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8일 오후 강원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2017 IIHF 아이스하키 여자 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Ⅱ 그룹 A 대회 한국과 네덜란드의 경기에서 한국이 2-0으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신소정(왼쪽)과 한도희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 4월 8일 오후 강원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2017 IIHF 아이스하키 여자 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Ⅱ 그룹 A 대회 한국과 네덜란드의 경기에서 한국이 2-0으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신소정(왼쪽)과 한도희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갑자기 눈물이 나던데요. 쥐똥만한 게 받기 더럽게 힘들더라고요."

13년의 무명 생활 끝에 2017 강릉 IIHF(국제아이스하키연맹) 세계선수권(강릉 개최, 4월 2일부터 8일까지) MVP를 차지한 그녀. 바로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한도희(24)선수다.

짧은 머리에 태극마크가 그려진 점퍼가 유난히도 어울리는 한도희 선수. 그녀를 지난 9일 서울 화랑대 인근 카페에서 만나봤다.

그녀는 처음부터 선수의 꿈을 꾸지는 않았다. 광운초등학교 아이스하키 팀에서 선수로 활동하던 오빠를 재미삼아 쫓아다녔다. 감독님은 그런 그녀를 보고 아이스하키를 권유했다. 취미로 시작한 지 3년 후인 2005년. 별 생각 없이 나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여자 선수가 부족했던 탓인지 얼떨결에 선발됐다.

초등학교 5학년. 팀의 최연소로 국가대표가 된 그녀는 이른 나이에 국가대표라는 딱지를 붙이고 태릉선수촌에 들어갔다.

"친구들 보면 부럽죠. 엠티나 축제 뭐 이런 건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요. 중·고등학교를 통틀어서 한 번 빼고는 훈련 때문에 수련회에 간 적도 없는걸요."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가 중간에 그만두는 까닭은...

중앙대학교에서 체육교육학을 전공하는 그녀는 현재 올림픽 준비로 휴학 중이다. 또래 친구들처럼 평범한 학교생활을 하고 싶지만, 수업이 끝나자마자 태릉으로 가야 하는 탓에 대학 동기들과 인사를 나눈 적도 없다. 

13년의 연차가 쌓이는 동안 선수생활을 그만둘까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열악한 환경 탓에 동고동락했던 선수들이 하나둘 그만두자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여자 아이스하키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팀이 지속될 수 없을 정도로 적다. 남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은 대학과 실업 팀 입단이라는 눈에 보이는 목표라도 있다. 하지만 여자 아이스하키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오롯이 열정으로만 훈련에 임한다. 어쩔 수 없이 선수들에게 투잡은 필수다.

"중간에 그만두는 선수들이 많아요. 대학도 못 가고 돈벌이도 안 되니까요. 그러다 보니 국가대표팀도 선수들이 계속 바뀌고요."

힘든 점은 그뿐만이 아니다. 죽어라 열심히 노력해도 기량을 보여줄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처음에 대표팀에 들어왔을 때는 '언제 게임 뛰지'가 아니라 '언니들만큼만 해야지'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열심히 연습을 해도 기회가 없더라고요."

오랜 연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다음 경기를 기약할 수 없는 백업 골리(골키퍼)다. 주전인 신소정 선수의 몸 상태에 따라 그녀의 출전 여부가 결정된다. 처음에는 기회가 오지 않는 탓에 신소정 선수가 밉기도 했단다. 하지만 이제 신소정 선수는 그녀에게 자극을 주는 선의의 경쟁자다.

"어렸을 때는 '나랑 대체 뭐가 다르다는 거야, 똑같구먼' 하면서 짜증도 많이 냈죠. 생각해보면 그때는 준비가 덜 돼 있어서 기회가 오지 않았던 건데 말이에요. 지금은 소정언니가 있어줘서 너무 고마워요. 자극을 주니까요. 언니가 10개를 하면 저는 15개를 해요. 하다못해 언니가 20kg을 들면 저는 1kg이라도 더 무거운 걸 들려고 하죠."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그녀는 아이스하키를 그만둘 수 없다.

"그만두더라도 시합은 한 번 뛰어봐야 하잖아요. 소정언니 뒤에서 묵묵히 오랜 기간 노력했으니까 뛰어넘고 싶은 마음도 컸고요."

감독님의 출전하라는 지시가 없으면 출전을 하지 못한다. 그녀에게는 신소정이라는 넘어야 할 산이 있기에 다른 선수들에 비해 더 노력해야 했다. '열심히 해야지'가 아닌 '눈에 띄게 열심히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 올해, 마침내 기회가 왔다. 신소정 선수가 오른 무릎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북한전 앞두고... "절대 지면 안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IIHF 첫 경기인 슬로베니아전(한국 5-1 슬로베니아, 4월 2일)이 시작하기 2분 전, 세러 머리 감독은 그녀에게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그녀의 선수생활을 통틀어 가장 큰 대회였지만 너무 갑작스러웠던 터라 처음에는 부담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2차전, 3차전 연달아 출전하면서 부담감은 점점 커져갔다.

"특히 북한전(한국 3-0 북한, 4월 6일)은 모든 좌석이 매진 됐어요. 관중부터 선수까지 모두가 긴장하고 있던 터라 '절대 지면 안 된다' 말고는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13년을 했는데도 긴장하다 보니까 이게 웍인지, 패스인지 머리가 하얘지더라고요."

골리의 역할이 중요한 아이스하키. '무조건 막아야만 한다'라는 마음으로 몸을 날리면서 경기에 임했다. 그 덕에 좋은 점수를 낼 수 있었고, 5전 전승 우승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대회 MVP와 최고 골리 상을 수상한 그녀는 그럼에도 여전히 백업 골리다. 그녀의 목표는 내년 평창 올림픽에서의 우승이 아니다. 단 한 경기만이라도 출전하는 것이다.

솔직한 매력의 그녀는 과거로 돌아간다면 다시 아이스하키를 시작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절대 아이스하키는 하지 않을 거예요.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 비전이 없을 줄은 몰랐거든요.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후회는 없어요. 지금은 올림픽이 눈앞에 있으니까 후회할 시간이 없죠. 빨리 출전하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그녀의 최종 꿈은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는 것이다.

"이번 경기를 보시고 굉장히 좋아하시더라고요. 저는 몰랐는데 오빠가 하는 말이 엄마가 경기를 보시면서 할머니랑 같이 우셨대요. '도희가 이번 경기에서 13년의 한을 풀었구나' 하시면서요. 힘들지만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해서 그런 엄마한테 자랑스러워지고 싶어요."

인생의 반 이상을 무명으로 묵묵히 버텨온 한도희 선수. 그녀는 최선을 다해 차근차근 꿈을 이뤄나가는 중이다. 그렇기에 내년 평창 올림픽에서 그녀를 꼭 다시 볼 수 있으리라는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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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 아이스하키 여자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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