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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이치 깨닫고 선조들 삶의 지혜를 엿보는 기쁨

<섬용지>, <우리네 농사연장>, <연장 부리던 이야기> 나란히 출간
17.05.23 19:51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며칠 간격을 두고 눈이 많이 와서 가래로 쌓인 눈을 밀고 싸리비로 쓸었지만 몽당비가 되어있는 싸리비는 땅바닥 긁는 소리만 요란하고 말끔하게 쓸리지가 않는다. 낫을 들고 뒷산으로 가서 싸리나무를 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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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 표지 세 권의 책 표지 ⓒ 각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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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리 빗자루 만드는 일이 어려운 건 아니지만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싸리비를 묶는 방법인데, 나란히 묶으면 아무리 볼끈 매도 며칠 지나면 헐렁해져서 싸리나무가 한 두 개씩 빠져나온다. 싸리나무를 반반씩 잡고 밑동을 벌린 가위처럼 맞대고는 대각선 방향으로 묶어줘야 튼튼하다. 계절도 늦가을이나 겨울이 좋고 땅비싸리보다 참싸리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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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물점에서 3천원을 주면 살 수 있는 플라스틱 마당비와 다른 것이 바로 이것이다. 싸리의 물성과 계절에 따른 차이. 자연의 이치와 삶의 지혜가 빗자루 하나에도 스며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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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생활용품을 중심으로 우리의 삶 곳곳을 살펴보게 하는 책이 나왔다. 작년 말에 '씨앗을 뿌리는 사람'에서 펴 낸 ⟪임원경제지-섬용지1,2⟫이다. 집을 짓는 원칙과 필요한 도구들, 나무하기와 물 긷는 용품, 불로 요리하는 부엌도구나 몸 씻는 도구 등이 소개되어 있고 만드는 방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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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이런 식이다. ⟪섬용지1⟫202쪽에 나오는 '평지 우물 쌓는법'을 보면 땅의 평면보다 2-3척(1척은 약 30.3Cm) 높게 담을 쌓아서 괸 물이 우물로 못 들어가게 하라면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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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바닥은 돌로 다지고 잔돌을 1-2척 두께로 깔아주면 물을 맑게 하면서 맛을 좋게 할 수 있다. 만약 우물이 크다면 그 속에 금붕어나 붕어를 몇 마리 넣어주면 물벌레와 흙, 찌꺼기를 먹어 없애므로 물맛을 좋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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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소재로 집 짓는 석회 사용법도 위 책 261쪽의 '흙 반죽 재료'편에 잘 나온다. 이 책이 조선 후기에 나왔으니 시멘트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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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을 붙이려면 유회(油灰)를 쓰고 담벽을 하얗게 분장하려면 석회를 물에 가라앉힌 뒤 여기에 종이쪽을 넣어 바른다. 저수지 바닥과 주위를 바르려면 석회 1/7에 강모래와 황토를 각각 3/7씩 넣고 찹쌀 풀을 섞어 쌓으면 단단하게 굳어 영원히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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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 실학정신의 체현자이자 시대를 열어 간 선구자, 사대부이면서도 문학이나 경학보다는 농학이나 실용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저술활동에 평생을 바친 풍석 서유구(1764-1845)의 작품이다. 2009년에 '소와당'에서 출간 된 먹을거리 중심의 ⟪임원경제지-본리지⟫에 이어 두 번째로 나온 ⟪섬용지2⟫는 '불로 요리하는 도구'편에서는 냄비, 프라이팬, 석쇠, 국수틀 등의 제작법과 사용법이 나온다.(3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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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 의궤(儀軌)와도 다르다. 의궤는 행사에 쓰이는 물건과 비용을 적어놨지 재료와 만드는 방법은 없다. 이 책에서는 백성들이 생활도구를 직접 만들어 쓸 수 있게 해 놔서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도 있다. 다른 고서와 박물관에 있는 그림과 사진을 곳곳에 덧붙여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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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용품 중에서도 농사에 쓰이는 연장들만 집중적으로 다룬 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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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출판사에서 나온 김재호가 쓴 ⟪생태적 삶을 일구는 우리네 농사연장⟫과 열화당에서 나온 ⟪농사짓는 시인 박형진의 연장 부리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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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보면 농사 도구들은 수 천 년 선조들의 지혜와 삶이 녹아 있는 숨결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편리하고 능률 좋은 대형 농기계들이 농장에서 손 농기구들을 몰아낸 지 오래고 이 과정에서 함께 버려진 소중한 가치들이 많다. 이 두 권의 책은 여기에 초점을 맞춰 농사 연장들을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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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면서 40년을 농부로 살고 있는 박형진은 이 책에서 "농사 연장은 하찮은 똥바가지 하나도 제 모습을 갖춰서 태어나는 데는 산과 들과 햇볕과 바람과 물의 작용이 있었다. 천지만물의 합일이다."고 까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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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궁이에 불 때는 것을 빗대어 김재호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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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쓸어 모은 나뭇가지나 낙엽이 아궁이에 들어가면 방을 데우는 연료가 되고 밥을 하는 에너지가 된다. 다 타고나면 재가 되어 뒷간으로 가서 거름이 되거나 빨래 할 때 비누가 되기도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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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연결되고 두루 하나였던 이것이 현대에는 난방보일러와 주방가스레인지, 전기밥솥, 전자레인지, 쓰레기봉투 등으로 각기 분리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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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락을 훑는 가락홀태가 개상이 되었다가 다시 그네로 발전하고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에는 족답식 탈곡기로 변신하더니 디젤 엔진을 쓰는 동력탈곡기가 되었다. 지금은 콤바인으로 바뀐 타작마당의 변천사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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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니 '개상'이니 하는 말이 낯설 것이다. 그렇다. 이 책에서는 전통 농기구를 다루는 책이니만큼 순 우리말들이 돋보인다. 맨 처음이라는 '아시', 볏단의 이삭 쪽을 위로 하여 맞대고, 뿌리 쪽은 띄워서 줄을 지어 세우는 '줄가리', 괭이나 삽, 쇠스랑 따위의 쇠 부분에 자루를 박도록 만든 구멍인 '괴통'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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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으로 귀농한 후배가 새해 소망을 전해 왔다. 올해는 동물적 존재로 자립하는 삶을 가꾸겠노라고. 기계와 전자기기에 빼앗긴 손의 힘, 맨 몸의 힘을 되찾는 해가 되도록 손 글씨를 쓰고 뜨개질과 목공을 배우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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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권의 책이 똑 같이 일러주는 가르침이 보인다. 손과 발, 몸을 더 많이 쓰라고. 그것이 자연과 더 많이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농어민 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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