다. 물론 그 전에도 시리즈 작품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스튜디오가 시리즈의 상업적인 파급력과 OSMU(One Source Multi Use)로서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한 시점이 그렇다는 뜻이다.

실제로 라이온스 게이트는 <트와일라잇> <헝거게임> <다이버전트> 등 시리즈 작품에 대한 갈망을 끊임없이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제대로 된 시리즈 작품이 가져다 주는 실익은 대단하다. 제작비의 몇 배를 상회하는 금전적 수익은 물론, 굿즈 상품을 통한 3차 수익, 브랜드 이미지가 가져다주는 무형의 가치까지. 뿐만 아니다. 일반적으로 트릴로지(Trilogy, 3부작) 이상으로 계획되는 시리즈물의 특성 상 매년 한 편씩 내놓더라도 스튜디오의 입장에서는 최소 3~4년 이상의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시리즈물의 성격도 조금씩 변한다. 기존에 존재했던 시리즈 작품들이 특정 캐릭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면 마블 스튜디오나 DC 코믹스, 디즈니는 한 발 더 나아가 수많은 캐릭터들이 공유하는 세계관을 중심으로 시리즈를 재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디즈니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하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모습이다.

1)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경우, 원 배급사였던 Summit을 인수합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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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모든 시리즈 작품이 긍정적인 면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시리즈가 안전한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면 수익에 대한 스튜디오들의 욕심은 점점 커지기 시작하고 문제가 발생한다. <해리포터> 시리즈나 <헝거게임> 시리즈와 같이 원작을 기초로 제작되어 마지막이 예정되어 있는 경우는 그나마 상황이 좋은 편이다. 다만 <헝거게임> 시리즈의 경우, 마지막 3부작인 <헝거게임: 더 파이널>을 파트 1과 파트 2로 나누어 개봉하면서 시리즈 연장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해리포터> 시리즈가 4명의 감독이 메가폰을 바꿔 잡으며 많은 말들이 있었지만 말이다.

애초에 계획했던 시리즈가 연장되기 시작하면 본격적인 문제들이 발생한다. 주연 배우들의 출연 계약 문제로 주인공이 바뀌거나 그에 맞춰 스토리의 내용이 급격히 변하거나 하는 식이다. 그럼에도 스튜디오가 이 문제들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이유는 브랜드의 파급력에 있다. 이는 하나의 이미지를 관객들에게 인식시키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의 반증이기도 하며, 이미 구축해 놓은 여러 가지 상업적 채널들을 쉽게 놓을 수 없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는 자가 복제를 느끼게 하는 장면들마저 찾아볼 수 있다.

영화에서는 자가 복제를 느끼게 하는 장면들마저 찾아볼 수 있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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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이런 여러 가지 역학 관계들 속에서 탄생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실 시리즈의 흐름은 이 작품을 탄생시키고 처음 세 편의 이야기를 도맡아왔던 고어 바빈스키 감독의 하차와 함께 이미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에 이어 메가폰을 잡은 롭 마샬 감독의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에서는 과거의 작품들에서 빛을 발했던 전설적 신화와 작품 세계의 기묘한 어울림(실제로 고어 바빈스키의 세 번째 작품인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에는 바그너의 오페라 <방랑하는 화란인, The Flying Dutchman>의 이야기가 변주된다)이 이미 사라져버렸다.

이번 작품이 조니 뎁이라는 핵심 배우만 제외하고 감독 및 출연진을 모두 바꾸어 6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도 의아하다. <스타워즈> 시리즈가 긴 공백을 깨고 시리즈를 이어간 경우를 제외하고는 시리즈 작품이 이렇게 긴 공백을 갖는 경우도 드물다. 모든 것이 바뀐 상황에서 굳이 이 시리즈를 연장해야 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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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내부를 들여다봐도 지난 작품들에 비하면 지극히 평범하다. 잭 스패로우(조니 뎁)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주연 배우들이 모두 교체되었고 윌 터너(올랜도 블룸 역)를 대체하는 헨리 터너(브렌튼 스웨이츠 역)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것으로 보아 거의 리부트가 시작되었다고 보아도 될 것 같다.

아마도 제작진은 다음 세대의 이야기를 이끌어내어 헨리 터너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이야기로 3부작 정도 끌고 나갈 생각일 것이다. 제작진이 선택한 이 방법은 가장 무난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방식이기는 하다. 엔딩 장면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이 끌어 안으며 자연스러운 세대 교체를 암시하고 있지 않나. 안타깝게도 그것뿐이라는 것이 발목을 잡을 뿐이다. 뜬금없이 등장하는 카리나 스미스(카야 스코델라리오 역)의 신파도 전혀 공감되지 않는다. 글쎄 디즈니가 갑자기 해적들에게 인간미라도 투영하고 싶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 눈에는 <스타워즈>의 "아임 유어 파더"를 "내 이름은 바르보사에요"라는 대사로 억지로 갖다 붙인 것처럼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의 익살스러움에서 피로감을 느낀다.

그의 익살스러움에서 피로감을 느낀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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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핵심 인물인 잭 스패로우를 활용하는 방식 또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상대적으로 무거운 분위기로 진행되는 시리즈의 호흡을 틔워주는 역할로 제격이었다. 이 점을 잘 이용했던 고어 바빈스키에 비하면 이번 작품의 두 감독은 그를 활용하는 방법에 서툴다. 빈약한 이야기를 캐릭터의 특징에 기대려고 하다 보니 완급조절에 완전히 실패했다. 특히 강제로 결혼식이 이루어지는 장면에서는 이 장면이 꼭 필요한 지 의문이 들 정도.

그의 캐릭터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것은 잭 스패로우를 연기하는 조니 뎁에게 있어 악재다. 그에게 이번 작품은 어느 때보다 중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6년 동안 그는 이혼을 통해 수많은 질타를 받았고, 선택했던 작품들이 생각보다 큰 흥행을 하지 못했다. 물론 <캐리비안의 해적>이라는 타이틀이 갖고 있는 인지도는 분명히 과거와는 다를 지 모르지만 어느 정도 이상의 흥행을 가져다 줄 것이다. 하지만, 조니 뎁이라는 배우에게 역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인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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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 했듯이, 디즈니가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를 쉽게 보낼 수 없는 것은 작품 내적인 이유보다 외적인 이유가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언급했던 수많은 이익뿐 아니라 작품을 이어가는 것은 디즈니 랜드의 어트랙션 입장 수익과 직결되며 대체할 만한 작품을 구할 때/까지 라인업 구조를 탄탄하게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팬이라면 시리즈가 이어지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을 지 모르겠으나, 잭 스패로우의 이야기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분명히 실망했을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조영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joyjun7)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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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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