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조별리그 A조 2차전 한국 대 아르헨티나 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둔 한국 대표팀의 이승우, 백승호 등 선수들이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23일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조별리그 A조 2차전 한국 대 아르헨티나 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둔 한국 대표팀의 이승우, 백승호 등 선수들이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2007년 캐나다에서 열린 U-20 월드컵에서 우리 대표팀은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언론과 팬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2005년 네덜란드 대회에 이어 두 대회 연속 최전방을 책임진 신영록과 박지성 이후 한국 축구를 이끌어가고 있는 이청용과 기성용 등이 선보인 축구는 아름다웠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짧은 패스를 활용한 공격 축구로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과정뿐이었다. 당시 스리백의 한 축을 담당했던 기성용의 롱패스, 이청용의 창의적인 드리블과 패스로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했지만,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특히, 브라질전은 너무나도 아쉬웠다.

우리 대표팀은 브라질이라는 이름값이 주는 무게감을 이겨내지 못했다. 경기 시작과 함께 몸은 굳어 있었고, 무려 3실점을 내줬다. 극도의 긴장감에 발이 무거워진 수비 뒷공간을 알렉산드레 파투(멀티골)가 마음껏 휘저었다. 경기 막판 심영성과 신영록이 연속골을 기록하며 뒷심을 발휘했지만,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우리나라는 2005년 네덜란드 대회(U-20)에서도 브라질을 만나 0-2로 패했었다. 박주영과 신영록, 백지훈 등을 앞세워 기적을 노려봤지만, 넘어서지 못했다. 연령별 대표팀만이 아니다. 2002 한일 월드컵 못지않게 전력이 강했던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에 대패했고, 16강전에서는 우루과이에 무너졌다.

문제는 확실했다. 개인 능력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름값에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함'과 세계 최고의 팀을 상대로도 이길 수 있는 '자신감'이 필요했다. 상대팀의 기에 눌려, 우리가 준비해온 것을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다면, 결과는 얻지 못한 채 '희망을 남겼다'라는 메시지만을 반복해서 접해야 할지도 몰랐다.

최다 우승국 아르헨티나를 무너뜨린 이승우의 '슈퍼골'

 23일 오후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조별리그 A조 대한민국과 아르헨티나의 경기. 2-1 승리를 거둔 한국 이승우가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23일 오후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조별리그 A조 대한민국과 아르헨티나의 경기. 2-1 승리를 거둔 한국 이승우가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 연합뉴스


월드컵 1, 2회 대회 우승팀 우루과이부터 영원한 '우승 후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까지, 우리는 남미만 만나면 기가 죽었다. 실제로 우리가 처음으로 월드컵에 나섰던 1954년 스위스 대회부터 2014 브라질 월드컵까지, 남미와의 상대 전적은 5전 1무 4패다. 단 한 차례도 승리가 없다.

U-20 대표팀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1999년 이동국은 우루과이(0-1)의 벽에 막혔고, 2005년의 박주영(0-2)과 2007년의 기성용(2-3)은 브라질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런데 신태용 감독의 '무서운 아이들'은 이러한 징크스를 실력으로 이겨냈다. 상대의 이름값에 주눅 들지 않았고, 물러서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들의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승리까지 거머쥐었다.    

무엇보다 '바르셀로나 듀오' 이승우와 백승호, '성실맨' 조영욱 등 개성과 팀의 조화가 완벽에 가깝다. 만만찮은 전력을 자랑했던 기니를 3-0으로 대파하더니 U-20 월드컵 최다 우승국(6회) 아르헨티나까지 잡았다. 여전히 개인 기량의 차이는 존재했지만, 승리는 우리의 것이었다. 더 이상의 남미 혹은 우승 후보 징크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U-20 대표팀이 23일 오후 8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IFA(국제축구연맹) U-20 월드컵 코리아 2017 A조 조별리그 2차전 아르헨티나와 경기에서 2-1로 승리를 거뒀다. 우리나라는 아르헨티나의 유연한 드리블과 개인 능력에 고전하기도 했지만, 그들보다 한 수 위의 드리블과 결정력을 뽐낸 이승우를 앞세워 승리의 기쁨을 맛봤다.

아르헨티나는 잉글랜드전 0-3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초반부터 적극적인 공격을 퍼부었지만, 신태용호는 그들보다 강했다. 초반에는 밀렸지만, 우리 대표팀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이승우가 환상적인 개인기로 선제골을 뽑아내며 허를 찔렀다. 전반 18분 이승우는 중앙선 부근에서 드리블을 시작해 스피드와 개인기를 뽐내며 상대 수비를 무너뜨렸고, 환상적인 칩샷으로 아르헨티나의 골망을 흔들었다.

우승 후보팀에서나 볼 수 있었던 득점 장면을 우리 선수가 만들어냈다. 그 덕분에 기세가 올랐다. 전반 37분 최전방 스트라이커 조영욱의 침투가 골키퍼와 일대일 기회를 만들어냈지만, 아쉽게 득점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영욱은 자신의 실수를 곧바로 만회했다. 다시 한 번 패스 타이밍에 맞춰 절묘한 침투를 시도했고, 상대 골키퍼의 반칙과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이를 백승호가 침착하게 득점으로 연결하며 점수 차를 벌렸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후반 시작 직전 2장의 교체 카드를 사용하며 변화를 가져갔고, 공격에 날카로움을 더했다. 후반 5분 만회골까지 터뜨렸다. 교체 투입된 루이스 토레스가 우리 수비 뒷공간을 파고들어 송범근 골키퍼와 일대일 기회를 잡아냈고, 침착한 마무리로 희망의 불씨를 되살렸다.

이후 아르헨티나의 공격은 더욱 거세졌다. 교체 투입된 브라이언 만시아의 스피드와 드리블이 우리의 측면을 뒤흔들었고, 연이어 반칙을 얻어내며 세트피스 기회를 만들었다. 압박을 통해 우리 대표팀의 전진을 틀어막았고, 경기장을 폭넓게 사용하며 끊임없이 득점을 노렸다. 그러나 신태용호는 무너지지 않았다.

최전방의 조영욱을 제외한 모든 선수가 페널티박스 부근까지 내려와 수비에 힘을 실었고, 아르헨티나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집중했다. 정태욱과 이상민이 이끄는 수비진은 약간의 틈도 허용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빈틈이 생기면 빠르게 메웠고, 개인기가 뛰어난 선수에게는 3~4명이 달라붙었다.  

그 결과 우리는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를 무너뜨렸다. '죽음의 조'에 속하며 16강 진출이 버거울 수 있을 것이란 평가가 있었지만, 당당하게 가장 먼저 16강 진출을 확정 지었다.

    지난 1차전 '우리는 꿈을 꾸는 소년들'에 이어 2차전에서는 '그대들이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다'라는 대형 현수막을 선보인 붉은악마

지난 1차전 '우리는 꿈을 꾸는 소년들'에 이어 2차전에서는 '그대들이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다'라는 대형 현수막을 선보인 붉은악마 ⓒ 이근승


'그대들이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다'

이승우는 확실히 다르다. 이동국과 박주영, 기성용 등 수많은 스타들이 이 무대를 누볐지만, 이승우만큼의 강렬함은 남기지 못했다. 아시아에서는 늘 최고였지만, 세계 무대에서는 아쉬움을 남기는 모습이 반복됐다. 그런데 이승우는 우승 후보로 손꼽히는 팀을 상대로도 개인 능력으로 득점을 뽑아냈고, 승리까지 이끌었다.

올 시즌 유럽 무대를 뒤흔든 킬리안 음바페와 오스만 뎀벨레 등과 비교하며, 이승우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많았지만, 그의 실력은 '진짜'였다. 너무나도 손쉽게 좁은 공간을 뚫고, 수비수를 제쳐내는 드리블은 역대 최고 수준이다. 결정력 역시 수준급이다. 중요한 순간마다 득점을 터뜨리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스타성은 한국 축구의 중심으로 올라설 그의 미래를 가늠케 한다.

 23일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조별리그 A조 2차전 한국 대 아르헨티나 경기에서 조영욱이 상대 골키퍼와 충돌, 페널티킥을 따내고 있다.

23일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조별리그 A조 2차전 한국 대 아르헨티나 경기에서 조영욱이 상대 골키퍼와 충돌, 페널티킥을 따내고 있다. ⓒ 연합뉴스


형들과 함께 이번 대회를 누비는 18세 소년 조영욱 역시 범상치 않은 재능이다. 아직 득점포를 가동하지는 못했지만, 한국 축구를 이끌 대형 스트라이커로 손색없다. 상대 수비와 몸싸움은 물론이고, 스피드와 개인기까지 갖췄다. 패스 타이밍에 맞춰 수비 라인을 무너뜨리는 침투 능력은 일품이다. 수비를 등지고 동료를 활용하는 능력도 팀 내 최고 수준이다.

홍명보 이후 뜸했던 대형 수비수의 탄생도 기대할 만하다. 먼저, 195cm의 장신 수비수 정태욱의 활약이 눈부시다. 큰 신장을 활용한 공중볼 장악력은 물론이고, 대인 마크에 엄청난 강점을 드러낸다. 스피드도 뒤떨어지지 않고, 정확한 태클과 위치 선정으로 아르헨티나의 파상 공세를 막아내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했다.

'캡틴' 이상민도 남다른 재능이다. 그는 영리하게 볼을 처리한다. 상대 공격수가 나아가는 방향을 미리 선점해 볼을 빼앗아 내고, 패스가 향하는 길목을 정확하게 차단한다. 공격수 못지않은 스피드와 공중볼 싸움에도 강점을 보인다. 주장으로서의 리더십 역시 부족함이 없다.

강팀, 특히 우승 후보를 만나면 이름값에 무너졌던 과거와는 달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재능과 실력이 세계적인 선수들과 별 차이가 없음을 경기력과 결과로 증명해내고 있다. 물론 모든 것이 완벽하지는 않다. 지난 경기에 이어 이날도 중원은 허술했고, 패스 정확도는 떨어졌다.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완벽하지 않은데도 이 정도다. 중원의 핵심인 한찬희가 부상에서 복귀해 안정을 찾아간다면, 우리 대표팀은 지금보다 더 강해진다. 첫 번째 목표였던 16강 진출은 조기에 달성했고, 그 이상도 가능해 보인다. 확실한 것은 남미를 포함해 어떤 우승 후보를 만나더라도, 신태용호는 자신들의 축구를 선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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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호 이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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