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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21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의 한 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21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의 한 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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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비전 2030, 그리고 큰아들의 죽음.'

문재인 정부 첫 '경제 사령탑'으로 내정된 뒤 연일 화제를 뿌리고 있는 김동연(60)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를 설명할 3가지 키워드다.

김동연 후보자는 지난 21일 내정 발표 때부터 이른바 '흙수저' 출신으로 눈길을 끌었다. 11살 때 아버지를 잃은 김 후보자는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덕수상고를 졸업하기도 전부터 은행에 취업해 가족을 부양했지만, 주경야독으로 행정고시와 입법고시에 동시 합격해 경제 관료로 승승장구했다.

김 후보자가 박근혜 정부 국무조정실장 시절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위로한 신문 칼럼도 뒤늦게 회자됐다. 공직자들이 '노란리본'조차 함부로 달 수 없던 시절이었다. 지난 2014년 7월 공직에서 물러나 아주대 총장으로 있으면서, 2년 동안 급여의 40%에 이르는 1억 4천만여 원을 장학금 등으로 기부한 것도 화제였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승승장구한 '흙수저 장관'

1983년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출발한 김 후보자는 지난 2005년 참여정부 당시 기획예산처 전략기획관(국장급)을 맡아 국가장기발전전략인 '비전 2030' 실무 작업을 맡았다. 이명박 정부에선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으로 발탁된 뒤 기획재정부 예산실장과 제2차관을 거쳤고, 박근혜 정부 국무조정실장까지 올랐다. 문재인 정부에서 경제부총리를 맡게 되면 경제 관료로서 최정점을 찍는 셈이다.

김 후보자 스스로 '위장된 축복'이라고 부르는 젊은 시절의 고난이 그를 경제 관료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려놨지만, 예상하지 못한 복병이 나타났다. 바로 큰아들의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미국 유학 도중 백혈병에 걸려 2년여 투병하던 큰아들 덕환씨는 지난 2013년 10월 스물여덟 나이에 숨졌다. 앞서 김 후보자가 세월호 참사 직후 <중앙일보>에 기고한 '혜화역 3번 출구' 칼럼 역시 자식을 잃은 동병상련에서 나왔다.  

"이번 사고로 많이 아프다. 어른이라 미안하고 공직자라 더 죄스럽다. 2년여 투병을 하다 떠난 큰애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한데, 한순간 사고로 자식을 보낸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생각하니 더 아프다. 사고 수습 과정에서 그분들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려고 노력했는지, 그분들 입장에서 더 필요한 것을 헤아려는 봤는지 반성하게 된다.

돌아보고 고쳐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도 우리처럼 모든 국민이 함께 아파하는 나라는 그리 흔치 않다. 여기서 더 나아가 서로를 위로하고 보듬어 주는 치유공동체를 만들면 좋겠다. 그리고 희생된 분들을 오래 기리고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진정한 사회적 자본이고, 희생된 꽃 같은 젊은이들에게 우리가 진 빚을 갚는 길이다."(2014년 5월 4일 <중앙일보> 김동연의 시대공감 '혜화역 3번 출구' 중에서)

남다른 인생역정 탓에 강연과 언론 인터뷰가 많았던 김동연 후보는 지난 5월 5일 첫 책인 <있는 자리 흩트리기>(쌤앤파커스)를 펴냈다. 김 후보자는 21일 경제부총리 내정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3년 7개월 전 큰아들을 잃었는데 큰아들이 굉장히 힘든 시기에 투병 의지를 살리려고 아빠하고 책을 같이 써보면 어떻겠냐고 해서 쓴 것"면서 "큰 애 생일인 5월 5일에 출간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 스스로 밝혔듯 책 내용은 경제 현안과 직접 관련은 없고 아들 또래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주로 담았지만 각종 사회 문제 해결 방안도 담겨 있다. 앞으로 경제 사령탑의 정책 철학도 미리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미완의 보고서 '비전2030', 문재인 정부에서 부활할까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후보자 등 일부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 인선을 발표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후보자 등 일부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 인선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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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후보자 내정을 계기로 참여정부 '비전2030'도 새삼 다시 주목받고 있다. '비전2030'은 우리 정부와 민간 전문가 60여 명이 함께 처음 만든 국가장기발전계획으로 지난 2005년 수립 당시 25년 뒤인 2030년까지 내다봤다. 김 후보자는 변양균 기획예산처 장관 시절 전략기획관(국장)으로 정부 쪽에서 실무 작업을 총괄했다.

김 후보자는 이 책에서 "(전략기획국은) 신설 국이어서 작은 국이었지만 국가장기 발전계획 수립에 대한 전권을 부여받는 메리트가 있었다"면서 "그 연못에서 6개월 넘게 작업한 결과, 25년 뒤를 내다보는 국가발전전략과 이를 뒷받침하는 재원계획까지 수립한 '비전2030'을 만들 수 있었다"고 당시 작업을 회상했다.

하지만 '비전2030' 최종 보고서는 노무현 대통령 임기 말인 2006년 8월에야 완성돼 제대로 실행할 기회조차 없이 '폐기'됐다. 하지만 '생애주기별 맞춤 복지' 같은 보고서 일부 내용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정책으로 일부 활용되기도 했다. 김 후보자가 쓴 책 내용 곳곳에도 균등한 기회 보장, 사회적 자본 확충과 같은 '비전2030' 취지가 담겨 있어, 문재인 정부에서 부활을 예고했다.

'함께 하는 희망 한국'이란 부제가 붙은 '비전2030'은 양극화, 저출산, 고령화 등 사회 문제를 해소하고 국가성장동력을 만드는 해법뿐 아니라 구체적인 재원 확보 방안까지 담겨 학계에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2006년 8월 참여정부 당시 기획예산처에서 주도한 정부-민간 합동작업단이 만든 국가장기발전계획인 '비전2030' 보고서 표지.
 2006년 8월 참여정부 당시 기획예산처에서 주도한 정부-민간 합동작업단이 만든 국가장기발전계획인 '비전2030' 보고서 표지.
ⓒ 노무현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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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등은 지난 2015년 민주사회정책연구원 기관지 <민주사회와 정책연구>에 쓴 논문('비전 2030'의 입안과정 분석과 재조명)에서 "장기적 시계에서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경제사회 계발계획을 짜고, 이에 기초해 합리적인 재정배분을 시도한 노무현 정부의 비전 2030은 '뜻깊은 실패'였다"면서 "정치적으로는 폐기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새로운 출발의 디딤돌로 반드시 부활시켜야하는 중요한 시도였다"고 높이 평가했다.

김동연 후보자도 이 책에서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볼링 핀에 빗대, 이같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킹 핀'으로 사회보상체계와 거버넌스 개혁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공직자로서 말하기 쉽지 않았을 날카로운 사회 비판도 담겨있다.

"우리 사회에서 초과이윤이 과대하게 발생하는 부분이 있지 않은가? 끼리끼리 문화인 순혈주의가 만연하면서 동종교배의 폐해가 나타나지는 않는가? 이런 행태로 인해 기득권과 보이지 않는 카르텔이 형성되어 자신들의 이익을 끊임없이 확대재생산하고 있지는 않은가? 만약 답이 '그렇다'라면 '보상의 적정성'이나 '합리적인 격차'의 원칙이 무너지면서 우리 사회의 보상체계에 이상이 생겼다는 의미다."(<있는 자리 흩트리기>, 208쪽)

김 후보자는 사회보상체계를 흔드는 요인으로 이른바 '철밥통 구조'에 따른 과대한 초과이윤, 승자독식 구조, 순혈주의 등을 거론했는데 공무원 사회에 만연된 '관피아' 문제도 예외는 아니다.

"고질적인 순혈주의에는 '관피아'도 있다. 금융권에는 경제 관료 출신들이, 교육계에는 교육부 퇴직 관료가 포진하고 있다. (중략) 이런 순혈주의와 동종교배 구조를 바꿔야 건전한 보상체계가 만들어진다."(<있는 자리 흩트리기>, 214쪽)

김 후보자는 거버넌스를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게임의 룰을 결정하는 주체와 방법에 대한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위로부터의 변화와 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국가지도자나 국민대표를 뽑을 때 거창한 담론과 공약이 난무했지만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모두 실패했다. (중략) 사회와 국가 발전을 생각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개인과 지역, 당파의 정치적 이익을 우선했거나, 실력이 부족했다. (중략) 따지고 보면 지도자나 국민대표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실력이 그 정도라는 생각도 든다."(<있는 자리 흩트리기>, 218쪽)

흙수저 장관이 '아래로부터의 반란'으로 돌아선 까닭

김 후보자는 IMF 경제위기 이후 계속 실패한 '위로부터의 개혁'을 대체할 새로운 거버넌스로 '아래로부터의 반란'을 내세웠다.

"지금까지 거버넌스 구조에서 빠져있던 아래로부터의 반란이 필요하다. 청년, 자영업자, 중소기업인, 농민, 학부모 등이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의 결정 과정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중략) 특히 청년이 그렇다.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그들, 그리고 미래의 그들로부터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있는 자리 흩트리기>, 219쪽)

김 후보자는 "얼마 전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시위는 이런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이런 아래로부터의 반란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회보상체계와 거버넌스를 개혁하려면 '바텀업' 방식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국가지도자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개혁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부정적 효과인 '싱크홀'을 메울 대안 마련도 주문했다. 앞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김 후보자가 맡아야 할 몫이기도 하다.

'아래로부터의 반란' 같은 김 후보자의 도발적 해법은 32년 공직 생활만 놓고 보면 상상하기 어렵다. 큰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공직에서 떠난 뒤 대학 총장으로서 새로운 사회 경험이 그의 인생과 정책 철학에 큰 변곡점이 된 셈이다.   

김동연 후보자는 아주대 총장으로 있으면서 학생 스스로 공부하고 싶은 과목을 만드는 '파란학기', 가난한 학생들을 뽑아 해외 대학 연수를 지원하는 '애프터 유 프로그램' 등 혁신적인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김 후보자는 외부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애프터 유 재원을 마련하려고 '100만 원의 기적' 모금 운동도 벌였다. 이 같은 김 후보자의 노력 밑바탕에는 대학 총장 이전에 일찍 아들을 떠나보낸 아버지의 미안함이 담겨 있다.

"공직의 정점에서 '지금이 그만둘 때'라는 내면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었다. 1년 가까이 표한 사의가 어렵게 받아들여졌다. 큰 아이가 세상을 뜨고 9개월이 지난 뒤였다. 그리고 반년 뒤 대학총장으로 취임했다. 대학에 와서 많은 젊은이들을 접할 때마다 문득문득 큰 아이의 모습과 마주쳤다. (중략) 큰 아이가 먼 곳으로 떠나기 전에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들이다. 동시에 우리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이기도 하다."(<있는 자리 흩트리기> 서문 중에서)


태그:#김동연, #경제부총리, #있는자리흐트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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