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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리모델링 공사중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 ‘꿀잠’ 현장에 자원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 이희훈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장을 지낸 김소연 꿀잠 운영위원장은1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리모델링 공사중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 ‘꿀잠’ 현장에서 취재기자에게 공사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 이희훈
1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리모델링 공사중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 ‘꿀잠’ 현장에 자원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 이희훈
사실 간단히 취재하고 갈 요량이었다.

1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의 허름한 4층짜리 다세대주택을 찾았다. 리모델링 공사를 앞두고 내부 철거 작업이 한창이었다. 벽과 기둥만 앙상하게 남은 1층에서 작업자들이 발판이나 '아시바'(높은 곳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임시로 만든 구조물을 뜻하는 건설 현장 은어)에 올라 낑낑대며 벽지와 페인트를 긁어내고 있었다.

아는 얼굴이 있었다. 인사를 했더니, 예상치 못한 질문이 들어왔다.  

"일하러 오셨어요?"
"취재 하러..."
"일도 해봐야, 기사도 잘 쓰죠."
"아..."

줄행랑을 칠까. '기레기' 소리를 듣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순순히 파란색 작업복을 입었다. 손에 스크레이퍼(긁기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구로, 건설 현장에서는 '스크래퍼'로 불린다)를 쥐었다.

발판에 올라, 벽을 긁었다. 여러 겹의 벽지, 페인트, 시멘트가 들러붙어 있었다. 지은 지 25년 된 건물이니, 수많은 세입자가 벽지에 벽지를 덧댔을 것이다. 힘을 줘 긁어내니, 그렇게 세월이 떨어져 나왔다.

벽이나 천장 작업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무척 힘든 일이라는 것을. 10분 동안 힘을 주며 벽지와 페인트를 긁어냈더니, 팔이 아리고 온몸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천장 작업할 때는 벽지·페인트·시멘트 가루가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무보수 노가다에도 웃는 사람들
1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리모델링 공사중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 ‘꿀잠’ 현장에 자원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 이희훈
1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리모델링 공사중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 ‘꿀잠’ 현장에 자원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 이희훈
1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리모델링 공사중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 ‘꿀잠’ 현장에 자원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 이희훈
"힘들지 않으세요?"라는 기자의 물음에, 작업자들은 끙끙거리면서도 웃음기를 감추지 못했다. 지난달 24일 첫 삽을 뜬 후, 거의 매일 상주하고 있는 작업부반장 신유아 문화연대 활동가는 "스크래퍼는 며칠 전에 장만했어요. 그 전에는 솔로 벽을 긁어냈어요. 기자님은 때를 잘 맞춰 오신 거예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며칠 전에는 교통사고 난 사람, 팔이 골절된 사람, 손목 인대가 파열된 사람, 손목 힘줄이 파열된 사람들이 모여 폐자재 치우는 일을 했어요. 노가다 재활치료방법이죠. 하하하."

증상이 다소 과장됐다지만, 몸을 아끼지 않는 대단한 열정인 셈이다.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바쁜 일정에도 오전에 짬을 내 작업복을 입고 땀을 흘렸다. "힘든 일이지만, 벽지가 쭉 뜯겨 나올 때 기분이 좋지 않아요?"라며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작업자들의 정체는 노동자, 예술가, 여러 단체 활동가들이다. 다들 돈을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모였다. 무보수 노가다(막노동)라니,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곳은 비정규 노동자의 집 '꿀잠' 리모델링 현장이다. 오는 6월 말, 문을 연다. 사단법인 꿀잠 쪽은 첫 삽을 뜨고 두 달 만에 리모델링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공기를 한 달가량 앞당긴 것이다. 도대체 꿀잠이 뭐기에 많은 사람들이 많은 땀과 열정을 쏟고 있는 걸까.

수많은 노동자·시민의 후원이 기적을 만들다
1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리모델링 공사중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 ‘꿀잠’ 현장에 자원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 이희훈
1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리모델링 공사중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 ‘꿀잠’ 현장에 자원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 이희훈
1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리모델링 공사중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 ‘꿀잠’ 현장에 자원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 이희훈
비정규 노동자의 집 아이디어가 나온 것은 지난 2015년 7월의 일이다.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투쟁 10주년 토론회 때, 이곳 노동자들이 처음 제안했다. 비수도권 지역의 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이 큰 지지를 보냈다. 대전에 사는 콜트콜택 해고노동자 김경봉씨의 말이다.

"요새 주중에는 자유한국당사 앞 천막농성장에서 지냅니다. 사우나 한번 가면 돈이 드니까, 밤 11시 넘어 빌딩 화장실에서 씻어요. 경비 아저씨한테 걸리면 혼나죠. 며칠 못 씻을 때도 많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쉴 수 있고 마음도 나눌 수 있는 꿀잠이 하루빨리 만들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꿀잠 건립은 2015년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소식을 듣고 많은 노동자와 시민들이 후원금을 보내왔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과 문정현 신부는 지난해 7월 새김판·붓글씨 전시회를 열어 얻은 수익금을 모두 꿀잠에 내놓았다. 같은 해 9월에는 10개 매체 20여 명의 기자와 예술가들이 비정규직 특별잡지 <꿀잠> 2만 부를 팔아, 그 수익금을 보내왔다. 기자 역시 <꿀잠> 제작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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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6억4000만 원이 모였다. 사단법인 꿀잠은 지난 3월 11억 원짜리 다세대 주택을 매입했다. 이후 이윤하·정기황 건축가가 리모델링 계획을 세웠고, 노동자·예술가·활동가·대학생들이 기술과 시간을 보탰거나 보탤 예정이다. 명숙 활동가의 말이다.

"돈이 다 모이지 않은 상태에서 계약을 했어요. 사실 걱정이 많았어요. 하지만 얼른 공사를 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나 시민들이 꿀잠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많은 분들이 힘을 보태줘서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어요. 참 뿌듯하죠."

현재 세입자가 살고 있는 2, 3층을 제외한 지하, 1층, 4층, 옥탑이 꿀잠 공간으로 사용된다. 지하는 다목적홀로 전시, 공연, 교육 공간으로 활용되고, 1층은 카페, 식당, 공용주방, 빨래방, 장애인 쉼터 등으로 꾸며진다. 4층과 옥탑은 20여 명이 쉴 수 있는 숙소와 공용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빚 6억' 꿀잠, 10년 뒤에도 그 자리에 서 있을까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장을 지낸 김소연 꿀잠 운영위원장은1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리모델링 공사중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 ‘꿀잠’ 현장에서 취재기자에게 공사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 이희훈
꿀잠은 한 달 뒤 문을 열지만, 꿀잠이 지속적으로 운영될지는 시민들의 관심과 후원에 달렸다.

건물 매입비에 각종 세금과 최소의 리모델링 비용까지 합한 꿀잠 건립 비용은 13억여 원에 달한다. 대출 3억 원과 내년 계약이 만료되는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임대보증금 등을 포함하면 아직 6억 원가량 모자란 상황이다. 무료로 운영되는 꿀잠 운영비도 매달 필요하다.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장을 지낸 김소연 꿀잠 운영위원장은 "비정규 노동자의 집이라는 꿈이 이렇게 빨리 이뤄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다시 한번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꿀잠은 5년 뒤, 10년 뒤에도 그 자리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맞이할 수 있을까.

기자는 1시간가량 함께 땀 흘린 후, 후원을 약속했다. 꿀잠에 뜻을 함께하고 싶다면, 인터넷(http://cool-jam.kr)과 전화(02-856-0611)로 후원할 수 있다.
태그:#비정규 노동자의 집 꿀잠, #꿀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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