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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친환경생태농업은 어떻게 해서 시작되었고, 10년간 지켜질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노 전 대통령 서거 8주기(23일)를 앞두고, 올해로 10년째 맞는 봉하마을 생태농업이 새삼 관심을 끈다. 이는 농업회사법인 ㈜봉하마을 김정호 대표가 펴낸 책 <바보 농부 바보 노무현>에 잘 담겨 있다.

노무현정부 때 대통령 기록관리비서관을 지낸 그가 '봉하 10년의 기록'을 정리해 놓은 것이다. 그는 2008년 2월 25일 노 전 대통령과 함께 봉하로 내려와 친환경생태농업을 시작했고, 노 전 대통령의 못다 이룬 꿈을 묵묵히 이어가고 있다.

영농법인 '봉하마을' 김정호 대표.
 영농법인 '봉하마을' 김정호 대표.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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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농업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고향으로 퇴임한 노 대통령은 처음에 쓰레기를 줍거나 화포천을 둘러보는 등 마을 가꾸기에 나섰고,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만나 인사하며 지냈다.

비서진들이 모여 매일 아침마다 그날의 일정을 공유하고 현안에 대한 보고와 논의를 하던 때였다. 김정호 대표는 "2008년 이른 봄날, 조회시간에 내 차례가 되어 조금 뜸을 들이다가 용기를 냈고, 그동안 가슴에 품었던 친환경 농사에 대한 의견을 고백하듯 털어놓았다"고 했다.

"생태마을 가꾸기의 핵심은 마을 주민들의 주업인 친환경농사라 할 수 있다. 친환경 벼농사를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1년 뒤에나 가능하다. 비록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어차피 해야 한다면 미루지 않는 게 좋겠다."

김 대표는 "대통령은 가만히 듣기만 했다. 다른 비서들은 수긍하는 표정이기는 했지만 누구도 선뜻 입을 떼지 못했다"며 "친환경 농사의 필요성이야 공감하지만 아무런 준비가 안된 상황에서 답이 없었기 때문"이라 했다.

김 대표는 "잠시 눈을 감고 숙고하던 대통령이 눈을 떴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해보자는 승낙과 결의의 표시였다"고 술회했다. 그래서 친환경 벼농사의 물꼬가 터졌던 것이다.

그는 "대통령에게 논은 단순히 쌀만 생산하는 농장이 아니라 자연학습장이자 놀이터였다"고, "대통령은 이를 기반으로 자연생태계와 지역공동체를 되살리고자 했다"고 전했다.

"대통령은 봉하마을 생태농업의 성공이 촉매가 되어 논 습지의 다양한 사회적 기능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국민들이 이를 보호하고 지원하게 되길 원했다. 대통령은 인간과 자연, 도시와 농촌의 상호의존관계를 존중하고 배려하자고 했다. … 논도 습지다, 생태계를 살리는 친환경 유기농업을 하자."

그래서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에 '오리'가 농사를 짓도록 한 것이다. 이른바 '오리농법', '일꾼오리'였던 것이다. 노 대통령을 비롯한 봉하 사람들은 앞서 오리농법을 했던 진영읍 방동마을과 홍성 주형로 선생을 찾아가거나 초청해 배웠다.

"대통령이 농민들에게 친환경농업을 강권하다시피 한 이유는 친환경 고품질 쌀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수입쌀이 완전 개방되는 2014년 이후엔 벼농사가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그라모 자네 논은 내가 하지"

'봉하마을 친환경농업생산단지 추진위'가 만들어질 무렵 재미나는 일화도 있었고, 모판을 옮길 때도 그랬다.

"매일 아침마다 일꾼오리를 풀어주고 저녁에는 막사로 거둬들이는 수고가 필수였다. 설명을 듣고 있던 이기우씨가 한 마디 툭 던졌다. '오리농법이 그리 까다로워가 다리가 불편한 내가 몬하긋따.' 대통령이 뒤를 돌아보며 이기우씨의 말을 받았다. '그라믄, 자네 논은 내가 하지. 아침에 오리를 풀어주고 저녁에 가두기만 하면 된다 아이가? 내가 운동 삼아 해주꾸마.' 논두렁에 한 바탕 웃음소리가 퍼져나갔다.

대통령이 나타나자 모상자를 들어 옮기던 일꾼들의 분위기가 확 달아올랐다. 다들 신이 났다. 내가 슬그머니 대통령께 여쭈었다. '모판 좀 옮겨보시렵니까', '대통령 때 같았으면 하는데, 퇴임 대통령은 그런 거 안한다'. 능청스런 대통령의 대꾸에 다들 웃음보가 터졌다. 말은 안한다고 했지만 이내 대통령은 모판을 옮기는 일을 거들었다."

그리고 막걸리에 두부김치, 김밥에 어묵탕을 곁들이 새참이 도착했고 막걸리 잔을 채우고 대통령이 건배사를 했는데 "봉하마을 친환경 오리농법을 위하여"라 했다고 한다.

영농법인 봉하마을 김정호 대표.
 영농법인 봉하마을 김정호 대표.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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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군오리는 논에 흙탕물을 일으켜 어린 잡초가 자라는 걸 막고, 각종 해충을 잡아먹는 동시에 배설물로 천연비료까지 제공해 1석3조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나중에 오리를 잡아서 판매하자는 사람도 있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다른 사람들한테 나눠주자고 했다고 한다.

친환경 농사 첫해, 봉하마을 2만 4600평의 오리농법 단지에서 총 55톤의 벼를 수확했다. 봉하쌀은 '대박'이었다. '사람사는세상' 홈페이지를 통해 인터넷으로 사전예약을 받았는데 예상되는 수확량보다 더 많은 신청이 들어왔던 것이다.

1인당 3kg 1상자씩 한정판매하기로 했고, 1만 상자는 인터넷 신청자에게, 3000상자는 봉하마을 방문객에게 팔기로 했다. 인터넷 구매를 못한 사람들이 사저 앞 광장에 몰려들었고, 경찰관이 입회해서 공개추첨을 할 정도였다.

봉하마을 생태가 변했다. 생태연못과 무논을 조성했더니, 물고기와 수생생물이 되살아난 것이다. 그해 겨울 온갖 철새들이 봉하들판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3년 3월, 천연기념물 황새가 봉하들판에 나타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뒤부터 들판에는 논글씨를 새겼다. "사람사는 세상", "내 마음 속 대통령",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깨어있는 시민 행동하는 양심" 등이었고, 이는 올해도 만들어진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뒤, 김정호 대표는 봉하를 지켰다. 그는 장례를 치르고 며칠 뒤, 자연농업연구원 조한규 원장이 찾아와 "김정호 비서관, 마음 독하게 먹어야 한다. 대통령의 유업이 차질 없도록 하려면 김 비서관이 흔들리면 안된다. 친환경 농사를 지켜내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해 가을 명계남 배우는 김 대표한테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아무리 자전거 페달을 밟고 달려보아도 그 사람은 없다, 펄밭에 넘어지며 수련을 꽂아보아도 그 사람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며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당신이 바로 노무현이다, 바보 노무현'이라 했다"고 한다.

김정호 대표는 노 전 대통령 서거 뒤 첫 번째 봉하쌀을 수확하고, 묘소 너럭바위를 찾아 '헌정식'을 열었다. 명계남 배우가 지켜보는 속에, 김정호 대표는 너럭바위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는 "이때만큼은 오롯이 대통령을 독차지한 나만의 영결식이었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의 농업진흥지역 해제 추진"

박근혜 정부 때 생태농업에 어려움이 닥쳤다. 농식품부가 봉하마을 들판에 대한 '농업진흥지역 해제'를 추진했고, 경남도(당시 홍준표 지사)도 찬성했던 것이다. 농식품부 공무원을 만나기도 했던 김 대표는 "농지 보존에 앞장서야 하는 농식품부 공무원이 문제의식은커녕 오만한 행정편의주의의 민낯만 보였다"고 했다.

"연간 80만명 이상 방문객이 찾아오는 대통령의 묘역과 사저가 '손톱 밑의 가시'였던 모양이었다. 홍준표 지사에겐 봉하마을은 여전히 '노무현 아방궁'이고 '노무현 타운'이었다. 이번 기회에 봉하들판의 농업진흥지역을 해제시켜 지주들과 노무현재단 간의 갈등을 촉발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감추지 않았다. 친환경 생태농업은 물론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과 생가, 생태문화공원 등을 망가뜨려버리겠다는 비열한 꼼수가 아닐 수 없었다."

또 책에는 이명박정부 때 벌어졌던 '봉하 이(e)지원', '정치검찰', '서거' 등에 대해 김정호 대표가 겪었던 상황들이 정리되어 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대통령이 물꼬를 튼 생태농업을 실현하기 위해 미친 듯이 매달렸다"고 했다.

"대통령과 엮인 내 인생은 이미 새들의 보금자리가 된 봉화산 숲이 되었고, 온갖 폐수를 정화시키는 화포천 물이 되었다. 기운찬 봉하쌀을 키워내는 봉하들판의 논이 되었다. 먼 길을 떠난 '바보 농부 노무현'은 내게 운명이었다. 나는 그 운명을 거부하지 않았다."

김정호 (주)봉하마을 김정호 대표는 책 <바보 농군 바보 노무현>을 펴냈다.
 김정호 (주)봉하마을 김정호 대표는 책 <바보 농군 바보 노무현>을 펴냈다.
ⓒ 생각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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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노무현, #봉하마을, #김정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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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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