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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 트레킹- 코스

쿰부 히말라야에는 세 개의 패스(Pass)와 세 개의 리(Ri) 세 개의 베이스캠프(BC)가 있다. 3Pass는 쿰부 히말라야의 물줄기를 잇는 세 개의 큰 고개를 말한다. 콩마라, 촐라, 렌조라로 유역이 변경되는 분수령이다. 분수령이란 내린 비가 각각 반대쪽으로 흐르는 경계선이라는 뜻으로, 일의 전환점의 의미로도 쓰이고 어떤 일의 고비라는 의미도 쓰인다. 그 의미와 걸맞게 Pass는 우리에게도 히말라야의 큰 고비였다.

Ri는 주로 해발 5000m의 봉우리를 말하는데 쿰부의 3Ri는 추쿵리, 칼라파타르, 고쿄리로 쿰부히말라야의 풍경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다.

3BC는 히말라야 8000미터 급 14좌 중 에베레스트, 로체, 초오유 3개의 산 각각의 베이스캠프를 말한다. 에베레스트 BC(이하 EBC), 로체 남벽 BC, 초오유 BC로 각 산의 베이스캠프에서 등반을 시작한다.

비록 8000m 산의 완등을 목표로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가장 높은 산을 오르는 베이스캠프(5364m)까지 올라보자는 마음으로 이타 기부 트레킹의 목표를 정했다. 출발 전 베이스캠프의 높이가 가늠이 안돼서 어느 정도의 높이인가 찾아봤다. 63빌딩의 약 22배의 높이라니! 떨린다! 하하. 잘 할 수 있을까 겁이 났지만 이미 화살은 활시위를 떠났다.

처음 계획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와 3pass를 완주하는 루트였다. 에베레스트를 언제 또 가겠나 싶어 할 수 있는 한 모든 걸 하고 오고 싶었다. 하지만 형석이와 가이드 Jit Rai를 만나 현실적인 루트를 만들었다. 나는 이타의 기부 트레킹으로 약속한 EBC를 최소한의 목표로 잡았고 나머지 일정을 형석이와 맞췄다. 에베레스트를 볼 수 있는 칼라파타르와 주변 경관이 빼어난 고쿄리를 넣는 대신 콩마라패스를 빼기로 했다. 중간중간 고소적응을 위해 쉬어가는 날을 넣고 루트를 짜보니 만만한 일정은 아니었다.

2017 쿰부히말라야 목표 루트
1. 촐라, 렌조라 (2pass)
2. 칼라파타르, 고쿄리 (2ri)
3.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1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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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이 붙은 첫 번째 식사

루크라에 도착한 우리는 간단하게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새벽부터 빈속에 긴장한 탓인지 속이 좋지 않았다. 폭신하고 부드러운 음식을 먹고 싶어 오믈렛을 주문했다. 대부분 롯지(트레커들이 머무는 숙소 겸 레스토랑)의 음식은 주문을 하면 그때부터 만들기 시작한다. 워낙 오래 걸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간 터라 한참 기다려야겠지 했는데 의외로 음식이 빨리 나왔다.

오예! 응? 응? 응???? 나는 분명 오믈렛을 시켰는데? 왜? 계란 지단이 나왔네? 이 얇은 계란 부침이 3500원이라고? 형석이가 시킨 해시브라운보다 500원이나 비싼데? 이게 오믈렛이라고?? 오마이.. 레알 마드리드의 지단이 와서 발로 차 사커 위 아 더 챔피언을 하고 갈 판이다. 첫 음식이 이렇다면 앞으로의 식사는 뻔할 뻔 자구만.

이상하게 배낭여행만 했다 하면 옴이 붙는지 내가 시키는 음식마다 맛이 없다. 유럽여행을 함께 다녔던 동기 진선이는 여행 내내 맛없는 음식만 골라서 주문하는 나를 보고 언니한테 맛없는 귀신이 붙어있다며 혀를 찼다. 같은 레스토랑에서 주문하는데 왜 내가 고른 음식만 맛이 없는걸까? 심지어 나는 가리는 음식이 없다! 그런데도 두입 이상을 못 먹고는 강제 고사를 지내야 했으니 음식 맛에 대한 더 이상의 언급이 필요할까. 내 꼴을 보다 못한 진선이는 끌끌거리며 본인이 주문한 음식을 떼어주곤 했다.

이번 여행도 앞이 깜깜하다. 그래도 뭐 어쩌겠나. 주문을 한 것은 나인데, 초면에 여자의 가오를 잃지 말자. 속은 열불이 터지지만 우아하게 포크와 나이프로 지단을 썰었다.
칼질을 하는 내 꼴을 형석이가 슬쩍 쳐다보더니 본인의 접시를 쓱 내밀며 말했다.

"누나 그거 그러고 자르고 있지 말고 제 것 같이 드세요."

맘 좋은 형석이.
사실 너의 포테이토가 탐났어.
한입만 줘  엉엉.
한입 베어먹은 포테이토는 기름지고 맛있었다. 배때기에 기름을 채우니 힘이 솟는다! 아하하하.
앞으로 음식 주문은 형석이가 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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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악~딩! 잊지말아요 이타

루크라에서 출발한 지 서너 시간, 팍딩(해발2610m)까지는 무난하게 도착했다. 30분 잔 사람치고는 기특하게 잘도 올랐다. 심지어 즐거웠다. 하지만 해도 지고 생리도 터지고 체력을 아끼기 위해 이곳에서 쉬기로 했다. 롯지는 생각보다 추웠지만 핫 샤워를 하니 상쾌했다. 와이파이도 잘 터지고 형석이가 시켜준 저녁도 맛있었다. 생리통이 약간 있었지만 이런 강도의 트레킹이라면 에베레스트라도 오를 수 있을 거 같았다.

"이 정도면 히말라야의 쥐돌이가 아니라 히말라야의 야크 아니야?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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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의 자취생활과 혼자 한 산행 덕에 혼잣말이 일취월장해진 나는 히말라야에서도 벽과 대화하는 신공을 쓰며 큭큭거렸다. 쿰부 히말라야의 첫 밤 아직 외롭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다. 카트만두에서 빌린 냄새나는 침낭 속에 침낭 라이너를 덧대고 내일의 컨디션을 위해 몸을 구겨 넣었다. 비좁은 침낭 속에서 비비적거리다보니 출발과 비행에 정신을 쏟느라 잊고 있었던 본분이 생각났다.

'아, 나는 이곳에 그냥 온 것이 아니었지.'

내 도전을 보고 아픈 친구들에게 희망을 전하기 위해 왔는데 정신을 놓고 있었다. 잠들기 전까지 내 본분을 상기하자.

이타. 나를 위해 타인을 위하고, 타인을 위해 나를 위하는 우리의 정신. 잊지 말 것. 나의 부재에도 이타의 멤버들은 한국에서 러닝을 진행하고 있다.

2015년, 프립(frip)에서 세월호 러닝&콘서트를 기획했을 때 도우미를 자청하며 처음 만났던 현우는 러닝은 알아서 잘 할 테니 죽지 말고 살아돌아오라 당부했다. 현우는 벌써 2회차 기부 러닝 호스트를 하며 이타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1회차 기부 러닝 최다 참여자였던 동갑내기 정배 또한 특유의 유쾌한 사교성으로 2회차 러닝 호스트를 자청했다. 아무 대가 없이, 있는 핀잔 없는 쿠사리를 다 먹으며 이타의 기부 러닝을 책임지는 두 개의 대들보와 행사 때마다 열일마다 않고 달려와주는 예쁜 청년들 덕에 이타는 움직인다.

아침에 일어나 롯지에서 실을 빌려 가방에 이타깃발을 꿰맸다. 이타 왕 언니 출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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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체로 가는 길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 에베레스트가 있는 사가르마타 국립공원에서 퍼밋을 받았다. 퍼밋은 말하자면 국립공원의 입장권 같은 것. 네팔에 와서 가장 많은 돈을 지불하고 남체로 가는 깔딱 고개에 들어섰다. 가는 길에 호주와 영국에서 온 친구들과 만났다. 출발선에서 만나는 트레커들은 대부분 루트가 비슷해서 트레킹 내내 계속 마주치게 된다.

한국인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기 때문에 사람이 매우 고팠던 우리는 그 친구들과 함께 걷는 길이 매우 즐거웠다. 이타에 대해서 이야기도 하고 서로 사진도 찍어주며 깔딱 고개를 넘었다. 일행 중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카일리는 체력이 매우 좋았다. 나는 카일리와 선두에서 서로를 응원하며 산길을 걸었다.

개미마냥 꾸준히 걸어 올라가다 보니 에베레스트가 보이는 공터에 도착했다. 오렌지를 파는 할머니 세 분이 우리를 보며 오렌지를 사라며 소리치셨다.

"오렌지 100루피! 원! 100루피!"

오렌지 하나에 100루피(한화 1100원)라니! 1L 물도 80루피인데! 히말라야에서는 고도가 높아질수록 물가도 함께 높아진다. 엔진 있는 운송수단은 산길을 오르내릴 수가 없기 때문에 모든 물품을 야크와 사람이 조달할 수밖에 없다. 고도가 더 높아지면 야크조차 오를 수 없어지니 물건값은 그저 가진 사람이 부르는 게 답이다.

깎고 깎아 조막만 한 오렌지를 70루피에 샀다. 한국에서 가져온 껌과 사탕을 할머니들에게 나눠 드리고 우리도 오렌지를 조각 내 한쪽씩 먹었다. 네팔에서 먹은 첫 과일이었다.

모두와 오렌지를 한쪽씩 먹고 힘이 난 나는 남체에 먼저 도착해 일행들을 기다리며 카일리와 수다를 떨었다. 밝고 유쾌한 카일리가 마음에 쏙 들었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멀찍이서 가이드 짓과 형석이가 보였다. 나와 카일리는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헤이! 가이즈! 위아 히얼!!"

생글거리며 반가워하는 나를 보고는 형석이가 말했다.

"쉬 이즈 몬스터! 쏘 패스트!"

응? 몬스터? 괴물?? 누나 괴물이라고? 누나는 전에도 언급했듯이 매우 저조한 체력을 가지고 있고 걸음도 빠르지 않다니까? 하하. 하지만 천천히 걸으니 숨이 많이 차지 않고 체력 소모도 덜했다. 오르막이나 평지나 같은 페이스로 쉬지 않고 천천히 걸으니 멀리 갈 수밖에. 음.. 괴물은 별로지만 잘 걷는다는 칭찬으로 생각해야겠다. 그치 형석아? 괴물 몬스터 쥐돌이 뭐든 간에 좋다! 우리는 쿰부에서 가장 풍요로운 곳 남체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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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히말라야, #이타, #기부트레킹, #에베레스트,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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