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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2일 고용노동부는 장시간 근로 의혹이 제기된 넷마블게임즈 등 넷마블 계열사 12개사에 대한 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지난 3월~4월 동안 12개사의 노동자 3250명 중 63.3%인 2057명이 주 12시간의 연장근로 한도를 초과해 6시간을 더 일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한 이 기간동안 연장근로 수당 미지급, 퇴직금 과소산정 등으로 44억 원에 가까운 체불임금이 발생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과중된 업무집중, 관행화된 초과근로 분위기'등으로 장시간근로가 상시적으로 발생했다고 밝혔으며, 12개사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의 이러한 감시와 시정조치에도 게임업계의 근무 문화가 변하지 않는 이상, 돌연사로까지 이어지는 '과노동'은 근절되지 못할거라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게임회사에서 일하다가 퇴직한 청년이, 게임업계의 근무환경에 대한 글을 오마이뉴스에 보내와 익명으로 싣습니다. [편집자말]
지난 1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넷마블게임즈(주) 유가증권시장 신규상장기념식에서 권영식 대표 등 임직원들이 축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본 글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지난 1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넷마블게임즈(주) 유가증권시장 신규상장기념식에서 권영식 대표 등 임직원들이 축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본 글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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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회사에서 나오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는 선배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이쪽이 원래 그래. 열정이 없으면 못 버틸 일이지." 매일 야근을 하는데 왜 야근 수당은 없냐고 묻자 돌아온 말이었다. 보통 11시가 넘어야 퇴근이었다. 12시에 퇴근하는 날은 택시비가 나왔다. 그런데 막상 12시 넘어서 퇴근하는 건 상사가 안 좋아하는 눈치였다.

지난해 여름 판교에 있는 어느 게임회사에 계약직으로 들어갔다. 주변에 취직 사실을 말하니 축하가 반, 우려가 반이었다. 심지어 비슷한 시기에 면접에 붙었던 다른 IT업체 사장님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잘 알고 있다는 듯이 '힘든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말했다. 주변의 우려와 충고에도 불구하고 나는 면접을 보면서 느꼈던 게임 회사의 격식없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떠올리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게임 회사의 첫인상은 면접 때 보았던 분위기 그대로였다. 첫날답게 이 팀 저 팀을 돌며 인사를 했다. 대부분이 20~30대였다. 그만큼 자유롭고 서로 존중해주는 분위기였다. 업무 중에도 종종 나가서 바람을 쐬고 올 수 있었고 눈치를 보지 않고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를 마실 수도 있었다. 빡빡한 직장 분위기와 상사를 욕하는 대학 친구들의 이야기는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다. 입사하기 전에 들었던 우려와 게임 업계에 관한 불합리한 이야기들은 그저 업계 일부라고 생각했다. 물론 착각이었다.

"어쩔 수 없다... 우리가 더 심한 건 아냐"

일주일이 지나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야근을 하게 됐다. 처음 일주일 동안 혼자만 정시 퇴근을 하느라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 미안했던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야근에 동참했다. 야근이 끝나고 집에 도착하면 보통 새벽 1시가 넘었고, 어중간한 시간에 퇴근하면 역에서 집까지 가는 버스가 끊겨서 집까지 걷거나 비용처리가 되지 않는 택시를 타는 일도 있었다. 집에 도착하면 출근을 위해서 자기 바빴다. 아직 신혼이었던 한 선배는 주말이 되어야 간신히 신랑 얼굴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사실 그 회사는 업계에서 직원복지가 나름 좋은 편에 속했다. 계약직임에도 거의 정규직과 비슷한 대우를 해줬다. 실제로 소속감을 느낄 수 있게 신경을 많이 써주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야근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어. 업데이트가 늦어지면 뒤처지고, 뒤처지면 이탈하는 유저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모바일 쪽은 생명이 짧아서 더 심할 걸? 우리가 특별히 더 심한 건 아니야."

시즌마다 예정된 업데이트는 날짜가 아무리 촉박해도 기한 내에 끝을 내야 했고, 무사히 업데이트가 완료되어도 버그나 오류는 꼭 있었다. 버그나 오류가 생기면 다시 야근이었다.

지난 2월 9일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실에서는 게임산업 노동환경 실태와 개선과제를 분석하는 간담회가 열렸다. 최민 전문의 발표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휴식과 권리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 IT노동자 노동환경을 설명하는 최민 전문의 지난 2월 9일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실에서는 게임산업 노동환경 실태와 개선과제를 분석하는 간담회가 열렸다. 최민 전문의 발표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휴식과 권리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 서원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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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개발이나 서비스 일정을 꼭 그렇게 쥐어짜야만 답이 나오는 걸까? 다른 게임 회사에 다니던 지인은 게임 업계의 야근 문화가 게임의 생명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원인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을 잘 모르는 경영진이 개발에 관여하는 것이 문제였다. 게임 자체에 대한 관심과 이해보다는 수입과 회사 운영에 더 관심이 많은 경영진은 수익성과 생산성이라는 요소에 더 큰 비중을 둔다. 이 때문에 개발자들은 수익성과 생산성에 맞추어진 기한 내에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당연히 야근은 늘고, 게임의 개성이나 완성도는 떨어지고, 그 결과로 게임의 생명이 짧아진다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게임 커뮤니티에는 출시 게임들이 비슷해서 금방 질린다는 글들이 종종 올라온다. 어떤 게임이 인기를 끌면 뒤를 이어 비슷한 게임이 대거 등장하기도 한다. 결국 게임을 늦게 출시할수록 회사 차원에서는 불리하다. 또 빠르게 변하는 게임 산업의 특성상 출시나 업데이트 일정에 맞추기 위해 야근이 필요한 경우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야근을 고려해도 돌연사와 자살이 생길 정도의 야근은 비정상이다.

계산해보면 '최저시급'도 안 돼... 포괄임금제도 문제

포괄임금제는 야근을 비정상으로 만드는 또 다른 원인 중 하나다. 애초에 회사가 아직 하지도 않은 야근에 대한 수당을 급여에 포함시킬 리가 있을까? 첫 월급을 받고 시급을 계산했을 때 황당함은 잊히지 않는다. 주당 60시간 넘게 일하고 받은 돈이 시급으로 계산하면 최저시급도 안됐다. 분명 야근 수당이 월급에 포함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도무지 어디에 포함되어 있는지 계산을 해봐도 알 수가 없었다.

야근을 당연시하는 문화가 게임 업계의 시스템적인 문제라면 포괄임금제는 회사가 부담 없이 직원들을 야근시킬 수 있게 도와주는 요소일 것이다. 회사는 월급을 쪼개서 이만큼이 야근에 대한 대가라고 말한다. 회사의 정확한 계산법을 알 수 없는 직원은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받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많은 직원들이 최저시급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고도 납득해버린다. 게임 업계가 '전부 이렇고 원래 그렇다'고 하는데, 앞으로 게임 관련 일을 하지 않을 생각이 아니라면 굳이 얼굴 붉히며 따지기도 어렵다.

지난 대선 토론에서 심상정 후보가 IT 업계의 열악한 근로 환경을 비판하며 '오징어배'라고 말했을 때 고마운 한편 씁쓸했다. 열정으로 버티는 거라던 선배의 말대로 게임 회사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꿈과 열정으로 열악한 업계 환경을 버티면서 게임을 만들고 있다. 게임 업계의 야근 문화는 게임 개발이 회사 경영에 종속적인 시스템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포괄임금제라는 괴상한 방식의 제도를 앞세운 열정페이의 한 단면이다.


태그:#게임업계, #게임, #오징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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