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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5시께, 뉴스를 보다 나도 모르게 환호를 질렀다.

교육부가 교원 수를 늘리고 누리과정 국고부담을 확대하는 동시에 내년부터 고교입학금과 수업료, 교과서비 등을 무상화하겠다는 보도였다. 여기다 앞으로 대학 입학금도 축소 내지 폐지하고 현행 3.9조 원 규모인 국가장학금 지원 규모를 2020년부터 5조 원 이상으로 늘려 반값등록금을 실질적으로 실현하겠다는 계획도 나왔다.

고교 1학년 늦둥이가 있는 우리 집으로서는 무척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올해 울산지역 일반고 수업료가 연간 138만3600원, 입학금은 1만7400원이니 만일 고교무상교육이 실현되면 우리집 가계는 1년에 140만 원가량을 절약할 수 있게 됐다.

여기다 막내가 대학에 들어가는 2020년부터는 실직적인 반값등록금이 된다고 하니 앞으로 학비 부담이 무척 줄어들게 됐다. 이어찌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2010년 11월 30일로 친환경 무상급식 예산 증액을 요구하며 20일 째 단식농성중인 당시 민주노동당 소속 이은영 시의원(가운데). 이날 같은 당의 이재현 부의장이 단식농성에 동참했다. 


친환경 무상급식 예산 증액을 요구하며 11월 30일로 20일 째 단식농성중인 이은영 시의원(가운데. 이날 이재현 부의장이 단식농성에 동참했다. 








2010년 무상급식 예산ㅇ
 2010년 11월 30일로 친환경 무상급식 예산 증액을 요구하며 20일 째 단식농성중인 당시 민주노동당 소속 이은영 시의원(가운데). 이날 같은 당의 이재현 부의장이 단식농성에 동참했다. 친환경 무상급식 예산 증액을 요구하며 11월 30일로 20일 째 단식농성중인 이은영 시의원(가운데. 이날 이재현 부의장이 단식농성에 동참했다. 2010년 무상급식 예산ㅇ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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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반가운 소식을 접한 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무상급식을 두고 우리 지역인 울산에서 벌어졌던 논쟁이었다.

2010년 지방선거를 전후해 전국에서 복지 열풍이 불었다. 당시 전국 시·도에서 경쟁적으로 초등학교에 이어 중학교까지 무상급식이 확대됐다. 하지만 울산은 그 혜택을 보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무상급식을 바라던 서민층 학부모와 학생의 자존심마저 긁어놨다.

막내가 초등학교 3학년때인 2010년, 울산에서는 전국 시·도와 달리 무상급식을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한 당시 울산시장의 신념(?)으로 무상급식 혜택을 보지 못했다. 급식비가 한 달 5만 원가량이었으니 1년이면 60만 원이었다. 서민 입장에서는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

진보 정치 1번지로 불린 울산에서는 당시 제1야당이던 진보정당의 무상급식 요구가 거셌다. 하지만 당시 울산시장은 단호했다. 지금은 자유한국당 사무총장으로 있는 박맹우 당시 울산시장은 시장직을 마치고 국회의원이 된 뒤 자신이 강행한 무상급식 반대 정책을 전국 시·도의 모범사례로 자랑하기까지 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3선에 성공한 그는 그해 11월 10일 당시 자신이 속한 한나라당 중앙당 회의에 참석해 "무상급식 요구 때문에 예산편성도 어렵고 실제 필요한 일도 하지 못한다"라면서 "(친환경무상급식 확대를 요구하는 것은) 정말 포퓰리즘의 극치가 아닌가 할 정도로 공짜 바이러스가 횡행하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3선 임기를 3개월 남겨두고 2014년 7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선 그는 당선한 뒤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만약 전국이 울산 수준으로 급식한다면 1조2400억 원 정도 예산이 절감된다. 앞으로 계속 무상급식예산이 편성돼서는 안 된다"라며 오히려 무상급식을 시행하는 타 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비단 박맹우 전 울산시장뿐 아니라 우리 가족이 사는 울산 동구 구청장은 2014년 지방선거에서 당선하자마자 전임 김종훈 진보 구청장이 어렵게 추진한 초등학교 5학년 급식지원을 중단해 학부모들의 반발을 샀다. 그러면서 그에 대한 변으로 "무상급식하면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공짜에 익숙해진다"라고 말했다.

이들 지자체장이 아이들에게 공적 기관이 주는 복지를 '공짜 바이러스', '공짜에 익숙해진다'고 언론을 통해 훈계할 때, 이를 듣는 나같은 서민층 학부모의 마음은 어땠을까. 동시에 아이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생채기가 나지 않았을까.

제18호 태풍 '차바'로 많은 비가 내린 2016년 10월 5일 오전 11시쯤 울산 태화강 범람으로 인근 중구 태화시장이 물에 잠겨 상가의 물건들이 떠내려 가고 있다.
 제18호 태풍 '차바'로 많은 비가 내린 2016년 10월 5일 오전 11시쯤 울산 태화강 범람으로 인근 중구 태화시장이 물에 잠겨 상가의 물건들이 떠내려 가고 있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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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맹우 전 시장은 이처럼 무상급식 예산을 절약하면서 태화강에 공을 들였다. 그가 재직한 3선 12여년 간 태화강에는 1조 원 가까운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됐다. 그동안 버려지던 오수를 막고 태화강 바닥의 슬러지를 긁어내 태화강 물은 깨끗해졌다. 하지만 1조 원 예산의 대부분은 강 주변을 아름답게 꾸미는 데 소요됐다.

그가 시장에서 물러난지 2년 뒤인 지난 2016년 10월 5일, 태풍 차바가 불어닥쳤다. 이날 오전 한때 시간당 124mm의 폭우가 쏟아졌고 낮 12시까지 300mm가 넘는 비가 내려 태화강이 범람했다.

태화강을 넘친 강물은 인근 태화전통시장과 현대차 울산공장 등을 침수시켜 수천억 원에 달하는 피해를 냈다. 언론에서는 태화강 범람에 따른 피해를 두고 후진국형 인재라고 평가했다.

그로부터 7개월이 지났다. 무상급식 때문에 받은 상처를 치유해주듯 기적처럼 고교무상급식이라는 낭보가 날아들었다. 몇 개월 사이 벌어진 기적같은 일이었다.


태그:#울산 태화강 , #울산 무상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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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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