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간격을 두고 눈이 많이 와서 가래로 쌓인 눈을 밀고 싸리비로 쓸었지만 몽당비가 되어있는 싸리비는 땅바닥 긁는 소리만 요란하고 말끔하게 쓸리지가 않는다. 낫을 들고 뒷산으로 가서 싸리나무를 쪄왔다.
<!--[if !supportEmptyParas]-->
▲ 책들 표지 세 권의 책 표지 ⓒ 각 출판사
<!--[endif]-->
싸리 빗자루 만드는 일이 어려운 건 아니지만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싸리비를 묶는 방법인데, 나란히 묶으면 아무리 볼끈 매도 며칠 지나면 헐렁해져서 싸리나무가 한 두 개씩 빠져나온다. 싸리나무를 반반씩 잡고 밑동을 벌린 가위처럼 맞대고는 대각선 방향으로 묶어줘야 튼튼하다. 계절도 늦가을이나 겨울이 좋고 땅비싸리보다 참싸리가 더 좋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철물점에서 3천원을 주면 살 수 있는 플라스틱 마당비와 다른 것이 바로 이것이다. 싸리의 물성과 계절에 따른 차이. 자연의 이치와 삶의 지혜가 빗자루 하나에도 스며있다는 점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마침 생활용품을 중심으로 우리의 삶 곳곳을 살펴보게 하는 책이 나왔다. 작년 말에 '씨앗을 뿌리는 사람'에서 펴 낸 ⟪임원경제지-섬용지1,2⟫이다. 집을 짓는 원칙과 필요한 도구들, 나무하기와 물 긷는 용품, 불로 요리하는 부엌도구나 몸 씻는 도구 등이 소개되어 있고 만드는 방법도 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가령 이런 식이다. ⟪섬용지1⟫202쪽에 나오는 '평지 우물 쌓는법'을 보면 땅의 평면보다 2-3척(1척은 약 30.3Cm) 높게 담을 쌓아서 괸 물이 우물로 못 들어가게 하라면서 하는 말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우물 바닥은 돌로 다지고 잔돌을 1-2척 두께로 깔아주면 물을 맑게 하면서 맛을 좋게 할 수 있다. 만약 우물이 크다면 그 속에 금붕어나 붕어를 몇 마리 넣어주면 물벌레와 흙, 찌꺼기를 먹어 없애므로 물맛을 좋게 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자연소재로 집 짓는 석회 사용법도 위 책 261쪽의 '흙 반죽 재료'편에 잘 나온다. 이 책이 조선 후기에 나왔으니 시멘트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을 때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벽돌을 붙이려면 유회(油灰)를 쓰고 담벽을 하얗게 분장하려면 석회를 물에 가라앉힌 뒤 여기에 종이쪽을 넣어 바른다. 저수지 바닥과 주위를 바르려면 석회 1/7에 강모래와 황토를 각각 3/7씩 넣고 찹쌀 풀을 섞어 쌓으면 단단하게 굳어 영원히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이 책은 조선 실학정신의 체현자이자 시대를 열어 간 선구자, 사대부이면서도 문학이나 경학보다는 농학이나 실용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저술활동에 평생을 바친 풍석 서유구(1764-1845)의 작품이다. 2009년에 '소와당'에서 출간 된 먹을거리 중심의 ⟪임원경제지-본리지⟫에 이어 두 번째로 나온 ⟪섬용지2⟫는 '불로 요리하는 도구'편에서는 냄비, 프라이팬, 석쇠, 국수틀 등의 제작법과 사용법이 나온다.(321쪽)
<!--[if !supportEmptyParas]--> <!--[endif]-->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 의궤(儀軌)와도 다르다. 의궤는 행사에 쓰이는 물건과 비용을 적어놨지 재료와 만드는 방법은 없다. 이 책에서는 백성들이 생활도구를 직접 만들어 쓸 수 있게 해 놔서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도 있다. 다른 고서와 박물관에 있는 그림과 사진을 곳곳에 덧붙여 놓았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생활용품 중에서도 농사에 쓰이는 연장들만 집중적으로 다룬 책도 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소나무 출판사에서 나온 김재호가 쓴 ⟪생태적 삶을 일구는 우리네 농사연장⟫과 열화당에서 나온 ⟪농사짓는 시인 박형진의 연장 부리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이 책을 읽다보면 농사 도구들은 수 천 년 선조들의 지혜와 삶이 녹아 있는 숨결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편리하고 능률 좋은 대형 농기계들이 농장에서 손 농기구들을 몰아낸 지 오래고 이 과정에서 함께 버려진 소중한 가치들이 많다. 이 두 권의 책은 여기에 초점을 맞춰 농사 연장들을 살펴보고 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시인이면서 40년을 농부로 살고 있는 박형진은 이 책에서 "농사 연장은 하찮은 똥바가지 하나도 제 모습을 갖춰서 태어나는 데는 산과 들과 햇볕과 바람과 물의 작용이 있었다. 천지만물의 합일이다."고 까지 말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아궁이에 불 때는 것을 빗대어 김재호는 말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마당을 쓸어 모은 나뭇가지나 낙엽이 아궁이에 들어가면 방을 데우는 연료가 되고 밥을 하는 에너지가 된다. 다 타고나면 재가 되어 뒷간으로 가서 거름이 되거나 빨래 할 때 비누가 되기도 한다고.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이렇게 연결되고 두루 하나였던 이것이 현대에는 난방보일러와 주방가스레인지, 전기밥솥, 전자레인지, 쓰레기봉투 등으로 각기 분리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나락을 훑는 가락홀태가 개상이 되었다가 다시 그네로 발전하고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에는 족답식 탈곡기로 변신하더니 디젤 엔진을 쓰는 동력탈곡기가 되었다. 지금은 콤바인으로 바뀐 타작마당의 변천사도 다루고 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그네'니 '개상'이니 하는 말이 낯설 것이다. 그렇다. 이 책에서는 전통 농기구를 다루는 책이니만큼 순 우리말들이 돋보인다. 맨 처음이라는 '아시', 볏단의 이삭 쪽을 위로 하여 맞대고, 뿌리 쪽은 띄워서 줄을 지어 세우는 '줄가리', 괭이나 삽, 쇠스랑 따위의 쇠 부분에 자루를 박도록 만든 구멍인 '괴통' 등.
<!--[if !supportEmptyParas]--> <!--[endif]-->
순천으로 귀농한 후배가 새해 소망을 전해 왔다. 올해는 동물적 존재로 자립하는 삶을 가꾸겠노라고. 기계와 전자기기에 빼앗긴 손의 힘, 맨 몸의 힘을 되찾는 해가 되도록 손 글씨를 쓰고 뜨개질과 목공을 배우겠다고.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이 세 권의 책이 똑 같이 일러주는 가르침이 보인다. 손과 발, 몸을 더 많이 쓰라고. 그것이 자연과 더 많이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농어민 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