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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를 지나 20대 중반이 되기까지 꿈을 따라 성실히 살았다. 중·고교 때는 대학 입학을 위해 집과 학원을 오가며 6년을 보냈고, 대학 때는 취업하고 싶어 자격증을 따고, 외국어 공부를 하며 4년 반을 보냈다. 사회가 정해준 꿈과 내 꿈은 다르지 않았다.

2010년, 대학 졸업 후 취업이 되지 않아 1년 반을 백수로 지냈다. 공연 기획을 하고 싶어 수십 장의 이력서를 썼지만, 인턴만 딱 한 번 했지 정규직은 되지 못했다. 대학 4년 내내 가장 들어가고 싶던 회사에도 지원했지만 서류 통과도 못했다. 더는 공연 기획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뭘 하고 싶은지, 내가 잘하는 일이 뭔지 파악하기엔 너무 늦었다. 오래 백수로 있으면 취업이 어려워지니 가능한 아무 일이나 빨리 시작하고 싶었다. 취업이 꿈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급히 이력서를 썼다. 항공사, 영어학원, 출판사, 전자제품회사 등 많은 곳의 문을 두드렸지만, 단기 인턴만 했다.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준다던 고용주들은 인턴 취업 한 달 만에 말을 바꿨다. 인턴제도를 악용한 고용주도 문제였지만, 불안한 심리 상태로 일해 실수를 연발한 나도 문제였다. 계속되는 취업 실패에 기운이 다해 이력서 한 장 못 쓴 채 반 년 동안 심한 우울증과 강박 증세를 알았다.

불면증 때문에 새벽 3시에 홀로 깨어 외로움과 불안한 미래 때문에 너무 울어 눈알이 아팠다. 하루에 수십 번씩 자살을 떠올렸다. 인생에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고, 무얼 위해 매일 무얼 해야 할지는 더욱 막막했다. 이 고통이 언제 끝날지 몰라 더 힘들었다. 밥만 축내며 가족에게 폐만 끼치는 인생을 살았다.

우울증은 부모님의 건물을 빌려 게스트하우스 사업을 시작한 후 미미해졌다. 일이 좋고 싫고를 떠나 성인이 돼 내 입에 스스로 풀칠한다는 성취감은 대단했다. 부모님께 한 달에 수백만 원을 드릴 때는 자부심이 치솟았다. 그런데도 어떤 목적도, 방향도 없이 지낸 1년 반의 시간이 남긴 트라우마는 없어지지 않았다. 게스트하우스 일을 오래 하니 사람만나는 재미는 줄고 돈에 목을 매게 됐다. 가난한 배낭 여행객보다는 1박에 10만 원 내는 가족 단위 손님 위주로 사업을 운영했다. 3년 차가 되니 일이 예전처럼 즐겁지 않았지만, 방황하기 두려워 열심히 돈을 벌었다.

그러던 차에 세월호 참사가 발발하고, 핀란드에서 아나키스트를 만나며 대안적인 삶에 눈을 뜨게 됐다. 녹색당에 가입하고, 유기견을 돌보고, 세월호 유가족을 도우며 내 삶의 새로운 방향을 잡은 줄 알았다. 약자와 연대하는 삶을 배우고, 돌아오면 시민단체 활동가가 되겠다는 목적을 세우고 여행을 떠났다. 지속가능한 삶, 대안적인 삶을 탐구한 여행을 주제로 책도 내겠다는 결심도 했다. 거절하긴 했지만,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도 받았다. 남들에게 말하기에 그럴싸하고, 명분도확실한 목표였다.

그런데 가끔 '정말 대안적으로 살고 싶은 거야? 확실해? 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은 행정 업무도 많던데 엑셀도 모르면서 할 수 있을까? 남들이 안하는 특이한 주제로 여행해서 유명해지고 싶은거 아냐?'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페루와 쿠바를 여행하며 지속가능한 삶을 찾는 여행을 잠깐 쉬고, 경치 좋은 곳을 찾아다니는 일반적인 관광을 하며 스스로 물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뭘까. 내가 두려워하는 것을 뭘까. 여행을 통해 얻고 싶은 건 뭘 까. 30살의 자아 찾기 여행이 시작됐다.

가만 보니 나는 아직도 7년 전 방황하던 시절의 트라우마에 갇혀 있다. 꿈 없이 방황하는 시간을 감당할 자신은 없고, 돈만 바라보고 했던 게스트하우스 일도 계속하기 버거워 대안적인 삶을 탐구하고 전업 시민단체 활동가로 살고 싶다는 목표를 성급히 세우고 여행을 떠났다. 대안적인 삶을 탐구하는 여행은 특이하고 남들 보기에도 그럴싸 했다. 어설픈 확신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손발이 저리며 가슴이 답답했다. 문득 은유 작가의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에서 읽었던 문장이 떠올랐다. 

"근육이 튼튼해지고 체력이 길러지면 삶의 어느 고비에서도 성큼성큼문제 안으로 들어가는 궁극적인 자유를 누리게 된다. 그런데 문제를 회피하고 도망가면 걸린 데서 또 걸린다. 살다 보니 그랬다."

정신이 들었다. 삶의 문제를 정면 돌파하기 위해 어설프게 세운 듯한 지속가능 한 삶을 위한 여행이란 목표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가는 데로 방황하기로 했다. 불안의 한가운데로 첨벙 들어가기로 한 셈이다. 방황해도 괜찮으니 거창한 목표나 계획없이, 특이하게 여행하며 유명해지고 싶다는 욕망도 접고 여행하고 싶다.

한국에 돌아가 시민 단체 활동가가 되겠다느니, 공동체에 살겠다느니하는 굳은 결심도 포기했다. 한국에 돌아가 뭘 할지 고민하고, 대안적인삶을 살아 내고야 말겠다는 식의 비장한 태도가 여행을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놀라움의 시간이 아닌, 의무적으로 해내야 하는 숙제로 만들었다. 단, 내 여행을 잊지 않고공유하기 위해 글만은 꾸준히 쓰고 싶다.

지금 당장은 미국 미주리 주의 공동체 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중이다. 뉴욕에서는 환경 운동가를 만나기로 했기에 당분간은 지속가능성 테마 여행을 지속하려 한다. 앞으로는 여행의 목표를 한정하지 않고 또 다른 욕망을 따라 세계 최고 아이스크림과 피자를 배불리 먹기 위해 이탈리아에도 가보고, 오로라를 보기 위해 아이슬란드에도 가고 싶다.

이제 여행 4개월째, 돈관리만 잘한다면 아직 8개월 정도 더 여행할 수 있다. 지속가능한 삶이란 환경친화적 삶, 대안적 삶도 맞지만 여러 가지 욕망과 부정적 감정을 다스리며 건강하게 사는 것도 의미한다. 방황이 준 불안함, 초조함이 내 여행과 인생을 망치도록 둘 순 없다. 욕망을 따라 '성큼성큼 문제 안으로 들어가 궁극적인 자유를 누려' 보자. 방황, 너까지 것 별거 아니야.


태그:#세계일주, #청춘, #방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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