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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꽤 즐기는 편이다. 평소 마트나 백화점에 가면 우선 주류코너부터 들러 새로 입고된 희귀 브랜드의 술이 있나 확인하는 버릇이 있을 정도다. 주머니 사정이 여유롭지 않다보니 눈으로만 구경하고 돌아올 때가 더 많다. 어쩌다 글을 써서 원고료가 들어오면 곧장 달려가 마음에 담아두었던 술 한 병씩을 사들고 와 밤새 '혼술'의 낭만을 즐기곤 한다.

주종 역시 가리지 않는다. 내 지론은 '세상의 모든 술을 다 마셔보고 죽자'는 것이다. 맥주부터 시작해 막걸리, 고량주, 와인, 위스키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차고 넘치는 게 술 아니던가. 어찌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한 가지 술에만 집착할 수 있겠는가. 그러다보니 참X슬, 처음XX과 같은 희석식 소주는 입에 잘 대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는 한창 전통주에 빠져 살다가 최근엔 위스키로 눈을 돌렸다. 발효시킨 곡물을 증류한 다음 나무통에 넣고 숙성시킨 위스키는 알코올 도수가 기본 40도를 넘기에 그 향과 맛이 보통 독한 것이 아니다.

마개를 따자마자 올라오는 향을 코에 대고 '킁' 하고 맡으면 강한 향에 나도 모르게 '억' 소리를 내며 눈살을 찌푸릴 정도니 말이다. 다시 스트레이트잔에 부어 입에 한 모금 '탁' 털어넣었을 때, 목구멍에서부터 식도를 타고 창자로 내려가며 느껴지는 '싸르르'한 느낌은 위스키와 같은 독주(毒酒)만이 갖는 매력이다.

위스키로 읽는 세계사

<위스키의 지구사> 책 표지
 <위스키의 지구사> 책 표지
ⓒ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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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런 술은 누가 어떻게 만들었을까. 한 번 궁금한 게 생기면 끝까지 파헤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에 기어이 동네 도서관을 찾아 위스키에 대한 책을 찾아 읽었다. 이번에 소개하려는 <위스키의 지구사> 얘기다.

이 책은 한마디로 요약해 위스키의 역사를 톺아보는 책이다. 위스키 제조 과정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긴 하지만, 내용의 8할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미국 그리고 한국 등 전세계 각국에서의 위스키에 대한 역사를 조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복잡한 술의 제조 공정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이 책을 한 번 읽고 나면 위스키가 친근하게 느껴질 것이다.

책에 의하면 위스키는 2000년 전 고대 그리스나 서아시아에서 증류과정을 발견하며 시작됐다는 설이 있단다. 이후 아일랜드의 기독교 선교사나 이슬람교를 믿는 무어인이 유럽에 전파하고, 다시 연금술사나 성직자들이 증류를 실험하는 과정에서 위스키가 탄생했다는 주장이다.

"고대 이집트인과 히브리인이 곡물로 보리술을 만들었고 다양한 제조법을 실험해 만들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 유럽인이 서아시아에서 보리술 제조법을 전수받은 것인지 스스로 익힌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기원전 3000년경 영국에서 보리술 양조를 했다는 증거가 있다. 하지만 위스키 제조는 그 후로도 수세기가 지나 발효와 증류 기술을 결합하는 방법을 알아낸 뒤에 시작되었다." - p.58~59

그렇다면 중세 유럽인들은 위스키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13세기 스페인의 의사 아르날두스 데 비야 노바(1235~1313)는 위스키를 가리켜 "이 생명의 물은 마시면 원기를 북돋아주고, 과하게 폭발하게 만들며,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황홀경을 느끼게 해준다"고 했다.

또 아일랜드 출신의 연금술사이자 작가인 리처드 스태니허스트(1547~1618)는 "적당히 마시면 노화가 늦춰지고 젋음을 강화시켜주며 가래가 줄어들고 우울증이 없어진다. 수사슴 고기의 맛을 돋우고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주며 기분 전환을 시켜준다"고도 했다. 당시 유럽인들에게 위스키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아픈 곳을 치료해주는 '생명의 물'이었다.

순탄치 않았던 위스키 과세의 역사

한편 책의 저자는 위스키 시장이 발전해감에 따라 술에 과도한 세금을 매기거나 '금주령'을 내림으로써 생산을 통제하고자 했던 각국 정부들과 이에 맞선 제조업자들과의 갈등 양상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위스키의 역사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그중에서도 영국의 '세금 징수원'들과 증류업자들의 에피소드는 당시 영국의 사회상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어 흥미롭기까지 하다.

19세기 영국 스코틀랜드에는 위스키 세금 징수원들이 증류소마다 배치되어 증류기에 들어가는 술덧의 양과 생산되는 술의 양을 측정해 세금을 매겼다고 한다. 그러자 위스키 제조업자들은 불법적으로 위스키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세금 징수원을 피해 증류기들을 다리 밑, 집안 마룻바닥 밑, 마을 시계탑 등에 숨겨놓은 것이다. 심지어 세금 징수원을 폭행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위스키 제조업자들 입장에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세금 징수원들의 존재는 눈엣가시였을 게 뻔하다. 그러다보니 둘 사이에 티격태격하는 일도 잦았지만, 서로 담합을 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징수원이 실제 생산한 위스키의 양보다 줄여서 기록하고 세금을 낮게 책정해주는 대신, 징수원이 필요량 이상의 위스키를 담아가도 증류업자가 못 본 척 해준 것이다.

반면에 징수원이 증류업자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할 경우, 증류업자들은 새벽에 증류작업을 하는 식으로 징수원에게 보복했다. 작업을 지켜봐야 할 의무가 있는 징수원이 잠을 자지 못하도록 괴롭힌 것이다. 이러한 영국의 세금 징수원 제도는 1983년에 이르러서야 폐지됐다. 오랜 시간 티격태격하며 함께 해왔던 그들은 헤어질 때 후련했을까? 아니면 서운했을까?

19세기 개항과 함께 시작된 한국의 위스키

최후의 만찬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마신 술로 알려진 시바스 리갈 12년산
 최후의 만찬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마신 술로 알려진 시바스 리갈 12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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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위스키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19세기 후반 개항과 함께 위스키의 역사가 시작됐다. 1882년 12월 29일자 <한성순보>에서는 위스키와 비슷한 발음의 한자음인 '유사길(惟斯吉)'로 위스키를 처음 소개했다.

당시 조선에 위스키를 들여온 서양인들은 한결같이 "조선인들은 위스키를 매우 좋아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특히 젊은 양반들 사이에서 인기였다고 하는데, 한국의 소주(희석식이 아닌 증류식 전통소주) 역시 도수가 40도를 훌쩍 넘었기에 위스키의 높은 도수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었을 거란 분석이다.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경성을 중심으로 카페가 발달하면서 소위 '모던뽀이'들의 유흥문화를 중심으로 위스키가 활발하게 소비됐다.

그런데 놀라운 건 해방 이후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마셔온 위스키들은 대부분 '가짜 위스키'였다는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는 위스키 수입을 공식적으로 허가하지 않은 상황이었고 국민들은 제대로 된 위스키를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됐다.

따라서 그를 대체할 가짜 위스키들이 판을 친 것이다. 결국 메틸알코올로 만든 가짜 위스키까지 만들어지면서 이것을 마신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눈이 멀거나 반신불수가 되고 심지어 죽는 경우도 종종 일어났다.

이러한 가짜 위스키가 사회적 문제가 되었음에도 밀수 외에는 진짜 위스키를 마실 방법이 없다보니 주류업자들은 계속해서 유사 위스키를 만들어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진짜 위스키로 알고 마셨던 술들은 사실 증류식 소주에 여러 재료를 섞어 위스키의 색과 맛을 흉내 낸 것에 불과했다.

박정희가 마신 '시바스 리갈 12년산', 그 진실은

다만 그 시절에도 외국산 수입 위스키를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법 위에 군림하는 절대권력자들이었다. 박정희가 최후의 만찬에서 즐겼던 '시바스 리갈 12년산' 역시 유명한 외국산 위스키였다. 물론 시바스 리갈 12년산은 비교적 낮은 등급의 저렴한 위스키에 속한다. 그래서 이를 두고 "박정희는 위스키마저 저렴한 걸 마실 정도로 서민적인 대통령이었다"고 감격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당시 일반 소시민들은 외국산 수입 위스키를 구경할 기회조차 없었던 상황에서 그 정도의 위스키를 즐겼다는 사실만 놓고 봐도 대단한 권력이자 사치였다. 다음과 같은 설명은 그러한 정황을 뒷받침 해준다.

"1990년 이전까지 한국 사회에는 위스키 원액이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은 유사 위스키와 기타 재제주 위스키, 그리고 불법 수입 위스키가 공존하고 있었다. 1970년대에 외국산 수입 위스키를 마실 수 있었던 사람들은 권력을 가진 이들이었다. 프리미엄급에 지나지 않는 '시바스 리갈'을 최고의 위스키처럼 즐겨 마신 것도 위스키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을 뿐더러 본고장 위스키라며 최고인 양 '생명의 물'을 대하듯 했기 때문일 것이다." – p.235~236

이처럼 한국에서 위스키는 1990년 수입이 합법화될 때까지 권력자들만이 즐길 수 있었던 귀하디 귀하신 몸이었다.

시인 신천희는 <술타령>을 통해 "날씨야 네가 아무리 추워봐라. 내가 옷 사 입나 술 사 먹지"라고 노래했다. 애주가들의 술 사랑을 이렇게 절절하게 노래한 시도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원고료가 들어오는 족족 술값과 책값으로 쓰다 보니 통장 잔고에는 연일 가뭄이 이어지고 있다. 가난한 서생이 가까이 하기에 위스키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술이다. 늘어나는 뱃살도 요즘 고민이다. 그러니 술은 적당히 마시는 게 중요할 게다. 적어도 술 먹다 빚 지고, 몸 상했다는 말은 듣지 말아야 할 게 아닌가.

그럼에도 책장을 덮고 나니 반쯤 남은 '조니워커 레드라벨'이 필자의 눈을 어지럽힌다. 어찌할거나, 이 강렬한 위스키의 유혹을!

덧붙이는 글 | <위스키의 지구사>, 케빈 R. 코사르 저, 휴머니스트, 2016.3.21, 16,000원.



위스키의 지구사

케빈 R. 코사르 지음, 조은경 옮김, 주영하 감수, 휴머니스트(2016)


태그:#위스키, #세계사, #박정희, #시바스리갈,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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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한국사 전공) / 독립로드 대표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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