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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In My Backyard.

우리 집 뒷마당만은 안 된다는 누군가의 외침은 님비(NIMBI)현상으로 불리우는 사회 현상으로 자리매김했다. 누구나 그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내 집 앞'만은 될 수 없다는 님비현상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증오와 이기심이 수없이 점철된 결과다. 지역 내에서 '혐오시설' 설치를 맹목적으로 반대하는 님비현상과 반대로 수익적 사업의 유치를 맹목적으로 찬성하는 핌피(PIMFY·Please In My Frontyard) 현상은 서로 맹렬히 대비돼, 사람들의 증오와 이기심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도시는 살아있다. 하루에도 수없이 발생하는 생활 쓰레기와 산업성 폐기물들은 이를 반증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들은 살아있는 도시의 운명을 가장 위협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대구광역시는 250만 명의 시민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대구시에 따르면, 대구시 내의 하루 동안의 쓰레기 평균 발생량은 2014년 2900톤에 이른다. 더욱이, 이는 산업체에 의한 폐기물 발생, 음식물 쓰레기를 제외한 수치라는 점에서 대도시의 쓰레기 처리 문제는 결코 가볍게 다뤄질 수 없다. 하루에 발생하는 2900톤의 쓰레기 중 가장 많은 처리 형태는 매립으로, 하루에 1098톤(37.9%)에 이르는 쓰레기가 땅 속으로 매립된다. 다음으로 많은 비중인 12.2%를 차지하는 소각 역시, 불완전 연소한 재를 매립해야 한다는 점에서 매립은 쓰레기 처리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와룡산(臥龍山)의 이름은 그 모습이 누워있는 용과 닮은 형상에서 연유됐다. 용의 머리라는 뜻을 가진 용두봉(龍頭峰)과 같이 용의 전설이 서린 와룡산의 구석구석은 금호강과 대구 시내가 조망되는 아름다운 휴식처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러나 용과 닮았다던 와룡산의 아름다운 형상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쓰레기를 품게 한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말았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와룡산은 말발굽의 모양과 닮아 있다. 이른바 혐오시설로 분류되는 쓰레기장을 사방에서 보이게 만들리는 없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와룡산은 도시로부터 쓰레기를 가려주는 병풍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오늘날 와룡산의 능선에 올라선 어느 누구든 그 속에서 바삐 움직이는 덤프트럭의 모습과 쌓여가는 쓰레기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와룡산 능선이 끝맺는 곳

서재를 거쳐 서대구IC를 따라 금호강변을 따라 한참을 달리다보면 대구시환경자업소로 들어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 한 쪽으로는 금호강이, 다른 쪽으로는 와룡산 능선이 펼쳐져 있다. 와룡산 능선이 끝은 맺는 곳에서 방향을 틀어 매립장을 들어갈 수 있다.
 서재를 거쳐 서대구IC를 따라 금호강변을 따라 한참을 달리다보면 대구시환경자업소로 들어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 한 쪽으로는 금호강이, 다른 쪽으로는 와룡산 능선이 펼쳐져 있다. 와룡산 능선이 끝은 맺는 곳에서 방향을 틀어 매립장을 들어갈 수 있다.
ⓒ 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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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산 위에서 내려다보기만 했던 매립지를 찾아갔다. 이른바 '혐오시설'로 분류되는 매립장인 만큼, 그 입구를 찾아가기도 쉽지 않았다. 서재를 거쳐 서대구IC 방면으로 달리다보면 좌측으로는 금호강이 우측으로는 와룡산 능선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을 마주하게 된다.

와룡산 능선이 끝을 맺는 곳에서 나는 방향을 틀어 매립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진입로 주변으로는 서재문화체육센터가 있었다. 화려한 외관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외곽에 위치한 이유 때문인지 주변에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촉진 및 주변 지역 지원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라 매립지 주변영향지역 내에 주거하는 주민들에게 입장료와 강습료의 30%를 할인해준다는 글귀는 이곳의 탄생 이유를 증언하고 있는 듯했다. 혐오시설 주위의 주민들에 대한 혜택이라는 점은 충분히 반길만하지만 '수요'에 의한 '공급'이라는 경제학의 간명한 원리가 무시된 결과를 충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지난 2015년 6월 개관한 서재문화체육센터. 화려한 외관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외곽에 위치한 이유때문인지 주변에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난 2015년 6월 개관한 서재문화체육센터. 화려한 외관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외곽에 위치한 이유때문인지 주변에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 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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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입로를 지나며 생활폐기물을 싣고, 혹은 비우고 도로를 질주하는 덤프트럭 여러 대를 마주할 수 있었다. 덤프트럭들에 붙여진 ‘생활폐기물 수집운반’이라는 글씨는 곧 눈앞에 펼쳐질 땅의 모습을 예견하고 있었다.
 진입로를 지나며 생활폐기물을 싣고, 혹은 비우고 도로를 질주하는 덤프트럭 여러 대를 마주할 수 있었다. 덤프트럭들에 붙여진 ‘생활폐기물 수집운반’이라는 글씨는 곧 눈앞에 펼쳐질 땅의 모습을 예견하고 있었다.
ⓒ 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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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입로를 지나며 생활폐기물을 싣거나, 혹은 비우고 도로를 질주하는 덤프트럭 여러 대를 마주할 수 있었다. 보행자나 일반 차량들을 찾아보기 힘든 공허한 도로 위를 질주하는 덤프트럭들에 붙여진 '생활폐기물 수집운반'이라는 글씨는 곧 눈앞에 펼쳐질 땅의 모습을 예견하고 있었다.

진입로를 지나면 마주치는 정문을 지나면 '대구광역시 환경자원사업소'라는 이름이 붙여진 사무동과 작은 경비동을 마주하게 된다. 이곳은 사무동 2층에 올라가 허락을 구해야만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단절된 땅이다.

우측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매립지를 걷다보면 수사로는 형용하기 여려운 황량한 땅이 나타난다. 누군가의 발을 감싸줬을 신발 바닥, 누군가의 자전거 톱니에 맞물려 바쁘게 돌았을 녹슨 체인. 누군가가 매일 얼굴을 비추었을 거울 조각, 누군가를 태우고 방방곳곳을 누볐을 자동차의 철제 벽체…. 밝은 갈색의 다져진 땅 사이사이로 평범한 누군가의 흔적들이 황량한 땅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인간의 '짧은 쾌락'은 수십 수백 년이 지나야 사라진다

시야를 서쪽으로 돌리자 망막에 사무치는 수많은 가닥의 빛줄기를 담을 수 있었다. 땅에 박혀있는 수많은 사금파리 조각들이 태양빛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시야를 서쪽으로 돌리자 망막에 사무치는 수많은 가닥의 빛줄기를 담을 수 있었다. 땅에 박혀있는 수많은 사금파리 조각들이 태양빛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 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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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해는 중천을 지나 지평선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시야를 서쪽으로 돌리자 망막에 사무치는 수많은 가닥의 빛줄기를 담을 수 있었다.

땅에 박혀있는 수많은 사금파리 조각들이 태양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흔적들. 그들을 이루고 있는 구성 성분들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수십, 수백 년이 지나야 분해될 그들의 운명이 함의하는 바는 무엇일까? '영원한 것은 절대 없다'는 명제에도 불구하고 고도를 높여만 가는 매립장의 쓰레기들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의 수명이 길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평균 수명은 80세를 상회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의 작은 욕심, 짧은 쾌락이 만들어낸 쓰레기들이 사라지는데 수십, 수백 년이 걸린다는 사실, 우리의 삶보다도 더 오랜 기간 이 땅에 남아있을 쓰레기의 운명에 마음 한켠이 슬그머니 불편해지고는 한다.

수많은 사금파리 조각과 철조각 사이로 피어난 새싹을 볼 수 있었다. 버려진 땅, 어느 생명체도 살 수 없어 보이는 사막보다도 황량한 이 땅에서도 새싹이 돋아난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고무적이었다.
 수많은 사금파리 조각과 철조각 사이로 피어난 새싹을 볼 수 있었다. 버려진 땅, 어느 생명체도 살 수 없어 보이는 사막보다도 황량한 이 땅에서도 새싹이 돋아난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고무적이었다.
ⓒ 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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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둘러싼 와룡산 아래로 넓게 펼쳐진 매립지를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 수많은 사금파리 조각과 철조각 사이로 피어난 새싹을 볼 수 있었다. 버려진 땅, 어느 생명체도 살 수 없어 보이는 사막보다도 황량한 이 땅에도 새싹이 돋아난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고무적이었다. 원자폭탄을 맞고 폐허가 된 히로시마에 가장 먼저 되돌아온 것은 한 포기의 잡초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을 떠올린다.

어느 것보다도 모든 것을 포용해 주는 것이 자연이 아닐까. 어쩌면 원시시대의 토테미즘(Totemism)에서부터 이어온 인류의 자연물 숭배 역시 자연의 포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와룡산을 찾아 도시 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Healing)한다고 했다는 누군가의 말을 다시 떠올린다. 어쩌면 내가 보았던 작은 새싹도, 쓰레기장을 감싸고 있는 와룡산도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낸 쓰레기 모두를 포용하고 있기에 도시가 유지될 수 있는 것 아닐까.

방천리 쓰레기 매립장에 쌓여가고 있는 것은 엄청난 양의 쓰레기인 동시에 우리들의 증오와 이기심이기도 하다. 쌓여진 쓰레기들을 무심히 지나가며 땅의 고도(高度)를 높여가던 덤프트럭의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있다.

그럼에도 증오와 이기심의 땅 위에서 싹을 틔우는 나무와 풀의 모습. 그리고 쓰레기장을 품은 와룡산의 나무 밑에서 휴식을 만끽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또 다른 대조를 이루며 새로운 희망을 역설하고 있다. 증오와 이기심의 땅에서 '포용'을 생각한다. 부자와 거지, 진보와 보수, 노인과 청년…. 수많은 양극화와 갈등을 겪고 있은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것 역시 '포용'이 아닐까.


태그:#쓰레기매립장, #쓰레기장, #님비현상, #대구시 환경자원사업소, #와룡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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