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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서른넷 어느덧 벌써 30대 중반 나에겐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30대 중반 미친 듯이 일만 하며 살아온 10년이 넘는 시간 남은 것 고작 500만 원 가치의 중고차 한 대, 사자마자 폭락 중인 주식계좌에 500 아니 휴짓조각 될지도 모르지 대박 or 쪽박

2년 전 남들따라 가입한 비과세 통장 하나 넘쳐나서 별 의미도 없다는 1순위 청약통장 복리 좋대서 주워듣고 복리적금통장 몇% 더 벌려고 다 넣어둬 CMA통장 손가락 빨고 한 달 냅둬도 고작 담배 한 갑 살까 말까 한 CMA통장 이자 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놈 가끔 연락이 와 자기는 노가다 한대 노가다 해도 한국 대기업 댕기는 나보다 낫대 이런 우라질레이션 평생 일해도 못 사 내 집 한 채"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노랫말 중에서

새해 첫 근무일에 신 영업 시스템이 오픈했다
▲ 전산 시스템 새해 첫 근무일에 신 영업 시스템이 오픈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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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는 고객 상담과 서비스 관리를 위해 전산 시스템을 구축하여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사용하던 프로그램이 오래됐고 회사는 그 이후 더 많은 서비스군을 만들어 냈기 때문에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게 됐다. 그래서 비용과 시간을 들여 새로운 영업 시스템 구축에 들어갔다.

'신 영업 시스템'이라는 프로젝트명으로 시작된 그 일은 시스템 오픈 이후 많은 후폭풍을 몰고 왔다. 애시당초 전사가 사용할 전산시스템을 개발하는데 영업과 관련된 인원과 전산개발 담당자들로만 TF(Task Force)가 구성됐고 그 외 간접부서 인원들은 프로젝트에서 배제된채 진행됐다.

당시 나는 기술부서에서 '장비관리' 업무를 담당했다. 그 일은 다른 기술부서 사람들과 달리 영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이었다. 회사의 서비스 자체가 고객에서 장비를 설치해줌으로 인해 제공될 수 있는 구조였기 때문에 장비 역시 시스템과 맞물려 가용이 됐다. 장비관리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 시스템과 영업시스템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었지만 그 관계를 아는 사람들은 현업에 오롯이 장비관리 담당자들밖에는 없었다.

회사에 장비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은 각 지역 영업본부 100여명의 직원중 3명 내외였다. 전사가 다 동일한 상황이었고 장비관리 업무가 영업부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원업무였는데도 조직의 구성상 기술부서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이 직무는 회사 내에서 철저히 무관심의 대상이 되는 업무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많은 직원들이 이 직무를 하찮게 여기거나 기피하는 업무였다.

나는 입사당시 대학을 아직 졸업하지 못한채 '고졸사원'으로 입사를 했다. 그래서 이런 비인기 직무를 담당하게 됐고 그로부터 5년을 이 일만 해왔다. 사람들은 기피하는 비인기 직무이지만 나는 그안에서 나름대로 많은 혁신을 이루어 냈으며 이 직무 분야에서는 전사적으로도 실력을 인정 받는 사원이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그 직무분야 내의 일이었고 영업본부 내에서 이 직무는 여전히 찬밥이었다.

신 영업 시스템 오픈을 앞두고 대략의 매뉴얼이 공개됐을 때 나는 장비관리 시스템과의 호환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음을 알게됐다. 그래도 시스템을 오픈했다가는 업무가 마비될거라고 본사 전산부서 담당자에게 이야기했지만 그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기존에 계획됐던 범위내에서 지정한 날짜에 시스템을 오픈해야한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시스템 오픈일은 새해 첫 영업일인 1월 2일로 잡혔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12월의 마지막 근무일 저녁 본사 전산실 담당자에게 '시스템 오픈을 보류하라'는 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처럼 새해 첫 출근과 동시에 회사의 업무는 마비가 됐다.

새해 첫 출근... 모든 업무가 마비됐다

예상대로 신 영업시스템과 기존 장비관리 시스템이 호환되지 않아 현장의 기본 업무인 서비스 개통부터 장비와 관련된 모든 업무가 마비됐다. 장비와 관련된 모든 업무란 곧 회사의 서비스와 관련된 모든 업무를 이야기 했다. 나는 이미 그 일을 예상했기에 천천히 문제가 발생된 현황과 시스템 문제로 인해 사용하지 못하게 된 장비의 현황을 뽑아 보고했다.

신 영업 시스템 오픈 2시간만에 각 지역 본부장실에서는 '콘퍼런스 콜(전화회의)'을 통해 긴급 상황실이 개설됐다. 하지만 상황실에서는 원인도 파악하지 못했다. 이유는 영업 관련된 부서의 담당자와 팀장, 본부장이 주축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시간 뒤 내 보고를 들은 본부장님은 나를 상황실로 호출했다.

본부장님은 나에게 직접 현황을 설명하고 예상되는 조치방안에 대해 이야기 하라고 하셨다. 그 상황실안에는 대표이사부터 전사 임원, 각 지역별 관련부서 팀장님들까지 주요한 사람들이 모두 접속해있는 상태였다. 그런 상황을 잘 알기에 살짝 긴장되긴 했지만 나는 이내 말을 꺼냈다.

"지금 발생한 상황은 신 영업 시스템과 장비관리 시스템의 호환 문제로 인해 일어난 현상입니다..."

나는 콘퍼런스 콜 전화기 앞에서 차근 차근 파악한 내용을, 장비관련 업무를 모르는 사람도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풀어서 설명을 했다. 그리고 지난번 장비관리 시스템 개발 당시 프로세스 설계 담당자로 본사 전산부서에 파견 나갔을 때 익힌 지식을 동원해 예상되는 해결방안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현장의 업무가 모두 올스톱된 긴박한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은 내 이야기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고 반나절이 지났을 무렵부터 완벽하진 않지만 조금씩 현장의 업무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도 긴급 상황실은 약 한달동안 운영 됐고 본부장님은 상황실에서 중요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나를 찾아서 함께 미팅을 하곤했다.

인생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인생에 있어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그것은 일도 마찬가지다
▲ 일 '인생에 있어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그것은 일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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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술부서의 팀원이다. 그런데 기술팀을 총괄하는 팀장님은 내가 담당하고 있는 장비관리 업무에 대해서는 뒷전이다. 대부분의 기술팀장들이 그랬다. 부서는 기술팀인데 하는 일은 경영관리쪽이나 영업지원쪽에 가깝다보니 항상 뒷전이었고 그 직무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을 이번 일로 인해 전사가 모두 알게됐다.

신 영업 시스템 오픈하고 긴급 상황실이 열려있던 한달동안 나는 전사적으로 유명해졌다. 평소에는 전혀 소통할 일이 없는 부서나 임원, 팀장들까지 내 이름을 알게됐다. 그 이후 조직 내 나의 평판은 더 좋아졌고 본부장님의 나의 역량을 아주 높게 평가하시며 내가 추진하는 일을 모두 적극적으로 밀어주셨다. 그리고 나는 그 해 창립기념일에 모범사원으로 추천됐으며 연차보다 1년 빨리 승진하는 쾌거를 누렸다.

와신상담이었다. 지난 5년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혼자 협력업체 직원들과 함께 효율적인 장비관리를 위해 많은 시도를 했고 전사적으로도 관심받지 못하는 일이지만 다른 지역의 장비담당자들과 소통하며 많은 혁신을 이뤄냈다. 그렇게 스스로가 맡은 업무에 대해서 열정을 가지고 나름의 보람을 느끼며 열심히 해온 결과 갑작스런 위기에도 침착하게 대응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인생에 있어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가 내 철학이다. 그건 직장생활을 할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 지금 아무리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하찮게 느껴질지 몰라도 그 경험은 내 인생에 있어 언젠가는 빛날 날이 올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듣는 곳 http://music.naver.com/ML/daddytt



태그:#시스템, #프로그램, #상황실, #역량,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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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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