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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교에 백 아이가 다닌다면 백 아이는 모두 다릅니다. 한 학급에 스무 아이가 다닌다면 스무 아이는 모두 다릅니다. 백 아이한테 똑같은 옷을 입혀도 백 아이한테는 백 가지 빛깔이 흐릅니다. 스무 아이한테 똑같은 차림새에 머리길이를 맞추어도 스무 아이한테는 스무 가지 빛깔이 흘러요.

백 아이가 모여서 사진을 찍는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요? 모든 아이가 반듯하게 서서 줄을 맞추어야 할까요? 스무 아이가 모여서 사진을 찍는다면 어떤 차림이어야 할까요? 모두 똑같거나 비슷해 보이는 차림이어야 할까요?

겉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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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속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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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온 남자아이가 폴짝대며 들어왔어요. 정말 독특하게 생긴 아이였어요. 밝은 노란색은 기분까지 환하게 했지요. 조금 꾀죄죄했지만…… 아이들은 예의 바르게 그 말은 하지 않았어요. (3쪽)

리지 핀레이 님이 빚은 그림책 <민들레 사자 댄디라이언>(책속물고기 펴냄)은 어느 날 어느 학교 어느 학급에 '사람' 아닌 '사자 아이'가 찾아간 이야기를 다룹니다. 사람 아이만 다니는 학교에 사자 아이라니? 그러나 사자 아이라고 해서 사람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못 다녀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람하고 사자라는 대목이 다를 뿐, 아이라는 대목은 같아요.

함께 배우고 싶기에 함께 학교를 다녀요. 함께 어울리면서 놀고 싶으니 함께 어우러지면서 까르르 웃어요. 그런데 얌전하고 조용하고 상냥하기만 아이들이 모인 이 학급에 찾아온 '사자 아이 댄디라이언'은 온몸이 노랗습니다. 머리카락은 훨훨 나부껴요. 사자 갈기이니 훨훨 나부낀다고 할 테지만, 댄디라이언은 그냥 사자가 아닌 '민들레 사자'라고 합니다. 민들레꽃 같은 노랑이면서 팔랑팔랑 춤추는 머리털입니다.

속그림. 모두 똑같은 빛깔이자 무늬였던 학교에 노랑이가 찾아들다.
 속그림. 모두 똑같은 빛깔이자 무늬였던 학교에 노랑이가 찾아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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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없어." 민티가 마요네즈 달걀 샌드위치를 꺼내며 씩씩거렸어요. 그런데 댄디라이언의 샌드위치를 보자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내가 특별히 만든 거야.
초콜릿 크림을 바르고 꿈틀이 젤리랑 솜사탕을 넣었지." 댄디라이언이 활짝 웃었어요. (8∼9쪽)

사자 아이 댄디라이언은 가만히 있을 줄 모릅니다. 언제나 머리속에서 새로운 놀이를 떠올립니다. 이렇게 놀고 저렇게 놀면서 하루를 새롭게 누리고 싶습니다. 이렇게 뛰고 저렇게 달리면서 온 하루를 기쁜 놀이로 채우고 싶습니다.

얌전하기만 하던 교실은 댄디라이언이 찾아오고 난 뒤로 왁자지껄합니다. 조용하기만 하던 교실은 댄디라이언이 날마다 끝없이 갖은 놀이와 장난을 떠올리면서 펼치니 복닥복닥합니다. 시간표대로 흐르는 일이 사라집니다. 미리 짠 틀대로 움직이는 일이 없습니다.

바야흐로 선생님은 댄디라이언을 '말썽쟁이'로 여깁니다. 동무들은 댄디라이언하고 어울리거나 놀면 신나고 재미나지만 여태껏 선생님하고 '얌전하고 조용하고 상냥하게' 배우면서 학급을 꾸리던 모습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대요.

속그림. 댄디라이언이 나타난 뒤로 학교는 모든 것이 달라진다.
 속그림. 댄디라이언이 나타난 뒤로 학교는 모든 것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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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에 바질이 이들을 대신해 나섰어요. "댄디라이언, 우리는 널 좋아해……." 바질은 꼼지락대며 말했어요. "그런데 넌 우리랑 달라서, 너랑 있으면 자꾸 이상해져. 교실은 엉망이 되고, 우리는 말썽쟁이가 돼." 그리고 바질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어요. "내 생각엔 네가 잡풀 같아서 그런 것 같아." (16∼17쪽)

'다름'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다름'을 얼마나 받아들일까요? 사내는 머리카락 길이가 어떠해야 하나요? 가시내는 머리카락 길이가 어떠해야 하나요? 치마는 누가 입고 바지는 누가 입지요? 꽃무늬 옷은 누가 입고, 별무늬 옷은 누가 입나요? 빨갛거나 노랗거나 파랗거나 푸른 옷은 누가 입어야 하나요?

시집이나 동화책(또는 소설책)만 읽어야 점잖거나 차분하거나 문학스러울까요? 만화책을 읽으면 안 점잖거나 안 차분하거나 안 문학스러울까요? 공부를 하면서 흥얼흥얼 콧노래를 불러도 될까요, 안 될까요? 얌전하게 안 걷고 춤추면서 걸으면 될까요, 안 될까요? 머리카락을 파랗거나 빨갛거나 노랗거나 하얗게 물들이면 될까요, 안 될까요?

'다르게' 보이는 아이는 잡풀일까요? '다르게' 보이는 아이를 평등하고 평화로우면서 사이좋게 맞아들일 수 있는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는 어떤 학급, 어떤 학교, 어떤 마을, 어떤 보금자리를 가꿀 적에 아름다우면서 즐거울까요?

속그림. 슬픈 댄디라이언.
 속그림. 슬픈 댄디라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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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디라이언이 빠진 가드너 선생님 반은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으로 되돌아갔어요. 하지만 아이들은 댄디라이언의 환하게 빛나는 노란색 얼굴이 보고 싶었어요. 폴짝폴짝 뛰고 신나게 다니던 모습이 그리웠어요. 물을 엎지르고 교실을 지저분하게 만들었던 것까지도요. (24쪽)

댄디라이언은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생님한테도 동무들한테도 서운하거나 섭섭하구나 싶은 말을 듣습니다. 댄디라이언은 민들레 머리털을 하나로 묶어 보기도 합니다. 이 머리털을 잘라 볼까 하고도 생각하며 눈물을 짓습니다. '내가 나로 있을 수 없다'는 대목에 슬퍼서 더는 학교에 갈 마음이 들지 않고, 더는 누구랑 어울리고픈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댄디라이언이 집에서 슬프게 보내는 동안, 학급은 학급대로 매우 조용하면서 차분합니다. 이제 댄디라이언이 없는 학급은 '예전처럼' 깔끔하고 조용하며 차분합니다. 구김살이 없고 가지런합니다. 모든 일을 차근차근 하고, 시간표에서 조금도 어긋나는 일이란 없습니다. 그런데 댄디라이언이 없는 학급에서는 이제 '싱그러운 기운'이 사라집니다. 웃음도 사라지고 노래도 사라져요. 춤도 놀이도 사라져요. 모두들 '수업 진도를 얌전히 나갈' 뿐입니다.

그림책 <민들레 사자 댄디라이언>은 '다름'이 무엇인가를 넌지시 묻습니다. 이러면서 우리가 '서로 모여서 배우는 즐거움'이란 무엇인가를 차분히 묻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슬기로이 어우러지는 평등이나 평화'란 무엇인가 하고 조용히 물어요. 덧붙여 '동무나 이웃을 아끼는 마음'은 어떻게 가꾸거나 다스릴 적에 서로 아름다울 만한가 하고 찬찬히 묻지요.

우리 스스로 다름을 '어디까지' 받아들이는 삶일까 하고 묻는 그림책입니다. 어디까지는 되고 어디까지는 안 된다는 금이나 틀을 누가 어떻게 왜 세우는가 하고 묻는 그림책이기도 해요.

우리는 댄디라이언처럼 모두 노란 옷을 입어 볼 수 있을까요? 우리는 댄디라이언처럼 모두 노란 머리가 되어 볼 수 있을까요? 그리고 댄디라이언도 우리도 함께 빨간 머리나 파란 옷이 되어 볼 수 있을까요? 우리는 모두 다른 옷이며 머리이며 마음이며 생각이며 꿈을 키우는 다 다르게 아름다운 길을 걸어 볼 수 있을까요?

덧붙이는 글 | <민들레 사자 댄디라이언>(리지 핀레이 글·그림 / 김호정 옮김 / 책속물고기 펴냄 / 2012.3.20. / 1만 원)



민들레 사자 댄디라이언

리지 핀레이 글.그림, 김호정 옮김, 책속물고기(2012)


태그:#민들레 사자 댄디라이언, #리지 핀레이, #그림책, #어린이책, #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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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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