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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는 어디에

피해자를 내세우는 기사제목
17.05.29 13:53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2015년 10월, 초등학생이 아파트에서 투척한 벽돌에 맞아 한 여성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여성이 길고양이를 돌보는 '캣맘'으로 알려지면서, 언론은 '캣맘혐오'와 관련된 사건으로 주목했다. 이른바 '캣맘사건'이라는 제목으로 2,000여 건의 관련 기사를 쏟아낸 이 사건은 제목이 논지를 흐린다는 관점에서 '용인 벽돌 살인 사건'으로 바꾸자는 누리꾼의 서명운동이 일었다. 그러나 단 143건의 관련 기사에 그친 '용인 벽돌 살인 사건'은 사람들의 뇌리에 '캣맘사건'으로 기억되고 말았다. 오히려 높은 곳에서 물건을 떨어트리는 사건에는 '캣맘사건'이 붙게 됐다. "'제 2의 캣맘사건 될뻔' 울산서 7살난 아이가 아파트 아래로 흉기 던져, '제2의 캣맘사건 될뻔' 베란다서 소주병 투척한 60대"와 같은 제목을 단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피해자인 '캣맘'이 마치 가해자 마냥 표현된 제목은 분명히 잘못된 제목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제목들이 어색하지 않다. 이미 너무 많은 기사 제목들이 '피해자'를 기사의 앞면에 내세우고 있다.

가해자가 사라진 기사 제목
'캣맘 사건, 나영이 사건, 원영이 사건' 가해자는 숨어버리고 피해자의 민낯이 기사의 제목에 자리하고 있다. 당장 오늘의 뉴스를 둘러보아도 이런 제목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웃집 지적장애 여아 수차례 성폭행 50대 징역' 이미 제목만으로 피해자는 '지적장애', '여아', '수차례의 성폭행을 당함'이라는 정보를 알 수 있지만 가해자의 정보는 '50대'에 그쳤다. 그가 비장애인인지, 남성인지 기사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술 취한 여대생 성폭행' 경찰관, 1심서 징역형' 이라는 기사도 마찬가지다. '술 취한'을 넣음으로 피해자에게 사건의 귀책사유가 있다는 듯한 서술을 하고 있다. 피해자는 '여대생'으로 연령대를 예상할 수 있지만, 가해자인 '경찰관'에 대한 정보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가해자가 사라진 자리를 피해자가 매꾼다. 시선은 피해자를 향한다. 마치 '술에 취해서', '지적장애가 있어서' 범죄를 당한 것은 아니냐는 듯, 피해자에게서 가해의 이유를 찾으려 든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향하는 기사의 시선은 노골적이며, 경박했다. 이미 피해를 본 이들에게 이러한 기사들은 이차 피해를 생산할 뿐이다.

포르노를 연상케 하는 자극적인 제목
'옆집 여고생, 여대생, 만취, 올라타, 꽃뱀' 노골적이고 자극적인 수사들이 제목에 자리 잡았다. 넘쳐나는 기사 속에서 시선을 끌기 위해 제목에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이 표현들은 포르노의 제목과 닮아있다. 피해자를 상상할 수 있게끔 자세히 묘사한다. 한 번의 클릭을 위해 피해자를 가해한다.  '만취한 20대 여교사 몸 속 3명의 정액... 학부형이 집단 강간' 기사 제목의 포르노적 상상을 유도하는 문구는 도를 넘었다. 자극적인 표현 속에서 사건의 논지는 흐려지고, 범죄의 무거움은 가벼워진다. 피해자에게 자극적이면서 부가적인 설명이 붙을수록 피해자를 '피해자'만으로 바라보지 않는 시선이 형성된다. 여기에 육하원칙이라는 기사작성 방식에 근거해 성범죄 관련 보도는 가해자 입장에서 주로 반영하게 만든다. 가해자 말의 사실여부를 따지지 않고 '꽃뱀, 합의, 실수'의 자극적인 문구로 제목에 오른다. 이와 같은 단어들은 마치 피해자에게 범죄의 이유가 있으며, 사람 사이의 해프닝으로 보여진다. 가해자의 입장에서 서서 가해자를 옹호하기까지 한다. 가해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피해자는 일상에서의 흥밋거리로 전락한다. 포르노와 일맥상통하는 제목이 만들어지고, 피해자는 가십거리가 되어 팔려나간다.

현존하는 많은 기사가 가해자를 숨기고 피해자를 내세운다. 이에 자극적인 표현들을 첨가하여 포르노적 상상을 유도하기까지 한다. 이 속에서 이미 고통받았던 피해자는 이중 피해를 받는다. 언제까지 기사들은 가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자를 바라볼 것인가. 이제는 피해자를 드러내는 제목에서 가해자를 드러내는 제목으로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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