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 글을 쓰는 뜻) 곁님·10살 아이·7살 아이하고 함께 살림을 짓고 시골에서 살며 한국말사전을 새로 쓰는 일을 하는 사내(아저씨)입니다. 시골 폐교를 빌려서 도서관학교로 가꾸면서, 우리 집 두 아이는 제도권학교 아닌 '우리 집 학교'에서 즐겁게 가르치고 함께 배웁니다. 어버이로서 두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치면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하며 스스로 날마다 새롭게 배우는 살림입니다. 밥·옷·집을 손수 지으며 누리고 나누자는 마음으로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익히려는 사랑을 길어올리려 합니다. 이러한 뜻으로 '아이키우기(육아)·살림(평등)·사랑(평화)'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으로 사는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여성혐오'도 '여성혐오를 혐오'하는 길도 아닌, 새로운 사람길을 밝혀 보고 싶어요.

골이 띵해서 자리에 누워 허리를 폅니다. 부산하게 아침을 차려서 먹이고, 설거지를 하고, 밥상을 치우고, 부엌을 쓸고, 빨래를 해서 널고, 물병을 내놓아 햇볕을 쪼인 뒤에 들여놓고, 이것저것 갈무리를 하고 나서 '이제 되었나?' 싶으면 바야흐로 골이 띵합니다.

저는 어릴 적에 토요일하고 일요일, 또 방학 때면 어머니가 하루 내내 쉬지 않고 일하는 모습을 늘 지켜보았습니다. 어머니는 형하고 저랑 밥상맡에 함께 둘러앉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두 아이 밥상을 차려 준 뒤에 다른 일을 하느라 언제나 바쁩니다. 어머니로서는 이 일이나 저 살림을 마무리짓지 않고서는 도무지 수저를 들 수 없는 마음이었지 싶어요.

어릴 적 그무렵에서 서른 몇 해가 지난 오늘날 가만히 생각합니다. 어릴 적에는 우리 어머니가 함께 밥상맡에 둘러앉지 못하던 모습이나 몸짓을 헤아릴 길이 없었어요. 함께 밥상맡에 둘러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며 느긋하게 먹고 나서 함께 부엌일도 하고 집안일도 하면 될 텐데 싶었어요.

일손이 익숙한 살림지기로서는 남한테 일을 맡기기가 오히려 어렵기도 합니다. 손에 익은 대로 혼자 해치울 적에 한결 빠르다고 느낄 만해요. 이것을 이 아이한테 시키고, 저것을 저 사람한테 맡기자면 오히려 손이 더 간다고 여길 만해요. 때로는 이 일을 저렇게 하느라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고, 저 일을 이렇게 해 놓고 가 버린 탓에 되레 일거리가 늘기도 하지요.

 혼자 해치우면 '빠르다'지만, 아이들한테 맡기고 느긋이 기다려 보곤 합니다. 아이들이 배울 수 있도록 말이에요.
 혼자 해치우면 '빠르다'지만, 아이들한테 맡기고 느긋이 기다려 보곤 합니다. 아이들이 배울 수 있도록 말이에요.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고단하거나 골이 띵할 적에 일손을 멈추고 생각해 봅니다. 왜 굳이 고단하도록 일을 하거나 골이 띵하도록 일손을 못 놓을까요? 왜 이 집일을 아이들한테 차근차근 재미나게 보여주거나 알려주거나 물려주지 못할까요? '빨리 해치우'거나 '얼른 끝내야'만 하는 까닭이 있을까요?

아이들이 하나씩 차근차근 배우면서 살림을 짓는 길을 익히면, 살림지기로서도 한결 수월할 뿐 아니라, 집일은 '고단하게 떠맡는 일거리'가 아닌 줄 스스로 새롭게 배울 만하지 않을까요?

거의 모든 어머니는 집안일을 짐이나 멍에로 떠안습니다. 사회가 이렇게 내몰아요. 그러나 이 집안일을 즐겁게 고이 받아들여서 알차게 일구는 어머니가 많아요. 아무리 사회가 가시내를 고단한 길로 내몰아도 슬기롭고 씩씩하며 사랑스레 집안을 돌보는 분이 많습니다.

어머니 아닌 아버지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사내들이 '사회가 내몰아 모든 집안일을 홀로 떠맡아야 한다'고 할 적에는 어떤 모습이 될까요? 우리 사내들은 가시내처럼 슬기롭고 씩씩하며 사랑스레 집안을 돌보는 몸짓이 될 수 있을까요? 부드럽고 상냥하며 따스한 손길로 집살림을 건사하는 아름다운 살림지기가 될 수 있는 사내는 얼마나 있을까요?

 아이들이 칼질이며 톱질이며 호미질이며 낫질이며... 하나씩 해 보고 또 해 보고 다시 해 보면서 천천히 자랍니다. 작은아이는 톱질을 하며 콩콩 뜁니다.
 아이들이 칼질이며 톱질이며 호미질이며 낫질이며... 하나씩 해 보고 또 해 보고 다시 해 보면서 천천히 자랍니다. 작은아이는 톱질을 하며 콩콩 뜁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마루나 방이나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을 부릅니다.

"배고프니?" "음, 안 배고픈 듯한데?" "그러면, 밥 차려 놓으면 안 먹을 생각이니?" "음, 먹, 을, 까?"

어째 배고픈지 안 배고픈지도 모르랴 싶지만, 이때에 우리 아이들이 아닌 '제가 어릴 적'에 어떠했는가를 떠올리면 됩니다. 저도 어릴 적에 우리 어머니가 "얘들아, 밥 먹어라." 하고 부르면 '글쎄, 아직 배가 안 고픈 듯한데?' 하고 생각했어요. 노는 데에 온마음을 쏟으면 놀기에 바쁘기에 배고픈 줄 잊어요.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는다면, 이때에는 그림이나 책에 사로잡혀서 배가 고픈 줄 잊지요.

살림을 맡은 어머니로서는 '아이들이 언제 밥을 먹었는가'를 살펴서 '배가 고플 때에' 밥을 지어서 차립니다. 아이들은 이 대목을 거의 못 헤아리기 마련이로구나 싶어요.

오늘 이곳에서 새롭게 집안을 가꾸고 살림을 꾸리며 사랑을 길어올리자는 생각을 하면서 '배움'을 되새기려 합니다. 두 아이가 저희 힘이나 몸이나 손길에 걸맞게 차근차근 익힐 수 있는 살림을 보여주면서 가르쳐 보려 합니다. 함께 밥을 짓고, 함께 밥을 먹으며, 함께 밥상을 치우고, 함께 입가심을 하다가, 함께 해바라기를 하면서 쉬고, 다시 함께 기운을 내어 우리 보금자리를 일구는 길을 걸어 보려 합니다.

 열무김치를 담그던 어느 날. 아이들을 곁에 두고서 칼질이 늘 다르다고 하는 대목을 보여주고 이야기합니다. 한 번 들어서 알 수는 없을 테니, 그때그때 불러서 보여주고 이야기해요.
 열무김치를 담그던 어느 날. 아이들을 곁에 두고서 칼질이 늘 다르다고 하는 대목을 보여주고 이야기합니다. 한 번 들어서 알 수는 없을 테니, 그때그때 불러서 보여주고 이야기해요.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마당에서 솔(부추)을 뽑아 줄래?" "마당에서 파를 끊어 줄래?" "마당에서 돌나물을 함께 훑을까?" "밥에 넣을 모시잎을 따 줄래?" "지짐이로 할 만큼 소쿠리에 쑥을 뜯을 수 있을까?"

아이들한테 하나하나 맡겨 봅니다.

"자, 작은 도마를 꺼내고 작은 칼을 꺼내 보세요. 한 사람씩 오이를 썰어 봐요." "누나가 오이를 썰면 동생은 토마토를 썰어 봐." "스스로 먹을 만큼 주걱으로 밥을 푸세요." "어머니 수저를 누가 챙겨 줄까?" "밥상을 펴면 행주로 잘 닦아 주세요."

끼니마다 날마다 똑같은 말을 되풀이해야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말을 몇 해 동안 날마다 해야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끼니마다 으레 한 가지씩 거들면서 시나브로 어른이 되어 가지 싶어요. 우리 어른은 아이들한테 언제나 고운 마음으로 차분히 이야기를 들려주고 일손을 이끌어 심부름을 맡기면서 한결 무르익는 어른으로 우뚝 설 만하지 싶어요. 나이만 어른이 아닌 마음으로 아름다운 어른으로 거듭난다고 할까요. 아이들이 배울 '한살림(함께 가는 하나 될 살림)'은 어른들도 함께 배울 '사랑살림'이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집(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한국말사전을 새로 쓴다.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우리말 꾸러미 사전》《우리말 글쓰기 사전》《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