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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6시. 우리는 비조다이라(美女平)로 가는 첫 케이블카 탑승했다. 해발 475m 다테야마역에서 출발한 케이블카는 거의 매달리듯 천천히 올라간다. 일본에서 케이블카는 레일 위로 케이블에 매달아 급경사를 기어오르는 전차를 뜻한다. 120명 정원의 전차 내부는 계단처럼 층층으로 구성돼 있다. 하늘로 비상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려면 운전사 옆쪽에 자리를 잡으면 좋다. 첫 케이블카인데도 여행자들이 콩나물시루처럼 빼꼭히 들어찬다.

매달리듯 가파른 절벽을 기어 오르는 다테야마 케이블카
 매달리듯 가파른 절벽을 기어 오르는 다테야마 케이블카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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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조다이라까지 1.3km의 거리를 다테야마 케이블카는 약 7분 만에 올라간다. 다테야마 케이블카는 그 역사가 60년이 넘는 오래된 케이블카다. 반세기 이전에 이런 케이블카를 만들다니, 일본인들의 기술은 놀랍기만 하다.

잡목이 우거진 절벽을 타고 오르는가 했는데, 케이블카는 곧 비조다이라 도착한다. 비조다이라에는 고원버스를 타고 해발 2450m 지점에 있는 무로도까지 가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수많은 여행자들이 케이블카에서 내려 끝없이 줄을 선다.

무로도로 가는 고원버스를 타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있는 여행자들
 무로도로 가는 고원버스를 타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있는 여행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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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조다이라는 해발 977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운무에 휩싸인 눈 덮인 산록이 신비하게 보이기만 한다. 수십 대의  고원버스가 운무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도열해 있다. 산록에는 겨울도 아닌 봄인데 한겨울처럼 눈이 쌓여있다. 오전 6시 40분. 무로도행 고원버스를 탔다. 버스가 움직이자 곧 아름드리 삼나무들이 나타난다.

전설적인 미녀 삼나무 '비조스기'

이 지역에는 수령 1000년이 넘는 삼나무 거목과 너도밤나무 등이 원시림을 이루고 있다. 일본에서 '산림욕의 숲 100선'에 들어가는 비조다이라는 10월 하순부터 단풍이 절정을 이뤄 삼림욕과 등산코스로도 유명하다. 점점 설벽이 높아지는 길을 버스는 아슬아슬하게 곡예를 하듯 기어 올라간다.

오래된 삼나무 숲에 쌓여 있는 눈
 오래된 삼나무 숲에 쌓여 있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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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와 영어로 해설을 곁들인 버스는 관광 포인트에서 잠시 숨을 죽이며 멈춰 선다. 버스는 일본 최고의 낙차를 자랑하는 '쇼모폭포' 앞에서 선다. '쇼모다키(낙차 350m)'로 가기 위해서는 다테야마역에서 전용버스를 타고 갈 수 있지만, 이렇게 멀리서나마 바라볼 수 있는 것도 큰 행운이다. 일본의 호넨(法然)스님이 이곳을 지나갈 때 폭포수가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나무아미타불 소리처럼 들려 스님은 폭포이름을 '쇼묘폭포(称名滝)'라고 붙였다고 전한다.

버스는 급커브를 이루는 지점에 서 있는 거대한 삼나무 앞에 잠시 멈추어 선다. 직경 10m, 높이 30m에 이르는 스기나무는 인고의 세월을 말해준다. '비조'는 '미녀'라는 뜻이다. 이곳에는 비조스기(미녀 삼나무)에 대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한글 안내서 기록된 전설은 이렇다.

"1300년 전 다테야마를 개척했다고 전해지는 한 젊은이에게 정혼을 한 아름다운 공주님이 있었다. 정혼자를 만나고 싶어서 다테야마까지 올라온 공주님은 다테야마가 여인금지 신앙의 산이었기 때문에 쫓겨나게 되었다.

할 수 없이 산을 내려가게 된 공주는 한 그루의 삼나무에게 '아름다운 삼나무여! 그대에게 마음이 있다면 나의 이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십시오'라고 기도를 하였다. 그랬더니 훗날 그 소원이 이루어져 두 사람의 결혼이 이루어졌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 후 사람들은 이 삼나무를 '비조스기(미녀 삼나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비조다이라 삼나무숲 하늘을 찌르는 거대한 삼나무 숲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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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버스는 삼나무 숲과 안개 속을 뚫고 곡예를 하듯 아슬아슬하게 서서히 고도를 높여간다. 신령한 삼나무 숲과 눈의 계곡은 태고의 자연 그대로다. 점점 진한 감동이 몰려온다. 버스는 미다가하라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고도를 높여간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20m 높이의 거대한 설벽

알펜루트 눈의 대계곡
 알펜루트 눈의 대계곡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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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다가하라는 해발 1600~2100m의 높은 곳에 위치한 습지로 풍부한 생태계가 그 가치를 인정받아 람사르 협약(Ramsar Convention,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에 등재된 드넓은 고원습지다. 이 지역은 워낙 눈이 많이 덮여 있어 11월~5월까지는 출입할 수 없다.

여름철인 6~9월께에는 고산식물의 찬란한 꽃을 즐길 수 있고, 9~10월께에는 다테야마 최고의 아름다운 단풍을 바라보며 산책할 수 있다. 나무로 만든 산책로가 잘 정비돼 있어 체력에 자신이 없는 남녀노소도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특히 미다가하라 습지에는 곳곳에 '가카노타'라고 불리는 연못(습지 이탄층에 물이 고여 생기는 작은 연못)이 분포된 초원이 펼쳐져 있어 다양한 고산식물을 만날 수 있다. 여름에는 시원하여 고원 트레킹을 하기에 적합하고, 가을에는 화려한 단풍을 즐기며 산책을 할 수 있는 고원이다.

미다가하라에서 텐구다이라까지는 다테야마 숭배자들이 수행을 하기 위해 걸어서 갔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사람들은 이 길을 이치노다니미치(一の谷道), 시시가하나(獅子ヶ鼻)라 부르기도 한다. 눈의 계곡에서 울울창창하게 뻗어 올라간 삼나무 숲에서는 어디선가 숲의 정령이 나타날 것 같은 신령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과연 수행자들이 즐겨 찾을 법하다.

고도를 높여갈수록 고원버스는 높이 10~20m에 이르는 눈의 계곡에 푹 파묻혀 기어간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진한 감동이 몰려드는 설벽이다! 눈 덮인 히말라야를 바라보는 것하고는 또 다른 감동이다.

▲ 일본알펜루트 눈의 대계곡 일본알펜루트 눈의 대계곡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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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데군데 산허리에 구름과 백발을 드리운 설봉들이 보이고, 본격적인 눈의 계곡이 펼쳐진다. '눈의 오타니'리고 불리는 거대한 설벽은 겨우내 쌓인 눈이 녹지 않아 한여름에도 시원한 겨울풍경을 선사한다.

"아이고, 정말 아슬아슬하네요!"
"그러게,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설벽이 높아요!"

바닥은 완전 빙판이다. 그 빙판 위를 고원버스는 아슬아슬하게 기어간다. 스릴 만점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도로 양쪽에 하얀 설벽이 진을 치고 있다. 마치 눈의 궁전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겨울왕국>의 엘사가 이 궁전 안에 살고 있지 않을까?

무로도는 해발 3000m급 설산으로 둘러싸인 구름 위의 세계다. 알펜루트에서 가장 높은 장소인 무로도는 알펜루트 여행의 하이라이트다. 또한 무로도는 알펜루트 등산의 거점으로 많은 등산객들이 눈 덮인 계곡을 오르기 위해  장비를 착용하고 등산길에 오른다. 우리 같은 여행자들도 높이 20m에서 달하는 눈의 대계곡을 500m 정도 걸을 수 있다.

해발 2450m 무로도. 봄인데도 제설차가 내리는 눈을 치우고 있다.
 해발 2450m 무로도. 봄인데도 제설차가 내리는 눈을 치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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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대한 설벽을 걸을 수 있기 때문에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는 일본 명소 가이드가 추천하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일본의 명소' 3위에 올라있다. 놀라운 풍경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을 다시 태어나게 한다. 그러므로 이처럼 아름다운 명소는 죽기 전에 꼭 가볼 필요가 있다. 엄청난 눈과 하늘을 가리는 설벽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아내는 아픔을 잊고 감탄사만 연발한다.

알펜루트 설벽은 4월부터 6월까지 딱 2개월 동안만 열린다. 그 기간 중에서도 4월 15일부터 30일까지는 가장 높은 설벽을 감상할 수 있어 혼잡할 정도로 수많은 여행자들이 몰린다. 오전 7시 20분. 고원버스는 해발 2450m에 위치한 무로도역에 도착했다. 무로도 역은 일본최고의 높이에 있는 전철역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가 알펜루트 여행을 다녀온 시기는 지난 4월 22일입니다.



태그:#일본 알펜루트, #다테야마 케이블카, #비조다이라 미녀삼나무, #미다가하라 산책로, #무로도 눈의 대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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