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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구안
 강구안
ⓒ 강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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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로 꼽히는 통영의 강구안항이 파괴될 위협에 처해 있다. 414억의 예산으로 마산지방 해양수산청이 설계하고 경남 통영시가 시행하는 '통영항 강구안 친수 시설 공사' 때문이다. 마산 해수청과 통영시는 오는 6월부터 강구안 어항에서 어선들을 쫓아낸 뒤 '관광미항'을 만드는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마산해수청은 "강구안이 미항이 아니라서 관광객 집객에 역할을 못하기 때문에" 공사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강구안에는 500여 척 어선이 무질서하게 정박해 관광미항 이미지를 훼손하고 있으므로 어선들을 없애고 친수관광 미항으로 기능을 전환, 관광객에게 새로운 문화·휴식공간을 제공해 관광객들을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참으로 황당한 사업이 아닐 수 없다. 어항이 어선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관광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그런데 어항에서 어선들을 쫓아내고 관광객을 위한 놀이터를 만들겠단다. 게다가 동피랑 벽화마을 아래 중앙시장에 인접한 강구안 일대는 사람에 치일 정도로 인파가 몰려들고 도로가 주차장이 될 정도로 관광객이 많아서 문제다. 그런데 관광객 집객이 얼마나 더 필요하단 말인가. 공사가 시작되면 강구안 어항에서는 어선들이 사라진다. 어선들이 정박하던 자리에는 수변데크길과 수변무대, 분수대 등이 들어선다. 이게 어항인가.

또 바다에서 막 잡아 온 수산물을 바로 앞의 중앙시장 상인들에게 공급하던 선상 파시(어항에서 열리는 생선 시장)의 풍경도 사라지게 된다. 500여 척이나 되는 어선들이 드나들며 파시를 연출하는 역동적인 풍경은 어느 항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명물이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서는 관광 상품을 만들기 위해 오히려 어선들을 유치하려 애쓰기도 한다. 그런데 수백억 원을 들여 스스로 찾아드는 어선을 쫓아버리겠다니 참으로 기막히다.

어선들이 사라진 텅 빈 강구안 주변에 데크길 만들면 관광미항이 된다는 것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강구안이 태풍에도 안전해 다른 도시의 어선들까지 피항을 올 정도로 최고의 대피항이란 점이다. 이 공사는 대피항을 파괴하는 사업이다. 또 강구안은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이 창설한 삼도수군통제영의 8전선과 거북선이 상시 정박했던 곳이고 조선 정예 수군 3만 명이 주둔하며 나라를 지켰던 역사적 공간이기도 하다. 이런 강구안항에서 역사 흔적을 지우고 어선들을 내보낸 뒤 수변 공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사업은 그저 '관광'이란 탈을 쓰고 자행되는 토건사업일 뿐이다.

강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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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지난 3월 2일자 <한국일보>에 '어선들 쫓아내고 관광미항 만든다는 마산해수청' 제목의 기고문(관련기사)을 쓴 뒤 마산 해수청은 해명 자료를 낸 바 있다. 뒤이어 시사주간지 <시사인>(관련기사)과 MBC뉴스(관련기사)를 통해 강구안 공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도가 나갔다. 하지만 마산해수청과 통영시는 요지부동으로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기관이 외부 필자의 기고문에 해명 자료까지 내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필자의 기고문은 통영 최고의 어항인 강구안에서 어선들을 쫓아내고 유원지를 만들려는 마산 해수청의 강구안 개발 사업이 온당치 않으니 중단해야 마땅하다는 내용이었다. 필자의 주장에 대해 마산 해수청의 해명 요지는 크게 세 가지다. ▲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쳤다 ▲ 강구안의 협소한 주차장 등으로 인해 교통 불편이 야기되니 친수문화공간 조성 사업이 필요하다 ▲ 강구안 어선들을 이전할 부두시설이 완료 됐으니 문제가 없다.

"충분히 설명했다"? 사업 자체를 모르는 어민들도

해수청 해명자료
 해수청 해명자료
ⓒ 해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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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해수청은 어선들을 쫓아낸 텅 빈 바다에 수변무대나 수변데크 길이나 분수대를 건설하는 공사가 과연 관광미항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러므로 해수청이 내놓은 해명에 대해서만 반박하고자 한다. 먼저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쳤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통영 사는 필자가 직접 만나본 강구안 중앙시장 상인들은 전부 어선을 쫓아내는 사업에 격한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어떤 상인은 공사 후에 다시 어선 정박이 가능하다고 잘못 알고 있기도 했다. 상인들에게 수산물을 팔러 온 어선 선장들은 사업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이것이 충분한 의견 수렴이란 말인가. 마산 해수청이 직접 현장 조사를 해본 적이 있는지 되묻고 싶다.

또 강구안의 협소한 주차장으로 인해 교통 불편이 야기돼 수변 공사가 필요하다는 해명은 더욱 어처구니가 없다. 강구안의 교통 혼잡은 북통영IC로 분산돼야 할 차량이 통영IC로만 몰리는 것이 주된 원인이다. 주차장이 사라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북통영IC로의 차량 분산이 더 큰 해법이다. 시장 앞에 주차장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수변 공원을 만들면서 중앙시장 주차장을 없애버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나마 협소한 주차장이라도 있으면 관광객들은 시장에서 물건을 사서 차에 싣고 간다. 그런데 주차장이 없어지면 시장에 오는 관광객들도 줄어들 것이고 온 사람들도 차량까지 이동거리가 멀어 많은 물건을 사지 않을 것이다. 교통 혼잡은 해결하지 못하면서 시장의 침체만 가져올 것이다. 혈세를 써서 시장을 죽이는 것이 무슨 관광 미항 사업이란 말인가? 마산 해수청은 책임 있는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생선시장도, 천혜의 피항지도 잃게 되나

강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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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강구안 어선들을 이전할 부두시설이 완료 됐으니 문제가 없다"는 해명은 무책임하다. 마산 해수청이 자기 조직의 존립 목적에 근본적으로 반하는 해명이기 때문이다. 호리병처럼 좁은 목에 사면이 육지로 둘러싸인 강구안 어항은 어떤 태풍에도 안전한 최고의 대피항이다. 그래서 태풍 소식이 있으면 강구안 바다는 온갖 선박들로 꽉 들어찬다. 그만큼 안전하기 때문이다. 태풍 때는 심지어 멀리 삼천포의 어선들까지 피항을 온다. 그런데 이런 최고의 대피항에서 어선들을 몰아낸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런 안전한 어항은 수천억의 예산을 들여서도 다시 만들기 어렵다. 그토록 소중한 어항 기능을 없애겠다니 황당할 뿐이다.

통영시 한 관계자는 <시사인>과 인터뷰에서 "강구안이 천혜의 피항지인 것은 맞지만, 통영 전체가 지형상 태풍으로부터 안전하다"며 대체 어항으로 옮겨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어선들을 이전시키려는 대체 어항은 태풍으로부터 결코 강구안만큼 안전하지 못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큰 태풍에 대체 어항으로 가 있던 어선들이 파손되기라도 한다면 큰 일이다. 어민들의 생존을 보호하는 일이 존립 근거인 해수청에 재고를 요청한다.

통영시의 변명 또한 탐탁치 않다. 통영시는 어선들이 수질오염의 주범이라서 쫓아내는 것이라 한다. 하지만 강구안은 최근 6년 간 수질검사에서 단 한 번만 3등급을 받았을 뿐 늘 1·2등급을 받은 깨끗한 어항이다. 설령 오염이 문제라면 수질 정화대책을 세우면 되지 어선들은 왜 쫓아내겠다는 것인가. 마산 해수청과 통영시는 어선들을 몰아내고 어민들과 시장 상인들을 사지로 내모는 '통영항 강구안 친수 시설 공사'를 즉각 중단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마산해수청과 통영시청이 해야 할 일이다.

강구안 설계도
 강구안 설계도
ⓒ 해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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