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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재중기업, 문제는 사드가 아니다

[현지 르포] 3조원씩 투자한 롯데와 STX의 악몽 생생... 사드 무관하게 중국 봐야
17.05.30 12:02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지난 25일 인천발 선양행 중국 남방 항공기는 그리 적지도 많지도 않은 승객이 타고 있었다. 절반은 넘어 보이는 중국인들은 비즈니스나 개인 관광객으로 보였다. 한국 단체 관광객은 한두팀 보였지만, 알려진 대로 중국인 단체 관광객은 보이지 않았다. 소문만 무성한 단체관광객 재개는 아직 소문만 무성할 뿐 구체화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업무차 찾았지만 시간을 내어 사드 이후 현장분위기를 보기로 했다. 선양은 한중 관계의 바로미터 같은 곳이다. 중국 동포(중국명 조선족)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동북3성의 관문이기 때문이다. 1992년 수교 이전부터 한국 사람들이 중국에 관심을 가질 때 가장 먼저 찾던 지역이다. 개인적으로 2000년부터 10여차례 정도 방문해 도시의 변화부터 분위기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양은 동포들이 많아서 한국기업이 쉽게 들어간 도시지만 정작 가장 많은 실패를 경험하는 도시이고, 그 실패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어서 너무 안타까웠다.

역사로 보면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의 첫 수도가 선양이다. 그 때는 성경(盛京)으로 불렸고, 수도가 베이징으로 간 후에는 하늘을 받드는 도시라는 뜻의 봉천(奉天)으로도 불렸다. 조선시대 연행단이 육로로 청을 갈 때 꼭 경유하는 곳인데, 병자호란 후 소현세자와 강빈 부부가 끌려가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근대에는 군벌인 장쭈어린(장작림)과 장쉐량(장학량) 부자의 근거지였고, 지금 인구는 830만 명 정도다.

1992년 수교 이후 중소기업이 많이 진출했는데 큰 공장이 간 것은 2000년 공장을 준공한 삼보컴퓨터가 처음이다. 다음 해에는 신성건설이 훈남(渾南) 신도시에 5500세대 아파트를 시작으로 진출했다. 그런데 두기업은 한국에서 부도가 난 기업이다. 결국 중국 사업도 쉽지 않았다. 거기에 삼보컴퓨터는 선양 정부의 돈도 많이 대출했다. 이후 대기업으로 이곳에 들어온 것이 롯데다. 롯데는 선양북역의 뒤편에 우리 돈 3조원을 들여서 복합 부동산 개발을 하고 있다.

스산한 선양 롯데 부동산 개발 현장 롯데백화점은 영업을 하고 있지만 앞을 다니는 사람 찾기가 쉽지 않다. 옆에 공사중인 롯데월드는 공사를 멈춘 상태다. 아래는 롯데캐슬의 공사장이 폐쇠된 것을 알 수 있다 ⓒ 조창완

3조원 투자한 롯데단지 사실상 문닫아

필자가 이곳에 들른 것은 금요일인 26일 오후 5시 정도였다. 중국도 주5일 근무이기 때문에 상가가 붐비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롯데마트는 영업을 하지 않지만 백화점은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한산했다. 거대한 롯데백화점 앞은 사람이 거의 없었고, 1층 매장 손님의 숫자가 20~30명도 되지 않았다. 서비스센터가 입주한 삼성전자 매장이나 유니클로에는 필자가 지나가는 동안 한명의 손님도 안보여서 놀랐다.

백화점과 나란히 한 롯데월드는 공사가 중단되어 흉물로 보이고, 롯데캐슬은 입주를 한 건물도 있지만 대부분의 건설 현장이 공사가 중단되어 공사장 출입구가 잠겨 있었다. 다시 공사가 재개되겠지만 희망을 말하기에는 왠지 자신이 없었다.

한산한 선양롯데백화점 내부 금요일 오후지만 롯데백화점 1층 매장에는 손님이 거의 없다. 역시 일층에 있는 삼성전자 매장과 멀리 보이는 서비스센터 조차 손님이 없다 ⓒ 조창완

이런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사드다. 하지만 그보다는 필자가 보기엔 총체적인 실패로 보였다. 우선 선양북역은 고속열차 중심역이기는 하지만 선양의 번화가인 우리허(五里河) 지역이나 훈강 지역과는 거리가 멀다. 선양의 관문인 선양공항과는 정반대 지역이다. 실제로 선양의 고급 상가는 번화가에 많이 위치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롯데의 개발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롯데 캐슬의 분양 성공은 물론이고, 주변 대형 아파트 단지의 개발이 성공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도 롯데의 시설을 이용할 하이엔드층이 이곳까지 올 가능성이 많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롯데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뭘까. 필자 역시 이런 투자를 담당하는 부서의 책임자에게 물은 적이 있지만, 명확한 답을 듣기 어려웠다. 결과적으로 롯데는 중국 도시의 전반을 보는 혜안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롯데가 경쟁해야 할 완다그룹의 상가나 홍콩의 화교자본인 헝롱(恒隆) 플라자는 모두 롯데보다는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고속철도 중심역인 선양북역이 있다고 하지만 그 부대효과를 얼마나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일단 당장 소비인구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얼마나 끌어갈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필자가 이번에 본 선양 프로젝트에는 3조 원이 투자됐다. 문제는 롯데가 중국에서 뭘 얻기에는 너무 부족하다는 데 있다. 또 중국 기업의 경쟁력이 워낙 강해져서 롯데가 뛰어들 분야가 없다. 중국 파견자들의 교육을 강화한다고 하지만, 경영자들의 관리 마인드가 없는 상태에서 직원의 수준을 높인다고 경쟁력이 올라갈 가능성은 없다.

중국의 대표적인 코리아타운인 시타 과거 불고기집이 많았는데, 지금은 감자탕집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많이 한산해졌고, 한국 사람도 줄어든 게 눈에 띤다 ⓒ 조창완

롯데의 분위기는 선양의 코리아타운인 시타(西塔)에서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선양은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먼저 간 곳이니 코리아타운 역시 긴 역사를 갖고 있다. 시타는 우리나라 사람들과 중국 동포가 가장 먼저 어울린 지역이고, 불고기를 제일 먼저 중국에 알린 곳이다.

그런데 이번에 가니 불고기보다는 감자탕 집이 늘어서 놀랐다. 중국 사람들이 의외로 감자탕에 호감이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 음식점 주인들도 한국 사람은 많이 줄은 듯 했고, 길거리에서 한국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 않아서 지금 상황을 대강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창싱다오에 위치한 STX 조선 모습 현재는 중국에 권리가 넘어가 서서히 재가동을 준비중이다. 3조원을 들였지만 건진 것은 극히 없다 ⓒ 중국선박망

역시 3조원 이상을 날린 STX의 악몽

금요일 늦게 따리엔으로 이동했다. 몇 년전만해도 선양에서 따리엔으로 가려면 기차나 버스로 4~5시간 걸렸는데, 지금은 고속열차로 두시간 거리가 됐다. 시속 300킬로미터가 넘게 달리는 고속 열차는 와방디엔(瓦房店)역에 잠시 섰다. 필자는 이곳에 내려 바닷가로 조금만 가면 창싱다오(長興島)가 있다는 것을 안다. 창싱다오는 우리나라 조선기업 STX가 2007년에 3조원을 들여 대규모 조선소를 지은 곳이다.

그 때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다. 낙마한 보시라이나 지금 총리인 리커창도 이 사업에 공을 많이 들였다. 강덕수 회장은 랴오닝시 명예시민이 되고, 따리엔은 이 공사로 인해 들썩였다. 그런데 STX는 2013년 제대로 된 배 한척 생산하지 못하고 이 공장에 문을 닫아야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도 있지만 STX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서 시름시름 앓다가, 2013년 4월에는 완전히 조업을 중단했다. 수많은 관련기업들은 연쇄부도 위기를 맞았고, 한때 3만명에 달한 노동자가 있었던 이곳 경기도 나빠졌다.

우리 국부 3~4조원은 물론이고, 수많은 선박기술까지 고스란히 중국에 넘어갔다. 이 돈의 대부분은 우리 금융권의 융자이니 국민 세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라오동공원에서 본 대련 스카이라인 왼쪽 상부가 사각인 것이 희망빌딩이다. 당시만 해도 40층으로 최고층이지만 지금은 톱10에도 들지 못한다 ⓒ 조창완

현대그룹의 악몽이 된 건물도 우뚝

랴오닝반도 끝인 따리엔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생각을 갖게 하는 곳이다. 양만춘이 당태종을 무찌른 안시성도 따리엔에 있는 따헤이산(大黑山)이다. 러일전쟁 전에는 러시아가, 이후에는 일본이 지배한 지역이라 국제적인 감각이 상당히 뛰어난 지역이다. 때문에 일본기업이 많다. 한국기업 가운데는 포스코가 진출해 철강 가공센터를 운영하고, 최근에는 포스코 건설이 진출해 아파트 사업도 시작했다. 다행히 아직까지 나쁘지 않지만, 포스코도 STX 연관기업이라 앞날이 쉽지 않다.

그런데 필자에게도 따리엔은 복잡한 사건이 있는 도시다. 필자가 중국에 간 다음해인 2000년 가을 톈진에서 만드는 중국경제신문 편집국장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따리엔 특파원이 당시 현대그룹이 따리엔에 짓던 건물의 문제를 보고했다. 희망빌딩(希望大廈)이라는 건물인데, 1996년 9월부터 현대그룹이 연합해 100% 지분을 갖고 지었던 건물이다. 그런데 1997년 말 외환위기가 다가오고, 현대그룹은 1억 달러 정도가 투자된 상태에서 공사를 멈추었다. 이런 내용을 정리해 신문에 '현대, 다롄에 절망 짓다'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현대그룹이 발칵 뒤집혀 항의를 했다.

때문에 따리엔 특파원은 무서워서 배를 타고 산동반도로까지 피신했다. 돈 많은 기업이야 정부에 줄이 있지만, 작은 신문사가 힘이 있을 리 없으니 피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대화로 해결해 무사히 넘어갔다. 이 건물은 이후에도 논란이 되다가 2006년 홍콩과 모건스탠리의 합작사에 8500만달러에 매각되어 완공됐고, 지금은 사무실들이 입주한 상태다. 27일 아침 라오동 공원을 산책가는 길에 희망빌딩을 지났다. 이제는 주변에 워낙 큰 건물이 많아 오히려 초라해 보였다. 그래도 200억 원 정도의 손실로 그친 것이 다행으로 여겨졌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까지 인재 양성 필요

한중수교 25년간 우리기업의 중국 수출은 경제발전에 큰 견인차 역할을 했다. 하지만 최근 추세는 그렇게 낙관할 수 없다. 중국 수출은 2014년 1400억달러를 기록한 이후 매년 떨어졌고, 지난해는 1200억달러대였다. 올해는 반도체나 석유화학, 철강이 좋지만 언제까지 좋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대중국 정책은 정말 근본부터 되짚으면서 희망을 찾아가야 한다.

우선 우리가 중국을 인식하는 수준을 높이고, 대중국 인재를 길러야 한다. 매체들이 중국을 더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 우리 옆에 있는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싼 제품부터 우주항공에서도 가장 선진국인데, 우리는 중국을 그저 옆집의 만만디로만 인식하고 있어서는 안된다.

또 중요한 게 중국 관련 인재를 기르는 것이다. 수교 이후 상주하는 유학생은 30~40만 명 정도인 만큼 우리나라에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이들이 중국을 상대로 비즈니스나 문화교류를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정부는 새로 만들어질 예정인 중소기업벤처부 같은 부서를 통해 중국 인재를 육성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반도체처럼 우리가 앞서가는 분야부터 관광 등 서비스업까지 곳곳에서 세밀한 전문가 양성과 관리가 필요하다.

당장은 산적한 외교적 난제를 풀고, 대중국 교류의 새로운 답을 찾아야 한다. 대기업 수출은 이제 정점을 지났다. 대신에 환경이나 문화 산업 등 중소기업 단위에서도 세밀하게 진출하는 기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중소기업들은 중국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하다.

국가가 이런 몫을 담당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예능이나 드라마 등에서 많은 이들이 진출했지만, 이들은 제도적 지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영역을 개척하다가 곤란을 겪고 있다. 정부가 조금만 더 지원을 해주면 우리의 미래 일자리가 될 수도 있다. 사드라는 특수한 상황은 그래도 두 나라가 협력할 것이 있다는 것을 역으로 보여준 것인 만큼 이후를 잘 대비한다면 다시 희망은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내용은 국민라디오 민동기 뉴스바(http://www.podbbang.com/ch/6645)에서 매주 화요일 방송하는 <달콤한 중국>의 뉴스 버전입니다. 팟빵에 가시면 방송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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