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연출한 장태유 감독이 지난 12일 열린 영화 '메이메이 쇼핑몰의 기적' 씨네토크 행사에서 관객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연출한 장태유 감독이 지난 12일 열린 영화 '메이메이 쇼핑몰의 기적' 씨네토크 행사에서 관객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실크로드 중국영화관


중국이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에 대한 보복으로 한류 제재 조치에 나선 지 어느덧 9개월 남짓 지났다. 그사이 나타난 중국의 제재 강도는 예상보다 훨씬 높았는데, 지난해 말 한국과 일본이 맺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은 불 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기도 했다.

그 결과 중국 현지에 진출했던 한국 방송 연예계 관계자 중 상당수는 '차이나드림'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대륙의 '러브콜'을 받아 중국으로 떠났던 방송사 스타 PD들 역시 악재를 피할 수는 없었다.

SBS <별에서 온 그대>를 연출한 장태유 PD와, MBC <일밤-나는 가수다>를 연출한 김영희 PD, SBS <일요일이 좋다-X맨>을 연출한 장혁재 PD 등이 대표적이다.

장태유 PD의 경우, 큰 기대를 걸고 제작한 첫 번째 중국 영화 <메이메이 쇼핑몰의 기적(중국어명 '몽상합화인'>이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후 연출한 드라마 <하지미지>는 현지 방영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중국 포털사이트에선 이 작품의 연출자 이름이 '장태유' 대신 '한양(韩洋)'이라는 정체불명의 이름으로 기재되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중국 포털사이트 바이두(Baidu)에서 장태유 감독의 중국 드라마 '하지미지(夏至未至)'를 검색한 결과 연출자 이름에 '장태유' 대신 ‘한양’이라는 정체불명의 이름이 기재돼 있다.

중국 포털사이트 바이두(Baidu)에서 장태유 감독의 중국 드라마 '하지미지(夏至未至)'를 검색한 결과 연출자 이름에 '장태유' 대신 ‘한양’이라는 정체불명의 이름이 기재돼 있다. ⓒ 차이나스타리포트


예상 못 한 악재 속에서도 희망을 버릴 수 없는 것은 바로 변하지 않은 팬들의 응원 때문이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통해 일찌감치 장 감독의 팬이 된 중국 대중들은 그의 드라마가 어서 방영되길 기다리며 꾸준히 응원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13일 열린 영화 <메이메이 쇼핑몰의 기적> 상영회 겸 씨네토크 행사를 찾아 장 감독과 소통하는 시간도 가졌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내 롯데시네마에 자리한 '실크로드 중국영화관'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이 상영관을 운영하는 (재)한중문화센터와 장 감독이 소속된 '태유픽쳐스'가 함께했다.

장 감독은 한중 양국의 관객과 업계 관계자들의 호응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한편 중국 현지에 머무는 동안 쌓은 특별한 경험과 에피소드를 특유의 솔직한 어투로 쏟아냈다.

첫 영화부터 화려한 출연진

 장태유 감독의 첫 중국 영화 '메이메이 쇼핑몰의 기적'은 서로 다른 성격과 배경을 지닌 세 여성이 함께 인터넷 쇼핑몰 창업에 도전하는 과정을 소재로 다뤘다.

장태유 감독의 첫 중국 영화 '메이메이 쇼핑몰의 기적'은 서로 다른 성격과 배경을 지닌 세 여성이 함께 인터넷 쇼핑몰 창업에 도전하는 과정을 소재로 다뤘다. ⓒ 상해신적가영시유한공사


영화 <메이메이 쇼핑몰의 기적>은 성격과 출신 배경이 전혀 다른 세 명의 여성이 힘을 합쳐 인터넷 쇼핑몰 '메이메이왕'을 만드는 이야기를 그렸다. 그 안에는 성공과 좌절, 우정과 사랑의 참맛을 경험하는 에피소드들이 섞여 있다. 극 중에서 여성들이 처음 만난 장소가 경영전문대학원(MBA)인 점에 주목해 영어 작품명도 'MBA Partners'로 붙였다.

요신(야오천)과 당언(탕옌), 학뢰(하오레이) 등 세 명의 중국 여배우와 중화권 톱스타 곽부성(郭富城·구어푸청)이 함께 주연을 맡았으며, 배우 이신(리천)과 아이돌그룹 유니크(UNIQ) 멤버 왕일박(왕이보)과 성주 등이 출연했다.

이 작품은 지난해 4월 말 중국 극장가에서 개봉한 뒤 총 8091만 위안(한화 약 140억 원)의 매출 기록을 올렸다. 영화 제작에 총 180억 원가량의 비용이 들었다고 하니, 이렇게만 보면 손익분기점에 다소 못 미친 꼴이다.

한국에서 상영을 이어갔다면 추가 이익을 거뒀을 수 있지만, 올해 1월로 예정됐던 국내 개봉은 사실상 불발에 그쳤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이 작품의 한국 누적 관객은 105명, 총매출액은 54만6천 원이다.

다만 이 영화는 애초에 중국 시장을 겨냥해 만든 작품인 만큼 연출자나 제작사 입장에서 한국 흥행에 큰 기대를 걸었던 것은 아니다.

여자들의 창업기... 영화 투자자가 모델?

 영화 '메이메이 쇼핑몰의 기적'의 중심 인물 루젠시는 미국에서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며 짝퉁 가방 장사를 이어갈 정도로 남자 보다 더욱 적극적인 생활력을 지닌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 '메이메이 쇼핑몰의 기적'의 중심 인물 루젠시는 미국에서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며 짝퉁 가방 장사를 이어갈 정도로 남자 보다 더욱 적극적인 생활력을 지닌 인물로 그려진다. ⓒ 상해신적가영시유한공사


장 감독이 첫 번째 영화 작품의 소재로 '여성'과 '창업'을 택한 것은 이들이 현재 중국의 변화상을 잘 드러내는 키워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가 중국에 갔던 2014년은 현지 기업 알리바바(Alibaba)가 미국 나스닥(NASDAQ) 주식시장에 상장돼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에 물들었을 때다.

고등학교 영어 교사였던 마윈이 세계적 기업 알리바바의 총수가 된 꿈과 같은 성공기는 다시 수많은 중국 청년들을 창업의 세계로 인도했다. 당시 장 감독에게 투자 의사를 밝힌 기업인 역시 20대 나이에 사업의 세계에 뛰어든 33세 여성이었다.

"중국에서는 '금수저' 출신 보다는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많아요. 제 영화에 투자한 '위에화엔터테인먼트' 대표는 부잣집 딸일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냥 시골 출신 사람이더라고요. 27세 때 자신이 다니던 회사 대표로부터 투자금 3억 원을 받아 음원 유통 사업체를 차렸는데 회사 가치가 1천 배 이상 뛰어서 시가 총액이 4,400억 원까지 오르기도 했어요. 이렇게 성공신화를 쓸 수 있는 나라에서 제가 굉장히 신기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를 영화 스토리로 만들고 싶었죠." (장 감독)

영화 속 무대가 된 MBA스쿨과 창업 도전 과정에 담긴 에피소드들은 상당 부분 그녀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그녀를 투자자로 고른 것은 그 사람과 그의 친구가 모두 사업가였기 때문이죠. 우선 그가 자기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어 했고요. 그와 같이 밥을 먹는 자리에는 석유개발업자, 양주유통업자 등 매일 다른 사업자들이 있어서 계속 관련 업계 얘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제가 중국 현지 문화를 잘 모르는 상태였지만 그와의 만남으로 영화를 위한 취재가 자연스럽게 됐죠." (장 감독)

"서로 다른 세 여자, 내가 본 중국의 단면"

 영화 <메이메이 쇼핑몰의 기적> 속 세 여성은 장태유 감독이 중국 현지 체험을 토대로 만들어낸 대표 인물형이다.

영화 <메이메이 쇼핑몰의 기적> 속 세 여성은 장태유 감독이 중국 현지 체험을 토대로 만들어낸 대표 인물형이다. ⓒ 상해신적가영시유한공사


중국 사업가들의 소통 하며 접한 숱한 정보와 이야기는 각기 다른 캐릭터를 지닌 세 명의 여성 삼총사를 만들어냈다.

주인공 루전시(야오천 분)는 미국에서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면서 짝퉁 가방 장사를 할 정도의 적극적 생활력을 지닌 인물.

한편 밤무대 가수 생활로 고된 생계를 이어가는 구차오인(탕옌 분)은 아름다운 외모를 유지하면서 부자 남자를 만나 '팔자를 고칠' 방법을 찾는다. 여자가 스스로 성공하긴 어려워도 성공한 남자를 조정할 수는 있다고 생각하는 이 여성은 전략적으로 미를 가꾼다.

이들과 계층 자체가 다른 인물 원칭(하오레이 분)은 성공을 당연시하는 '금수저' 출신. 성공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우월 의식을 갖지만 애정 없는 정략결혼 생활에 불행한 삶이 계속된다.

남자 지도교수(곽부성 분)에 빠져, 부자 남자를 잡기 위해, 사업 파트너를 찾기 위해 등 저마다 다른 목적을 갖고 MBA스쿨에 모인 세 여자는 첫 만남에서부터 신경전을 벌이지만 '학업'이라는 공동 영역에서 한 배를 타게 되면서 마침내 여자들만의 우정 공동체를 이룬다.

이들이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전략을 짜고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선 각자 지닌 배경, 경험, 성격상의 장점이 무서운 경쟁력으로 기능한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꼰대' 남자들의 견제와 질시도 이어지는데 이 모든 것이 장 감독이 직접 보고 들으며 느낀 중국 사회의 단면들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세 가지 여성상을 닮으려 했어요. 제가 외국인이기에 그런 모습이 더 뚜렷하게 보였을 수 있어요. 아무튼, 이 영화를 통해 누구나 자신, 스스로를 위해 두 발로 설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고 실제로 그렇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어요." (장 감독)

특정 업계 이야기, 대중 공감 어려웠을 수도

 지난 12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내 롯데시네마에 있는 '실크로드 중국영화관'에서 영화 '메이메이 쇼핑몰의 기적' 연출자 장태유 감독이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지난 12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내 롯데시네마에 있는 '실크로드 중국영화관'에서 영화 '메이메이 쇼핑몰의 기적' 연출자 장태유 감독이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실크로드 중국영화관


다만 인물들이 MBA 공부와 기업 경영 훈련 과정에서 벽에 부딪히고 이를 넘어서는 갖가지 에피소드들은 일반 관객이 몰입해 이해하기는 어려웠을 수 있다는 것이 장 감독의 생각이다.

"이 이야기는 정말 '비즈니스'에 푹 빠진 사람이 아니라면 공감하기 어려웠을 수 있어요. 각 에피소드에 담긴 의미를 보통의 관객이 온전히 느끼기 쉽지 않죠. 여자들의 성공 스토리는 사실 좀 특이해요."

그래서였을까. 이 영화는 중국 대중들의 폭넓은 관심을 끌어내는 데 성공하지 못했고 자연스레 속편을 제작하는 것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중국의 업계 생리만 비춰보면 투자자와 제작자가 첫 작품 이후 차기 작품을 논의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첫 작품이 성적이 저조하고 한중간 갈등은 더욱 심화되자 장 감독은 두 번째 영화를 제작하는 데 속도를 내지 못했다.

"사실 중국은 투자자와 제작자가 서로 신뢰한다면 '삼세판'은 해보자는 스타일이에요.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중국 영화를 또 찍을 계획이 있어요. 그런데 사드 사태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네요."

미워도 배워야... "영화 통해 한국도 자극 받길"

 장태유 감독은 SBS 드라마 프로듀서로 활동하면서 '별에서 온 그대' '뿌리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 히트작 드라마를 다수 연출했다.

장태유 감독은 SBS 드라마 프로듀서로 활동하면서 '별에서 온 그대' '뿌리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 히트작 드라마를 다수 연출했다. ⓒ SBS


장 감독이 중국 프로듀서들로부터 작품 제안 받은 것은 2011년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제작을 마친 직후다. 당시만 해도 한국과 중국 방송계의 교류가 저조했을 때인데 그는 그 때부터 중국어 공부를 시작하면서 중국 시장 진출을 꿈꿨다.

이후 2014년 중국에 간 그는 현지의 무서운 경제 성장세를 보며 큰 감동과 영감을 얻었고 이를 영화로 만들겠다는 결심을 했다. 중국의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극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 사이 중국의 방송연예산업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는데 이제는 드라마 제작산업 규모만 봐도 한국과 비교가 불가능한 정도다.

"중국에서 작년 한 해 동안 생긴 드라마 제작사가 약 1만 개예요. 우리나라는 제작사가 3천 개, 실제로 일하는 회사는 3백 개 정도에 불과해요. 한국 방송사들이 1년 동안 만드는 드라마가 총 200편이 안 되는데 중국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죠."(장 감독)

더욱이 중국의 영화제작산업은 이미 할리우드를 쥐락펴락하는 수준이어서 그 힘을 가늠하기 어려운 정도가 됐다. 미국 할리우드에서 만드는 블록버스터 영화는 보통 1천~2천 억 원의 제작비를 쓰는데 상당수 제작사가 이미 중국 자본의 지배 하에 놓여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블록버스터 제작비는 10분의 1수준인 100~200억 원대에 불과하다.

한때 국내 방송영화 제작자들은 영세한 시장 규모를 타개할 전략으로 중국을 주목했는데 '한한령' 장벽이 높아지면서 그들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3년 전 지상파 방송의 스타 프로듀서 자리를 박차고 나와 호기롭게 바다를 건넜던 장태유 감독은 지금의 악재를 넘어서기 위해 어떤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을까.

중국의 문화 보복에 분노한 국내 방송연예계와 관광업계는 일찌감치 대만과 홍콩,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시선을 돌려 '제2의 시장'을 개척하는 상황.

이런 가운데 여전히 '인구 13억' 중국 대륙에 '시선고정'하고 있는 장 감독은 '별에서 온 그대'의 영광을 재현할 두 번째 '홈런'을 조용히 준비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중국 대중문화 전문 인터넷미디어 <차이나스타리포트>(chinastar.co.kr)와 네이버 블로그 <이강훈 기자의 중국 대중문화 돋보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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