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겟 아웃> 메인포스터 영화 <겟 아웃> 메인포스터

▲ 영화 <겟 아웃> 메인포스터 영화 <겟 아웃> 메인포스터 ⓒ 유니버셜픽쳐스


01.

지난 2004년 북미에서 영화 <쏘우>가 개봉했을 때의 충격은 대단했습니다. 작품 속 반전의 놀라움도 있었지만, 단 12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든 작품이 개봉 첫 주 만에 제작비 이상의 수익을 벌어들인 것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1억 달러가 넘는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제작비의 100배가 넘는 수익. 제임스 완 감독 역시 이 작품의 시리즈를 통해 단번에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습니다.

오늘 이야기 할 작품 <겟 아웃> 역시 유사한 행보를 보입니다. 500만 달러의 제작비로 시작한 이 작품 또한 북미 개봉 이후 첫 주 동안에만 이미 3300만 달러를 벌었고, 5월 18일을 기준으로 전 세계적으로 2억 1400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거두고 있습니다(인터넷무비 데이터베이스(IMDB)). 물론 상업적인 성공이 한 작품의 모든 것을 대변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수 억 달러가 책정된 블록버스터 작품 사이에서 저비용 고효율의 성과를 내는 작품이라면 그 작품의 강점이 무엇이기에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는지 한 번쯤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겟 아웃>은 분명히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는 작품입니다.

02.

이 작품을 제작한 블룸하우스는 <파라노말 액티비티> 시리즈, <인시디어스> 시리즈 등의 공포 영화를 세상에 내놓았던 할리우드의 제작사입니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호러 스릴러라는 장르를 표방하고 있지만, 엄밀하게 따지고 보자면 호러 장르보다는 스릴러 장르의 보편적인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크리스(다니엘 칼루야 역)의 알 수 없는 불안과 등장 인물들이 보여주는 수상한 모습, 적재적소에 배치된 사운드 효과 등의 요소들로부터 작품의 서스펜스를 획득하는 방식입니다.

일각에서는 이 작품의 내용이 신선하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시각적 클리셰(Cliché)가 두드러진다고 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클리셰와 장르의 보편적 특성은 구분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장면들은 대체적으로 특정 작품의 클리셰가 반복된 것이라기보다 본질을 보다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 장르의 보편적 특성에 충실하고 있는 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저예산 영화가 자주 이용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장르의 보편성에 기대어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여기에서 파생될 수 있는 약점들을 신선함으로 메워가는 것이죠.

03.

스릴러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작품의 후반부에 설치되는 반전 코드가 되어 버린 요즘이지만, 사실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후반부의 변조를 반전이라고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어느 시점을 지나면 예측이 가능하도록 내러티브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독 역시 관객들이 이 지점을 눈치챌 것이라고 이미 인지하고 있는 생태이며, 오히려 이 지점을 어설프게 회피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는 주인공의 친구로 등장하는 경찰 로드(릴 렐 호워리 역)가 크리스와의 통화 중에 "전부 다 최면에 걸린 거 아냐?" 라고 말하는 장면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관객들에게 직접적인 암시를 주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꽤 주효했다고 생각합니다. 감독의 이런 대담한 접근이 가능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영화의 시작부터 촘촘히 쌓아 온 복선과 암시, 근거들에 관객들이 설득되어 왔으며, 기존의 인종차별을 다룬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전개를 이 작품이 보여주고 있다는 것.

04.

이 영화의 수많은 복선과 암시들 가운데 가장 의뭉스러운 지점은 크리스와 그의 백인 여자친구 로즈(앨리슨 윌리암스 역)가 그녀의 집인 아미티지 저택을 처음 방문한 뒤 아버지 딘의 입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집을 구경시켜주던 딘은 자신의 아버지가 베를린 올림픽 예선에서 '제시 오웬스'에게 아쉽게 졌고, 그 '제시 오웬스'는 올림픽에 나가 히틀러 앞에서 당당히 백인 아리아 민족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제시 오웬스'라는 인물이 실제로 흑인이라는 것입니다(미국의 육상 경기 선수로 1936년 베를린 하계 올림픽에서 100m, 200m, 400m 계주, 멀리뛰기 종목에서 우승하여 4관왕을 차지한 인물).

결국 이것은 흑인들에 대한 딘이라는 인물의 반감을 암시하는 대목이며, 그가 자라난 아미티지 가문이 오랜 세월 동안 인종차별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음을 보여주는 지점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뒤에서 다시 한 번 언급되겠지만, 영화의 특정 시점에서 감독이 이 작품의 숨어있는 이야기를 직접 하기 이전에 영화의 시작 지점과 바로 이 지점에 이 작품의 진짜 메시지를 숨겨둔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주인공 "크리스" 영화는 그의 내면적 불안과 두려움에 주목한다.

▲ 주인공 "크리스" 영화는 그의 내면적 불안과 두려움에 주목한다. ⓒ 유니버셜픽쳐스


05.

영화 <겟 아웃>이 이전에 존재했던 인종차별 작품들과 다른 점은 물리적/외부적 폭력이나 차별에 대한 인물의 반응에 집중하기보다 피해자 개인의 내면에 더욱 몰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과 다른 피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거나 거부감을 보이는가 하면, 자신과 같은 피부색의 사람을 만나면 의식적으로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합니다.

이 영화의 오프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정 피부색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가는 차량에도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수많은 혼잣말을 되뇌는 흑인의 모습. 영화는 이런 지점들의 불편함, 당사자들의 불안한 심리를 영화의 전면에 내세웁니다. 또한, 그런 상황들을 야기하는 특정 집단의 행동이나 고정 관념에 대해서도 피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노예 거래를 연상시키는 백인들의 빙고 놀이와 같은 것.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접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기에 관객들은 긴장을 놓을 수가 없게 됩니다.

06.

표면적으로 이 영화를 이끌고 가는 소재는 위에서 언급했던 인종차별과 관련한 내용입니다. 그 외에도 주인공 크리스의 어린시절과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나 로즈라는 인물을 통해 감독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이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요소들입니다. 특히 로즈가 태어나고 자랐던 아미티지 가문의 분위기를 생각해 보면,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지점은 외부인인 크리스가 겪은 1박 2일의 사건이 아니라, 내부자로 자란 로즈의 일생에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지점의 이야기들이 탄탄하다는 점 역시 이 영화가 저예산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이유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영화라는 것은 어떤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보여주는 예술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겟아웃>의 한 장면 그들의 빙고 놀이는 결코 단순한 게임이 아니었다.

▲ 영화 <겟아웃>의 한 장면 그들의 빙고 놀이는 결코 단순한 게임이 아니었다. ⓒ 유니버셜픽쳐스


07.

영화가 끝나고 나니 오프닝에서 등장했던 한 흑인의 모습이 상당히 무거운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어두운 골목을 걸어가던 그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흰색 자동차를 느끼며 자신을 진정시키려 혼잣말을 뇌까립니다. "진정해. 그냥 가는거야…."

특정 피부색을 갖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거리를 걷는 것조차 자유로울 수 없었던 그의 불안함과 두려움. 이것은 바로 그 시대가 안고 있었던 인종차별의 폭력이 한 인간에게 심어놓은 감정의 씨앗이었고, 어쩌면 감독은 그 때부터 자라기 시작한 불안의 싹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이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종차별뿐만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의 근원에 대해 말입니다.

어쩌면 영화는 이미 시작부터 모든 것을 이야기 해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 장면에서 흑인을 따라오던 자동차와 영화의 마지막에서 "크리스"가 탈출하기 위해 올라탄 아미티지 일가의 자동차 색이 동일하게 흰색이었다는 것을 떠올려본다면 말이죠.

덧붙이는 글 브런치 계정 https://brunch.co.kr/@joyjun7 에 중복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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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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