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995년 [현재] 미국의 감옥과 구치소에 있는 재소자들을 바라보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 방법은 그들을 다른 종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들은 기생충과 같아서 인간 존엄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존중받을 자격도 없다는 시각입니다. [이런 시각에서는] 재소자들에 대한 모욕적이거나 야만적인 대우는 이슈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재소자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 것에도 전혀 거리낌이 없을 것입니다.

이 문장은 마사 너스바움이 자신의 책 <혐오와 수치심>에 인용한 리처드 포스너 판사의 말이다. 그는 재소자들에 대한 비인도적인 처우가 잔인하고 비정상적인 처벌이라는 판결을 내리며 이러한 비판을 남겼다.

교도소 수감자에 대한 의견이긴 하지만 사실 포스너 판사의 주장은 특히나 혐오에 시달리는 사회의 여러 소수자들에게 적용해 보아도 큰 위화감이 없다. 특정 집단을 같은 존엄을 지닌 인간으로 보지 않는 시각은 이들이 국가 권력 내부에서 어떤 취급을 받게될 것인가와 크게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20세기 후반까지 미국에선 정부 기관의 주도로 장애인이나 소수 인종에 대한 강제 불임수술이라는 야만적인 행위가 이어져 왔으며 한국 역시도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국의 성소수자가 처한 현실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공동행동 회원등 시민단체가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예술회관 옆 계단에서 성소수자 혐오 없는 나라를 바라는 시민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공동행동 회원등 시민단체가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예술회관 옆 계단에서 성소수자 혐오 없는 나라를 바라는 시민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이처럼 사회 내부에서 아예 '다른 종'으로 취급되고 그래서 일상적이고 제도적인 차별을 겪는 대표적인 집단 중 하나가 바로 성소수자일 것이다. 일례로 며칠 전 나는 인도네시아에서 게이 남성에 대한 태형 판결이 집행된 뉴스에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는 식의 댓글이 우르르 달리고 호의적인 반응을 얻은 것을 본 적이 있다.

사실 이미 질릴 정도로 본 혐오 표현이라는 점에서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적의를 드러내는 것을 넘어서서 이들에게 직접적이고 야만적인 폭력이 저질러지는 일에도 동의와 환호를 보내는 모습은 꽤나 충격이었다. 동등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면 저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이런 말이 횡행하는 사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두렵기만 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거짓말처럼 나는 현실을 직면해야 했다. 24일 육군보통군사법원이 군형법 92조의 6항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동성애자인 대위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것이다.

하지만 '추행'이라는 조항의 이름과 달리 그는 어떠한 성적 폭력도 강요도 행사하지 않았다. 그는 사적인 공간에서 업무상 관련이 없는 상대와 합의하에 성관계를 나누었을 뿐이었다. 거기에 선고를 받은 대위는 애초에 육군이 명분으로 든 동영상 유포 행위도 하지 않았다. 잘못한 것이 없었기에 나는 유죄 판결을 전혀 예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처벌받은 것은 무엇인가. 동성애자라는 그의 성적지향 자체가 아닌가.

보호는커녕 위해도 막지 못하는 사회

사실 군형법 92조의 6항은 '항문 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을 적용 대상으로 규정해 합의된 성관계 역시도 처벌될 여지가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2016년에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군인은 어떤 행위가 심판 대상인지 여부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는 이유로 해당 조문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한마디로 야만적인 인권 탄압에 해당 조항이 악용까지 될 일은 없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경도된 혐오는 군의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동성애자 군인에 대한 색출 작업과 입건이 줄을 이었고, 구금까지 되었던 대위는 결국 범죄자라는 낙인을 얻지 않았는가. 단지 그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따라서 나는 이번 사건이 우리 사회의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위험한 수위에 올랐음에도 이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직접적인 위해를 방지할 조건조차 갖추지 못한 현실을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을 이유로 차별을 받아도 그것을 금지하는 법률이 없지만 심지어 같은 이유로 이들을 범법자로 만들 수 있는 법 조항은 폐지하지 않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성소수자들이 평등은커녕 최소한의 인간적인 존엄조차 보장받을 수 있을까. 또한 이번 사건이 이전과 달리 보수 기독교계와 같은 종교 집단이 아니라 군사법원이라는 국가 기관에 의해 발생한 점이라는 것도 생각해보자. 무려 혐오가 공적으로 승인된 이 사태를 앞에 둔 성소수자들은 어떤 느낌일까.

한국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것

지난 4월 26일,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열린 '천군만마(千軍萬馬) 국방안보 1000인 지지선언'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마친 직후 성소수자 단체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는 모습. 레인보우 깃발을 들고 문 후보를 향해 기습시위를 벌인 이들은 전날 TV토론에서 동성애 반대 뜻을 밝힌 것에 대해 문 후보의 사과를 촉구했다.
▲ 성소수자 기습시위 지난 4월 26일,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열린 '천군만마(千軍萬馬) 국방안보 1000인 지지선언'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마친 직후 성소수자 단체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는 모습. 레인보우 깃발을 들고 문 후보를 향해 기습시위를 벌인 이들은 전날 TV토론에서 동성애 반대 뜻을 밝힌 것에 대해 문 후보의 사과를 촉구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나는 지금껏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이 느끼는 불안과 갈증을 전달하려고 노력해왔다. 한국 사회는 이번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도 성소수자들이 스스로를 당당히 드러내고 살기 힘든 곳이었다. 이들에 대한 혐오가 치명적인 윤리적 결점으로 여겨지지 않았을뿐더러 때로는 정상적인 것으로까지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에 나갈 때도 학교에 갈 때도, 혹은 모임에 나갈 때도 경계를 늦출 수가 없었다. 성소수자임이 드러난 자신에 대해 누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 알 수가 없기에. 이러한 두려움과 초조함, 답답함을 해소는 못할지언정 국가 권력이 나서서 증폭시키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옳은 일일까.

이 글을 쓰기 전에 나는 동성애자인 지인에게 그의 삶이 어떤 느낌인지를 써줄 수 있냐고 이야기했다.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 직접적으로 전하는 것으로 이 글을 닫고자 한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고 집 밖을 나설 때면 주홍글씨가 새겨진 나의 일부분을 집에 두고 온다. 사람들은 커밍아웃을 '옷장 밖으로 나선다'고 비유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성소수자인 스스로를 너무도 오랫동안 가두어 두어 이제는 옷장이 아니라 관 속에 넣어둔 느낌이 든다. 나는 하루 중 얼마의 시간을 동성애자로서 살까. 거의 없다.

누군가 웃으며 '결혼은 언제 하냐'고 물을 때면, '주변에 소개시켜줄 만한 여자가 있는데 어떻냐'고 질문할 때면 나는 답을 피했다. 그렇게 이성애자인 척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배탈이 나서 점심은 거르겠다는 나의 말을 믿었을 것이다. 그날은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말이 생중계로 전국에 전파된 다음 날이었다. 속이 쓰려서 아무것도 입에 넣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일은 늘상 반복되었다.

나는 나를 온전히 이끌고 학교로, 회사로, 친구들의 모임으로 나가본 경험이 거의 없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나를 알고 있지만 정작 아무도 나를 모른다. 나는 어디에나 갈 수 있지만 아무 곳에도 갈 수 없다. 나는 항상 숨을 쉬지만 너무 오랫동안 어둠 속에 잠겨있다. 나는 살아 있지만 한편으론 죽어있다. 유령을 등에 지고 사는 것 같은 이 느낌이 어떨지 사람들은 알까?"


태그:#성소수자, #혐오, #차별, #차별금지법, #군형법92조의6
댓글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