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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과 정원으로 이루어진 왕궁

파사르가데 개념도
 파사르가데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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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르가데의 왕궁은 왕의 거처로 사용된 궁전, 왕실 정원, 공식적인 업무를 보는 궁전, 출입 및 대기용 궁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내전, 정원, 외전, 정문의 네 부분이 된다. 내전은 왕의 사적인 공간이다. 정원은 수로와 초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외전은 왕이 신하와 외국의 사신을 알현 또는 접견하는 공간이다. 외전을 찾는 사람들은 왕궁의 정문을 통해 들어오게 된다.

왕궁 답사는 내전, 정원, 외전, 정문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내전(주거용 궁전)은 그나마 왕궁에서 가장 잘 남아 있다. 가로 5개 세로 6개의 둥근 기둥으로 이루어진 메인 홀이 있고, 남쪽과 북쪽에 주랑이 있었다. 이들 30개의 기둥 중 현재는 13개 정도만 남아 있다. 그것도 윗부분은 부러진 상태다. 부러진 기둥 일부가 땅에 뒹굴고 있다. 그러나 이들 기둥을 통해 주거공간으로서의 내전 구조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주거용 궁전
 주거용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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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홀 북쪽 주랑은 두 줄로 12개씩 기둥이 있어 외부와 연결하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남쪽 주랑에는 두 줄로 20개씩 기둥이 있다. 주거궁인 내전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문의 안쪽 벽면에 새겨진 부조다. 양쪽으로 두 인물의 하체가 표현되어 있다. 앞에 좀 더 넓게 표현된 것이 키루스 대왕이고, 뒤를 따라가는 것이 왕세자 도는 시종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을 지나 남쪽으로 가면 직사각형의 왕실 정원이 나온다. 정원은 기본적으로 직사각형이다. 이 정원은 다시 네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사방과 가운데로 물이 흐르는 수로를 만들고, 수로 양쪽으로 길을 냈다. 수로와 길 안쪽으로는 나무와 화초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러나 물길이 파사르가데 외곽으로 돌아가면서 현재는 수로가 끊긴 상태다.

왕실 정원의 수로
 왕실 정원의 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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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정원에는 잡초만이 자라는 황량한 모습이다. 그렇지만 수로를 이루던 바닥의 돌들이 그대로 남아 조금만 손을 보면 정원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 같다. 수로의 폭은 25㎝ 깊이는 16㎝ 정도이며, 13-14m 간격으로 수조를 만들어 이들 물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수조는 가로 세로 폭이 87㎝인 정사각형이고 깊이가 52㎝이다. 수조에는 현재도 물이 고여 있다.

파사르가데 왕실 정원은 이란에서 가장 오래된 정원이다. 그 때문에 파사르가데에 속한 문화유산으로 뿐 아니라 페르시아 정원에 속한 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이중 등재되었다. 왕실 정원의 모서리에는 정자를 두 개 만들어 왕족들이 쉴 수 있도록 했다. 현재는 정자의 4각 기둥 일부가 남아 옛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4각 기둥의 벽면에서 '나는 아케네메스 제국의 키루스왕이다'라는 설형문자를 확인할 수 있다.   

왕을 알현하는 궁전과 왕궁 앞 정문

알현궁전 복원도
 알현궁전 복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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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자에서 남쪽으로 가면 알현궁전이 있다. 알현궁은 주거궁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 8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메인 홀을 중심으로 사방에 주랑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다. 학자들이 만든 복원도에 따르면 메인홀은 2층으로 되어 있다. 알현궁에는 남쪽과 북쪽에 2줄로 8개씩 기둥이 세워진 주랑이 있다. 이곳에 주출입문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동쪽과 서쪽 주랑은 남쪽과 북쪽 주랑보다 길어 기둥 숫자가 더 많았다. 이곳은 관리와 친위대의 근무 공간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들 궁전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는 게 없다. 그러므로 고고학적 발굴을 토대로 그 구조와 용도를 추론할 수밖에 없다. 알현궁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문의 안쪽 벽에 새겨진 부조다. 이들 역시 하체만 표현했다.

알현궁의 물고기와 황소 부조
 알현궁의 물고기와 황소 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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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부조를 보면, 반은 인간의 다리고 반은 물고기의 몸뚱이와 꼬리다. 뒤의 부조는 황소의 뒷다리 부분이다. 수컷으로 고환과 꼬리가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것 역시 황소의 상징으로 보인다. 땅위의 동물인 황소와 물속의 동물인 물고기로, 땅과 물을 대표하는 성격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조로아스터교에서는 땅과 물 그리고 불을 신성시한다.

알현궁에서 남동쪽으로 200m쯤 가면 왕궁의 정문이 나온다. 이 왕궁문은 페르세폴리스의 만국의 문을 연상하면 된다. 거주궁과 알현궁에 출입하는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가로 세로 26.4m 22.6m의 직사각형 구조로, 안쪽에 8개의 기둥(4개씩 2줄)이 있는 형태다. 이들 기둥의 높이가 16m나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왕궁문
 왕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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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사방으로 나 있으며, 하나는 알현궁으로, 다른 하나는 거주궁으로 가는 문이었을 것이다. 현재 이곳에는 바닥재로 쓰였을 석재와 벽의 아랫부분을 이루었을 진흙받침이 있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옛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직육면체의 석벽 안쪽에 새겨진 인물 조각상이다. 4개의 날개를 가지고, 머리에는 특이한 관을 쓰고 있다.

날개는 수호신을 상징하는 앗시리아 전통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한다. 머리에 쓴 관은 이집트 파라오의 권위를 상징하는 모자의 변형으로 보인다. 의복은 엘람 양식이라고 한다. 연구자들은 이 부조에서 시리아 양식, 바빌로니아 양식, 이오니아 양식 등도 찾아내고 있다. 즉 정복한 지역의 전통을 받아들여 통합의 이미지를 만들려고 했다는 것이다.

왕궁문 부조
 왕궁문 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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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선지 이 인물이 누군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나는 다민족 국가로 통일을 이룬 키루스 대제라는 설이다. 통일 제국의 모든 국민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모습이라고 한다. 또 다른 하나는 종교적인 수호신으로 상징성을 지닌다는 설이다. 그러고 보니 조로아스터교의 창조신 아후라마즈다와 닮은 요소도 보인다. 2500년 전 유물을 가지고 이야기하다 보니 마치 뜬 구름 잡는 것 같기도 하다. 

돌탑으로도 불리는 이 건물의 용도는 무엇이었을까?

돌탑 건조물
 돌탑 건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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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왕궁을 나와 돌탑(Stone Tower)으로 불리는 건조물로 간다. 이것은 낙쉐 로스탐의 건조물 본 카네와 유사하다. 그렇다면 이 건물을 종교적인 의식을 행하는 사원이나 불의 신전으로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이것 역시 술레이만 신전 또는 감옥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술레이만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것은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이슬람 문명의 영향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건조물은 낙쉐 로스탐의 것에 비해 파괴가 심한 편이다. 건축 자재들이 주변에 널려 있다. 그나마 철제빔으로 한쪽 벽을 지탱하고 있어 그 원형을 짐작할 수 있다.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부분이 계단과 연결되는 벽이어서 문도 보인다. 황량한 들판에 외롭게 서 있는 건조물이 쓸쓸하기만 하다.

폐허로 남은 파사르가데
 폐허로 남은 파사르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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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가르데의 훼손은 알렉산더 대제에 의해 페르시아가 멸망한 기원전 330년부터 이루어졌을 테니, 이 정도 남아 있는 것만도 다행이다. 이곳에서 성곽이 있는 탈레 탁트까지는 또 1㎞쯤 된다. 그러나 그 성곽을 멀리서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언덕 위에 벽돌로 쌓은 성벽이기 때문에 가까이 간다고 특별한 게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성곽은 파사르가데의 피난성 또는 방어성 역할을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성곽을 끝으로 우리는 파사르가데 답사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돌아간다. 나가는 길은 온 길을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나오는 길에 영묘 앞에서 즐겁게 자전거를 타는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주차장 근방에는 박물관이 있다. 그러나 너무 시간이 늦어선지 문이 닫혔다. 인근 기념품점만 잠시 살펴본다.

키루스 영묘와 아이들
 키루스 영묘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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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야즈드다. 이곳에서 야즈드까지는 270㎞ 정도로 4시간 정도 걸린다. 그것은 야즈드가 자그로스 산맥을 넘어 사막지역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개가 해발 2000m를 넘어서인지 산악지방에는 눈이 하얗다. 해는 지고 길도 구불구불하니 차가 속도를 내기도 어렵다. 우리는 모든 것을 운전기사에게 맡기고 잠에 빠져든다. 야즈드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9시 30분이다.

파사르가데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 까닭은?

파사르가데의 키루스 영묘
 파사르가데의 키루스 영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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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르가데는 페르시아제국 최초의 수도이다. 그리고 이곳에 남아있는 왕궁, 정원, 영묘 등이 아케메네스시대 건축과 예술, 문명의 흔적을 잘 보여주기 때문에 200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페르시아 제국은 역사상 최초의 다문화 국가였다. 서쪽으로는 지중해 동쪽, 남쪽으로는 이집트, 동쪽으로는 인더스강에 이르는 대제국을 이룩했다. 이것은 문화의 통합과 종합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파사르가데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 근거는 다음 네 가지다. 첫째 파사르가데는 아케메네스시대 최초 왕실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둘째 다민족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페르시아 제국의 건축과 예술의 발전상을 보여준다. 셋째 왕궁, 정원, 영묘가 남아있는 고고학적 유적으로 페르시아 문명의 증거물이다. 넷째 네 부분으로 구획된 왕실 정원양식은 중동지역 건축과 조경의 원형이 되었다.


태그:#왕궁, #왕실 정원, #왕궁문, #돌탑과 성곽, #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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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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