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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 노동자의 희귀질환(다발성경화증)을 산업재해로 처음 인정했다. 사진은 지난해 1월, 반올림 농성장 앞을 삼성LCD 뇌종양 피해자 한혜경씨가 휠체어를 타고 지나가는 모습.
▲ "반도체 소녀상"과 삼성LCD 뇌종양 피해자 법원이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 노동자의 희귀질환(다발성경화증)을 산업재해로 처음 인정했다. 사진은 지난해 1월, 반올림 농성장 앞을 삼성LCD 뇌종양 피해자 한혜경씨가 휠체어를 타고 지나가는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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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 노동자의 희귀질환(다발성경화증)을 산업재해로 처음 인정했다.

28일 시민단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행정2부(김용석 재판장)는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퇴사한 직후 다발성경화증이 발병, 10년 넘게 투병 중인 이소정(34세·가명)씨와 관련해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 승소(산업재해 인정) 판결을 내렸다.

즉 이씨 질병인 다발성경화증과 업무 간 인과관계를 인정해 '업무상 재해'로 본 것이다. 앞서 피고(근로복지공단)는 "발병 원인이 명확하지 않고, 근무 기간도 짧다"는 등 이유를 들어 "원고의 업무와 질병이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해왔다.

반올림과 소송대리인 설명을 종합하면, 이씨는 대학 학비를 벌기 위해 만 18세였던 2003년 2월 기흥공장에 입사해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근무했다. 2년간 일해 학비가 모이자 2005년 2월 퇴사해 대학에 입학했으나, 1개월여 뒤 정신을 잃고 실신했다. 안면마비 등 증상이 계속됐지만 희귀질환인 탓에 병명을 찾지 못하다가, 2008년에서야 '다발성경화증' 확진 판정을 받았으며 현재까지 계속 하반신 마비·시력 저하, 강직 증상 등으로 투병 중이다.

이씨는 승소와 관련해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1심 때도 모두 이길 거라는 분위기였는데 진 탓에 마음을 졸였다"라며 "재판부가 공정하게 봐줬으면 좋겠다. 정권의 눈치를 보지 말고 법 앞에 평등하게 대해주기를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본인 SNS 계정에도 "삼성은 과거를 얘기하지만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며 "아직도 그곳에 사랑하는 언니와 선배들이 남아있어 마음이 아프다"라고 썼다.

법원은 특히 "발병 원인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희귀성 질환의 경우에도, 현재 의학적·자연과학적 연구 성과를 통해 그 질병의 발병·악화 원인으로 거론되는 요소들이 근로자 업무 환경에 존재하고, 근로자가 업무수행과정에서 발병원인을 가지게 됐으며, 업무수행 직후 질병이 나타났다면 근로자 재해와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는 추단된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법원, 유기용제 노출 등 3개 이상 요인 인정... "내 잘못 아니라는 말 듣고 싶다"

이씨가 앓고 있는 다발성경화증은 중추신경계 질환으로, 인구 10만 명당 3.5명이 발병, 20대에서는 10만 명당 1.4명이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진 희귀질환이다. 그러나 반올림 측에 따르면 삼성전자 사업장에서만 이씨를 포함해 총 4명의 다발성경화증 피해자가 반올림에 제보됐다. 대부분 현재 30대 여성이다.

법원도 이 같은 점을 인용하며 "원고의 발병 시기가 한국인 평균 발병 연령(38.3세)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르고, 발병한 사람이 4명에 이르는 점을 고려하면 (삼성전자) 업무환경이 질병을 유발했거나 적어도 발병을 정상 속도 이상으로 빨리 진행시켰다고 인정된다"고 봤다. 법원은 또 질병의 직업적 원인으로 인정되는 6개 요인 중 햇빛노출 부족으로 인한 비타민D 결핍·유기용제 노출·교대근무 등 3개 이상의 요인이 발병·악화 원인이 됐다고 판단했다.

소송을 대리한 임자운 변호사는 이날 본인 페이스북을 통해 "정말 간절하게 이기길 바랐던 사건이었는데, 1심에서 지고 2심에서 뒤집었다. 소식을 듣고는 눈물이 나더라"며 소감을 밝혔다.

임 변호사는 이어 "근로복지공단은 또 상고를 고민하고 있을지 모르나, 제발 그러지 않길 바란다"라며 "재해조사를 해서 산재 여부를 판단하는데 애초 공단 측 재해 조사에 문제가 많았다. 업무환경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한 조사로 불승인 처분을 내린 것"이라며 "질병과 싸우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사람을 기약 없는 법정 투쟁에 몰아넣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반올림에 따르면 이씨는 삼성전자의 질환 분류·보상 기준에 대한 일방적·자의적 태도에 항의해 합의를 거부해왔다. 반올림 측은 "현재까지 산재인정을 받은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는 19명이고, 그중 삼성반도체 피해자만 15명"이라며 "삼성전자는 작업장 안전보건관리를 소홀히 하여 노동자들을 병들고 죽게 한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이날은 공교롭게도 반올림이 노숙 농성에 나선 지 600일째 되는 날이다. 반올림은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며 강남역 8번 출구 삼성 본관 앞에서 2015년 시작한 노숙농성이 28일로서 꼭 600일"이라며 "문재인 정부는 지난 7일 정책 협약식을 통해 '반올림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삼성과 반올림 간의 대화가 재개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이 조속한 시일 내로 지켜지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태그:#삼성전자 직업병, #삼성 백혈병, #다발성경화증, #반올림, #근로복지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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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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