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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28조 형사피의자 또는 형사피고인으로서 구금되었던 자가 법률이 정하는 불기소처분을 받거나 무죄판결을 받은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에 정당한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범죄가 발생하면 수사기관(경찰이나 검찰 등)은 수사에 나선다. 수사 결과 범죄혐의와 처벌의 필요성이 인정된다면 검사는 범죄 혐의자를 재판에 부친다. 이를 소를 제기한다는 의미로 기소(起訴)라 한다. 수사단계에서는 범죄 혐의자를 '범죄혐의가 의심되는 자'라는 의미에서 '피의자(被疑者, suspect)'라고 부르는데 피의자는 기소를 통해 '공소제기를 당한 자'라는 의미의 피고인(被告人, accused)이 된다. 피의자에서 피고인으로 전환되면서 절차도 수사에서 재판으로 넘어간다.

수사와 재판에서 범죄혐의자는 끊임없이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 방어는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를 수집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등 수사기관이나 법정 밖에서 준비해야 하는 것이 더 많고 중요하다. 그렇기에 수사와 재판은 불구속 상태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범죄 혐의자가 구속되어 신체의 자유가 제한되고 있다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준비에 장애가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을 경우에는 부득이 구속 상태에서 수사나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

범죄 혐의자의 구속은 경찰 조사에서 10일, 검찰 조사에서 20일까지 가능하다(형사소송법 제202조~205조). 이후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되면 심급마다 6개월까지 구속이 가능하다. 재판이 대법원까지 이어진다면 최장 18개월(6개월 × 3)동안 구속이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대법원에서 사건이 종결되지 않고 고등법원으로 환송된다면 구속기간은 다시 6개월 연장될 수 있다. 수사 시점부터 판결의 선고까지 피의자는 최장 25개월 동안 구금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국가보안법 사안이라면 여기에 경찰과 검찰 수사단계에서 각 10일씩, 20일이 추가된다.

헌법 제28조가 범죄 피의자에 대한 보상을 규정한 이유

재판의 결과 피고인에게 징역형이 선고된다면 선고 전 구금일수는 본형에 산입된다. 선고된 형량이 구속일수 보다 짧으면 바로 석방되고 길다면 구속기간만큼 줄어든다. 그런데 만약 최장 25개월 20일 까지 구속될 수 있는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된다면 그는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것이 된다. 그렇다면 국가는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헌법 제28조가 범죄 피의자에 대한 보상을 규정한 이유다.

이에 따라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 제5조와 동법 시행령 제2조는 최저임금에 따른 일급 5배 이내에서 구금된 일수에 따라 보상금을 책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계산해 보면 구속 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을 받았을 경우 최대 1억이 넘는 보상금이 책정될 수 있다.

그런데 2015년 형사보상금(변호사비용을 포함)으로 이를 훌쩍 뛰어넘는, 무려 8억3600만원이 책정된 사건이 발생했다(서울고등법원 2009. 11. 13. 선고 2009나50751 판결). 간첩방조혐의로 10년 동안 옥살이를 해야 했던 사건의 재심에서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의 구금뿐만 아니라 10년 간의 본형에 대해서까지 보상이 이루어진 것이다.

분단국가인 한국은 한반도를 동과 서로 나누는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다. 육지는 높다란 철책, 삼엄한 경비 그리고 지뢰가 매설되어있는 너비 4km의 휴전선이 가로막고 있어 육지의 군사분계선을 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동과 서, 양쪽의 바다는 철책도 휴전선도 없어 자칫 남북을 넘나들 위험이 크다. 지금은 GPS(위성항법시스템)가 발달하여 어선이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있지만 GPS가 없던 시절, 남한 어부들이 월북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는 했다.

물고기떼를 쫓아 자신도 모르게 월북하게 된 어선들은 무사히 남한으로 돌아오기도 했지만 많은 경우 북한군에 나포되고는 했다. 그리고 나포된 어부들 중 일부만이 다시 남한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자신의 고향, 남한으로 돌아온 어부들은 북한에 매수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속에 철저한 조사를 받아야 했고 오랫동안 국가의 감시를 받으며 살아야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국가는 무고한 어촌 마을 사람들을 조작하여 간첩으로 둔갑시키기까지 했다.

재판 시작도 안 했는데, 피의자 얼굴 신문 1면에 공개

1974년 3월 15일 박정희 정권의 신직수 중앙정보부장은 대대적으로 대규모 간첩단 사건을 발표했다. 신문들은 중앙정보부의 발표를 그대로 옮겨 '울릉도 거점 간첩단 47명 검거'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했다. '정부전복 획책…10여년간 암약', '위장업체·서클 등 구성', '지식층·군부 침투기도'라는 부제도 붙었다. 심지어 재판이 시작도 안 된 사건 피의자들의 인적 사항과 얼굴이 신문 1면에 공개되기도 했다. 중앙정보부에 따르면 이들은 울릉도에 거점을 두고 북한을 왕래하며 간첩활동을 하고 지하망을 구축한 30명과 전북에 거점을 두고 일본에 유학하면서 간첩활동을 한 17명으로 구성된 총 47명의 대규모 간첩단이었다.

하지만 울릉도 간첩단은 중앙정보부의 고문에 의해 철저히 조작된 사건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1974년은 유신정권에 대한 국민의 저항이 점차 거세지던 시점이었다. 국면의 전환이 필요했던 중앙정보부는 대규모 간첩단 사건을 만들어 공안정국을 조성하고자 했다. 당시 이러한 의도에서 조작된 대표적인 사건이 울릉도 간첩단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2차 인혁당 사건)이었다. 두 사건 모두 중앙정보부의 고문과 가혹행위에 의해 조작된 것이지만 유신정권의 대법원은 피고인들에게 예외 없이 사형을 포함한 중형을 선고했다.

많은 이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해야 했다. 살아남은 이도 오랜 기간의 옥살이와 국가의 감시에 시달렸다. 하지만 진실은 쉽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만큼 그들의 고통스러운 시간도 길었다. 이성희는 당시 피해자 중 하나였다. 그는 전북대학교 수의학과 부교수로 재직하며 박사 학위를 위해 일본에 유학중이던 1967년 북한을 방문해 3박4일간 체류한바가 있었다.

당시 김일 북한 제1부수상과 면담하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은 이 전 교수가 북한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간첩 활동을 했다며 사형을 선고했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학자 자격으로 북한을 찾았다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전 교수와 함께 '울릉도 간첩단'으로 몰렸던 전영관씨 등 3명은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 전 교수는 다행히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1991년, 17년을 복역하고 나서야 출소할 수 있었다.

이 전교수는 2006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과 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하였다. 진실과 화해위는 2년여의 조사 끝에 2008년 3월 11일 "재심대상사건에서 원고 1(이 전 교수)에 대하여 불법구금 및 가혹행위가 이루어진 개연성이 인정되므로 피고(대한민국)는 원고 1의 피해와 명예회복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는 진실규명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서울고등법원은 2009년 그들에 대한 국가의 잘못을 인정했다.

8억3600만원의 형사보상금을 받은 이는 울릉도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당한 전영관씨의 부인이었다. 그녀의 죄목은 간첩방조죄였다. 억울하게 남편을 잃고 자신도 오랜 기간 옥살이를 해야 했던 억울함이 보상금으로 풀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재심을 통해 진실을 찾고 보상을 받은 경우는 매우 일부분일 것이다.

형사보상은 잘못된 국가폭력에 대한 국가권력의 최소한의 양심이다. 하지만 이 양심의 결과를 얻기는 너무나 어렵다. 울릉도 간첩단 사건도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해 정부가 출범시킨 진실과 화해위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재심이 진행된다고 해도 수십년 전 사건의 무죄를 끌어내기는 상당히 어렵다. 국가가 조작하여 만들어진 간첩피해자들이 자신의 발로 뛰어 진실을 찾아야 하는 현실은 결코 옳지 않다. 더 이상 국가가 덮은 진실을 피해자들이 파헤치게 놔두어서는 안 된다. 이제 국가가 나서 스스로 진실을 찾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하여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 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간첩, #중앙정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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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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