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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사람에게 현재는 늘 '죽기 전' 일 수밖에 없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현재는 늘 '죽기 전' 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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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사람에게 현재는 늘 '죽기 전'일 수밖에 없다.

어차피 인간은 한시적 존재임을 모르는 바 아니나 아직은 젊다고 생각하는 보통사람에게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생각은 기꺼운 일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은 인간의 의지대로 되는 일이던가?

벌써 10여 년 전, 아내와 나는 자급자족하는 텃밭을 일구고 철 따라 피는 꽃을 보면서 여생을 보내자고 한적한 전원에 터를 잡았다. 그리고 5년 전, 작은 집을 지어 이사했고 그 안에서 옛 시인들의 귀거래사를 읽고 살았다.

오래된 모임에서 물러나고 사람들과의 만남도 최소한 줄였다. 문득 내키면 인터넷 블로그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써서 사는 모습을 자랑했고, 못마땅한 현실이나 도리에 벗어난 인간들을 보면 쓴소리를 글로 남기며 만족했다. 또 틈나는 대로 해외여행도 하자는 계획을 세웠고 몇 나라를 다녀오기도 했다.

평범하게 살고자 했던 꿈은 2014년 12월, 암 진단을 받으면서 끝나고 말았다. 평온했던 삶이 순간에 무너지고 만 것이다. 병으로 인한 충격과 당혹감은 이성적인 사고와 판단을 무력화시켰다. 

감기나 타박상처럼 원인이 분명한 병도 아니고 오직 나의 불찰과 과실로 인한 병이기에 누굴 탓하고 원망해서 안 된다고 여기면서도, '죽기 전'이라는 생각에 미치면 가슴에 차오르는 억울함과 울분, 노여움을 털어 버릴 수 없었다.

책의 표지에는 먼지만 쌓이고 글쓰기는 엄두도 나지 않았다. 죽음은 백 세를 넘겨도 당사자에게는 아쉬움은 남는다고 했다. 그런데 아직 70도 못 넘긴 나이에 생을 포기한다는 것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던가?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28회의 방사선 치료와 기나긴 항암 치료를 거부하지 않았다. 세 번의 전신마취 수술도 기꺼이 응했다. 그러나 치료과정과 수술로 인한 후유증은 견디기 힘든 극한의 경험이었다. 가려야 하는 음식도 많았지만 그나마 입맛을 잃어 매 끼니가 고역의 시간이었다. 암 환자는 굶어 죽는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평소의 이념과 사상 철학, 얄팍한 지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육체적인 통증 앞에 최소한의 인간적인 자존심은 뭉개지고 동물적인 신음만 터져 나왔다. 더구나 재발과 전이의 위험성이 높다는 원론적인 주의 사항은 심리적인 위축과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거울 앞에 보이는 늙고 병든 모습이 낯설었다. 병은 자랑하라는 말도 있지만 자신의 감정에 근거하여 죄와 벌의 인과관계로 재단할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외출은커녕 지인들의 방문조차 막았다. 정말 어떤 순간에는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갈등과 절망이 마음까지 병들게 했던 시간이었던 것이다. 아마 아내의 기도와 정성이 없었다면 정신적인 상처를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며, 살아야 한다는 의욕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병의 치료는 일차적으로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틈만 나면 대문의 빗장을 걸고 혼자 숙지원 둘레 길을 부지런히 걸었다. 그러면서 새싹이 돋고 꽃이 되어 나를 반기는 듯한 싱싱한 모습, 그리고 열매를 맺는 꽃과 나무들을 보며 아무리 격한 통증도 죽음이 아니라면 반드시 지나간다는 믿음을 키웠다.

이제 발병 사실을 확인한 지 2년 6개월이 넘었다. 수술한 지 2년을 넘겼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고 했듯이 극한의 통증도 거의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아직도 삶의 질을 따질 형편은 아니다. 예측 불가능한 잦은 대변 때문에 장시간 외출은 불가능하다. 마을길을 산책하는 경우에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주머니에는 화장지 등 몇 가지 비상용품을 챙겨야 한다.

아내의 정성과 온갖 노력에도 10kg 이상 줄어든 체중은 회복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5월 중순에야 겨우 내복은 벗었지만, 5월 말인 지금도 양말을 신지 않으면 차가운 바닥의 기운이 발목을 시리게 한다. 무엇보다 멀리서 사경을 헤매는 죽마고우의 문병조차 못하고 가끔 전화만 하는 점은 미안하고 죄스럽다. 그밖에도 기본적으로 정상적인 사람 노릇을 못하는 점은 다 적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내 형편을 가만히 물어오는 이들에게 병을 감추지 않기로 했다.  반드시 살아날 자신이 있다는 확신 때문이 아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순수도 아니다. 불안이 다시 현실이 되더라도 담담히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이승에 있는 동안 투명하게 살면서 자신의 회복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 살아있는 자의 도리요, 그건 감출 일만은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병이 들면 미래지향적이 아니라 과거의 시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다보니 까맣게 잊었던 일들이나 망각의 저편 사람들도 떠오르게 된다. 잘못했던 일이 유난히 선명하고, 아쉽게 보낸 사람들의 기억도 엷은 그리움으로 피어난다. 그렇게 지나간 잘못을 참회하고 미안하고 서운했던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내 여생의 의무이리.  

이제 다시 그동안 살았던 이야기와 그리고 앞으로 살면서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버킷리스트'는 흔히 여생에 가고 싶거나 실현했으면 하는 희망 목록이라고 한다. 어렵거나 아주 불가능한 희망목록은 자칫 유서로 비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정말 원하는 것과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고 글로 쓰는 작업은 흔들리는 마음을 추스르는 일일 뿐 아니라, 포기와 체념을 넘어 스스로 위로하고 삶의 의지를 북돋는 다짐이며 내가 원하는 것들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기원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생의 희망목록' 작성은 언젠가 다가올 죽음 앞에서 미리 한 번쯤 인생을 반추하는 참회록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여생의 희망목록! 순서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특별히 어떤 목적을 드러내는 의도적인 글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

아무래도 내 여생의 첫 번째 희망목록은 재발과 전이 없이 완치판정을 받았으면 하는 일이 되겠지만 그건 내 의지의 영역이 아니라고 본다. 일단 시골에 터를 잡았던 처음의 계획대로 텃밭을 일구고 꽃을 보면서 건강 회복을 위해 열심히 운동하는 등 일상의 일과 마음의 행로를 담담한 수필 형태로 기록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레 블로그, 다음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버킷리스트, #여생의 희망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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