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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 법률은 상위 법률을 위반할 수 없다. 이것은 법의 대원칙이다. 상위법에서 정하지 않은 것을 하위법이 정할 수는 있다. 하지만, 상위법을 구체화시키는 수준에서 그쳐야지, 상위법의 정신이나 원칙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런 것이 한미관계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주한미군 주둔비용과 관련해서는 특히 그렇다.

"사드 비용을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는 4월 27일·28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대통령 안보보좌관이나 상원 군사위원장 등의 발언에 의해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발언 직후인 4월 30일,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의 전화 통화에서 "동맹국들의 비용 분담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여망을 염두에 두고 일반적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며 논란 확산을 차단했다. 이 통화는 백악관 측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트럼프와 같은 공화당 소속인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도 이번 달 19일 홍석현 대통령특사와의 대화에서 "사드 비용은 우리가 내는 것"이라고 다시 확인해주었다. 백악관이나 상원에서 이 정도 발언이 나왔으면, 사드 비용에 관한 트럼프의 발언은 사실상 묻힌 셈이다.

"사드 비용 한국 부담" 트럼프 발언 왜?

하지만, 트럼프는 처음부터 사드 비용을 겨냥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대통령의 의중을 충실히 대변하는 국가안보보좌관이 트럼프 발언 직후에 통화를 자청해서 트럼프의 발언을 뒤집은 것만 봐도 그렇다.

트럼프의 진짜 의도는 맥매스터 보좌관의 발언에 묻어 있다. 맥매스터는 트럼프의 발언이 나온 배경을 두고 "동맹국들의 비용 분담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여망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미군 주둔비용을 염두에 두고 사드 비용 발언이 나왔다고 인정한 것이다. 이것을 보면,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한국 측에 보다 더 많이 떠넘길 목적으로 일부러 사드 비용 문제를 화두로 삼았을 가능성이 높다.  

도널드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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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주한미군 주둔비용 문제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은, 그동안 여러 루트를 통해 이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사실에서 알 수 있다.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기간인 2015년 7월 유세에서 트럼프는 "한국은 미국과의 무역을 통해 수십억 달러를 벌어가면서, 무슨 문제만 생기면 우리 군대가 해결해줘야 한다"는 과장된 발언을 내놓았다. 한국이 한미동맹에서 대단한 금전적 이익을 챙기는 것 같은 인상을 풍긴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운을 뗀 트럼프는 그 후 주둔비용 문제를 직설적으로 제기했다. 8월 유세에서는 "나는 그동안 사업을 위해 삼성·LG 등 한국산 TV 4천 대를 구입했다"고 공치사를 한 뒤 "우리가 미치광이와 한국 사이의 경계에 2만 8천 명의 미군을 두고 있는데, 한국은 푼돈만 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1990년대부터 한국이 분담하는 주한미군 주둔비용이 너무 적다는 주장이었다.

미국 언론들이 그게 아니라고 말해줘도 트럼프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푼돈이 아니다"라는 지적이 언론에서 계속 나와도,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트럼프는 계속해서 '푼돈론'을 주장했다. 2015년 10월 12일 유세에서는 한국계 미국인 조지프 최가 "한국이 주한미군에 아무것도 부담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데, 사실과 다르다"라고 말하자, 트럼프는 "너, 한국 사람 맞지?"라는 엉뚱한 말로 주의를 돌리려 했다. 

주한 미군 주둔 비용에 대한 트럼프의 집착

주둔비용에 대한 트럼프의 집착은 한국어로도 번역된 <불구가 된 미국>이라는 저서에서도 드러난다. 앞으로 미국이 나아갈 길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정리한 이 책의 제4장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독일을 지켜준다. 일본을 지켜준다. 한국을 지켜준다. 이 나라들은 강하고 부유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받는 것이 없다. 이 모든 상황을 바꿀 때가 되었다."

이처럼 트럼프는 주한미군 주둔비용에 집착하고 있으며 이에 관한 현재의 상황을 바꾸려 하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을 바꿀 때가 되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트럼프가 처음부터 주둔비용을 한국 측에 더 많이 떠넘길 목적으로 사드 비용 문제를 꺼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른바 성동격서의 전술을 구사한 것이다.

이렇게 미국 대통령까지 나서서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주한미군 주둔비용 문제. 이 문제는 중대한 결함을 담고 있다. 앞서 언급한 상위법·하위법의 모순이 이 속에 들어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주둔비용에 관한 한·미 간의 조약에는 하위 조약이 상위 조약을 위반하는 모순이 담겨 있다. 조약도 법률의 효력을 가지므로, 이 같은 모순은 상·하위 법률 간의 모순과 같은 것이다.

한미관계를 규정하는 최고 규범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10월 1일 워싱턴에서 변영태 외무장관과 덜레스 국무장관에 의해 체결된 이 조약은 이듬해 1월 양국 의회의 승인을 받았다. 이로써 이 조약은 두 나라의 법률 체계 속에 포용 되었다. 이렇게 법적 효력을 갖게 된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주한미군 주둔비용과 관련된 규정이 있다.

"상호적 합의에 의하여, 미합중국의 육군·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 영토 내부와 그 부근에 배치할 권리를 대한민국은 허용하고 미합중국은 수용한다."

제4조에 의해 미국은 자국 군대를 한국 영토에 배치할 권리를 갖게 되었다. 미군을 한국 토지에 배치하는 것이 미국의 권리이므로,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토지 사용에 관한 대가를 받는 것은 힘들어졌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조인식.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의 전쟁기념관에서 찍은 사진.
 한미상호방위조약 조인식.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의 전쟁기념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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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를 구체화시킨 하위 조약이 이른바 소파협정(SOFA, 주둔군 지위협정·한미행정협정)이다. 소파협정의 정식 명칭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 및 구역과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이다. 소파협정은 한국에서는 국회의 승인을 받았고, 미국에서는 대통령의 승인을 받았다. 미국에서는, 국회의 승인이 아닌 행정부 수장의 승인을 받은 조약이라 하여 행정협정이라 부른다. 

정식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파협정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를 구체화시킨 조약이다. 그 같은 소파협정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것이 협정 제5조 1항이다.  

"합중국은 제2항에 규정된 바에 따라 대한민국이 부담하는 경비를 제외하고, 이 협정의 유효기간 동안에 대한민국에 부담을 지우지 않으며 합중국 군대의 유지에 따르는 모든 경비를 부담하기로 합의한다."

소파협정, 주둔 경비는 미국이 부담하도록 명시

주한미군 주둔에 관한 경비는 미국이 부담하는 게 원칙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에 부담을 지우지 않겠다고 했다. 제5조 1항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를 구체화시킨 것이므로, 토지 사용을 제외한 나머지 문제에서는 미국이 주둔비용을 부담하는 게 당연하다. 한국은 토지를 무상으로 빌려주는 것 외에는 의무를 지지 않는다.

협정 제5조 1항에서는 '2항에 규정된 경우만 제외하고 미국이 주둔비용을 부담한다'고 했다. 여기서 말한 '2항에 규정된 경우'란 것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에서 말한 경우를 말한다. 토지만큼은 미국이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제5조 2항은 아래와 같다.

"대한민국은 본 협정의 유효기간 동안에 제2조 및 제3조에 규정된 비행장과 항구에 있는 시설과 모든 설비, 구역 및 통행권을 합중국에 부담을 지우지 않는 방법으로 제공하고, 상당한 경우에는 그들의 소유자와 제공자에게 보상하기로 한다."

제5조 2항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를 구체화시킨 것이다. 미군은 토지 사용에 관한 비용을 내지 않는 게 원칙이라는 제4조의 원칙을 재확인한 조항이다. 미군이 사용할 토지가 민간인 소유라면, 제5조 2항에 따라 한국 정부가 민간인에게 보상금을 지불해야 한다. 이런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 경우에는 미국이 주둔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게 제5조 1항의 정신이다.

이처럼 소파협정 제5조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잘 부합한다. 하위법이 상위법을 잘 준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다음부터가 문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하위법인 소파협정은 상위법인 상호방위조약을 잘 준수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소파협정의 하위법 역시 소파협정을 잘 준수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상위법인 소파협정의 원칙 무시한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

소파협정 제5조를 구체화시킨 조약이 이른바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이다. 1991년 제1차로 체결된 특별협정은 2014년 2월 2일에 제9차로 체결되었다. 이 특별협정 역시 한국 국회를 통과했다. 한국의 법률 체계에 흡수된 것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상위법인 소파협정이 대통령의 승인만으로 이루어졌으므로 이 역시 의회를 통과할 필요는 없다.

방위비 특별협정 즉 주둔비용 특별협정의 정식 명칭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 및 구역과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 제5조에 대한 특별조치에 관한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협정'이다. 줄여서 말하면 '소파협정 제5조에 대한 특별조치에 관한 한·미 협정'이다.

방위비 특별협정은 소파협정의 특별법이므로 소파협정의 정신과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소파협정의 정신과 원칙을 깨고 있다. 특별협정 제1조는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은 이 협정의 유효기간 동안에 소파협정 제5조에 관한 특별조치로서 주한미군의 주둔에 관련되는 경비의 일부를 부담한다. 대한민국이 지원해야 할 몫은 인건비, 군수비용 그리고 대한민국이 지원하는 건설 항목으로 구성된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 및 소파협정 제5조에 따르면, 한국은 토지를 무상으로 빌려줄 의무만 갖는다. 그 외의 비용은 미국이 대야 한다. 그런데 이 원칙은 하위 조약 즉 하위법에 의해 깨졌다.

방위비 특별협정 제1조에서는 한국이 토지를 무상으로 대여해야 할 뿐 아니라 인건비·군수비용·건설비용까지 분담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상위법에서는 미국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해놓고, 하위법에서는 한국도 분담해야 한다고 해놓고 있는 것이다. 상위법의 원칙과 전혀 다른 원칙을 하위법에서 정해 놓았으니, 법의 원칙을 깨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법적 모순이라는 지적은 국제법 학계에서도 나왔다. 대한국제법학회 회장을 지낸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1997년 발표한 '주한미군 방위비의 국제법적 근거와 적정성'이란 논문에서 특별협정을 두고 "이 협정은 행정협정(소파협정) 제5조 1항에 정면으로 모순되며, 행정협정에 대한 개악이다"라고 평가했다.

미국이 상위법인 소파협정을 바꾸지 못하고 하위법인 특별협정을 통해 소파협정을 뒤집는 이유가 있다.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한국에 떠넘길 만한 마땅한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뚜렷한 명분이 있다면, 소파협정부터 먼저 개정했을 것이다. 그런 게 없기 때문에 하위법으로 상위법을 바꾸는 변칙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에 관해 이장희 교수는 위의 논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방위비 분담은 순수하게 미국의 국내 재정적자 해소에 연유한 것이고, 남북한 긴장에 따른 안보와는 전혀 관계없는 탈냉전 시기에 시작된 것이다."

미·소 냉전 구도가 사실상 와해된 뒤인 1991년부터 미국이 방위비 분담을 요구한 것은, 한반도 안보 상황이 긴박해져서가 아니라 미국의 재정문제를 해소할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그 후 북·미 핵 문제로 동북아 위기가 가중되기는 했지만, 동북아에서는 중동과 같은 전쟁 상황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 북·미가 내뱉는 말들을 보면 당장에라도 전쟁이 날 것 같지만, 두 나라가 하는 행동들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는 미군이 실제로 군사행동을 해야 할 이유가 별로 없다.

한국에 방위비 분담 요구할 명분 없어

그렇기 때문에 한국을 상대로 방위비 분담을 요구할 명분도 전혀 없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고 있으므로, 미국의 행동은 명분이 없는 것이다. 명분이 없는 일을 하다 보니, 상위법은 그냥 두고 하위법을 통해 조용히 일을 진행하는 것이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의 경우, 한국 측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도 문제고 그 액수가 계속 증가 추세에 있다는 것도 문제지만, 이처럼 법적 근거가 취약하다는 것도 중대한 문제다. 법과 조약의 원칙을 어겨 가면서까지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한국에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2014년에 체결된 제9차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은 5년간 유효하다. 따라서 2019년 2월 2일 이전에 개정되어야 한다. 트럼프 임기 내에 개정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이전에 트럼프가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트럼프는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한국이 당연히 내야 하는 것처럼 말한다. 한국으로부터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이 있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그런 돈은 전혀 없다. 있다면, 미국이 당연히 내야 할 돈뿐이다.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

트럼프는 저서에서 "이 모든 상황을 바꿀 때가 되었다"고 했다. 지극히 지당한 말이다. 미국이 훨씬 더 많이 내는 쪽으로 이 모든 상황을 바꿀 때가 되었다.


태그:#주한미군 방위비, #주한미군 주둔비용, #소파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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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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