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겟 아웃>

영화 <겟 아웃>의 포스터. 이 작품의 흥행에 대해 읽으려면 과거 복싱 영화가 유행했던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 ⓒ UPI 코리아


1910년대 미국에서는 개혁주의자들(Reformists)과 보수주의자들(Conservatives)이 정면으로 대립한다. 1차 세계 대전 직후 대규모의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유입되고, 노예 해방과 함께 시작되었던 흑인 대이주(The Great Migration)가 진행 중이었으며, 여성 운동가들이 피임 지지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인종과 젠더 그리고 계급 시스템을 개혁하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생겨난다.

반대 선상(주로 백인 남성 지배층과 기독교 단체들)에서는 여성과 유색인종이 권리와 힘을 행사할 수 없도록 가능한 모든 권력을 동원했다. 피임 지지 운동을 이끌었던 마거릿 생어는 피임이 기독교 윤리에 벗어난다는 이유로 투옥과 법정 투쟁을 반복해야 했고, 이민자들은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인종 차별로부터 방치되었다.

이러한 접점에 성행했던 영화 장르가 있다. 바로 복싱영화(Prize-fight films: 상금을 걸고 싸우는 시합을 찍은 영화들)다. 미국에서 (라스베이거스가 위치한 네바다를 제외하고) 복싱은 불법이었다. 폭력적이고 도박과 술이 오가는, 당시 미국 사회의 근간이 되었던 청교도 윤리에서 한참 벗어나는 행동들을 복싱이 도모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복싱 경기들이 영화로 만들어져 상영되고 히트를 했다. 그러나 곧 복싱 영화들은 전면 금지되고 만다. 복싱 영화의 금지에 대해, 영화학자 리 그리브슨(Lee Grieveson)은 복싱 영화들은 앞서 언급한 폭력성과 도박 때문이 아닌, 흑인의 신체적 우월성 때문에 금지되었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백인 남성과 흑인 남성의 매치로 이루어졌던 복싱에서 늘 흑인 선수가 우승했고, 이를 가감 없이 전달했던 복싱 영화들은 백인 남성(흑인 남성과 비교해서)의 신체적 열등함을 증명하는 셈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1910년대, 혹은 그 이전부터 백인들이 흑인들의 신체적 우월성을 인식하고 경계했다는 주장도 가능하게 한다.

복싱영화, 흑인, 그리고 <겟 아웃>

 영화 <겟 아웃>

<겟 아웃>은 흑인 스탠딩 코미디언 조던 필의 데뷔작인 호러 영화다. ⓒ UPI 코리아


다소 길어진 서두는 최근 개봉하여 엄청난 흥행 스코어를 내는 공포 영화 <겟 아웃>(조던 필, 2016)을 읽기 위한 불가결한 용두사미임을 고백한다. <겟 아웃>은 흑인 스탠딩 코미디언 조던 필의 데뷔작인 호러 영화다. 굳이 '흑인' 이라는 라벨을 붙이는 이유는 그가 주로 백인들의 인종 차별적 편견을 꼬집는 이른바 '인종 개그(Racial Jokes)'로 인정받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흑인 남자 친구 크리스와 교제하고 있는 백인 여성 로즈가 그를 부모님에게 인사시키기 위해 집으로 데려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여자 친구 집에 도착한 크리스는 그를 향한 마을 전체의 지나친 환대와 로즈의 부모님 집에서 일하고 있는 표정 없는 흑인 관리인들을 보고 뭔가 석연치 않음을 느낀다. 크리스는 곧 마을 사람들 전체가 건강한 흑인들의 우월한 신체를 어떻게 이용해왔는지 알게 된다.

<겟 아웃>은 흥미로운 구성이 많은 영화다. 1910년대 미국에서 가장 뜨거운 담론으로 성행했던 우생학 콘셉트를 2017년의 시선으로 부활시킴과 더불어, 앞서 언급했던 복싱 영화의 예에서 더 나아가 흑인의 신체적 우월함을 백인들의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욕망의 대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서사도 신선하지만 이를 전달하는 시각적인 배치도 뛰어나다. 가령, 오프닝 시퀀스에서 주인공인 크리스는 본인의 아파트에서 샤워를 끝내고 여자친구를 맞을 채비를 하는 중이다. 욕실 거울에 비치는 그의 토르소(상반신)는 다각적 앵글에서, 섬세한 카메라의 시선 안에 몸을 나누어서 보여주는 해부학적인 쇼트들로 '전시'된다.

카메라가 그의 몸을 충분히 훑고 나면, 로즈가 한 베이커리의 쇼케이스에 진열된 먹음직스러운 디저트들을 상기된 얼굴로 보는 쇼트로 이어진다. 이때의 카메라 위치는 빵집 쇼케이스를 서성대는 로즈를 보여주는 외부가 아닌, 진열되어 있는 디저트들을 탐닉하고 있는 그녀를 역으로 바라보는 디저트의 위치에 존재한다. 크리스를 착취적인 카메라 시선 안에 가두고 디저트를 바라보는 여자의 눈을 병치함으로써 흑인의 우월한 신체를 욕망하고 소유하려는 백인의 욕망, 즉 이 영화의 마스터 테마를 함축한 것이다.

 영화 <겟 아웃>

<겟 아웃>은 흥미로운 구성이 많은 영화다. 1910년대 미국에서 가장 핫 한 담론으로 성행 했던 우생학 콘셉트를 2017년의 시선으로 부활시킴과 더불어, 앞서 언급했던 복싱 영화의 예에서 더 나아가 흑인의 신체적 우월함을 백인들의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욕망의 대상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 UPI 코리아


<겟 아웃>의 작은 단점엔 눈 감아도 된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와 재기발랄한 연출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없지 않다. 가령, 마지막 즈음 크리스가 육탄전에서 자신의 건강한 육체로 자신을 구하는 부분이다. 이런 장치는 흑인들을 육체적 가치로만 저울질하는 백인들의 알량함을 비웃는 영화의 비판적 스탠스를 무색하게 한다. 맥가이버 정도는 아닐지라도 그가 몸이 아닌 좀 더 영리한 시도를 하는 설정은 어땠을까.

수많은 인종 영화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로, 혹은 작품성으로 영화사에 기록될 만한 수작으로 남아 있다. 아주 이르게는 무성영화 시대부터 스파이크 리의 <똑바로 살아라>(Do the right thing, 1989), <말콤 엑스>(Malcolm X, 1993) 등을 거쳐 근작인 <노예 12년>(스티브 맥퀸, 2014) 그리고 최근 개봉한 <히든 피겨스>(테오드르 멜피, 2017), <러빙>(제프 니콜스, 2017)에 이르기까지 인종 문제를 다룬 영화들은 영화사의 시작점부터 존재해 왔다.

안타까운 것은 이 수많은 인종 영화들이 많은 관객의 사랑과 평단의 인정을 받았음에도 영화가 던지는 본질적 문제들이 해결되지 못한 채 각기 다른 장르 안에서 동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2016년 트럼프 당선으로 인해 더 많은 인종 영화와 다양한 플랫폼에서의 사회운동들이 잉태될 것이다. 난 그들이 해야 할 동어반복을 기대하고 환영한다. <겟 아웃>의 작은 단점들을 눈감고 싶은 이유다.

 영화 <겟 아웃>

작은 단점들이 있으나, 그 단점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싶어지게 만드는 영화이다. ⓒ UPI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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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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