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는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노트르담 대성당(Cathédrale Notre Dame) 안에서 느낀 감동을 뒤로 하고 햇빛이 쏟아지는 성당 광장으로 나왔다. 넓은 광장에서 고개를 돌려 노트르담 대성당의 측면 전체를 보니 거대한 대성당의 위용이 더욱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성당 앞 광장을 장방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고풍스러운 중세 건축물들도 스트라스부르의 오랜 품격을 과시하고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 남쪽에서 광장 너머로 대성당을 마주보고 있는 건축물은 로앙 궁전(Palais Rohan)이다. 나는 오늘 나의 스트라스부르 일정에서 두 번째 여행지로 로앙 궁전을 가기로 하였다. 로앙 궁전으로 들어가는 육중한 정문이 노트르담 대성당 방향을 향해 활짝 열려 있었다. 이 궁전의 정문에는 마치 성당의 입구 같은 고전적인 파사드가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다. 이 우아한 파사드 꼭대기에는 이 궁전에 살던 스트라스부르 주교의 깊은 신앙심을 보여주는 현란한 종교석상들이 장식되어 있다. 마치 그 모습이 대성당을 향해 손을 들어 찬양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이 로앙 궁전의 안뜰로 들어서니 이상한 점이 바로 눈에 띄었다. 궁전 바깥, 광장에 자리한 건축물들의 양식에 비해 이 궁전의 건물양식은 너무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로앙 궁전의 건물양식과 색상은 파리를 여행하면서 보았던 파리 양식의 건물이었다. 이 로앙 궁전은 파리에서 유행했던 고전주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 건물인 것이다. 밝은 갈색 석재의 벽체, 그리고 짙은 회색 지붕이 어우러진 육중한 건물들은 파리를 여행하면서 파리 시내에서 숱하게 보았던 낯익은 색상이었다.

당시 스트라스부르에서는 파격적으로 프랑스 고전주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
▲ 로앙 궁전. 당시 스트라스부르에서는 파격적으로 프랑스 고전주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지금까지 스트라스부르의 거리를 걸어오면서 보았던 알자스 양식의 동화나라 같은 반목조 가옥과 너무나 다른 로앙 궁전은 스트라스부르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이 로앙 궁전은 프랑스 궁정 건축가인 로베르 드 코트(Robert de Cotte)가 설계한 고전주의 양식의 교과서 같은 건축물이다. 신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답게 간결하면서도 웅대한 느낌을 준다. 알자스 가옥들이 동심을 자극하는 정감 어린 건축물들이라면 이 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들은 정통이 느껴지면서도 격식을 차린 건축물이라는 느낌이 든다.

주변을 다시 둘러보아도 이 궁전 주변의 건축물들은 대부분 목조 구조를 벽면에 드러낸 알자스 양식이고, 로앙 궁전 같은 고전주의 건축물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알자스 지역의 일반 가옥 양식과는 완전히 다른 육중한 고전 파리 스타일의 건물이 스트라스부르 한복판에 세워진 것이다. 한 지역에서 완전히 다른 건축양식의 이러한 상징적인 건물이 들어섰으니 로앙 궁전은 스트라스부르에서 파격적인 건축물일 뿐만 아니라 스트라스부르의 장구한 건축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한 획을 그은 건축물인 것이다.

궁전으로 들어가면 ‘ㄷ’자형 건물 안에 박석이 깔려있는 넓은 안뜰이 펼쳐진다.
▲ 로앙 궁전 안뜰. 궁전으로 들어가면 ‘ㄷ’자형 건물 안에 박석이 깔려있는 넓은 안뜰이 펼쳐진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나폴레옹 부인들이 사랑한 궁전

나는 정문의 조각상을 둘러보며 이 로앙 궁전 안으로 들어섰다. 웅장한 로앙 궁전 입구를 통과하자 'ㄷ' 자형 건축물에 둘러싸인 넓은 안뜰이 나왔고, 안뜰에는 무수한 박석이 깔린 광장이 나타났다. 안뜰 뒤 건축물의 압도적인 모습은 프랑스 옛 궁전의 위용을 충분히 느끼게 해준다. 이 궁전의 안뜰에서 고개를 돌려보니 안뜰에서도 노트르담 대성당의 높은 첨탑이 한눈에 들어왔다. 로앙 궁전에서 바라보는 노트르담 대성당은 마치 중세시대의 한 풍경인 양 품격이 있다.

나는 로앙 궁전 안뜰을 지나 로앙 궁전 건물 앞까지 걸어갔다. 건물을 가득 메운 키 큰 유리창들이 마치 거울처럼 주변 건물들을 비추고 있었다. 유리창과 석재로 꽉 찬 이 로앙 궁전은 로앙 가문에 의해 1732년~1742년에 지어졌다. 이 거대한 건축물은 스트라스부르에 가톨릭 신앙이 부활하고 전통 가톨릭 신자인 프랑스 귀족들이 스트라스부르에 이주해 오면서 건설되었다. 그러나 이 궁전 건물은 프러시아 전쟁과 1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상당 부분 파괴되었고, 1990년에 완벽하게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건물 1층 기단부는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검게 변색된 모습이다. 건물 벽면의 사암 석재 색상들이 마치 퍼즐을 맞추어 놓은 것 같이 다른 것은 전쟁과 파괴의 역사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건물 정면 지붕 경사면에 나란히 한 팔을 딛고 앉아 있는 두 여신이 검은 옷을 입은 듯 거무튀튀한 것도 폭격에 파괴되지 않고 다행히 지금껏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나는 건물 왼편 열주 사이에 열린 출입구를 통해 궁전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 안은 스트라스부르의 대주교들이 머물던 주교관답게 시원스럽게 넓고 격조가 있었다. 이 로앙 궁전은 이후 들어선 스트라스부르의 궁전급 건물들이 '팔레 로앙' 양식으로 따르는 모범적인 건물이 될 정도로 권위를 자랑하고 있는 건물이다.

로앙 궁전을 건축한 로앙(Rohan) 가문은 18세기 스트라스부르 사교계를 주도했던 가문이었다. 로앙 가문은 프랑스 왕정의 정치에도 깊이 관여할 정도로 프랑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문 중 하나였다. 원래 인근 부르고뉴에 살던 로앙 가문은 이 스트라스부르에 이주하여 18세기에 스트라스부르 주교를 4명이나 배출했던 명문가였다. 유명 애니메이션인 '베르사이유의 장미'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환심을 사려는 추기경으로 등장하는 '로앙'이 바로 이 '로앙' 가문의 추기경이다.

호화롭게 장식된 방 안으로 들어서자 프랑스 로얄 패밀리들의 취향이 남긴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나는 로앙 궁전을 설명하는 팸플릿을 보다가 로앙 궁전이 18세기 이후부터 프랑스 왕족들이 나들이를 할 때 묵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 시 거처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이 로앙 궁전의 안내원에게 물어보았다.

"이 로앙 궁전에 담긴 로얄 패밀리의 스토리는 무엇인가요?"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왕비 아시죠?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오스트리아에서 프랑스에 시집 올 때 프랑스에서 처음 묵은 곳이 바로 이 로앙 궁전이랍니다. 루이 15세와 나폴레옹 황제, 그리고 샤를 10세(Charles X)가 이 곳에서 며칠 밤을 묵다가 갔죠. 그리고 나폴레옹의 여인들이 이곳을 즐겨 찾았답니다. 나폴레옹의 여인 황후 조세핀(L'Impératrice Joséphine), 나폴레옹의 두 번째 부인 마리 루이즈(Marie-Louise)가 이 로앙 궁전을 사랑했지요."

이 거대하고 압도적인 저택에 19세기부터 박물관이 들어섰다. 지금도 이 로앙 궁전은 스트라스부르를 대표하는 3개의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나는 로앙 궁전 지하에 자리한 고고학 박물관(Musée Archéologique)에 가장 먼저 들어섰다. 스트라스부르와 알자스 지역의 선사시대, 역사시대를 자세히 서술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스트라스부르 고고학 박물관은 프랑스에서 고고학 박물관으로는 파리의 고고학 박물관 다음으로 쳐주는 손 꼽히는 박물관이다.

19세기 말에 문을 연 고고학 박물관 입구에는 알자스 지역에서 발굴한 유물들이 잔뜩 전시되어 있었다. 이 고고학 유물들은 알자스 지방의 오랜 역사를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특히 기원전 60만 년 전부터의 구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유물들이 풍부하게 진열되어 있다. 전시 유물들은 구석기 시대부터 철기 시대를 지나오면서 프랑스의 현생인류가 겪었던 생활의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유물 외에도 당시 모형과 그림 전시를 통해 당시의 모습을 잘 재현해 놓아 프랑스 알자스 지역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놀랍게도 나는 이 스트라스부르 박물관 안에서 로마제국 시대의 유물을 만났다. 로마제국 전시실의 설명문을 보니, 기원전 58년 로마 황제 가이우스 율리우스 케사르(Gaius Julius Caesar)가 알자스(Alsace)를 침입할 때에 알자스는 프랑스를 지배하던 로마시대를 칭하는 갈로-로망(gallo-roman)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알자스에 속한 스트라스부르도 갈로-로망의 영토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박물관에는 갈로-로망 시대의 흔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로마 장군들의 무덤 부장품들과 로마군의 무기, 그릇 등이 가득 쌓여 있다.

로마제국 당시의 스트라스부르는 원형경기장을 갖춘 계획도시였다.
▲ 로마제국 상상도. 로마제국 당시의 스트라스부르는 원형경기장을 갖춘 계획도시였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갈로-로망 시대의 유물 뒤편에는 당시 아르겐토라툼(Argentoratum)이라고 불리던 스트라스부르를 고대 로마풍으로 그려놓은 아주 인상적인 그림이 걸려 있다. 일(Ill) 강의 두 지류에 둘러싸인 요새 아르겐토라툼은 전통 로마 양식대로 시가지가 격자로 잘 구획되어 있다. 그리고 붉은 지붕의 로마 양식 가옥들이 가득 들어선 블록마다 로마인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삶의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올라오고 있다.

놀랍게도 프랑스 북동부 지역인 이 곳에까지 로마제국의 상징인 원형경기장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원형경기장은 로마의 황제들이 피지배 계층들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회유책으로 로마의 각 도시마다 설치하였던 상징적인 문화시설이었다. 당시 수많은 로마인 이주를 바탕으로 전형적인 로마식 도시 문화가 프랑스 땅에 이식된 것이다. 이에 따라 기원전 로마 시대에 아르겐토라툼이라는 군 병영지로 출발한 스트라스부르가 프랑스 북동부 지역의 역사적 중심지로 성장한 것이다.

장례의식에 이용된 세련된 차량

청동기 시대 당시의 장례의식이 상당히 세련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 켈트족 장례마차. 청동기 시대 당시의 장례의식이 상당히 세련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박물관 한 켠에는 철의 시대를 살다간 프랑스 선주민족 켈트(Celts) 족의 문명이 남아 있다. 전시실 안에는 무덤에서 발견된 켈트 족의 귀금속 등 유물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청동과 목재가 조합되어 만들어진 아주 중요한 한 문화재가 눈에 띈다. 켈트 족 유물 중 가장 압권인 것은 켈트족 장례식 마차의 복원품이다.

이 마차는 당시 청동기 시대의 이 지역 장례의식이 세련되게 진행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현대 도시의 길가에 내어놓아도 전혀 어색할 것 같지 않은 장례식 차량의 기능과 디자인이 놀랍기만 하다. 이 멋진 마차바퀴 위에 앉은 사람은 아마도 당시 켈트 족의 수장으로 장례식을 지휘하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당시 사람들의 금속 사용이 상당히 발전하여 있었고, 로마인들이 침략하기 전 켈트인의 삶도 풍요로웠음을 알려주는 훌륭한 유물이다.

미트라 신에게 바쳐진 성역의 석제 유물들이 로마시대 당시의 종교를 보여준다.
▲ 미트라 유물. 미트라 신에게 바쳐진 성역의 석제 유물들이 로마시대 당시의 종교를 보여준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알자스 고대도시에 있던 묘지에서 발굴된 여러 석제 조각들은 나를 복잡한 장례의식과 신앙의 세계로 안내하였다. 지금은 조각난 많은 석제 조각들은 로마와 켈트 족의 신에게 봉헌된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태양의 신 미트라(Mithra)의 성역에 헌정된 방은 나의 상상력을 강하게 자극하였다.

이 지역의 옛 켈트족들이 믿던 신(神)들과 로마인들로부터 수입된 미트라와 같은 신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 태양신 숭배는 당시 신생종교였던 기독교와 강력한 경쟁을 앞두고 종말을 바라보고 있었으니 종교의 역사도 무상하기만 하다.

로마의 켈트 족 중대에 소속되었던 군인이 창을 휘두르고 있다.
▲ 갈로-로망 제국 군인의 석비. 로마의 켈트 족 중대에 소속되었던 군인이 창을 휘두르고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나의 눈길을 강하게 잡아 끄는 것은 석회암 석관에 장식된 창을 휘두르는 군인 '콤니스카 (Comnisca)'이다. 튼실한 말 위에 올라탄 콤니스카 장군은 패배한 상대를 말로 짓밟은 후 창으로 찌르려 하고 있다. 그 뒤에는 무기를 든 콤니스카의 하인이 서 있다. 이 석관의 기념비는 1세기에 당시 아르겐토라툼 외곽의 군인들 묘지에 만들어졌다. 그리스와 로마시대 전성기의 석조상과 비교하면 고졸한 느낌이 들지만 인물상의 얼굴이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얼굴 같아서 괜히 웃음이 새어 나온다.

로마의 켈트 족 중대에 소속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장군의 비문에는 이름과 출신 부족, 부대명, 그의 소명, 성격, 사망 시 나이 등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흥미로운 정보들이 나와 있다. 군대에서 7년을 복무한 그는 전쟁이 끝난 후 25년 만에 사망했지만 그의 후손이 남아 그의 뜻에 따라 이 기념비석을 건립한 것이다. 역사책에는 이름이 남지 않은 장군이지만 후손들이 단단한 석재에 글을 남겼기에 아직까지도 그의 이름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기록의 중요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진다는 것을 여기에서도 발견하게 된다.

나는 고고학박물관에서 스트라스부르의 역사를 알차게 음미한 후에 로앙 궁전 건물의 2층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로앙 궁전 2층에는 스트라스부르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관인 스타르스부르 미술관(Musée des Beaux-Arts de Strasbourg)이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궁전 안에 들어선 이 미술관에는 14세기~19세기에 르네상스 시기 화가 등이 남긴 불세출의 유럽 회화 86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소장품들이 워낙 유명 화가들의 작품이어서 이 미술관만 둘러보아도 간략하게나마 유럽 미술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나는 다시 로앙 궁전의 안내 데스크에서 궁금한 점을 몇 가지 물어보았다.

"주교들이 살던 궁전이 어떻게 화려한 미술품들을 전시하는 미술관이 되었나요?"

"이 로앙 궁전에 마련된 미술관은 나폴레옹과 관계가 깊어요. 프랑스혁명 이후 1801년에 나폴레옹이 프랑스의 교회와 수도원에서 징발한 유명 미술품 40여 점을 로앙 궁전에 기증하였죠. 이때부터 많은 미술품들이 로앙 궁전을 장식하게 되었고, 1898년부터 일반인에게 개방되면서 스트라스부르의 유명 미술관으로 자리잡게 되었죠. 이제는 미술관 역사만으로도 백 년이 훨씬 넘은 역사적인 미술관이랍니다."

나폴레옹이 로앙 궁전에 그림들을 기증하면서 미술관 역사가 시작되었다.
▲ 스트라스부르 미술관. 나폴레옹이 로앙 궁전에 그림들을 기증하면서 미술관 역사가 시작되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유럽을 정복한 나폴레옹이 미술품을 주교의 궁전에 기증하였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 미술품들이 강제로 징발한 것이라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기증 이후 이 스트라스부르 미술관은 날로 확대되게 된다. 미술관 개방 이후 화재, 미술품 이관 등의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개인 기증품들이 늘면서 미술관 소장품 수도 확대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벨기에, 스페인 출신 유명 미술가들의 회화와 조각품을 풍부하게 전시하는 빛나는 미술관이 되었다.

지오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의 초기 이탈리아 화가의 그림은 르네상스가 융성하기 전의 기독교 그림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의 기독교 주제 그림을 보면 르네상스 시기 유럽의 예술이 부활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보티첼리의 그림에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실제 피렌체 사람들의 모습을 한 이들이 다수 등장하고 있다. 도식적으로 그리던 종교화의 화풍에서 벗어나 르네상스 정신이 발현된 종교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이탈리아 사람들의 시대적인 복식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 르네상스의 도래. 당시 이탈리아 사람들의 시대적인 복식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José de Goya y Lucientes) 등 바로크 시대를 장식했던 화가들의 명작도 전시 중이다. 17세기 바로크 시대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그림은 웅대한 스케일에 화려한 장식이 가미되어 있다. 루벤스가 그린 기독교 종교화와 신화 그림에서는 화려한 색채가 빛나고 젖가슴을 드러낸 여인들에게서 에너지가 가득 차 넘치고 있었다. 그의 작품이 힘 없이 죽어있는 작품인지, 에너지가 살아 숨쉬는 작품인지는 회화에 문외한인 사람이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이 역사적 미술관에는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 유명화가의 종교화 등이 전시 중이다.
▲ 종교화. 이 역사적 미술관에는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 유명화가의 종교화 등이 전시 중이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나는 수많은 중세시대 유명 화가들의 종교화를 보면서 내가 마치 중세시대의 기독교 사회 안에 서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서사적이고 성스러운 종교화들을 보고 자라면 어려서부터 기독교에 심취할 것만 같다. 당시 이들의 종교화는 프랑스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더욱 두텁게 해주었을 것이다.

유럽의 미술사를 알려주는 수백여 점의 작품이 전시 중이다.
▲ 미술관의 조각품과 회화. 유럽의 미술사를 알려주는 수백여 점의 작품이 전시 중이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나는 로앙 궁전 밖으로 나와 노트르담 대성당 앞 광장에 다시 섰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기울어져 가는 햇살을 받으며 찬연히 빛나고 있었다. 중세시대 종교화가 가득 찼던 나의 두 눈에 다시 중세시대의 최대 건축물이 눈 앞을 가로막았다. 나는 현대에 살지만 중세시대 속에 서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비현실적인 과거로 회귀할 수 있다는 말인가? 로앙 궁전에서 본 그림 속의 중세시대 햇살들이 다시 광장 안에 쏟아지는 것 같았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약 520 편이 있습니다.



태그:#프랑스, #프랑스 여행, #스트라스부르, #로앙 궁전, #박물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