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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던 김초원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수학여행 준비를 하느라 회의도 같이하고 단체 채팅방에서 수시로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들을 구하다 숨진 선생님이 기간제 교사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야 하나. 김초원 선생님의 순직 인정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겠다."

11일 오후, 서울행정법원 B205호 앞. 법정에 들어서기 전 단원고 기간제 교사인 김덕영씨가 말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에서 희생된 단원고 기간제 교사인 고 김초원씨와 함께 재직했다. 장애 학생들을 담당하는 특수학급 기간제 교사인 그는 아이들과 함께 2014년 4월 17일 오전 11시 20분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떠날 예정이었다.

김덕영 교사는 11일 증인으로 참석해 기간제 교사의 업무가 정규직 교사와 아무 차이가 없었다는 것을 설명했다.
▲ 김덕영 교사 김덕영 교사는 11일 증인으로 참석해 기간제 교사의 업무가 정규직 교사와 아무 차이가 없었다는 것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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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영씨는 이날 김초원씨의 아버지 김성욱씨가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유족보상금 청구서 반려처분 취소 소송'(서울행정법원 12부, 부장판사 장순욱)에 증인으로 참석했다. 인사혁신처가 세월호 참사 당시 숨진 단원고 교사 9명 중 김초원·이지혜 교사를 제외한 7명만 순직했다고 인정한 처분을 취소하라는 소송이다.

증인석에 앉은 김덕영씨는 기간제 교사의 업무가 정규직 교사의 업무와 차이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같은 업무, 같은 업무... 죽음은 왜?

김초원
▲ 2학년 3반 담임 ▲ 화학 ▲ 방과 후 학교 ▲ 수준별 맞춤형 방과후 학교 관리 업무 2 ▲ 방과후 학교 관련 자유수강권 관리 ▲ 환경복지부 관련 업무

유가족의 행정소송을 대리하는 윤지영(법무법인 공감) 변호사는 재판에서 단원고에서 2학년을 담당하는 교사들의 업무 분장이 적혀있는 문서를 제시했다. 윤 변호사는 증인석에 선 김씨에게 이 문서가 기간제 교사들의 업무 분담표인지 물었다. 김 씨는 "정규직 교사, 기간제 교사의 업무가 다르지 않다"라며 "같은 업무를 하고 있고 협의를 통해 일을 분담할 뿐"이라고 답했다.

김초원 교사는 2학년 3반 담임을 맡으며 방과 후 수업의 강좌를 짜고 강사료를 정산했다. 방과 후 수업의 저소득층, 장애 학생 관련 업무도 맡았다. 그와 함께 방과 후 업무를 맡았던 교사는 정규직 교사였다.

소송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기간제 교사라는 이유로 순직이 인정되지 않고 있는 이지혜 교사의 이름도 문서에 나왔다. 단원고 2학년 7반의 담임이었던 그는 생활기록부를 전산화하는 업무를 맡았다. 김씨는 "학생들 진로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업무라 중요한 일"이라고 이씨가 맡은 일을 설명했다.

김초원·이지혜 교사는 모두 정규직 교사와 똑같이 주 5일, 하루 8시간을 근무했다. 학교의 전반적인 결정사항을 논의하는 교무회의에도 참석했다. 김씨는 "기간제 교사라 발언권이 없거나 하는 차별은 없었다"라며 "일상적으로 근무할 때는 차별이 없다"고 했다. 이어 "기간제 교사에게 성과급, 복지 포인트가 지원되지 않는 것 말고는 선생님들끼리의 차별은 없다"며 "교육청에서 서류로 하는 차별이 존재할 뿐"이라고 답했다. '기간제 교사'라는 다섯 글자 외에는 똑같은 업무와 책임을 다했다는 것이다.

김씨와 김초원·이지혜 교사는 제주도 수학여행 준비도 정규직 교사와 함께했다. 윤 변호사는 <단원고 2014학년 수학여행 수업계획서>를 제시했다. 김초원 교사는 구급 약품을 챙기고 차량별 분배를 하는 역할을 맡았다. 숙소에 남아있는 학생을 관리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김씨는 "수학여행 출발 전부터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수학여행을 준비했다"라며 "사고 당일에도 '배가 기운다', '침작하자'는 메시지가 오갔다"고 말했다. 울먹이던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재판을 방청한 이지혜 교사의 아버지 이종락씨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장 부장판사는 "정규직 교사와 기간제 교사 사이에 성과급, 복지 포인트 말고는 전혀 차이가 없냐"고 확인했다. 김씨는 "그 두 가지 말고는 전혀 없다. 월급도 정규직 교사 호봉 수와 동일하다"고 답했다.

"기간제 교사는 나만 살겠다고 도망쳐 나와야 하나"

김성욱씨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딸 김초원 기간제 교사의 순직을 인정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 김초원 교사의 아버지 김성욱씨 김성욱씨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딸 김초원 기간제 교사의 순직을 인정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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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원 교사의 아버지 김성욱씨는 장 부장판사에게 마지막 호소를 전했다. 김씨는 "죽음에도 차별이 있다는 말입니까. 기간제 교사는 교사가 아닙니까"라며 "기간제 교사는 아이들이 위급해도 아이들을 버리고 나만 살겠다고 도망쳐 나와야 하냐"고 물었다. 이어 "우리 딸, 2학년 3반 담임 김초원 선생님의 최소한의 명예를 지켜 달라"며 "적어도 선생님으로서의 순직을 인정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지혜씨의 아버지 이정락씨 역시 발언을 요청했지만, 장 부장판사는 원고가 아니라는 이유로 허락하지 않았다. 이씨는 재판이 끝난 후 <오마이뉴스>와 만나 "우리 딸 지혜는 고 3담임을 맡아 아이들 대학 진학도 시킨 적이 있다"라며 "선생님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했는데 죽음 앞에서 차별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기간제 교사들이 우리 딸"이라며 "이번 판결로 기간제 교사의 명예가 회복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한편 지난 4월 16일 당시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경기도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열린 세월호 추모행사에 참석해 "기간제 교사로 순직에서 제외된 김초원·이지혜 두 선생님의 순직을 인정하고 명예를 회복해 드리겠다"고 말했다.

이 재판 선고 공판은 6월 15일 오후 2시에 열린다. 다음은 김초원 교사의 아버지 김성욱씨의 최후 변론 전문이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3반 담임 김초원 선생의 아버지입니다. 스물여섯 살 꽃다운 나이의 딸을 하루아침에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 참담한 과정을 생중계로 지켜보기만 했을 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참으로 무력하고 못난 아비입니다. '너라도 살라'고 '너라도 도망쳐 나오라'고, '수영도 잘하는 너는 도망쳐 나왔으면 살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 딸의 시신을 붙들고 원망도 많이 하였습니다.

시신으로 발견됐을 때 우리 딸은 구명조끼를 입지 않고 있었습니다. 살아나온 학생들의 말에 의하면 자기가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벗어 학생에게 입혀주었다고 합니다. 5층에 있었던 우리 딸은 비교적 빠져나오기 쉬운 위치였습니다. 하지만 위기의 상황에서 너무나 당연하게도 학생들이 있는 4층으로 향했습니다.

4월 16일은 초원이의 생일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배 안에서 깜짝 생일 파티를 해주었고, 우리 초원이는 아이들이 선물한 귀걸이와 목걸이를 한 채로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을 아이들과 보내고 끝까지 아이들과 함께했습니다.

이제 다시 생각합니다.

너만 살아 나오지 않아서, 너만 살겠다고 아이들 버리고 도망치지 않아서. 아이들과 끝까지 함께 있어 주어서, 선생님으로서 너는 참으로 훌륭했고 자랑스럽다고.

이제야 너한테 고백한다. 이 못난 아비의 마음은 미어지지만, 우리 딸 정말 자랑스럽다고. 우리 정말 사랑한다고.

그런데, 어찌 이리 차별을 당해야 합니까? 도대체 죽음에도 차별이 있다는 말입니까? 기간제 교사는 교사가 아닙니까? 아이들에겐 똑같이 우리 선생님입니다. 기간제 교사는 아이들이 위급해도 아이들을 버리고 나만 살겠다고 도망쳐 나와야 합니까? 나는 기간제 교사니까?

우리 딸, 2학년 3반 담임 김초원 선생님의 최소한의 명예를 지켜 주십시오.
적어도 선생님으로서의 순직을 인정해 주십시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듣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우리 딸 초원이가 제게 가끔 했던 말, "아빠 사랑해"

"그래, 우리 딸 초원아, 아빠도 사랑한다."



태그:#세월호 참사, #김초원, #이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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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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