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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폐지 줍는 노인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자원재활용연대'라는 시민단체의 추산에 따르면 약 175만명이다. 이들이 하루종일 폐지를 주워 50킬로그램을 모았을 때 받을 수 있는 돈은 고작 4천원 정도. 한끼 밥값도 되지 않는 돈을 위해 노인들은 새벽부터 일어나 거리를 헤매고 쓰레기통을 뒤지고 때로는 교통사고의 위험도 무릅쓴다.

일부 지자체들에서는 관내 폐지 줍는 노인들에게 형광조끼 등 교통안전장비를 지급하기도 했다. 폐지 줍는 노인들을 위해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안전장비를 지급하는 것이라니 대한민국 현실이 초라하기 그지없다. 언제 당할지 모르는 교통사고를 피해 열심히 폐지를 모으라는 것인지, 아니면 근본적인 대책이 없으니 일단 안전만이라도 지키라는 것인지, 어느 쪽이든 서글프기는 마찬가지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책은 일종의 경고다. 언젠가는 늙게 될 당신도 폐지 줍는 노인이 될 수 있다. 일본에서 빈곤퇴치운동에 앞장서왔던 후지타 다카노리가 쓴 <2030 하류노인이 온다>는 일본에 닥친 '노후붕괴' 상황의 원인과 해법을 제시하는 책이다.

세계 최고령 대국인 일본의 현실이지만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목전에 둔 한국의 가까운 미래이기도 하다. 게다가 한국의 사회안전망은 일본의 수준에 못미칠 정도로 취약하니 그 후폭풍은 가히 쓰나미급일 가능성이 높다.

저출산, 고령화 쓰나미, 노후절벽 눈앞에

<2020 하류노인이 온다> 표지
 <2020 하류노인이 온다> 표지
ⓒ 청람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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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생활보호기준(한국의 기초생활수급에 해당하는 기준) 정도의 소득으로 생활하는 고령자 또는 그 우려가 있는 고령자'를 '하류노인'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일본 사이타마 현을 중심으로 12년 동안 빈곤생활자를 지원하는 비영리단체에서 활동하며 노후 빈곤의 실상을 파악해왔다.

600만~700만에 달하는 일본사회 하류노인들은 소득원이 없고 저축은 불가능하며 사회적으로도 고립된 처지에 놓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3무 상태'에 놓여 있는 고령자들은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없다. 단적으로 말해 하류노인이란 '모든 안전망을 상실한 상태'(41쪽)라고 할 수 있다.

하류노인이 증가하는 원인은 사회구조 때문이다. 게다가 하류노인을 방치한다면 더 큰 사회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 당장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될 시급한 문제다.

한국사회 현실에서도 노후붕괴는 임박했다. 베이비부머 세대(1955년~1963년생)의 은퇴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에는 1955년생들이 65세에 진입한다. 설사 은퇴 시기를 조금 늦춘다하더라도 700만 베이비부머 세대가 본격적인 노년기에 들어가는 시기가 얼마남지 않았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장기 저성장 국면에 있는 현 경제 상황에서 안정적인 노후를 보장할 만큼의 근로소득 확대는 기대하기 어렵다. 현실 조건은 노년기에 빈곤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높다는 것을 말해준다.

'정부든 사회든 개인이든 하류노인이 야기할 후폭풍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하나둘 안전장치를 갖추는 것이 급선무다. 하류노인 문제에 관한 공포를 거론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는 냉엄한 현실인데다 방치하면 사회경제적 비용, 후생 증대에 직결되는 거대담론인 까닭이다. 심각하게 훼손될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떠올리면 하류노인 공론화를 통해 탈출구를 모색하자는 것은 시대 구성원이 당연히 해야 할 문제 제기다. 내 문제가 아니라고 비켜설 이유는 더더욱 없다. 하류노인으로 추락할 수 있는 함정은 무차별적이고 광범위하다. 이때 연민은 값비싼 착각이다.'(5~6쪽)

노후붕괴, 전 세대에 걸친 충격

가족 중에 누군가가 하류노인의 상태로 전락하면 자녀세대의 경제적 부양 부담은 더 높아진다. 만성적인 경기 침체와 자본주의 경제 위기 속에서 가족에게 지워진 부양 부담의 증가는 부모와 자녀세대의 동반 파산을 가져온다.

노년기에 대한 리스크가 커질수록 출산과 육아를 포기하는 경향도 늘어난다. 고령화 문제는 저출산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하류노인의 문제는 노인세대 뿐만 아니라 전 세대에 걸친 전방위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노인 부양으로 인한 젊은세대의 부담 증가는 세대 갈등의 원인이 된다. 저자는 이러한 경향이 노인을 사회에 불필요한 짐으로 여기며 노인을 배제하고 소외시키는 가치관의 확산으로 귀결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가령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않은 사람을 자신들의 생활을 위해 배제해버리는 것에 아무 의문도 갖지 않는 사람도 생길 수 있다"며 "이것은 매우 위험한 일로서, 고령자에 한하지 않고 생산능력이 낮은 장애인들에게도 피해가 확대될 우려가 있다. 또한 생활보호수급자나 사회보장을 받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 의식이 심해져 자립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47쪽) 우려한다.

'하류노인으로 추락하는 것은 개인의 능력 부족이나 태만 때문만은 아니다. 과도하게 경제를 우선시하는 사회구조와 인간 소외에 익숙해진 우리의 의식과 감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의 경직화로 현실에 맞지 않는 시책과 시대착오적인 정책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개입해야 한다. 베이비붐 세대가 고령기에 돌입하기 시작한 지금이 제도를 근본적으로 재점검해야 할 전환점이다.'(203쪽)

하류노인을 양산하는 사회에 미래는 없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할 수 없다'는 옛말은 틀렸다. 가난은 온전히 개인의 책임이 아니다. 가난은 사회안전망 미비와 불충분한 복지시스템이 만들어 낸 사회적 비극이다. 노인의 삶을 말해주는 각종 지표들은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잘 보여준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9.6%로 OECD 평균(12.6%)의 4배에 달한다. 2014년 현재 노인자살률은 10만 명당 55명으로 전체 연령대보다 2배 많은 세계 1위다. 한국 노인들의 기대수명은 81.4세인데 반해 건강수명은 73세로, 평균 8년 이상 건강하지 못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노후에 인간다운 최소한의 삶이 가능하도록 하려면 사전예방과 사후관리 방안을 포괄하는 전방위적인 사회안전망 확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사회보장(공공부조), 사회보험, 사회서비스 등 3대 복지제도의 결함을 뜯어고쳐야 한다.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빈곤노인을 실질적으로 구제할 수 있을 정도로 정책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가족 부양을 전제로 하는 기존의 사회복지모델은 국가의 책임과 사회적 돌봄을 강화하는 형태로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이른바 '줬다 뺐는' 기초연금 문제와 부양의무제 폐지 문제,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이는 문제 등은 노인빈곤 저지를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선거에서 기초연금 30만원 인상, 부양의무제 폐지를 통한 복지사각지대 해소, 건강보험 하나로 의료비 문제 해결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임기 중 후퇴없이 공약 사항을 이행해 하류노인을 양산하는 시스템을 바꿔야 할 것이다. 폐지 줍는 노인이 없는 나라야말로 '나라다운 나라'가 아니겠는가.

덧붙이는 글 | <2020 하류노인이 온다>(후지타 다카노리 지음 / 청람출판 펴냄 / 2016.4 / 15,0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20 하류노인이 온다 - 노후 절벽에 매달린 대한민국의 미래

후지타 다카노리 지음, 홍성민 옮김, 전영수 감수, 청림출판(2016)


태그:#하류노인, #노후절벽, #노인빈곤, #노인자살률, #고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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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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