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난 17일 개봉한 <겟아웃>이 화제다. 인종차별에 관한 풍자를 주요 개그 소재로 사용해오던 스탠드업 코미디언에서 영화감독으로 변신한 조던 필레(Jordan Peele)의 데뷔작으로, 개봉 24시간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서면서 저예산 영화로써 미국 박스오피스 흥행 돌풍을 일으킨 뒤, 한국에서 개봉한 뒤 현재까지 예매 3위에 이르며 수많은 관객을 동원하고 있다.

주로 섬뜩한 공포와 긴장감으로 가득한 장면들, 빠른 전개, 그리고 반전 영화로 관객들의 찬사를 받는 문제작 <겟아웃>. 그런데 이 영화는 실상 노골적일 정도로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더없이 현재적이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사슴'의 상징성

예고편에서 드러나듯, 영화는 로맨틱해 보이는 연인인 '크리스'와 '로즈'가 로즈의 부모님 댁을 방문하러 가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로즈가 몰던 승용차는 한적한 고속도로에서 불시에 튀어나온 사슴을 치게 되고, 보조석에 앉아있던 '크리스'는 유난히 충격을 받은 듯하다. 놀란 가슴을 다독이고 출발하려는 로즈를 두고, 크리스는 차에서 내려 사슴을 확인하러 다가간다. "혹시 죽었을지도 모르잖아."

 영화 초반부, 크리스와 로즈가 탄 차에 사슴 한 마리가 치였다.

영화 초반부, 크리스와 로즈가 탄 차에 사슴 한 마리가 치였다. ⓒ UPI 코리아


영화 후반부에서 드러나는 스토리를 통해, 관객들은 이 사슴이 크리스로 하여금 뺑소니 사고로 죽은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함을 알 수 있다. 어린 시절,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기다리며 크리스는 텔레비전을 본다. 어디에도 신고하지 않은 채, 텔레비전을 멍하니 보다 두려움에 휩싸인 채 잠든 밤은 크리스에게 깊은 트라우마로 남는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영화에서 드러나건대, 도로의 어딘가에서 새벽녘까지 살아 있었다. 누군가 신고했다면 살 수도 있었을 존재가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천천히 싸늘하게 죽어갔다.

그러므로 차에 치여 죽는 사슴은 짐승, 혹은 유약한 피해자의 상징이다. 불시에 날아드는 폭력에 무방비한 존재, 구출되지 못하고 어디선가 숱하게 죽어가는 소수자들. 영화가 보여주는 대표적인 '짐승 같은' 존재는 흑인이다. 크리스를 하등동물처럼 취급하며 몸을 만져본다던가 "밤일 잘하느냐"와 같은, 편견 섞인 질문에 교양인의 말투를 얹어 내뱉는 대사들이 숱하게 등장한다. 크리스에게 쏟아지는 월례 가족 모임 멤버들의 질문들과 철저히 대상화된 시선은 이후 그 모임이 가족 행사를 빙자한 인신매매의 장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며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그러나 상징으로서의 '사슴'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크리스가 인신매매의 핵심 행위자인 아버지 '딘'을 죽이는 핵심적인 수단이 되기도 한다. 크리스를 묶어둔 지하실에서, 크리스를 향해 있는 박제된 거대한 사슴 머리가 바로 그것이다. 지하실에서 탈출한 크리스는 사슴의 뿔로 수술대 앞에 서 있던 '악의 축'을 들이받는다. 통렬하고 가차 없는, 폭력적인 복수다.

트럼프 현상, 혹은 잭슨주의(Jacksonianism)

영화를 조금 더 들여다보자. 로즈 부모님의 집은 도심으로부터 한참 달려야 도달할 수 있는 외진 곳에 놓여 있다. 그 집은 다른 집들과 커다란 호수를 사이에 둔 채 고립되어 있으며, 집 앞에는 인적이 드문 으스스한 숲이 자리한다. 한 비하인드 스토리에 따르면, 영화의 촬영지는 앨라배마 주 페어호프라는 곳이다. 미국 남부의 대표적 공업 도시이며, 지난 대선 결과 트럼프 지지율이 62.1%로 힐러리 클린턴(34.4%)보다 월등히 높은 곳이었다.

이 사실들이 교묘하게 교차하며 드러내는 것은 무엇일까? 감독 필레는 촬영비가 덜 들어 그곳을 선택했다고 했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인종차별, 여성 혐오, 이민자들에 대한 배타주의는 날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이것을 드러내는 최적의 장소로 '고립된 백인들만의 마을'은 상당히 적합한 촬영지였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다.

 고립된 지역공동체에 사는 백인들의 잠재된 인종차별을 섬뜩하게 보여주는 <겟아웃>.

고립된 지역공동체에 사는 백인들의 잠재된 인종차별을 섬뜩하게 보여주는 <겟아웃>. ⓒ UPI 코리아


미국을 분류하는 여러 기준 중에는 지역적 분류가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유주의적, 세계시민주의적인 '미국'은 대부분 동서부 해안지대의 진보적 엘리트가 득세하는 지역이다. 그렇다면 남부/내륙은 어떨까? 주로 하층, 혹은 노동계급의 근거지이며, 복음주의 전통하의 기독교 근본주의 그리고 토착 주의가 뿌리를 내린 지역이다.

대도시 지역 엘리트들이 자유-국제주의를 제창했던 반면, 지방공동체의 대다수 민중(common people)은 이른바 '잭슨 주의'를 일종의 가치관으로서 지녀온 이들이다. 미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의 이름에서 따온 전통인데, 잭슨은 최초의 비-엘리트 출신 서민의 대통령이자, '인디언 살해자(Indian slayer)'라는 섬뜩한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한 논쟁적 인물이다.

따라서 '잭슨 주의'를 신봉하는 이들은 미국이 인종-종교적 공동체라 믿으며, 인종적 타자들이 백인-기독교인들의 나라인 '순수한' 미국을 더럽혔다는 무의식을 지니고 있다. 잭슨 주의는 미국의 비주류적 전통으로서 꾸준히 존재해 왔으며, 일반적인 시기에는 잠재되어 있다가 미국사에서 경제위기가 도래할 때 주기적으로 부상하는 경향을 지녀왔다. 이번의 '트럼프 현상'도 문화적 측면에서 잭슨 주의의 부활이라 볼 수 있다.

불안감의 상호성, 불신의 심화와 열망의 분출

트럼프의 보호주의적 정책들은 잭슨주의자들의 욕망에 일견 부합한다. 이들은 미국이 세계의 수호자 혹은 리더로 정세를 주도하고 개입하는 것보다 국내 문제에 집중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이 연장 선상에는 타자들에 대한 편집증적 반응과 음모이론이 자리한다. '문명의 기준에 맞지 않는,' '하등한' 타자들을 적대시하며 호전적인 태도까지도 보인다.

'존재론적 안보위기(ontological security)'라는 개념이 있다. 종교적, 인종적 공존과 혼합 등에 대해 느끼는 일종의 존재론적 불안감을 뜻한다. 이러한 불안감은 이상화된 과거에 대한 복고적 열망으로 드러난다. <겟아웃>에 등장하는, 다분히 고전적인 옷차림과 행동방식을 보이는 백인들, 그리고 흑인에 대한 일상적 하대(관리인과 가정부 역시 백인들에 의해 '조종'당하는 흑인이다)는 마치 남북전쟁 이전의 미국 모습을 21세기에 그대로 재현해놓은 것처럼 보인다.

고립된 지역 공동체, 그리고 그곳에 진입한 흑인들이 숱하게 지하실로 끌려가 인신매매에 활용되는 방식이 관습처럼 반복되는 곳. 로즈의 부모님은 "오바마가 또 출마했다면 당연히 오바마에 투표했을 것"이라고 호쾌히 웃으며 말하거나, 의사들로서 교양과 품위를 지키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음침한 지하실을 숨기고 있는 공간은 위선의 상징일 수밖에 없다. 잠재된 욕망이 '그들만의 세계'에서 은밀하게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관객은 깨닫게 되고, 분노에 앞서 커다란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흑인으로서 크리스의 공포감은 백인들의 불안감과 조응한다.

흑인으로서 크리스의 공포감은 백인들의 불안감과 조응한다. ⓒ UPI 코리아


이 지점에서 주인공 크리스가 방문 내내 느끼는 미스터리한 공포감은 트럼프에 환호한 백인들이 지니고 있던 불안감과 조응한다. 한쪽에는 미국 인종차별의 역사에서 타자화되어온 흑인들의 뿌리 깊은 불안감이,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엘리트층으로부터, 그리고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로부터 소외된 백인들의 반동적 불안감이.

미국이 어떤 방식으로 인종차별을 은폐해왔는가를 드러내는 <겟아웃>

미국은 그동안 진보적 정향을 지닌 대표적인 국가로 묘사됐다. 그것은 미국의 국가적 대전략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에 반감을 지닌 이들의 잠재된 욕망이 트럼프 대통령 당선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로 이어졌음을 우리는 모두 목격했다. 미 종합 격주간지 <뉴욕 리뷰 오브 북스>는 영화 <겟아웃>을 이렇게 평했다.

"역사적 순간의 복잡함을 드러내는 영화."

신자유주의가 선도한 자본주의에 의한 부의 양극화뿐만 아니라 인종적 양극화 또한 절대 사라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현시점의 미국에서 더욱 격화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흑인이 요새 유행이다(Black is in fashion)"라는 대사에서도 드러나듯, 피부색을 상품 가치로 재단하는 동시에 이에 거부감을 보이는 백인들을, 영화는 노골적으로 묘사한다.

2007년 1월, 선댄스 영화제에서 조던 필레는 <겟아웃>의 아이디어를 2008년 미국 민주당 경선 중 아프리카계 미국인 또는 여성이 대통령직에 합당한가를 다루는 토론에서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21세기에 들어서기까지 미국이 은폐해온 인종적 갈등이 10년 전부터 이미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었음을 방증한다.

따라서 <겟아웃>은 단순한 '역대급 스릴러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노골적일 정도로 선명한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오히려 인종차별을 이토록 현재적이면서도 시의성 있게 다룬 영화이기 때문에 '참신하다'는 평을 받는 것인지도 모른다. 구별 짓기, 그리고 폭력과 배제의 정치학은 <겟아웃>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크리스를 구출하러 온 흑인 친구 '로드'는 사태의 끔찍한 결말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We deal with shit."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상대하는 게 자신의 직업(경찰)이라는 말이기도 하지만, 다르게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차별을 저항하는 것은 때로 또 다른 폭력을 동원할 수도 있고, 분노와 고통, '빡침'을 동반하는 일이라는 것을. 21세기 잭슨 주의의 부활을 선동하는 트럼프의 행보가 언제 끝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때까지는 '뭐 같은' 일을 숱하게 겪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수많은 '사슴'들이 차에 치여 죽을지 모른다. 눈물을 흘리면서 웃는 영화 속 인물들처럼, 섬뜩하고도 슬픈 현실이다.

겟아웃 인종차별 트럼프 잭슨주의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