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자유계약선수(FA) 이정현은 최근 역대 최고액 연봉 기록을 갈아치우며 전주 KCC로 이적했다. 이정현의 FA 몸값은 9억2천만원(연봉 8억 2800만원+인센티브 9200만원)에 이른다. 종전 최고 보수액이었던 2015~2016 시즌 삼성 문태영의 8억3000만원을 가볍게 뛰어넘으며 화제를 모았다.

또다른 FA 대어로 꼽혔던 김동욱도 소속구단 오리온을 떠나 삼성과 3년 6억3000만원에 계약했다. 200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에 지명된 뒤 2011년 12월 트레이드를 통해 오리온으로 이적한 김동욱은 이번 FA를 통하여 5년 6개월 만에 친청팀으로 복귀하게 됐다.

이밖에도 문태영이 삼성과 3년 5억5000만원, 박찬희가 전자랜드와 5년 5억원에 재계약했다. SK는 김민수를 3년 3억5000만원, 변기훈은 5년 3억원에 잔류시켰다. 동부의 전설 김주성은 2억원을 받고 1년 더 현역생활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농구팬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이정현과 김동욱같은 선수들은 각 포지션에서 현재 KBL 정상급으로 꼽히는 자원임에는 분명하다. 각 구단도 대체로 필요한 자리에 필요한 전력을 보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진짜 실력이나 가치에 비하여 몇몇 선수들은 몸값 거품이 너무 지나치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나오고 있다.

올해 FA 최대어로 꼽혔던 이정현의 경우, 지난 시즌 15.3점, 5어시스트 3리바운드, 야투 41.6% 3점슛 32.5%(경기당 2.2개) 를 기록하며 안양 KGC 인삼공사의 통합우승을 이끌었다. 국내 선수로는 득점 1위지만 외국인을 포함한 전체 순위로는 고작 11위에 불과하다.  올시즌 득점 선두이자 이정현의 새로운 팀동료가 된 안드레 에밋(28.8점)과는 거의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이정현의 통산 평균 득점은 12.5점에 불과하다. KGC에서도 데이비드 사이먼-오세근에 이어 3번째 공격옵션에 불과했다.

눈에 보이는 기록만이 아니라 선수의 전반적인 팀공헌도를 평가하는 생산성 지수(PER-Player Efficiency Rating)에서도 이정현은 고작 15.2점으로 국내 선수중에서도 10위에 불과했다. 심지어 올시즌은 득점-3점슛-리바운드 등 대부분의 기록에서 이정현의 '커리어 하이' 시즌이기도 했다. 참고로 올시즌 PER 국내 선수 1위는 팀동료였던 오세근(21점)이었다. 이정현이 정규시즌과 플레이오프 MVP 경쟁에서도 모두 오세근에 밀린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올해 나란히 FA 자격을 얻은 팀잔류를 선택한 오세근이 7억 5천에 팀잔류를 선택한데 비하여, 이정현은 이적을 선택하며 더 높은 연봉을 챙겼다. 그러나 이정현이 오세근보다 더 가치있는 선수라고 평가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김동욱은 KBL에서 가장 다재다능한 포워드로 꼽힌다. 내외곽에서 모두 플레이가 가능하고 패싱력을 갖춰 경기운영에도 기여할 수 있어서 기록 이상의 가치를 지닌 선수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미 문태영-김태술 등 노장이 많은 상황에서 또다시 30대 중반을 넘긴 김동욱에게 삼성이 6억이 넘는 비용을 투자해야 했는지는 의구심을 가지고 보는 이들도 많다.

물론 실력과 가치가 있다면 그만한 대우를 받는 게 당연하다. 많은 농구팬들이 근본적으로 아쉬워하는 부분은 나날이 고액연봉자는 늘어가는 현실 속에서 KBL 스타들 중 과연 정말로 그만한 가치를 지닌 선수가 얼마나 되는가 하는 의문이다.

사실 프로농구 초창기만 해도 서장훈이나 허재, 김승현, 조성원, 방성윤, 현주엽 등 외국인 선수에 견줘도 밀리지 않는 실력과 가치를 지닌 선수들이 상당수 활약했다. 팀마다 평균 20점 이상을 올리는 국내 선수가 한 명 정도는 있었고 클러치타임에서 외국인 선수를 제치고 국내 선수가 에이스 역할을 맡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물론 '추억 보정'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도 없지는 않지만 실제로 당시 KBL의 농구인기나 한국농구의 국제적 위상 등은 최소한 지금보다는 더 높았다.

하지만 현재 한국 농구의 인기와 위상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국내 선수들은 자국리그에서도 외국인에게 밀려 주도권을 내주고 조연으로 전락했다. 최근 2년간 득점에서 10위권 이내에 이름을 올린 국내 선수는 아예 전무하다. 나름 슈터라고 불리거나 국가대표급 선수들조차 완벽한 오픈 찬스에서도 슛이 빗나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단적인 예로 현재 KBL 정상급 슈팅가드라는 이정현의 통산 야투 성공률은 42.1% 3점슛은 고작 33.5%에 불과하다. 실력보다 파울을 끌어내기 위한 할리우드 액션(플라핑)으로 더 주목을 받은 것도 팬들의 비판을 받는 대목이다. 당연히 국제무대에서는 이런 꼼수가 통하지않는 경우가 더 많다. 또한 지난 시즌 어시스트 왕에 연봉 5억을 받는 전자랜드 박찬희의 3점슛 성공률은 17.7%(통산 23.1%)였다. 가드의 슈팅능력이 더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로까지 평가받는 현대농구에서 한 팀의 풀타임 주전 가드이자 국가대표급 선수라고는 믿기 어려운 기록이다. 더 큰 문제는 몸값에서 보듯, 바로 이들이 현재 각 포지션에서 KBL 최고를 다투는 선수들의 수준이라는 사실이다.

인지도나 관중동원력같은 상품성 측면에서도 야구의 이승엽이나 축구의 손흥민, 배구의 김연경 같이 그 종목을 대표하는 슈퍼스타가 농구에 있는 것도 아니다. 다른 종목이 해외 상위 리그에 진출하는 경쟁력 있는 선수들을 꾸준히 배출하는 것과 비교할 때 농구는 프로 출범 20년이 지난 지금도 변변한 해외파를 찾기 힘들 정도로 철저한 내수용 종목으로 전락했다.

오히려 나름 국내에서도 스타로 꼽히는 선수들조차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농구팬들이 아닌 이상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정도다. 여기에 지난 몇 년간 몇몇 농구인들의 승부조작, 불법도박, 음주운전, 행정기구의 무능함 등 '도덕성 해이'와 관련된 논란들도 끊이지 않으며 농구계의 이미지 하락은 가속화됐다.

정작 한국농구는 프로 출범 이후 올림픽 본선은 단 한번도 나가보지 못하고 있으며 아시아에서도 중위권으로 밀려날 만큼 국제 경쟁력조차 심각한 하락세다. 높은 몸값을 받는 프로 선수들은 정작 대우는 열악하고 부담은 큰 국가대표 차출은 소극적으로 꺼리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서장훈이나 허재같은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이며 한국농구의 경쟁력을 증명한 것과 비교할 때, 요즘 선수들은 KBL 무대 밖에서도 인정받을 정도의 실력을 보여준 적이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 이쯤되면 과연 프로농구 출범이 농구인들의 몸값 향상을 제외하고 한국농구 발전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이처럼 이미 흘러간 콘텐츠가 된 지 오래인 90년대 농구대잔치 시절과 비교해도 인기나 실력 면에서 발전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은 가운데, 정작 일부 선수들의 몸값만 지나치게 올라가는 현상은 역설적으로 초라해진 한국농구의 위기를 증명하고 있다. 선수들 입장에서도 '시대를 잘 만나서' 좋은 대우와 환경을 누리며 선수생활을 이어간다는 것은 행운이지만, 그에 걸맞은 책임과 가치를 다하는데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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