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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낮아진 그네. 볼 때마다 속이 상한다.
 훌쩍 낮아진 그네. 볼 때마다 속이 상한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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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군포시 집 근처 인근 놀이터. 놀이터 바닥에 파란 고무 천지. 시에서 안전하다는 현수막을 걸었는데, 아무래도 이용하기는 찜찜하다.
 경기도 군포시 집 근처 인근 놀이터. 놀이터 바닥에 파란 고무 천지. 시에서 안전하다는 현수막을 걸었는데, 아무래도 이용하기는 찜찜하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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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 시소, 미끄럼틀.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보통의 놀이터다. 그런데 한 가지, 잘 보면 이상한 게 있다. 뭘까. 그네 길이가 짧다. 왜 이렇게 짧아졌을까? 어른들이 만들어서 그렇다. 원래는 이렇게 길이가 짧지 않았다. 모래였던 바닥을 우레탄 포장으로 바꾸면서 높아진 바닥 높이를 고려하지 않은 결과다. 아이들의 안전보다 어른들의 편의를 우선한 결과다.

140센티미터가 좀 되지 않는 3, 4학년 아이들이 그네를 타려고 들면 여간 불안한 게 아니다. 머리가 닿을 것 같아서 조마조마하다. 독일 생태도시 프라이부르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왜냐고? 거기 놀이터는 '주민들, 특히 아이들이 참여해서 계획하고 만들어가는 게 원칙'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이렇게 낮은 그네를 만들자고 할 리는 없겠지.

<엄마도 행복한 놀이터>
 <엄마도 행복한 놀이터>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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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냐고? <엄마도 행복한 놀이터> 저자 이소영도 그게 궁금했다. '(아이들이 참여해서 만든) 놀이터는 어떻게 생겼는지, 더 재미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프라이부르크에서의 휴가 3주는 그렇게 시작됐다. 11살 큰 아이에게 이 이야길 했더니 깜짝 놀라 묻는다.

"3일이 아니고 3주나?"

아이가 놀라는 건 당연했다. 나도 그랬으니까. 지난 겨울방학 때 딸아이와 나는 4박 6일간 싱가포르를 여행했다. 우리는 오전 10시 호텔에서 나와 그날 오후 9시쯤 들어가는 생활을 반복했다. 아이는 한 곳이라도 더 가길 원했고, 나 역시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었다. 그랬는데 '놀이터에서만' 3주라니. 한편으로는 '놀이터'니까 가능하다는 생각도 든다. 왜냐고?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육아경력 10년 차. 놀이동산, 키즈카페, 미술관, 박물관, 과학관, 식물원, 공연장 등 소문난 곳을 두루 다녀본 다음에야 깨달았다. 부모 입장에서 힘 덜빠지고, 시간 잘 가고, 돈 안 드는 놀이공간으로는 놀이터 만한 데가 없다는 걸.'

엄마라면 공감할 대목이다. 나도 그렇다. 우리 애들도 그랬으니까. 저자가 이끄는 대로 프라이부르크에서 만난 '엄마도 행복한 놀이터'는 한 마디로 노는 물이 달랐다. 이제껏 내가 좋다고 한 놀이터는 좋은 축에도 못 낀다 싶을 만큼.

우선 눈에 띄는 건 중세부터 이어져 온 1000년 된 도심 속 물길 베힐레다. 도심 한복판을 흐르는 이 물길은 아이들이 작은 배나 신고 있던 신발을 띄우면서 노는 놀이터다. 놀이기구 하나 없는 이 오래되고 심심한(어른들 기준에서)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해가 지는 줄 모르고 논다.

24시간 열려있는 동물원 문덴호프는 입장권도 없고 검표원도 없다. 별다른 편의시설도 없는데 곳곳에 놀이터가 있다. 색도 없는 무미건조한 놀이터. 콘크리트는 콘크리트인 채로, 나무는 나무인 채로. 밋밋하기 짝이 없는 이 놀이터에 색을 입히는 것은 아이들이다. 저자는 말한다.

'놀이터가 순식간에 표정을 바꾼다. 아이들이 한 명, 두 명 놀기 시작하면 돌변한다. 이 놀이터들은 그래서 하얀 스케치북 같다. 아이들이 연필이고 물감이다. 어떤 그림이 될지는 스케치북이 아니라 아이들이 정한다. 마음대로 긋고, 칠하고, 뿌릴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더 놀라운 건 이곳 문덴호프 둥지놀이터는 주민들이 직접 만들어간다는 거다. 주민들이 직접 놀이터에 필요한 놀이기구를 만들고 유지, 보수한다. '아이들이 어른의 도움을 받아 직접 대패질 하고 못질'한 모습은 홈페이지에 고스란히 기록된다.

이를 보며 저자는 '우리에게 놀이터는 아파트에 덤으로 얹어 주는 사은품에 가깝다... 2년 만에 한 번씩 밀려다니는 전세 난민들에게 놀이터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언급할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 현실을 언급한다. '부러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라면서.

독일 프라이부르크 문덴호프 동물원 안 놀이터. 주변을 보라. 숲과 돌, 나무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문덴호프 동물원 안 놀이터. 주변을 보라. 숲과 돌, 나무다.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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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들른 놀이터에서 즐거운 아이들. 문덴호프에서 본 그네와 꼭 같아 깜짝 놀랐다. 그러나 주변을 보라. 아파트로 둘러싸인 놀이터에 쇳덩이와 푹 패인 우레탄 바닥이 눈에 띈다. 우리 놀이터의 현실이다.
 우연히 들른 놀이터에서 즐거운 아이들. 문덴호프에서 본 그네와 꼭 같아 깜짝 놀랐다. 그러나 주변을 보라. 아파트로 둘러싸인 놀이터에 쇳덩이와 푹 패인 우레탄 바닥이 눈에 띈다. 우리 놀이터의 현실이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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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모빌 캐릭터들이 잔뜩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플레이모빌 펀파크는 어떻고. 이곳은 전기를 동력으로 쓰는 놀이 시설이 하나도 없다. '오로지 사람이 직접 체험하고 몸을 써서 움직여야 하는 테마파크'라니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

기껏해야 1분도 채 되지 않는 롤러코스터 같은 놀이기구를 타려고 1시간을 대기해야 하는 우리나라 놀이동산과는 차원이 다르다. 왜냐고? 여기선 오로지 인간의 힘으로 놀 수 있으니까. 힘이 허락하는 만큼 적당히 놀다 나와야 하는 거다. 아무리 재밌는 놀이터라도 대기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은 이유다. 노는 데 강한 체력이 필요하다!

더 부러운 건 이런 거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놀이터. 이런 발상이 가능한 그들의 철학. 저자는 프라이부르크 시의 남다른 놀이터 정책에 주목한다. '놀이터의 조성은 주민과 아이들이 직접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정책'에 대해.

이 도시의 자랑거리는 또 있다. '프라이부르크와 인근의 자연 산물로만 놀이시설을 만든다는 것'이다. '애걔? 이게 놀이터야?' 싶었던, 인공 구조물보다 나무, 돌, 숲, 넓은 땅이 있는 놀이터가 자주 등장한 것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던 거다.

프라이부르크 안내서에 '아이를 위해 뛰는 심장을 가진 도시'라는 구절이 있단다. 이것이 비단 구호만이 아니라는 것은 도시 곳곳에서 드러난다. 어린이 보호구역인 홈존에서의 차량 제한속도는 시속 7킬로미터다. 시 전역에서 자동차 제한속도는 시속 30킬로미터이다.

답답해서 어찌다니냐고? 천만에. 이곳에서 며칠만 지내면 '차 없이 다니는 게 훨씬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될 거다. 주차장을 멀리 짓고, 트램과 자전거가 차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도록 신호체계를 바꾸는 도시니까. 언제 차가 튀어나올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우리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다.

엄태영 수원시장은 이 책의 추천사에서 말한다. '부러움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우리의 놀이터에도 아이들의 생각을 담아내야 한다'고. 생각만으로는 어렵다. 마침 전남 순천에서 기적의 놀이터 2호 '작전을 시작하-지'를 열었다는 소식이다.

'놀이터를 이용하는 어린이와 시민들이 설계부터 공사, 운영까지 모든 과정'에 참여했단다. '인공 언덕과 물길, 모래 등 자연 소재를 적극 활용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수원에서도 순천에서의 시도가 이뤄지길 바란다. 아니 대한민국 곳곳에서 '엄마도 행복한 놀이터'를 만날 수 있길 바란다.

아, 그 전에 한 가지 꼭 필요한 게 있다. 저자가 3주간의 '놀이터 여행'을 통해 깨달은 바가 있었으니, 바로 체력이다. 나도 늘 하는 말, '모성은 체력'이라는 걸 저자 역시 강조한다.

'... 체력을 기르는 것. 독일에 있는 내내 느낀 점이다. 그 여유로운 삶의 바탕에는 바로 튼튼한 몸이 있었다. '육아 몰빵'으로 심신이 너덜너덜해진 엄마라면 공감하리라. 몸에 활력이 있을 때는 아이의 짜증도 웃어넘길 수 있지 않던가. 건강한 육아는 튼튼한 엄마로부터 시작된다.'

백 번 지당한 말이다. 엄마도 행복한 놀이터 역시 건강한 아이와 튼튼한 엄마로부터 시작된다.


엄마도 행복한 놀이터 - 생태도시 프라이부르크로 떠난 놀이터 여행

이소영 지음, 이유진 사진, 오마이북(2017)


태그:#엄마도 행복한 그림책, #이소영, #프라이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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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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