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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죽음의 서>로 널리 알려진 파드마 삼바바가 악귀를 물리치기 위해 머물렀다는 리왈샤의 호수가에서 기도를 올리는 순례객.
 <티베트 죽음의 서>로 널리 알려진 파드마 삼바바가 악귀를 물리치기 위해 머물렀다는 리왈샤의 호수가에서 기도를 올리는 순례객.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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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드마 삼바바의 수행 동굴을 다녀온 날 저녁, 갑자기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더니 사방팔방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천둥소리와 함께 마른번개가 내리치기 시작했다. 일이초 간격, 아니 동시다발적으로 무시무시한 천둥소리와 함께 번쩍번쩍 번개가 내리꽂혔다. 평생 이런 천둥번개는 처음이었다. 사진기를 꺼냈지만 도저히 밖으로 나와 사진기를 들이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진기가 박살 날 것만 같았다.

북인도 코사니에서 잠시 잠깐 경험했던, 엄청난 기세로 내리쳤던 천둥번개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단번에 내 두개골을 쪼개버리고 대지를 두 동강 낼 기세로 내리꽂혔다. 공포 그 자체였다. 우주가 탄생되는 순간도 이러했을까 싶을 정도로 천둥과 번개가 사방천지를 뒤흔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 공포감이 20~30분 정도에 불과했지만 나는 창문을 열어놓지도 못하고 천둥번개가 치는 내내 딱딱한 침대에서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살아오면서 이처럼 두려움과 공포에 떨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날 밤 꿈을 꾸었다. 현실처럼 생생한 악몽을 꾸었다. 꿈속에서 악마의 화신처럼 집요하게 나를 괴롭히는 그녀에게서 도망쳤다. 어느 순간 나는 악귀처럼 돌아서 그녀를 뒤쫓아 가고 있었다. 내 손에는 도끼가 들려 있었다. 그 도끼로 그녀를 낚아채 내리쳤다.

그녀의 얼굴이 다른 사람의 얼굴로 바뀌었다. 그녀는 착하디착한 내 사랑하는 여동생의 얼굴이었다. 나는 여동생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그리고는 꿈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깨어났음에도 그 악몽이 너무나 생생해 숨을 헐떡거리며 꺼이꺼이 울음을 터뜨렸다.

길 잃은 아이처럼 지칠 때까지 울음을 터뜨린 나는 정좌하고 앉아 내 자신을 바로 보았다. 내가 벗어나려 했던, 내가 증오하고 분노했던 그녀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면서 또한 바로 내 자신이기도 했다.

모든 고통은 조건에서 생겨난다. 두 개의 얼굴, 분노의 대상과 사랑의 대상은 본래 없거나 하나인 것이다. 누군가를 증오하는 것은 내 자신을 증오하는 것이나 나름 없다. 그 분노와 증오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이 아닌 분노하고 있는 내 자신부터 죽여야 했다.

분노의 화신은 굶주린 맹수나 다름없다. 닥치는 대로 물어뜯는다. 걸신처럼 제 몸까지 먹어 치우려 한다. 꿈속에서 나는 그 걸신과 같았다. 지옥 같은 악몽이었다. 그 악몽은 단지 꿈이 아니었다. 분노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이기도 했다.

불현듯 무시무시한 천둥번개와 함께 그 어떤 보이지 않는 존재가 악몽을 통해 나를 일깨워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금강경(불교의 경전. 반야심경과 더불어 가장 잘 알려진 대승 불교 경전들 가운데 하나)을 떠올렸다.

붓다는 금강경에서 '위없이 올바른 깨달음으로 향하는 마음'을 내기 위해서는 겉모습이나 현상, 관념의 덧없음을 알라 했다. 이들에 현혹되지 않고 올바르게 관찰해 깨달음을 향하는 순수한 마음을 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금강'은 산스크리트어 와즈라체디까(Vajracchedikā)를 뜻으로 풀어 해석한 것이다. 여기서 '와즈라(Vajra : 인도 베다 경전의 신들 중에 으뜸인 천둥번개의 신, 인드라의 번개)는 강력한 힘으로 절단하거나 깨부수는 것' 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하여 '금강경'은 마음속의 분별, 집착, 번뇌 등을 부숴버려 깨달음으로 이끄는 강력한 지혜의 경전, 벼락처럼 무지를 깨쳐 주는 '벼락경'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날 밤 내가 경험했던 무시무시한 천둥 번개는 내 안의 집착과 번뇌를 부숴 버리는 인드라의 '와즈라'와 같은 것이었다.

진흙바닥에서 수십 년 묻혀 있는 연꽃 씨가 적당한 환경이 조성되면 발아하여 꽃을 피우듯이 악한 기운 또한 마찬가지다. 분노의 기운 또한 마찬가지다. 잠시 잊고 있거나 덮어 놓고 있을 뿐이다. 내 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그 분노의 불씨를 없애야 한다. 그날 밤 천둥번개를 동반한 악몽은 내 안에 숨겨져 있는 분노의 불씨, 악업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던 것이다.

나는 어느 순간 업장소멸을 위한 관세음보살의 진언인 '옴마니 반메훔'을 무심결에 읊조리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 내가 옴마니 반메훔을 웅얼거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만트라 따위와는 상관없이 모든 게 마음에 달려 있다고 믿고 있었다.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모든 것을 찾겠노라 자만했다. 하지만 내 안에서 미신처럼 여겼던 만트라, 옴마니 반메훔이 저절로 터져 나왔고 그렇게 밤새 '옴마니 반메훔'을 읊조리다가 새날이 밝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호수 주변을 돌고 있는 티베트 순례객들
 호수 주변을 돌고 있는 티베트 순례객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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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숙소 밖으로 나와 호수 주변을 흐느적거리며 걸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염주를 돌리며 호수 주변을 돌고 있다. 대부분 티베트 사람들이다. 그들 중에는 더러 나처럼 옴마니 반메훔을 읊조리는 사람들도 있다.

상가 주변에서는 다들 제집 앞 청소하고 있다. 매일 아침 집 앞 청소를 하고 있어 이곳 리왈샤는 인도의 다른 지역에 비해 아주 깨끗한 편이다. 호수 주변을 돌며 기도하는 사람들은 거리에서 쓰레기를 줍기도 한다.

아침 아홉시가 되자 쓰레기 차가 마을을 돌며 마을 사람들이 모아 놓은 쓰레기들을 말끔하게 정리한다. 이곳에서는 비닐 봉투를 사용하지 않는다. 과일이나 과자를 살 때 신문지에 말아 주거나 종이봉지에 담아 준다. 간혹 길거리에 버려져 있는 비닐봉지가 눈에 띄기도 하는데 그것은 과자봉지다.

인도에 대한 잘못된 몇 가지 오해 중에 하나가 어딜가나 쓰레기와 도둑이 많다는 것인데 이곳에서는 그 말이 통하지 않는다. 주인이 가게 문을 활짝 열어놓고 출타한 곳도 있다.

파드마 삼바바 동굴 주변의 바위에 새긴 진언.
 파드마 삼바바 동굴 주변의 바위에 새긴 진언.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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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에 새긴 진언이 수세기 동안의 비바람에 닳고 닳아 흐릿해지고 있다.
 바위에 새긴 진언이 수세기 동안의 비바람에 닳고 닳아 흐릿해지고 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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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제처럼 멕시코에서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날아온 래미와 함께 파드마 삼바바의 동굴에 앉아 명상을 했다. 어제와는 다르다. 래미가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섰고 나는 가슴 속에 묵직하게 내리누르고 있던 뭔가가 빠져나간 것 같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내내 동굴 안에 앉아 있었다. 어제는 이혼을 요구해 오는 그녀에 대한 분노에 휩싸였지만 오늘은 그 분노심에서 벗어나 좋은 기억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내가 글을 쓰고 있으면 그녀는 커피를 타 주고 변변치 못한 글을 읽어주었다. 그녀가 그림을 그리면 나는 그 옆에 쪼그려 앉아 기분 좋게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들의 옷을 만들어 입히고 빨래를 해주고 생일날이면 손수 떡 케이크를 만들거나 도시락을 싸들고 아이들과 놀러 다니는 행복한 시간을 떠올려가며 그녀가 사랑하는 두 아들의 엄마라는 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 마저 다 놓아야 한다. 두 아들의 사랑스런 엄마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이혼을 요구하는 그녀에 대한 악몽과 같은 기억들이 스며든다. 좋은 순간이든 나쁜 순간이든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아야만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 분노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어리석은 내 자신이 보였다. 나는 내 스스로가 어리석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평화로운 마음이 깃든다.

동굴에서 빠져나와 래미와 함께 어제처럼 리왈샤 마을을 향해 산길을 걸었다. 두 사람 모두 다리를 절룩거린다. 래미는 새로 구입한 운동화가 발에 맞지 않아 발뒤꿈치에 물집이 생겨서 절룩거렸고 나는 북인도 코사니에서 다친 무릎 때문이다. 하지만 어제와 오늘은 달랐다. 어제의 낯선 길은 익숙한 길이 되었고 동갑내기의 낯선 래미는 하루 만에 친숙해져 스스럼없이 그의 직업을 물을 수 있었다.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뮤지션입니다."

나는 그가 뮤지션이라 말할 때 그의 스킨 헤드, 박박 깍은 머리를 염두에 두고 다시 물었다.

"헤비메탈?"
"아니오. 색소폰 연주자입니다."

래미 알바레즈(Remi_Álvarez), 그는 멕시코시티의 국립대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재즈 연주자라고 한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색소폰이 있을 정도로 멕스코에서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꽤 알려진 유명한 색소폰 연주자였다. 종종 미국 유럽 등지에서 초청받아 연주하고 있지만 그는 그런 유명세를 전혀 내세우지 않았다.

내가 만난 그는 단지 불교에 심취한 소탈하고 자비심 많은 겸손한 사내였다. 티베트 불교를 접한 지 1년 됐다는 그는 담배는 물론이고 술과 고기를 멀리하고 있었다. 식사를 할 때도 나처럼 값싼 음식을 찾아다녔다.

"송, 과자 좋아합니까?"
"종종 식사 대용으로 먹고 있습니다."
"리왈샤 마을에 과자 가게가 있다는 것을 알아요? 그 가게에서 과자를 직접 구워 팔고 있는데 맛도 좋고 가격도 저렴합니다."

그는 뒤늦게 결혼해 의사인 아내 사이에 7살 된 딸이 있다고 한다.

"래미, 당신은 늦게 결혼했군요. 내게는 성인이 된 두 아들이 있습니다. 당신이 홀로 인도에 올 때 아내가 반대하지는 않았습니까?"
"전혀요. 딸에게 줄 인도의 전통 옷, 사리를 사오라고 하더군요."

불교 성지를 둘러보기 위해 한 달 여행 비자로 인도와 네팔을 둘러볼 것이라는 그는 내게 어린 딸의 사진을 보여줬다.

"사리를 입으면 잘 어울릴 것 같은 예쁜 아이네요."
"송의 아내는 6개월 동안의 인도여행을 반대하지 않았습니까?"
"전혀요. 그녀는 내가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기를 원하니까요."

"왜요?"
"이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이혼을 해줄 생각입니다."
"아... 왜요?"
"우리는 생활 방식이 너무나 다릅니다. 아이들도 이제 다 커서 성인이 되었고요. 서로 원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녀가 원하는 대로 이혼해 주는 게 서로를 위한 최선의 선택인 것 같습니다."

소나무에서 송진을 받아 내고 있다. 인도사람들은 신에게 받치는 값비싼 버터 향불 대용으로 값싼 송진을 쓰기도 한다.
 소나무에서 송진을 받아 내고 있다. 인도사람들은 신에게 받치는 값비싼 버터 향불 대용으로 값싼 송진을 쓰기도 한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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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왈샤 마을의 산 중턱쯤 내려올 무렵 소나무 숲을 만났다. 소나무의 껍질을 벗겨 송진을 받아내고 있었다. 송진은 신에게 향불을 올리는 값비싼 버터 향불 대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신은 송진과 버터 향불 중에 어떤 향을 좋아할까.

리왈샤 마을이 보일 무렵 독일인 사내를 만났다. 그는 우리와 같은 숙소에 머물고 있다. 래미와 함께 이곳 리왈샤에서 내 엉터리 영어를 귀담아 주는 또 다른 외국인 사내다. 그는 독일의 어느 대학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라고 한다.

그는 마치 장바구니를 들고 장을 보고 오는 모습이었다. 샌들에 장보러 갈 때 사용하는 가벼운 면 가방을 들고 있었다.

"이 산에 마켓이 있습니까?"
"아니요. 삼바바 동굴 사원에서 내려오는 중입니다."
"당신 차림이 영락없이 마켓에 다녀오는 사람 같습니다."

그는 내 농담을 알아채고 환하게 웃는다. 불편한 다리 때문에 래미와 내가 버스를 타고 파드마 삼바바 동굴에 올랐을 때 그는 새벽녘에 걸어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중이라고 한다. 그는 3주 정도 머물기로 했다는데 올해가 다섯 번째 인도 방문이라고 한다. 파드마 삼바바의 저서 <티베트 죽음의 서>에 관심이 많은 그는 인도를 오가며 파드마 삼바바의 흔적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한다.

리왈샤 마을에 자리한 티베트 사원 내부.
 리왈샤 마을에 자리한 티베트 사원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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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죽음의 서>의 원래 제목은 티베트어로 <바르도 퇴돌 Bardo Thos-grol>이라고 한다. 여기서 '바르도(Bardo)'는 '둘(do) 사이(bar)' 라는 뜻으로 사람이 죽어 환생하기 전까지 머무는 중간 상태를 말한다. 그 중음계(中陰界)에 머무는 기간은 49일로 알려져 있다.

'퇴돌Thos-grol'은 '듣는 것으로 영원한 자유에 이른다는 뜻으로 '듣는 것을 통한 영원한 해탈'이라는 뜻으로 풀이 되기도 한다. <바르도 퇴톨>은 삶과 죽음의 수레바퀴를 벗어나 영원한 해탈을 얻을 수 있는 사후 세계의 안내서와 같은 것이다.

사후 세계의 안내서인 <티베트 죽음의 서>는 사후의 영혼이 겪게 되는 49일 동안 여러 현상을 설명하고 그에 따른 해탈에 이르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사후 세계의 중간 상태에서 듣는 것만으로 영원한 자유에 이른다는 이 책은 '죽음의 세계를 알게 되면 삶을 배울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이 책을 깊이 있게 접하다 보면 단지 죽음의 안내서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의 수행서로 다가온다. 이 책에서 살아 있을 때의 삶이 사후 세계에 그대로 영향을 주고 있음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생에서 탐욕스럽고 분노에 찬 어리석음으로 고통 속에서 살았다면 죽어서도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생에서 탐진치를 멀리하고 자비심으로 선하게 살아왔다면 그에 따른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생을 보면 전생과 후생을 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자신의 전생을 알고자 한다면 현재 상태를 면밀히 관찰하고 죽음 이후의 삶을 알고자 한다면 자신이 현재 행하는 행위를 면밀히 관찰하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사후 세계를 경험하지 않고는 이렇다 저렇다 단정할 수 없지만 임상학적으로 사망했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티베트 죽음의 서>에서 말하는 죽음 이후 눈부신 빛을 보게 된다거나 죽음을 맞이한 순간부터 자신이 육체로부터 분리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기절상태 또는 무의식 상태에 빠져 있었다는 체험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티베트 죽음의 서>에 보면 이 생에서 삶을 마치고 떠난 영혼이 다음 생의 생명을 받기 이전까지의 상태인 영가(靈駕. 중음신(中陰身)의 상태로 있을 때의 사람의 영(靈))은 빛뿐만 아니라 온갖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형상들과 신적 존재들을 만나고 혼돈의 세계와 공포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후 혼란을 겪는 영가들을 해탈의 길로 안내하는 <티베트 죽음의 서>는 영가의 시신 곁에서 발음이 분명하고 문장을 명확하게, 3번 또는 7번을 읽어 주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현생에 많은 수행을 하여, 임종의 순간 빛 속으로 들어가 해탈한 영가에게는 <티베트 죽음의 서>를 읽어줄 필요가 없다고 한다.

<티베트 죽음의 서>에 따르면 사후 17일 동안 최선을 다해 인도해도 자신의 참 본성을 깨닫지 못한다면, 영가는 두려움 속에 헤매면서 육체를 소유하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결국은 해탈에 이르지 못하고 몸을 찾게 되고 환생의 길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인 티베트 승려와 래미. 나중에 알게된 것인데 래미는 멕시코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꽤 알려진 유명한 재즈 색소폰 연주자였다.
 한국인 티베트 승려와 래미. 나중에 알게된 것인데 래미는 멕시코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꽤 알려진 유명한 재즈 색소폰 연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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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래미와 나는 순례길을 나선 한국인 티베트 승려를 만났다. 인도 여행길에서 공무원 생활을 접고 승려가 되었다는 그는 티베트 승려인 나의 막내 동생과 잘 알고 있었다. 그와 함께 파드마 삼바바와 얽힌 얘기를 하다가 꿈 얘기를 했다. 래미는 높다란 절벽에서 뛰어 내리는 꿈을 꾸었는데 두려움 보다는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황홀감을 느꼈다고 한다.

한국인 스님은 파드마 삼바바가 머물렀다는 이곳 리왈샤에서 많은 수행자들이 신비한 꿈을 꾸곤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래미와는 다른 악몽을 꾼다는 것이었다.

"수행자들 대부분이 이곳 리왈샤 마을에서 악몽을 꾸곤 한답니다."
"예? 악몽을요? 그 분들은 어떤 악몽을...."
"눈과 입, 귀 등에서 뱀이나 독충들이 기어 나오는 그런 악몽을 꾼답니다. 자신의 마음에 깃들어 있는 악귀 같은 것이 빠져 나가는 것이겠지요. 파드마 삼바바가 악귀를 물리치는 주술사이기도 했는데 이곳 이왈샤에서도 그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수행자들의 몸에서 독충들이 빠져 나가는 것은 파드마 삼바바의 기운을 받은 것이라 믿는 것 같습니다."

"저도 어젯밤 악몽을 꾸었는데..."
"어떤 꿈인가요?"

나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한 여인을 무참히 살해하고 나서 얼굴을 들여다보았더니 사랑하는 여동생의 얼굴이 보였다는 어젯밤의 악몽을 얘기했더니 스님이 말했다.

"처사님 마음속에 있는 분노가 빠져나가는 징조가 아닐까 싶습니다. 더구나 업장소멸의 옴마니 반메훔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면..."

분노도 악귀에 속한다. 내 안에 있던 그 악한 기운들, 독충처럼 나를 갉아 먹고 있는 분노심이 빠져 나가는 징조일까. 꿈은 현실의 반영이다. 나는 스님 말대로 내 안의 분노심이 빠져나가는 징조로 믿기로 했다.

지옥이나 다름없었던 어젯밤의 악몽처럼 꿈은 깨어난 이후에도 그 영향을 끼친다. 이러한 현상은 <티베트 죽음의 서>에서 말하고 있는 환생의 '바르도'와 비슷하다. 어젯밤 꿈처럼 꿈속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이 현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듯이 사후 세계 또한 현생의 연장선에 있을 것이었다. <티베트 죽음의 서>의 가르침은 우리가 잠을 잘 때 꿈속에서 벌어지는 상황들과 사후 세계와 흡사하다고 말하고 있다.

정말로 파드마 삼바바의 기운이 내게도 미친 것일까. 세상에는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신비로운 것으로 가득하다. 나는 어젯밤 두개골을 박살 낼 것만 같은 천둥번개의 두려움 속에서의 꿈을 통해 사후 세계에서 일어날 끔직한 지옥을 미리 경험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내 입에서는 또다시 옴마니 반메훔이 흘러나왔다.

"옴마니 반메훔, 옴마니 반메훔, 옴마니 반메훔......"

파드마 삼바바 동굴 사원 주변이 깃발들. 주술사이기도 했던 파드마 삼바바가 악귀를 물리쳤다는 이곳 리왈샤에서 수행자들은 꿈을 통해 그 기운을 체험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파드마 삼바바 동굴 사원 주변이 깃발들. 주술사이기도 했던 파드마 삼바바가 악귀를 물리쳤다는 이곳 리왈샤에서 수행자들은 꿈을 통해 그 기운을 체험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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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인도 리왈샤, #금강경, #악몽, #티베트 사자의 서, #옴마니 반메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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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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