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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도 여행할 수 있어 좋은 강화나들길.
 자전거로도 여행할 수 있어 좋은 강화나들길.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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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에 마을의 작은 성당이나 교회를 만나면 안에 들어가 보곤 한다. 예배당 안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왠지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꼭 겪어보고 싶은 여행 경험 가운데 하나가 이런 교회에서 동네 사람들 속에 앉아 평화롭게 예배를 보는 일인데, 아쉽게도 기회가 닿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나만의 '버킷리스트'였던 소망을 인천 강화도에서 마침내 이뤘다.

한국관광공사 누리집에서 흥미로운 강화도 자전거여행 코스를 발견했다. 강화읍 여행(고려시대 강화도로 천도하면서 지은 고려궁지, 옛 한옥 모양의 강화성당, 순무·인삼·밴댕이 등 강화도의 특산물이 있는 강화풍물시장)과 강화나들길을 따라 섬 해안가로 이어지는 여행길. 강화도 해안가의 멋진 조망대이기도 한 50여 개의 옛 돈대(墩臺)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돈대를 찾아가는 길이다.

고려시대 몽골군의 침략 때 강화도로 천도하면서 만든 돈대는 해안가나 접경 지역을 통한 외적의 침입을 감시하기 위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만든 소규모 관측·방어시설이다.  굳이 선크림을 바르지 않고 천연 기름인 피지로도 충분한 5월의 햇살을 즐기며 제주도·거제도·진도 다음으로 크다는 섬 인천 강화도로 떠났다. 참, 강화도는 강화대교와 초지대교가 이어져 있는 섬 아닌 섬이다.    

불신자에게도 평화롭고 안온한 한옥 강화성당 

도시와 도읍의 풍경이 잘 어우러져 있는 강화읍.
 도시와 도읍의 풍경이 잘 어우러져 있는 강화읍.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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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읍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 위에 자리한 고려궁지.
 강화읍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 위에 자리한 고려궁지.
ⓒ 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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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에 지었다는 친근한 한옥 성당, 성공회 강화성당.
 1900년에 지었다는 친근한 한옥 성당, 성공회 강화성당.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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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버스터미널에 내려 자전거로 20여 분 거리에 있는 강화성공회성당(강화읍 관청리)을 향해 달려갔다. 강화도에서 가장 번화한 강화읍은 중앙시장·카페·빵집·도서관과 함께 고려궁지·용흥궁·성공회 강화성당·국화저수지·강화나들길·강화도령 첫사랑 길 등 도시와 도읍의 풍경이 잘 어우러져 있는 여행지다.

고려 고종 19년(1232) 최우의 무신정권은 몽골군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강화도로 천도하면서 고려궁지(사적 제133호)를 지었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됐던지 고려궁지는 강화읍에서 가장 높은 언덕배기 위에 궁궐터가 아니라 성터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고려궁지는 두 번 허물어진다. 1270년 39년간의 항전을 끝내고 환도할 때 몽골군에 의해 모두 허물어졌다. 조선시대 복구했으나, 1866년 병인양요 때 궁궐 안 도서관인 외규장각의 왕실 서적과 유물을 약탈하러 온 프랑스군에 의해 다시 불타 소실되고 말았다.

고려궁지에서 내리막길을 달려 내려오면 성공회 강화성당과 용흥궁이 있다. 용흥궁은 조선말 철종 임금이 왕이 되기 전에 살았던 집으로 원래는 초가집이었다가 철종이 임금 된 후 기와집으로 다시 지은 아담한 한옥집이다.

아무도 없는 용흥궁을 홀로 거닐고 있는데 가까이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멀리까지 퍼져가는 울림 있는 종소리가 아니라, "땡~땡~" 경쾌하면서도 낡은 느낌이 드는 종소리. 성공회 강화성당에서 예배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종소리가 인도한 이 성당은 강화도에서 만난 최고의 선물 같은 곳이 됐다.

불신자에게도 평안하고 안온했던 강화 성당.
 불신자에게도 평안하고 안온했던 강화 성당.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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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안 작고 아담한 나무 의자에 앉으면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성당안 작고 아담한 나무 의자에 앉으면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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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아담한 한옥집같아 친근한 천주성전.
 작고 아담한 한옥집같아 친근한 천주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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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1900년에 지었다는 성공회 강화성당은 서양 종교 시설이지만 전통 한옥 구조에 서양 건축양식이 가미된 우리나라 최초의 성공회 성당이다. 성공회(Angelican Church)는 1534년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분리해나간 영국 교회의 전통과 교리를 따르는 교회를 총칭하는 말이다. '천주성전'이라 쓰인 2층의 현판과 한옥 지붕 위의 수호신 잡상과 어울린 십자가가 눈길을 끈다. 성당 안에 들어서면 흰 돌로 만든 커다란 비석 같은 세례대가 보인다. 세례대에는 수기, 세심, 거악, 작선 등의 한자가 새겨져 있다. '자신을 닦고 마음을 씻으며, 악을 떨쳐 선을 행한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동네 주민들이 하나둘 들어서는 모습을 보면서 성당 사진을 찍고 있는데 아저씨 한 분이 내 마음을 알았는지 고맙게도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셨다. 신발을 벗고 조심스레 들어가 나무 의자에 다소곳이 앉았다. 의자가 초등학교 시절 앉았던 것처럼 작아 빙그레 웃음이 났다. 등보다 촛불이 더 어울릴법한 작은 성당이라 그런지 미사를 진행하는 신부님 모습과 목소리가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갈림길에서 이정표가 되어주시고, 지칠 때면 힘이 되어주시고, 어둠 속에서 빛이 되어주시고... 자비와 선행으로 우리의 삶을 충만하게 해주시옵소서." 

어쩌다 난 신을 믿지 않게 됐지만, 인간이 신의 이름으로 다른 이를 축원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였다. 문득 얼마 전 내한했던 록밴드 콜드플레이의 노래 <픽스 유>(Fix you)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Lights will guide you home / 빛이 너를 집으로 안내해서
And ignite your bones / 너의 맘 속 깊은 곳까지 밝혀줄 거야
And I will try to fix you / 그리고 내가 너를 다시 일으켜 세워줄게

10대 시절 동네친구들 따라 교회를 다닌 이후로 참으로 오랜만에 예배당에서 평화롭고 안온한 시간을 보냈다. 성당이나 교회의 외관을 보고 신자가 되진 않지만, 내가 사는 동네에 이런 작고 소박한 성당이 생긴다면 종종 다니겠다고 천주님께 기도했다.

미사 말미 교회일과 동네일을 알리는 시간. 광고를 하는 나이 지긋한 여신도분이 멀리서 강화도에 자전거여행을 온 사람이 성당에 왔다고 전하는 바람에 엉거주춤 환영의 박수를 받았다. 헬맷과 장갑을 벗어 놓은 데다 자전거용 복장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아셨을까. 미사가 끝난 후 다가가 물어 보니 웃으시며 그런 분위기가 풍긴단다. 강화도 해안가, 나들길을 따라 자전거여행을 즐기시나 보다.

밴댕이 피자가 있는 강화풍물시장 

속노란 고구마 피자와 밴댕이 피자를 개발한 강화풍물시장내 화덕피자.
 속노란 고구마 피자와 밴댕이 피자를 개발한 강화풍물시장내 화덕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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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의 특산물 가운데 하나인 강화 순무.
 강화도의 특산물 가운데 하나인 강화 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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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때 가까운 개성에서 피란 온 사람들이 심으면서 강화도 특산물이 된  강화 인삼.
 한국전쟁 때 가까운 개성에서 피란 온 사람들이 심으면서 강화도 특산물이 된 강화 인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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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강화버스터미널 쪽으로 자전거 핸들을 돌렸다. 버스터미널 옆에 강화풍물시장(강화읍 갑곳리 849)이 자리하고 있다. 큰 상가 모양의 풍물시장 1층은 장터 2층은 식당가다. 무슨 음식을 사먹든지 반찬으로 강화 순무로 만든 나박김치가 나와 좋다. 널찍한 마당에선 매 2일과 7일마다 풍성한 닷새장도 열린다.

'오뉴월 밴댕이는 농어와도 바꾸지 않는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휴일을 맞아 2층 식당가엔 밴댕이 회·구이·무침 등을 먹는 손님들로 북적북적하다. 다른 지역 바다에서도 밴댕이가 잡히지만,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강화도 연안에서 잡히는 밴댕이를 으뜸으로 친단다. 청년들이 운영하는 화덕피자집도 눈길을 끌었다. 정통피자 외에 강화 속노란 고구마 피자, 밴댕이 피자도 있다. 5명의 젊은이들이 합심해서 피자집과 함께 '아삭아삭 순무 게스트하우스'도 운영한단다.

강화풍물시장 바로 옆엔 별별 인삼을 만날 수 있는 인삼센터가 있다. 주차장 구석에서 노점상이 있을 정도로 무척 널찍하다 싶었는데 단체관광객을 싣고 온 관광버스용이란다. 안에 들어가면 냄새만 맡아도 건강해질 것 같은 진한 인삼 냄새가 가득하다. 강화도가 인삼 명소가 된 건 아픈 사연이 담겨있다. 한국전쟁 때 가까운 개성에서 피란 온 사람들이 강화에 인삼을 심어 가꿨는데, 지금까지 이어져 강화도의 특산물이 됐단다.

강화풍물시장에서 도로를 조금만 달리면 돈대를 만날 수 있는 강화도 동쪽 해안가가 나온다. 이 도로는 서울과 강화도를 48번 국도로 갓길이 거의 없다 시피한 데다, 차도와 차량들이 뱉어낸 온갖 부스러기들이 모여 있다. 이런 도로를 달려 서울에서 강화도까지 45km를 자전거 타고 간적이 있었다. 추억이라고 하기엔 너무 힘들었던 아득한 전설 같은 기억이다.

강화도 해안가에서 가장 풍경 좋은 용두 돈대, 손돌목 돈대  

'염하'라는 오랜 별칭이 있는 강화도와 김포 사이의 해협.
 '염하'라는 오랜 별칭이 있는 강화도와 김포 사이의 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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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할 주인도 지킬 집도 없는 개, 자전거 여행자를 보고도 짖지 않았다.
 충성할 주인도 지킬 집도 없는 개, 자전거 여행자를 보고도 짖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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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서울 신촌에서 강화도를 오가는 시외버스에 천만 원이나 한다는 자전거를 실었던 사람이 있었다. 강화도에 도착해보니 자전거에 흠집이 났다며 버스 회사와 싸움 끝에 소송까지 갔다. 화가 단단히 난 버스회사는 이후 버스 화물칸에 자전거를 실어주지 않았고, 많은 자전거 라이더들이 거칠고 위험한 48번 국도를 도전하듯 달려 강화도 여행을 떠나곤 했다.  

거대한 트럭들이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바람은 자전거 여행자를 도로의 좁디좁은 갓길 끝으로 끊임없이 밀어붙였다. 자신 없으면 돌아가라고 끊임없이 엄포를 놓는 것 같았다. 덕택에 차량들이 내뿜는 매연과 굉음을 느낄 새가 없었다. 서로 의지하며 달려간 자전거 동호회 친구들이 아니었으면 강화도에 가지 못했을 거다. 실수하고 깨질 때 한 걸음 발전하듯, 이때 자전거여행에 필요한 실력(느긋함과 담대함)이 부쩍 늘었다.

강화도의 동쪽바다는 '염하(鹽河, 소금강)'라는 오래된 별칭이 있다. 강화도와 김포시 사이를 흐르는 20km의 이 길쭉한 물줄기는 별칭처럼 한강·임진강·예성강에 서해바다가 섞여 있다. 강화해협 또는 김포강화해협이라고도 한다. 1232년(고려 고종 19) 몽골이 침입하자 고려 무신정권은 강화도로 피신하면서 수도를 천도했는데, 이 염하가 천연의 방어막 역할을 해줬기 때문이다. 이 물길 덕에 고려 무신정권은 39년 동안 무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늘의 도움도 그에 따르는 인간의 노력이 있어야 지속될 수 있다.

이 천연의 요새가 무너진 건 조선시대(인조) 벌어진 병자호란 때. 당시 강화도 방수대장은 영의정 김류의 아들 김경징. 그는 '그 무서운 몽골병도 이 바다를 뛰어넘지 못했거늘 하물며 여진 오랑캐 따위가 어찌 건널까' 하면서 한껏 방심했다. 그러나 청나라는 항복한 명나라 수군 장수들을 동원해 염하를 건너 갑곶돈대가 있는 강화도 갑곶으로 상륙하게 된다.

갑곶(甲串)이란 몽골이 고려를 침략했을 때 강화도로 파천한 고려를 향해서 몽골군의 갑옷만 쌓아도 너끈하게 건너갈 수 있다며 이름붙인 지명이라고 한다.

3개의 돈대를 품고 있는 광성보의 울창한 숲길.
 3개의 돈대를 품고 있는 광성보의 울창한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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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일대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손돌목 돈대.
 강화 일대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손돌목 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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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협을 따라 용머리처럼 돌출한 자연 암반위에 자리한 용두돈대 가는 길.
 해협을 따라 용머리처럼 돌출한 자연 암반위에 자리한 용두돈대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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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곶돈대를 지나 한국관광공사에서 가장 멋진 돈대라고 추천한 용두 돈대, 손돌목 돈대를 향해 해안가를 달렸다. 강화도 동쪽 바닷가는 자전거도로와 함께 강화누리길이 나 있다. 다양한 길을 지날 수 있어 좋다. 흙길과 좁은 둑길이어서 빨리 달리지는 못해도 해안가에 더 가까운 강화누리길이 더 좋다.    

모내기 준비가 한창인 논 옆을 지나다 목줄이 풀린 채 어슬렁거리는 덩치 좋은 황구와 마주쳤다. 놀라고 당황한 표정을 선글라스로 가린 채 침착하게 자전거에서 내렸다. 어쩌다 집을 나왔거나 유기견으로 보이는 황구는 다행히 짖거나 공격적인 자세를 하지 않고 슬금슬금 내 곁을 지나갔다. 충성해야 할 주인이나 지켜야 할 집이 없어서일까, 허허로운 눈빛을 내게 남기고 몸을 돌려 제 갈 길을 갔다. 그동안의 경험과 다르게 오히려 내가 황구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쳐다봤다.

모양도 위치도 제각각인 용당돈대·화도돈대·오두돈대를 지나 강화도의 5진7보53돈대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광성보(인천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에 이르렀다. 이곳에 용두 돈대와 손돌목 돈대가 있다. 입구에 커다란 성문과 높은 누각이 서 있고 울창한 나무 숲, 호젓한 오솔길이 있는 큰 성 같은 진지다. 1871년 미군이 침입한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로 당시 문루와 돈대 모두 파괴됐다가 1976년 복원했다.

강화해협을 향해 툭 불거져 나온 광성보는 해협을 따라 용머리처럼 돌출한 자연 암반위에 자리한 용두 돈대, 물살이 가장 빠르고 거세게 흐르는 곳에 손돌목 돈대를 갖춘 천혜의 요새다. 강화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중요한 돈대이자 멋진 전망대다. 이 두 돈대는 찾아가는 길도 참 좋다. 광성보 입구에서 울창한 숲길 산책로를 오르락 내리락 30분 정도 걸어야 비로소 나타난다.  

* 주요 자전거 여행길 : 강화버스터미널 - 고려궁지, 성공회 강화성당 - 강화풍물시장, 인삼센터 - 해안가 강화나들길 - 광성보 (용두돈대, 손돌목돈대) 

덧붙이는 글 | * 지난 5월 14일에 다녀왔습니다.
* 제 블로그에도 송고했습니다 - sunnyk21.blog,me



태그:#강화도자전거여행, #고려궁지, #성공회강화성당, #강화누리길, #광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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