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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긴 것과는 달리 멍청한 편에 속한다. 혹자는 내가 날카롭게 생겼다든가, 깐깐하게 생겼다고 하는데 모두 나를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소싯적에 걸어서 가는 소풍의 대열에서 길을 잃었다. 그리고 읍내로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갔다가 단체로 걸어서 기차역으로 이동하는데 이마저도 대열에서 낙오돼 '생존훈련'을 몸소 체험했다.

군사정권의 서슬이 살아 숨쉬는 시절 입대를 했는데 훈련소에서 눈치 없이 5분 스피치 때 군사정권을 비판했다가 웬만한 사람이면 듣도 보도 못한 '훈련소에서의 유급'을 당할 뻔 했다. 보통사람이면 평생에 한 번 범할까 말까 하는 어이없는 실수를 '떼 지어' 만들어 냈고 지금도 어이 없는 실수 만들기는 진행 중이다.

그 와중에 호기심이 있어서 첫 직장에서 처음 본 복사기가 신기한 나머지 '내 얼굴을 복사하면 어떻게 나올까?'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얼굴을 복사기에 들이밀고 뚜껑을 닫은 다음 복사 스위치를 누른 경험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멍청한 사람은 여행을 다니는 것도 만만찮다.

어렵다, 어렵다, 너무 어렵다.
 어렵다, 어렵다, 너무 어렵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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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나 출장을 자주 하는 성격도 아니고 직업도 아닌지라 나이 쉰에 처음으로 '혼자 힘으로'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해야 하게 된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비행기를 탈 일 자체가 별로 없거니와 그럴 일이 있을 땐 '낙오'가 되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아내와 심지어 딸아이의 뒤를 따라다니기만 했었다. 가족 해외여행에서 내가 기여한 일이란, 영어로 작성하는 입국확인서(?)를 작성하고 여행지에서 영어가 필요할 때 통역자가 된 것뿐이다. 아내와 딸은 해외에서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위대한 분들이라 내 손으로 항공권을 예약하고 공항에서 내가 타야 할 비행기를 챙기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됐다.

나는 그분들의 지시에 따르고 머리 뒤통수만 보고 따라다니면 될 일이었다. 올해 직장에서 제주도로 출장을 갈 일이 생겼다. 같은 부서의 선배는 마치 미식 축구에서 돌진하는 팀 동료를 위해 상대방 수비수를 온몸으로 막아내는 태클을 하듯이 나와 함께 제주도 출장을 갈 수도 있는 잠재적인 적을 제거했다. 치열한 전투 끝에 고지를 탈환한 장수처럼 그 선배는 선언했다.

"박 선생! 혼자서 제주도 출장을 가게 되었으니 사모님한테 연락해서 같이 가도록 하세요."

눈물겹도록 고마운 동료애였지만 애당초 우리는 그렇게 발칙한 부부가 아니다. 그분은 내가 '항공권 사는 방법'과 '공항에서 혼자 비행기 타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을 몰랐다. 생각 같아서는 내가 묻혀서 갈 수 있도록 적당한 다른 직원과 함께 가는 쪽이 더 좋았겠지만 내 심정을 알 리 없는 선배의 배려를 차마 무시하기가 어려웠다.

당장 비행기를 예약하고 표를 사야 할 걱정거리가 생겼다. 멍청한 사람은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많은 법이다. 머릿속이 하얗게 된 나에게 다른 직원이 '직접 비행기 편을 알아보지 말고 학교와 거래하는 여행사에 이야기하면 표를 구해준다'라는 희소식을 알려주었다. 시키는 대로 했고 잠시 뒤에 예약 확인 문자가 왔다. 비행기 표는 구했는데 다음 절차가 걱정된 나는 주말에 아내로부터 '비행기 타는 방법'에 대한 연수를 받았다.

뜻밖에도 비행기 타는 방법은 간단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 '비행기 타는 방법'을 이미 숙지한 나는 호기롭게 공항 주차장에 주차하고 공항에 입장했다. 여행전문가 아내가 가르쳐준 대로 예약한 항공사 데스크에 가서 예약번호를 알려줬다. 알고 보니 '티케팅'이라는 것이 이름만 거창했지 시골정류장에서 완행버스 승차권을 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티켓을 받긴 했는데 직원 양반이 돈을 달라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혼자서 비행기 여행을 무리 없이 하겠다는 목표로 삼은 내가 "저기요, 푯값은 왜 안 받죠?"라는 질문을 할 수는 없었다. 그건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는 촌놈이나 하는 질문인 것이다. 다급하게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내가 티켓값을 언제 줘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은 것이 원망스러웠다. 아내의 대답은 예약할 때 이미 내 직장의 법인카드로 결제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아내의 설명을 듣고서야 안심이 됐다. 느긋해져서 라면을 사 먹었다. 확실히 공항에 있는 식당답게 라면도 품격이 넘친다.

식사를 마치고 역으로 치면 대기실이라고 부를 만한 곳에서 내가 탈 비행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날씨가 더워서 그런 것인지 사람들이 몇 명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멍청해도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눈치는 있는 법이다. 뭔가 싸한 기분이 들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30분 전에 비행기를 타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아내를 따라서 여행을 갈 때 검색대를 통과해 면세점에서 한참 동안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났다. 아내에게 또 다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아내 말이 미리 검색대를 통과해서 기다려야 한단다. 지금 나는 그 과정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혼자 완벽하게 비행기 여행을 한다는 것은 남들이 누리는 '루틴'을 다 거쳐야 한다. 시계를 보니 비행기 출발 시각이 30분도 남지 않았다. 부랴부랴 검색대를 통과했는데 '세상에' 거기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대기실에 왜 사람이 그토록 적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마침내 비행기를 탔는데 스튜어디스가 손님의 티켓을 하나하나 확인해주는 모습을 보고 안심이 됐다. 멍청한 내가 비행기를 잘못 탈 수 있는 위험을 미리 방지해 주니까 말이다. 이륙했고 잠시 뒤에 제주에 도착했다. 약간의 머뭇거림이 있었으나 어쨌든 내 혼자의 힘으로 비행기를 타고 내렸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공항에서 나와 렌터카를 찾기 시작했다. 이건 쉬운 일이다. 더군다나 아내는 친절하게도 공항에서 렌트카를 구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을 메시지로 알려줬다. 아내의 지시를 세 번 정독했다. 여유롭게 렌터카 사무실을 찾는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렌터카 회사 사무실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여러 렌터카 회사의 셔틀버스만 수두룩한데 그 셔틀버스를 탈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만 그 버스를 타고 있었다. 날씨는 더운데 머리는 혼란스러웠다. 지금까지 잘해왔는데 치욕스럽게도 촌놈 티를 낼 수는 없었다. 필사적으로 렌터카 회사 사무실을 찾았지만 헛수고였다. 체념하고 공항 주차장 구석에 풀썩 주저앉았다.

저쪽에 나처럼 멍청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틈새시장을 노리는 영리한 렌터카 업자임이 분명해 보이는 아재가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다. 마침내 치욕스러운 말을 내뱉고야 말았다.

"저기요, 렌터카 빌리려면 우째해야 합니까?"


태그:#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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